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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22화 (622/1,214)
  • 622화. 하나가 된 천책

    “치우는 불사불멸의 몸이니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네. 유일한 방법이 산하사직도로 봉인하는 것뿐이지. 우리는 산하사직도의 파편을 벌써 모았으니 이제 그것을 합치는 일만 남았네. 여기 주천성두대진에는 기운 파동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지. 내가 법진의 위력을 높인 것도 모두 산하사직도를 합치기 위함이었네.”

    “그렇군요. 진원 도우께서 이미 계획을 세웠으니 어서 시작하시죠.”

    심협이 그렇게 답하면서 네 개의 산하사직도 파편을 꺼냈다.

    “서두르지 말게. 산하사직도는 천도의 지보라 파편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아. 반드시 다른 천도지보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네.”

    진원자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보물이요? 혹시 천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이 보물은 천정을 지키던 중보이자 천도의 지보 중 하나이니 산하사직도를 완벽하게 복원하려면 반드시 천책의 힘이 필요할 걸세.”

    “그렇다면 우선 천책부터 합쳐야겠군요.”

    심협과 양전, 섭채주는 천책 잔권을 꺼내 진원자에게 건넸다.

    “진원 도우, 천책 잔권을 합치면 안에 있는 신혼의 흔적을 남긴 요족들에게도 영향이 갑니까?”

    우마왕은 바로 천책 잔권을 넘기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양전이나 심협과는 달리 그는 일족을 지키기 위해 휘하의 수많은 요족 신혼의 흔적을 천책 안에 넣어 두었기에 천책을 합치면 그들에게 영향이 생길까 우려한 것이다.

    그동안 천책의 힘을 이용하여 휘하 요족들의 실력을 최대한 온전하게 보존해왔다. 대신 요족과 천책 잔권의 연계가 깊어져 이제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안에 있는 요족의 속박력은 커지겠지만, 생명에는 아무런 해도 없네.”

    우마왕의 마음을 이해한 진원자는 숨김없이 말했다.

    그 말에 우마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요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자유다. 한데 천책이 합쳐진다면 그 안의 수많은 요족이 천병이나 천장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자유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우 도우,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치우를 제압하고 요족을 포함한 삼계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네. 그러지 못하면 삼계의 모든 생명은 도탄에 빠질 게야. 호족 역시 이를 피할 수 없겠지”

    “진원 대선의 말씀이 옳습니다. 치우가 다시 살아난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모두가 죽은 목숨입니다. 살아남아야 자유도 있는 법이지요.”

    진원자가 말하고 심협이 받았다.

    “두 분의 말이 옳습니다. 제가 본질을 보지 못했군요.”

    우마왕은 쓰게 웃더니 천책 잔권을 꺼내 진원자에게 건넸다.

    잔권을 받은 진원자가 소매를 휘두르자 그의 천책 잔권도 나타났다.

    다섯 권의 잔권이 허공으로 떠올라 서로 연결되자 태양이라도 생겨난 것처럼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르릉!

    강력한 기운이 폭발하면서 위엄이 충만해지자 모두 몇 걸음 물러나야 했다.

    주천성두대진은 이 위엄을 감지하자 천책에서 폭발하는 기운을 가둬 동굴 밖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한참이 지나자 천책의 금빛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곳에는 다섯 권의 천책이 하나가 된 완전한 금책(金冊)이 있었다.

    다만 금책에는 네 줄기의 선명한 금이 가 있었고, 금빛도 불안정했다.

    “천책이 완벽하게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네. 이 일은 나와 심 도우에게 맡기고 이랑진군, 평천대성, 그대들은 삼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이곳으로 집결시키게. 이후 함께 장안성으로 출발하세. 시간이 많지 않으니 모두 흩어져서 움직이게.”

    진원자의 숙연한 목소리에 양진 등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원 도우, 지부에서는 미처 묻지 못했는데 어째서 치우가 깨어나는 시간이 이렇게 빨라진 겁니까? 예측한 것보다 3년은 빠릅니다.”

    양전이 떠나기 전에 물었다.

