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23화 (623/1,214)
  • 623화. 방법이 아닌 방법

    “진원 대선, 더 좋은 영재가 필요하다면 제게 좀 있습니다.”

    심협에게는 황미의 저물 법기가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진귀한 재료들이 있다.

    “소용없네. 내 이 보물들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영재로는 복원할 수가 없네.”

    “그럼 어찌 하면 좋습니까?”

    이나타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진원자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더니 결단한 듯 입을 쩍 벌렸다.

    청색과 황색, 두 가지 빛이 날아가 일월주천로 안으로 들어갔다. 하도낙서와 지서였다.

    그가 손가락을 뻗자 선로 안의 두 종류 진화가 순식간에 하도낙서와 지서를 휘감았고, 두 보물도 강렬한 빛을 발하며 거세게 타올랐다.

    지서가 천천히 녹아들자 액체 같은 노란 빛이 흘러나와 산하사직도 곳곳에 들어갔다.

    산하사직도가 뿜어내는 빛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안에 있던 산하 그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두루마리 그림의 몇 군데 균열을 천천히 봉합했다.

    하도낙서도 마찬가지로 푸른 빛을 번득이더니 천책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천책 위의 균열도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진원 도우, 지서와 하도낙서의 본명 원기가 산하사직도와 천책 안으로 주입되면 도우의 두 개의 중보는 부서지고 말 겁니다!”

    이나타가 이 광경을 보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이 두 가지 보물은 진원자에게 특별했다. 특히 지서는 아마 진원자의 본명법보일 터. 이렇게 부서지면 아마 그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치우를 봉인하고 삼계가 평화로울 수만 있다면 어찌 아깝겠는가?”

    진원자는 전혀 아까워하는 기색 없이 계속해서 술법을 시전했다.

    ‘아깝겠는가’라는 다섯 글자가 심협의 가슴 깊이 새겨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숭고함이었고 기백이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하여 법력을 아낌없이 천책과 산하사직도 안으로 주입했다.

    * * *

    또다시 하루가 지나자 일월주천로 안의 지서와 하도낙서에는 균열이 가득했고, 빛은 어두워져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산하사직도에는 균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천책도 네 개의 균열은 거의 사라져 이제 마지막 한 가닥만 남았다.

    진원자는 두 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하여 보라색 불꽃을 산하사직도 위에서 뛰놀게 했다. 지서의 노란색 본명원기가 산하사직도 안으로 주입되었다.

    신하사직도의 균열이 갑자기 살아난 것처럼 비틀어지더니 벗어나려 했다.

    그 순간, 진원자는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두 손으로 재빨리 결인하는 동시에 혀끝을 깨물어 피를 지서에 흘려보냈다.

    지서가 완전히 부서지면서 순수한 노란 빛으로 변했고, 그 안에 있던 수많은 현묘한 부문들도 산하사직도 안으로 녹아들었다.

    풍악 같은 선악(仙樂)이 산하사직도에서 울렸고, 그림 위의 균열이 조금씩 흐려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갑자기 하늘을 찌르는 영광이 산하사직도에서 폭발하면서 흥겹기 그지없는 청명한 소리가 흘러나왔고, 천지영기도 마치 지존의 귀환을 맞이하는 것처럼 떨려왔다.

    “드디어 됐다!”

    심협은 기뻐하여 마음을 절반쯤 내려놨다.

    “심 도우, 정혈 한 방울을 산하사직도 안으로 넣게!”

    진원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심협은 당황한 와중에도 곧장 오른손 중지를 깨물어 손가락을 내밀었다.

    한 방울의 피가 선로 안으로 들어가 산하사직도 위에 떨어지더니 빠르게 흡수되었다.

    산하사직도의 영광이 점점 줄어들면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림은 이내 투명하게 변하여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사라졌다.

    다음 순간, 심협의 손에서 영광이 번득이면서 한 폭의 두루마리 그림이 나타났다. 바로 산하사직도였다.

