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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27화 (627/1,214)
  • 627화. 깨어날 조짐

    장안성 어딘가의 허공. 하얀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성 밖의 전황을 살폈고, 특히 우마왕의 활약에 크게 기뻐했다.

    워낙 큰 전투라 마족들의 주의는 저쪽에 집중되었으니 몰래 움직이기 편했다.

    심협이 결인하자 산하사직도가 다시 그의 몸을 감쌌다. 이어서 그는 허공에서 사라졌다.

    모습을 숨긴 그는 우마왕이 깨뜨린 보호막으로 들어가 성 깊은 곳으로 날아갔고, 순식간에 짧지 않은 거리를 전진했다.

    하지만 이때, 회색빛 구름이 갑자기 성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바깥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구름에서 흘러나온 강력한 요기는 허공에 가득했고, 시커먼 풍랑이 휘몰아쳤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우뚝 멈췄다.

    회색 빛 안의 요물은 태을 경지였기에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상대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전진하려 했다.

    한데 회색빛 구름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 구름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멈췄다.

    두 줄기의 혈광이 구름에서 쏟아져 나와 심협이 숨은 곳을 비췄다.

    “누가 이렇게 몰래 다니는 게냐?”

    구름에서 날카롭고 가느다란 호통이 들려오더니 검은색 커다란 봉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지어 봉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을 찌르는 듯한 힘이 쏟아져 나와서 심협의 몸을 짓눌렀다.

    “산하사직도를 간파하다니!”

    심협은 안색이 돌변했다. 이는 그가 이 보물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완벽하게 제련하지 못한 탓이었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는 진해빈철곤으로 막았다.

    꽈르릉!

    검은색과 금색의 두 봉이 서로 충돌하자 격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고, 부근의 허공이 마치 거울 깨지듯이 갈라졌다.

    심협이 두 걸음 물러나자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해빈철곤! 심협, 네놈이구나! 네놈이 손오공의 계승자라 들었다. 안 그래도 네놈과 한번 겨뤄보고 싶었는데 잘됐구나. 간다!”

    흥분한 목소리와 함께 육이미후가 회색 구름 안에서 수심철간병(隨心鐵杆兵)을 휘두르자 세 개의 곤봉 허상이 심협의 가슴과 두 팔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매섭기 짝이 없는 곤봉의 위력에 허공에 세 줄기의 검은 균열이 생겼다.

    심협의 두 발에서 달빛이 반짝였고, 동시에 그는 두 개의 잔상으로 변하여 가볍게 공격을 피했다.

    “사월보법이 제법이구나! 어디 내 차천곤법(遮天棍法)도 피할 수 있나 보자!”

    육이미후는 심협이 가볍게 자신의 공격을 피하자 차갑게 웃고는 철곤으로 다시 공격했다.

    이번의 곤법은 허허실실이라 수많은 허상으로 변했고,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어서 어떤 것이 진짜이고 어떤 것이 허상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곤봉의 허상은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주변을 포위하여 그물처럼 펼쳐졌다. 조금만 닿아도 강력한 힘이 산과 바다를 뒤집을 기세로 몰려올 터였다.

    ‘엄청난 곤법이다. 발천난봉에 뒤지지 않아!’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두 발에 달빛을 반짝이며 곤봉의 그물 사이를 여유롭게 누볐다.

    육이미후의 실력은 이전보다 정진했고, 검은 철봉도 원래의 장창보다 더 강력했다. 그러나 심협 역시 신혼 경지가 큰 진보를 이루었기에 아무리 정교한 곤법이라 해도 그의 눈에는 더없이 느리게 보였다.

    연속된 공격에도 심협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하자 육이미후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냐, 이번에는 내 포천개지(鋪天蓋地)를 받아라!”

    그의 두 눈에서 갑자기 혈홍빛이 번득이더니 마기가 솟구치면서 마치 귀신처럼 달려들었다.

    그의 수심철간병에도 짙은 흑홍색 마광이 떠올랐고, 순식간에 수천 개의 검은 봉이 춤을 추며 심협의 몸 곳곳을 찔러 들어와 도저히 피할 수가 없게 됐다.