    “마족이 사람들을 실의에 빠지게 하고 장안성 백성들로 피의 제사를 지냈기 때문일 걸세.”

    진원자의 무거운 목소리에 심협은 표정이 어두워져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장안성은 대당에서 아직 함락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기에 각지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이 모여들었고, 인구가 천 년 전보다도 오히려 늘어났다. 한데 치우는 이 사람들로 피의 제사를 지낸 것이다!

    양전과 우마왕도 표정이 무거워졌지만, 더는 묻지 않고 토둔술로 쏜살같이 위로 올라갔다.

    “오라버니, 보타산은 마족의 공격으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제자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저는 그들과 연락이 되는지 알아볼게요.”

    섬채주의 말에 심협은 가슴 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당부했다.

    “밖은 요마들 천지이니 조심해야 한다.”

    “걱정 마세요. 제게는 옥정병과 버드나무 가지가 있으니까 설령 십이존자를 만나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어요.”

    섭채주가 빙긋이 웃고는 둔술을 시전하여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른 요족과 천병들은 모두 천책 안에 있었으니 동굴에는 심협과 진원자, 이나타만 남았다.

    “천정에 연락하는 것은 양 형님께 맡기면 될 테니 저는 남아서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이나타가 말했다.

    “그것도 좋지. 삼태자의 화염신통은 삼계에서도 유명하니 그대가 천책과 산하사직도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화력을 제공해주게.”

    “문제없습니다. 제게 맡겨주세요.”

    이나타는 환하게 웃었다.

    “진원 도우, 천책과 산하사직도를 동시에 복원하려는 겁니까?”

    심협이 묻자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진원자가 허허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네. 이 두 가지 보물은 모두 천도지보이니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지. 동시에 복원하는 편이 나눠서 복원하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 걸세.”

    심협은 진원자의 식견이 자신으로서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넓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묻지 않고 네 개의 산하사직도 파편을 건넸다.

    진원자가 손을 휘두르자 보라색 연기로가 나타났다.

    이 연기로의 높이는 3장이었고, 천지일월, 주천성진의 도형이 새겨져 있었다.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전체가 영롱한 보랏빛이었고, 수시로 자욱한 보랏빛 기운이 솟아올라 주위에 보라색 구름을 만들어냈다.

    “무슨 선로이기에 이토록 신비합니까?”

    심협은 이 연기로 내부에 천지가 망라하고 신비한 힘이 흐르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물었다.

    “일월주천로(日月周天爐)라네. 내 일찍이 홍황을 유랑할 때 불주산(不周山)에서 얻은 자라선옥(紫羅仙玉)을 만 년간 제련해 만들었지. 태상노군의 자금팔괘로(紫金八卦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네.”

    진원자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웃으며 결인했다.

    진원자의 법결이 떨어지자 일원주천로의 뚜껑이 저절로 열리면서 보랏빛 하광이 뿜어져 나와 천책과 네 조각의 산하사직도 파편을 감싸 선로 안으로 끌어갔다.

    이나타도 입을 벌려 삼매진화를 뿜어내 선로 아래에 불을 지폈다.

    일월주천로 아래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마치 입처럼 나 있었는데, 그리로 들어간 삼매진화는 아홉 개의 가느다란 화선(火線)으로 변해 천책과 산하사직도를 감싸고는 천천히 타올랐다.

    진원자가 두 손을 결인하자 선로 안에서 다시 변화가 일어났고, 푹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보라색 진화가 나타났다. 온도는 이나타의 삼매진화와 비교해도 오히려 조금 더 높았다.

    “십대천화 중 하나인 자라천화(紫羅天火)!”

    심협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자라천화는 천지의 지고지순한 천외 허공에서 탄생한 가장 깨끗한 영화(靈火)였다. 온도가 매우 높아 모든 것을 태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료를 정제하는 효능도 있어서 보물을 정제하는 데 적합했다.

    진원자가 두 손을 결인하자 자라천화는 아홉 갈래로 갈라져 삼매진화와 함께 두 보물을 휘감았다.