    그림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친근감을 표하는 듯했다.

    이를 본 이나타는 내심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질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천교(闡敎)의 뛰어난 제자이자 천정의 전신(轉神)인 그는 이미 많은 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협은 오른손에서 금색 빛기둥을 뿜어내며 천책의 융합을 도왔고, 왼손으로는 산하사직도를 잡고 신식을 넣어 이 보물의 본원과 소통했다. 그리고 이내 이 보물이 완전히 복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산하사직도의 신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이 그림 안에는 자체의 세계가 있는데, 보통의 비경 같은 공간이 아니라 진짜 하나의 세계였다. 일월성공(日月星空)이 모두 있고, 주야가 바뀌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산하사직도 세계에서 그는 산하도(山河圖)를 지배하는 신이었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었다.

    심협은 이 보물이 있으면 진원자 같은 천조급 고수를 만나도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보물을 제련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산하사직도를 더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하고 서둘러 심신을 거두었다. 그가 결인하자 산하사직도는 다시 일월주천로 안에 나타나 커다란 영광을 뿜어내 천책을 뒤덮더니 복원을 도왔다.

    천도지보인 천책만 복원된다면 그들에게는 두 개의 천도지보가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충분히 마족에 맞설 수 있을 터였다.

    진원자는 더없이 엄숙한 표정으로 제련에 전력을 다했다.

    천책의 균열 중 세 개는 이미 사라졌고 마지막 하나만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하도낙서는 이미 붕괴 직전이었고,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도 본래의 1할로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끊임없이 천책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천책의 마지막 균열이 마침내 꿈틀거리면서 완전히 합쳐지려 했다.

    진원자와 심협, 이나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그 순간, 천책의 금빛이 갑자기 불안정해지더니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합쳐져 있던 천책이 갑자기 스스로 펼쳐졌다. 이어서 금빛이 폭발하면서 성난 파도처럼 주변을 휩쓸었다.

    지척에 있던 하도낙서가 가장 먼저 충격을 받았다.

    진원자는 안색이 변해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펑!

    폭발음과 함께 균열로 가득했던 하도낙서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고, 산하사직도는 선로 밖으로 튕겨 나갔다.

    일월천로도 격렬히 흔들렸지만, 다행히 손상되지는 않았다.

    한편, 천책의 거센 금빛은 금방 사라졌다. 그러나 마지막 균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창백해진 진원자가 가볍게 기침하더니 결인하던 손을 멈추었다. 그러자 일월주천로의 빛도 어두워지면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진원 도우, 괜찮으십니까?”

    심협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원자가 이렇게 된 것은 지서와 하도낙서 두 가지 보물이 부서지면서 주인이었던 그에게까지 영향이 갔기 때문이다.

    “괜찮네.”

    진원자는 손을 내젓고는 초록색 단약을 삼켰다. 그러자 얼굴에 초록빛이 감돌더니 금세 회복되었다.

    “하도낙서는 부서지고 천책은 여전히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군요. 다른 보물을 써볼까요?”

    심협이 안도하고는 선로 안의 천책을 보며 물었다.

    “소용없네. 자네들의 보물은 품급이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치우가 곧 깨어날 테니 시간도 충분하지 않네.”

    “그래도 산하사직도는 복원되었으니 치우를 봉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나타가 초조하게 물었다.

    “나도 확신할 수 없지만, 전력을 다한다면 가능할 수도……. 천책이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지만 절반의 힘을 회복했으니 큰 도움이 되긴 할 걸세.”

    진원자는 천책을 불러내며 탄식했다.

    천책에서 강력한 기운이 발산되자 심협과 이나타는 압박감에 두어 걸음 물러나야 했다.

    진원자가 소매를 휘둘러 푸른 빛을 천책 안으로 들여보내자 강력한 기운이 그제야 사라졌다.

    “천책을 복원할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심협이 재차 물었다.

