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24화 (624/1,214)
  • 624화. 마지막 준비

    “허허, 자네는 내 채찍질에 나가떨어진 애송이가 아닌가? 경지의 진전이 꽤나 빠르군.”

    보화천존도 심협을 보자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아봐 주시니 영광입니다.”

    심협은 화를 내지 않고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문(聞) 도우, 오랜만이오.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소이다.”

    진원자도 다가오며 말했다.

    “진원 도우, 그대들의 일은 이랑진군에게 들었소. 마겁의 강림에 정면으로 맞서다니, 소인이 참으로 부끄럽소.”

    보화천존은 부끄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문 도우, 그런 말 마시오. 천정에 이만 한 전력을 남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신 일이오.”

    진원자가 황급히 말했다.

    “진원 도우께서 그리 말해주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군요. 화덕성군과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지금 요족들과 함께 있습니다. 소식을 알렸으니 그도 곧 합류할 겁니다.”

    심협은 화덕성군을 떠올렸다. 잊고 있었는데 화과산의 남은 세력도 약하지 않을 터. 보화천존이 그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니, 다행이었다.

    “참으로 잘됐소. 그들이 합류한다면 승산이 더 커질 것이오.”

    진원자가 기뻐하며 소매를 휘두르자 천책 공간 안에 있던 천병과 부처, 요족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굴이 가득 찼다.

    이들은 현재 삼계의 남은 전력 대다수로, 서로 인사를 나누며 억눌렸던 분위기를 풀었다.

    “여러분! 마겁이 강림하고 삼계의 수많은 생명이 환난을 겪고 있소. 이제 곧 치우가 깨어나려고 하니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삼계에는 희망이 사라질 거요!”

    진원자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눈이 번득였다.

    “물론입니다!”

    누구도 겁먹지 않고 전의를 불태웠다.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게 지금 바로 반격을 못 하는 게 한인 듯했다.

    마겁이 강림한 이후로 그들은 줄곧 마족에게서 도망치며 살았고, 끝없는 분노를 풀 길이 없었는데 드디어 갚아줄 때가 온 것이다.

    허나 여전히 냉정을 유지한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근심이 가득했다. 지금의 마족은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서 삼계 대부분이 이미 그들의 손에 넘어간 상태였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그들과 싸우는 건 무리였다.

    “마족의 세력은 막강하여 그들과 비교하자면 우리는 확실히 역부족입니다. 허나 하늘의 보살핌으로 치우를 봉인할 수 있는 천도지보인 산하사직도와 천정을 진압했던 천책이 우리 수중에 들어왔고, 이미 복원을 마쳤소! 이 두 개의 보물이 있으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습니다.”

    진원자가 천책을 꺼냈다.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자 마치 태양이 천천히 떠오른 것처럼 동굴 안은 황금빛으로 가득해졌다.

    따뜻한 금빛이 그들 마음속의 불안을 씻겨주고 끝없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심협도 산하사직도를 꺼내 운공했다. 그러자 하늘을 찌르는 하얀 영광이 뿜어져 나왔다.

    산하사직도와 천책은 기운이 확연히 달랐다. 산하사직도에는 천책과 같은 휘황찬란한 느낌은 없었지만, 자연의 대도에는 더 가까워 마치 휘영청 밝은 달이 하늘에 떠오른 것 같았다.

    두 보물을 보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진원 도우께서 명을 내려주십시오. 도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보화천존은 두 보물이 이전처럼 회복된 것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뜻이 그렇다면 빈도가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마족과의 힘의 차이가 너무도 크니 전면전은 불가능하오. 기묘한 계책을 세워야만 승리할 가능성이 있소. 빈도는 병력을 둘로 나눌 생각이오. 장안성을 습격하여 마족 대군의 주의를 최대한 끌고, 소수의 인원은 장안성으로 들어가 치우가 묻혀 있는 곳을 찾아내 산하사직도로 봉인하는 거요.”

    모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 방법이 최선일 것이다.

    “병력을 어떻게 나눌지 진원 도우께서 말씀해 주시죠.”

    보화천존이 말했다.