    선로 안의 온도가 금방 뜨거워지면서 허공이 일그러졌다.

    “진원 도우,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심 도우가 수련한 황정법력의 순수함은 산하사직도와 천책의 본원적 힘과 서로 통하니 법력을 주입해주게.”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손을 들어 다섯 개의 금색 빛줄기를 뿜어냈다.

    이 빛줄기들은 하나는 굵고 네 개는 가늘었는데, 굵은 금빛은 천책 안으로, 네 개의 가느다란 금빛은 각각의 산하사직도 파편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천책의 금빛이 일정해지면서 더는 강렬하게 흔들리지 않았고, 네 개의 산하사직도의 파편도 마찬가지로 빛을 발했다.

    진원자가 엄숙한 얼굴로 결인하여 일월주천로 위를 내려치자 산하사직도 파편을 휘감은 불꽃이 가볍게 흔들리더니 네 개의 조각이 천천히 위치를 바꿔가며 서로 붙었다.

    뒤이어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허공에 영재들이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매우 강렬한 영력을 발했다. 모두 천지진보 일급의 영물로, 그중에는 아기처럼 생긴 선과도 두 개 있었다.

    이 영재들은 물 흐르듯이 선로 안으로 들어가 바로 삼매진화에 휩싸였다.

    진원자가 무언가를 읊조리자 열 손가락이 몸 앞에서 불꽃이 춤추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법력을 하나하나 선로 안의 두 진화 안에 넣자 두 가지 보물을 휘감은 화염은 순식간에 순수해졌고, 몇 호흡 만에 유리처럼 투명해졌다.

    “순질(純質)의 불꽃!”

    심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현천공화결을 익혔기에 진원자가 시전한 수단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모종의 공화지술(控火之術)로, 짧은 시간 안에 이나타의 삼매진화와 자라천화를 순질의 불꽃으로 제련한 것이다.

    자라천화는 그렇다 쳐도 삼매진화는 이나타가 뿜어낸 것인데 진원자는 그마저도 공화지술로 제련했으니 놀랄 일이었다.

    제련된 자라천화와 삼매진화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고, 이에 재료들은 금세 녹아 천천히 천책과 산하사직도 안에 녹아들었다.

    진원자의 법결이 다시 바뀌자 자라천화가 갑자기 갈라지면서 미약한 보라색 불꽃으로 변하여 산하사직도 파편의 균열로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마치 실로 옷을 꿰매듯이 산하사직도 조각을 하나로 봉합했다.

    천책의 갈라진 부분도 마찬가지로 보랏빛의 화선이 빠르게 맺혔다.

    심협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진원자는 간단하고 난폭하게 두 보물을 연결하는 것처럼 보여도 법력을 운공하여 돕고 있는 심협은 보라색 화선들의 배후에 얼마나 정교한 제련법이 숨겨져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는 연기사가 아니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두 보물이 하나의 선로에 있음에도 발산하는 빛이 충돌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돕고 영향을 주었다.

    천책의 금색 영광은 빠르게 안정되었고, 네 조각의 산하사직도 파편도 조금씩 하나로 합쳐지면서 주위의 천지영기가 산하사직도의 영향을 받아 물 끓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위의 주천성두대진이 모든 영력 파동을 막아 밖으로 퍼져 나가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하루가 지났다.

    네 개의 산하사직도 파편은 이미 하나로 합쳐져 완전한 산하의 두루마리 그림이 되었다.

    이 그림은 태반이 투명하게 변해 허공으로 흘러들어갔고, 주위의 허공에는 물결 같은 흔적이 생겨났다. 산하사직도는 언제든 허공으로 흘러들어가 사라질 것처럼 매우 신비로웠다.

    천책이 발산하는 금빛도 견고해졌지만, 균열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심협의 안색은 조금 어두웠다. 하루 동안 진원자는 백 점의 선품 영재를 두 가지 보물에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보물들이 작용을 발휘해 천책과 산하사직도의 균열을 조금 없애줬지만, 이제는 아무리 많은 선품 영재를 집어넣어도 두 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원자의 미간에도 깊은 자국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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