    천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의 진해빈철곤이나 전신편보다 훨씬 월등하니 지금 상태로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체념할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딱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진원자가 다시 눈을 뜨며 말했다.

    “그게 뭡니까?”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물었다.

    “피의 제사.”

    “피의 제사요? 그건 마족의 수단이 아닙니까?”

    “그렇다네. 마족의 피의 제사는 흉포하고 불경하지. 허나 이 방법은 원기를 보충하는 지름길임이 틀림없네. 천책은 영성이 엄청난 보물이지. 마지막 균열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도 영성의 보충이 부족한 탓이라네. 만약 강력한 혼백의 제사를 지낼 수 있다면 이 보물은 반드시 복원될 걸세.”

    진원자의 침통한 목소리에 심협과 이나타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마족의 피의 제사는 삼계의 정통을 잇는 수선자들이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 사악한 술법만이 아군의 승산을 높일 수 있다.

    허나 그 술법을 쓴다면 자신들이 마족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때, 동굴 위쪽이 빛이 번득이더니 우마왕과 섭채주가 내려왔다.

    “화생사와 금생사 등의 거대 문파에 가봤으나 이미 멸망했어요. 보타산 사람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고요.”

    섭채주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쪽도 마찬가집니다. 일전에 살아남았던 요족들의 동부는 폐허가 됐습니다. 아무래도 마족 놈들이 정말로 삼계의 모든 생명을 말살하려나 봅니다!”

    우마왕 역시 표정이 어두웠다.

    “예상했던 일이니 두 사람 모두 실망하지 마시오.”

    진원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쪽은 어떤가요? 산하사직도와 천책은 복원됐나요?”

    섭채주가 물었다.

    “산하사직도는 복원됐는데 천책은 아직도 균열이 남았어. 진원 도우의 말로는 강력한 생명의 혼백으로 피의 제사를 지내야만 복원할 수 있다는군.”

    심협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피의 제사요?”

    섭채주는 안색이 변해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간족 수사들은 정말 번거롭군. 정사 구분이나 따지고 있으니 그리 느린 거 아닌가! 필요하다면 하면 될 것을! 천하 모든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이 뭐가 대수겠는가! 자네들이 못 하겠다면 내가 하지.”

    우마왕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그래도…….”

    섭채주는 머뭇거리며 만류하려 했다.

    “지금 삼계의 생존이 달렸건만, 어찌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쓴단 말인가! 진원 대선, 피의 제사에 필요한 생명은 제한이 있으니 마족들로도 괜찮습니까?”

    “가능하네.”

    진원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됐군요. 장안성 곳곳에 마족이 넘쳐나니 앞으로의 대전에서 강력한 놈들로 몇 마리 잡으면 되겠군요.”

    우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제게 맡기시죠. 산하사직도가 제게 있으니 생포하는 건 간단합니다.”

    옆에서 심협이 거들었다.

    그 역시 알고는 있었다. 피의 제사는 악독한 짓이다. 허나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대상을 마족으로 삼는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섭채주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랑진군이 돌아왔군. 그의 수확은 적지 않아 보이네.”

    진원자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며 소매를 휘둘렀다.

    석벽이 노랗게 빛나더니 땅속까지 통로가 생겨났고,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좋은 소식이오! 동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양전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걸어왔다.

    그의 옆에는 키가 큰 천장이 서 있었다. 짙은 눈썹과 커다란 코, 세 개의 눈 중 가운데 눈에서는 하얀 빛이 번득였다. 허리에 꽂힌 자색과 청색의 채찍들이 위엄을 더했다.

    두 사람 뒤로는 은색 갑옷의 천병이 5백여 명이나 있었다.

    일행이 들어오자 땅속까지 연결된 통로가 번득이면서 또 저절로 닫혔다.

    “당신은!”

    심협이 세눈박이 천장을 가리켰다.

    그자는 다름 아닌 천책 공간 속 결투에서 일격에 그를 패배시킨 구천응원뇌신보화천존이었다.

    심협은 그의 실력이 태을 후기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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