    허나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진해빈철곤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수천 개의 곤봉 허상이 슬쩍 스쳐 지나가 좌우로 흘러갔다.

    꽝!

    밀집된 곤봉 허상이 굉음과 함께 사라졌다.

    육이미후의 몸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연속으로 몇 걸음을 물러났는데, 뒤편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커다란 백색 두루마리 그림이 나타나 머리를 뒤덮었다.

    육이미후는 화들짝 놀라 온몸의 혈홍 마광을 뿜어내어 몸을 멈추고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하얀 빛이 휘몰아치더니 그의 모습이 산하사직도 안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진 것이다.

    육이미후는 눈이 흐릿해지더니 하얀 공간에 나타났다. 이곳에는 산과 물이 모두 있어서 실제 세계 같았다.

    “여기는……?”

    육이미후는 멍하니 있다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한데 그때, 둥근 고리가 있는 푸른 빛이 옆에서 날아오더니 그의 몸을 뒤덮었다.

    “헛!”

    그는 기겁하며 수심철간병으로 푸른 빛을 막았다. 이어서 몸 아래에서 회색 빛이 반짝이더니 회색 구름이 나타나 몸을 싣고 옆으로 재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육이미후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커다란 산이 솟구치더니 쿵 소리와 함께 몸을 부딪쳤고, 부근의 하류가 전부 솟구쳐 커다란 물의 밧줄로 변해 그의 몸을 칭칭 감았다. 허공의 태양에서 유성이 떨어져서 하늘을 뒤덮었고, 이러한 공격들은 하나하나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육이미후는 아연실색하며 수심철간병을 어지럽게 휘둘렀다. 밀집된 곤봉의 허상이 몸 주변에서 화려하게 춤을 추며 주변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하지만 뒤편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푸른 고리가 날아와 번개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푸른 고리에 잡힌 육이미후는 꿈쩍도 할 수 없었고, 강력하고 부드러운 힘이 몸에 스며들자 체내의 요력이 완전히 봉인되었다.

    그의 옆에 진원자와 섭채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육이미후는 두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라 전력을 다해 발버둥쳤다.

    그때, 섭채주가 옥정병 안의 버드나무 가지를 휘두르자 두꺼운 버드나무 가지가 육이미후의 몸을 휘감아 다시 한번 가둬두었다.

    결국 육이미후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땅을 뒹굴었다.

    옆에 있던 수심철간병도 10여 개의 버드나무 가지에 묶였다. 뒤엉킨 버드나무 가지가 대진을 이루어서 수심철간병을 뒤덮었다. 이 대진은 일견 단조로워 보였지만, 담긴 힘은 놀라웠다. 대진에 닿는 순간, 수심철간병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마룡이 전력을 다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마기가 들끓었다. 그러나 대진에서 초록 빛이 뿜어져 나와 그것을 가볍게 물리쳤다.

    “심 도우의 실력이 갈수록 대단해지는군. 육이미후는 태을 후기에 도달했고 수심철간병의 위력 또한 놀라운데 삼 초(招) 만에 생포하여 산하사직도 안으로 집어넣다니. 섭 도우의 보타긴고주(普陀緊箍咒)도 대단하오. 부단히 발전하고 경신하였소.”

    진원자가 칭찬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오라버니와 비교되겠어요?”

    섭채주는 진원자가 심협을 칭찬하자 매우 기뻐하며 겸손하게 말했다.

    “대선, 과찬이십니다. 이 원숭이는 마족에 투항하였으니 죽어 마땅합니다. 대선께서 천책으로 피의 제사를 지내시죠. 저는 다시 장안성에 잠입하겠습니다.”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심협의 목소리가 산하사직도에서 울려 퍼졌다.

    육이미후는 그 말을 듣자 안색이 변했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육이미후, 넌 본래 홍황의 이종으로서 천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영수임에도 마족에 투항하였고, 결국 이런 결말을 맞게 됐다.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다!”

    진원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육이미후를 보며 말했다.

    “흥! 노손은 이전에 죽었다가 마족이 다시 살려줬고 또 내게 신통과 법보까지 줬으니 노손이 마족을 돕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은인과 적대해야 한단 말이냐?”