    “방금 장안성 상황을 살펴보니 경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엄중하오. 마족도 우리를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오. 장안성으로 들어가 치우를 찾는 일은 빈도와 심 도우, 섭 도우가 맡겠소. 나머지는 장안성 공격을 맡아주시오.”

    진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세 분만으로는 너무 위험합니다.”

    양전이 서둘러 말했다.

    “아니오. 산하사직도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소? 이 보물이면 허공으로 녹아들어 발각되지 않고 잠입할 수 있으니 조심해서 움직인다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거요. 오히려 여러분에게 마족의 대군이 집중되면 버티기 힘들 터. 마족의 십이존자도 대부분 장안성에 모여 있을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게요.”

    진원자의 진중한 목소리에 양전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 논의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원자가 갑자기 하늘을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화덕성군이 도착했군요.”

    그가 다시 통로를 열자 한 무리가 날아서 들어왔다. 화덕성군과 노마후, 기련미 등이었고, 거의 9백 명에 이르렀으며, 실력도 약하지 않았다.

    “심 도우, 진원 대선, 이랑 진군! 역시 여기에 있었군요. 보화천존에게서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했는데, 무사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화덕성군이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다.

    화과산 원숭이 일족의 노마후 등은 이전에 본 적이 있었기에 심협도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마족과의 결전을 앞둔 심협은 황미의 저물 법기에 담긴 법보와 단약,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약들까지 전부 꺼내 노마후 등에게 건넸다.

    진원자는 계획을 다시 한번 설명했고, 화덕성군 등도 바로 찬성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가서 세 사람을 위해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양전이 심협과 진원자, 섭채주에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잠시만요.”

    심협이 갑자기 그들을 불러 세우고는 머리카락 세 가닥을 뽑아서 다시 차물화형신통을 시전했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섭채주와 진원자는 그 뜻을 이해하고는 자신의 법력을 주입했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은 금빛으로 번득이더니 심협과 섭채주, 진원자로 변했다.

    “심 도우는 여전히 치밀하오.”

    양전이 심협에게 웃어 보이고는 앞장서서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고, 동굴에는 이제 세 사람만 남았다.

    “이제 모두 끝났으니 주천성두대진은 필요 없는 겁니까?”

    “그렇다네.”

    진원자가 심협의 물음에 답하고는 결인하자 동굴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성진 깃발이 그의 소매로 되돌아갔다.

    “그렇다면…….”

    심협은 곧장 전신편을 꺼내 휘둘렀다.

    검은 물결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동굴 전체를 가득 채우자 동굴 안에 우뚝 서 있던 옥기둥이 일제히 터져 나갔다.

    하늘을 찌르는 귀물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귀물이 빼곡하게 나타나자 동굴 안이 부족해 통로를 따라 밖으로 날아가기까지 했다.

    심협이 꺼내놓자 산하사직도는 반짝이며 사라졌다.

    다음 순간, 동굴 가장자리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산하사직도가 나타났다. 너비는 10여 장에 길이는 수천 장인 하얀 두루마리 그림의 처음과 끝이 서로 연결되어 커다란 하얀 고리가 되더니 동굴 전체를 둘러쌌다.

    밖으로 나가려던 귀물들은 하얀 덮개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진원자와 섭채주는 심협이 무얼 하려는지 알고 있었기에 막으려 하지 않았다.

    심협은 심호흡을 하고는 전력을 다해 전신편을 운공했다. 그러자 거대한 검은색 소용돌이가 나타나 동굴 안의 귀물을 전부 빨아들여 서혼대진으로 연화하려고 했다.

    “심 도우, 전신편이 있다 해도 그리 많은 신혼을 한꺼번에 흡수하면 자네 몸이 버티지 못할 걸세!”

    진원자가 서둘러 말렸다.

    “계획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협은 가볍게 웃으며 안심시켰다.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고 마족에 대항하려면 힘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했다. 그러니 이 귀물들을 흡수해 신혼의 힘을 높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토록 서둘러 신혼의 힘을 높이는 것은 당연히 위험하다. 하지만 심협은 견뎌낼 자신이 있었고,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몇 번의 부활로 신혼의 힘을 높일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

    그는 법력을 모조리 전신편에 주입해 서혼대진을 운공했다.