    육이미후는 냉소했다.

    “마족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하고 잘못을 돌이키지 않는다니, 빈도를 원망하지 마라.”

    진원자가 담담하게 말하며 천책을 꺼내서 이상한 결인을 하고는 손끝에서 한 방울의 피를 떨어트렸다.

    짙은 혈망(血芒)이 담긴 금빛이 천책에서 뿜어져 나와 육이미후의 몸을 뒤덮었다.

    이 눈부신 금빛 혈망이 모든 것을 뒤덮자 바깥에서는 안쪽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저 육이미후의 참혹한 비명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섭채주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돌려 불경을 읊조렸다.

    몇 호흡 뒤, 육이미후의 비명이 점점 줄어들더니 바로 완전히 사라졌다.

    * * *

    장안성 어느 캄캄한 곳. 수천 장 크기의 어두운 연못은 흡사 커다란 호수 같았다.

    연못은 붉은 피로 가득해 짙은 붉은빛을 띠었고, 수시로 피거품이 솟아올랐다. 공기 중에는 짙은 피의 기운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곳의 천지영기는 매우 짙었고 또 순수한 마기가 가득했다. 두 기운은 이곳의 기혈(氣血)의 힘과 완벽하게 조화되어 미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마치 조용히 잠을 자듯이 혈지 안에 누운 거대한 몸의 머리와 팔다리만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잠들어 있는 그의 몸에는 매우 흉악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검은 빛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은연중에 그 안에서 검은 그림자가 두 손을 쉬지 않고 휘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근의 천지영기와 마기 그리고 기혈의 힘이 끊임없이 이 커다란 몸으로 모여들어 체내로 흘러들었다.

    그 커다란 몸의 기운이 끊임없이 강해지면서 조금씩 깨어날 조짐을 보였다.

    혈지(血池) 옆에는 열두 개의 작은 혈지가 있었는데, 왼쪽의 첫 번째 혈지는 이미 부서져 있었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열한 번째, 열두 번째의 혈지에는 한 사람씩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들은 기혈의 힘과 천지영기 그리고 마기를 흡수하는 중이었다.

    그 외의 혈지들은 모두 비어 있었다.

    다섯 명의 몸은 핏빛으로 빛나고 있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모두 태을 경지였다. 특히 세 번째와 다섯 번째 혈지의 존재들은 태을 후기였다.

    이곳의 힘을 끊임없이 흡수하면서 다섯 명의 기운은 점점 강해졌는데, 그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두 명의 태을 후기는 점점 태을 절정에 가까워져 천존 경지로 돌파할 징조까지 보였다.

    구명은 그중 한곳의 거대한 혈지 옆에 무릎을 꿇은 채 두 명의 태을 후기를 질투 어린 눈빛으로 힐끗 노려보고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치우 대인,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홉 번째 혈지가 갑자기 핏빛을 뿜어내더니 펑 하는 굉음과 함께 완전히 부서지면서 첫 번째 혈지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 혈지 안의 존재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조용히 수련할 뿐이었다.

    “이건……?”

    구명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신후존자도 죽었다. 아무래도 쳐들어온 자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은 모양이구나.”

    검은 허상이 어딘가를 응시하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손을 들었다.

    부서진 혈지에서 다시 혈홍의 빛이 번득이더니 수많은 핏빛 부문이 생겨나 순식간에 혈홍의 법진을 만들었다.

    그 무렵, 산하사직도 안의 진원자는 육이미후의 육체로 피의 제사를 지냈고, 천책을 이용하여 육이미후의 신혼을 봉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육이미후의 신혼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냉소했다.

    “역시 마성(魔性)은 바뀌지 않는구나.”

    진원자는 차갑게 노려본 후 제사를 지내려 했다.

    한데 그때, 육이미후 신혼의 미간에서 갑자기 핏빛이 폭발하더니 신혼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찌 된 일이지?”

    진원자는 깜짝 놀란 신식으로 주변을 탐색했지만 다른 움직임은 조금도 발견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섭채주 역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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