    이토록 강력한 힘이 주입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기에 전신편이 가볍게 떨려왔다. 서혼대진이 빠르게 움직이자 마치 원고시대의 흉신이 부활하여 살육을 갈망하는 듯했다.

    검은 소용돌이가 급속도로 커지더니 순식간에 하얀 광막 전체로 퍼졌고, 동굴 안의 모든 귀물이 휙 소리와 함께 전부 빨려 들어갔다.

    진원자와 섭채주도 검은 소용돌이의 영향을 받아 신혼이 흔들렸다.

    진원자는 서혼대진의 힘에 놀라면서도 불진을 휘둘러 하얀 파문으로 자신과 섭채주를 감싸 검은 소용돌이의 영향을 벗어났다.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는 두세 호흡 만에 바로 사라졌고, 전신편 안의 서혼대진은 단번에 모든 귀물을 흡수하여 깨끗하게 연화했다.

    심협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20만에 달하는 귀물을 이렇게 단번에 흡수하다니, 서혼대진은 그의 생각보다 더 대단했던 것이다. 역시 조무가 만든 절세의 법진다웠다.

    서혼대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바로 역행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얀 구슬이 심협의 미간으로 날아들더니 그의 신혼과 하나가 되었다.

    심협의 머릿속에서는 신혼이 충만해졌고, 몇 호흡 사이에 열 배나 커졌다.

    마치 머릿속에 가득한 뜨거운 용암이 끊임없이 팽창하는 느낌이었고, 연이은 충격이 머리를 두들겨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서혼대진에서 날아온 하얀 구슬은 멈추지 않고 벌떼처럼 몰려왔고, 순수한 신념의 힘이 심협의 신혼으로 계속 주입됐다.

    심협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전력을 다해 부주진신법을 운공함으로써 폭증하는 신혼의 힘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급속도로 폭증한 신혼은 쉬지 않고 용암을 뿜어내는 화산 같아서 부주진신법으로는 진정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반작용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심협은 심지가 굳건했다. 게다가 부활할 수 있으니 상황이 악화돼도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심협의 눈과 코, 입, 귀에서는 피가 흘렀고, 몸이 끊임없이 떨려왔다. 법력의 흐름도 어지러워졌고 몸이 불룩해졌다.

    “오라버니, 어서 멈춰요!”

    섭채주가 급하게 금빛을 뿜어내 막으려 했다.

    그때, 심원한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고 있던 진원자가 그녀를 만류했다.

    “서두르지 말고 우선 지켜보세.”

    심협 머릿속 신혼의 힘은 폭동이 갈수록 거세져 완전히 끓는 물과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흡입력이 나타나 폭주하는 신혼의 힘을 빠르게 흡수했다.

    심협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지만, 은연중에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자 서둘러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이 흡입력과 함께 폭증하는 신혼의 힘을 길들였다.

    체내의 어지러웠던 법력이 온순해지면서 불룩하던 몸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고통도 점점 줄어들면서 마치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콰쾅!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머릿속에서 갑자기 환하고 하얀 빛이 비치더니 마치 대문이 열리는 것처럼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

    주변의 천지영기가 물밀듯이 체내로 몰려들면서 굉음과 함께 영기의 소용돌이가 솟구쳤다. 이에 진원자와 섭채주는 멀리 밀려났다.

    “허허, 그런 거였군. 그런 거였어.”

    진원자는 놀라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진원 대선, 오라버니는 괜찮은 건가요?”

    섭채주가 다급하게 물어봤다.

    “심 도우는 역시 천 년에 한 번 난다는 기재(奇才)로군. 난관을 넘었으니 경지가 한 단계 더 올라간 걸세.”

    진원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편, 심협 머릿속에서는 흡입력이 빠르게 폭주하는 신혼의 힘을 흡수했다.

    신혼의 힘을 흡수할 때마다 머릿속의 폭동이 조금씩 줄어들고 신혼 깊은 곳의 흡입력은 더 강해져 몇 호흡 사이에 전부 흡수되었다. 흡입력은 그제야 사라졌고, 몰려오던 천지영기도 함께 멈췄다.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신혼의 힘이 열 배 이상 강해진 게 느껴졌다. 만약 이전이 졸졸 흐르던 시냇물이었다면 지금은 요동치는 큰 강이었다. 질적인 변화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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