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화. 남아 있는 법진
하늘을 찌르는 원한이 부서진 옥기둥에서 폭발하더니 실체가 있는 듯한 검은 귀기가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지하 공간을 가득 메웠다.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땅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모두가 서둘러 술법으로 몸을 보호했다.
그사이 검은 귀기에서는 수천 병사의 귀물 허상이 나타나 온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 위세는 명계의 귀물들보다도 3할은 강해 보였다.
“역시 병사의 군혼이로구나! 복장을 보아하니 대당 전대 왕조의 군사 같은데, 어째서 여기에 봉인된 거지?”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 귀물들의 음기는 강력했지만 심협과 같은 태을의 존재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옥기둥의 성진봉인으로 미루어 시전자는 이 군혼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던 듯하네. 오히려 이곳의 음기로 이들을 키워 큰일을 도모할 생각이었던 모양일세.”
“그렇군요!”
진원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은 깨달았다. 그가 알기로는 전대 왕조의 대군은 이곳까지 후퇴하여 숨었고, 더는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이 대진을 설치해 군사의 혼백을 봉인한 뒤, 음기를 먹여 키운 것이다. 훗날 장안을 칠 날만을 기다리며…….
‘그래서 귀물들이 장안에 쳐들어왔을 때 이곳의 귀물들이 연신단과 힘을 합친 것이었구나.’
다만 전대 왕조 중에서 주천성두대진을 알고 있는 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군혼 귀물들은 살아 있는 자들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피에 굶주린 눈빛으로 달려들었다.
“어딜 감히!”
심협이 차갑게 외치고는 법력을 육진편에 주입하자 검은 부적이 떠올라 빠르게 회전했다. 검은 소용돌이가 생겨나면서 방대한 흡입력이 흘러나오자 지하 동굴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귀물들은 수가 많고 실력도 약하지 않았지만, 심협의 적수는 아니었다.
모든 군사 귀물이 바로 전부 빨려 들어와 육진편에 흡수되었다.
이때, 하얀 옥기둥의 성진도안에서 밝은 별빛이 피어올랐고, 동굴 위쪽의 석벽에도 별빛이 떠올랐다.
본래 어둡던 동굴 위쪽이 갑자기 투명해지면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성진 진도(陣圖)가 나타나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짙은 성진의 힘이 담긴 굵은 별빛이 진도에서 뿜어져 나와서 육진편을 매섭게 공격했다.
카캉!
육진편이 강렬하게 흔들리면서 심협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그러나 다급하게 법력을 운공해서 다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때, 육진편 위에 맺힌 검은 빛이 갑자기 폭증하면서 기세를 거슬러 별빛과 충돌했고, 마치 철천지원수를 만난 것처럼 쉬지 않고 맹렬히 싸웠다.
파지직!
파열음이 동굴에 울려 퍼졌고, 허공에서는 심지어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이 상황에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이는 진원자 등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동굴 위쪽에서 떨어지던 별빛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몇 호흡 뒤에 사라졌고, 돌기둥과 동굴 위쪽의 별빛도 모두 사라지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육진편의 변화만은 그치지 않았고, 검은 빛은 여전히 치솟아 더욱 밝아졌다.
검은 빛 안의 채찍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더 길어지더니 마치 녹을 떨구어내는 것처럼 탈바꿈해갔다.
심협은 퍼뜩 알아채고는 서둘러 법력을 주입했고, 이내 두 눈이 커졌다.
육진편의 금제는 이미 완전히 연화한 바 있는데, 이 채찍 안에 갑자기 새로운 금제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 수는 매우 많았고, 이전에 연화했던 것들보다 훨씬 현묘했다.
“육진편에 아직도 이렇게 많은 금제가 담겨 있을 줄이야! 그 수가 진해빈철곤보다 적지 않구나!”
그는 눈을 번득이며 선천연보결을 운공하여 육진편에 나타난 새로운 금제를 연화하기 시작했다.
검은 조각들은 계속 떨어져나갔고, 몇 호흡 사이에 육진편은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청동색에 아홉 개의 검은 고리가 달린 고풍스러운 철편으로 변했다. 손잡이 부근에는 새 머리 조각이 나타났는데, 빨간 눈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고풍스러운 철편 전체에는 흉살의 기운이 감돌아 마치 태생부터 살육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검은 빛이 반짝이면 수시로 피에 굶주린 야수의 포효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상고시대 무족(巫族)이 만든 십이무기(十二巫器) 중 하나인 전신편(戰神鞭)! 설마 이걸 이정이 가지고 있었던 건가!”
진원자는 새롭게 변한 육진편을 보더니 깜짝 놀라 외쳤다.
“전신편? 십이무기? 그게 뭡니까?”
심협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묻자 이나타와 우마왕 등도 귀를 기울였고, 양전만은 평온한 표정으로 삼첨양인도를 꽉 쥐었다.
“상고시대 무요(巫妖) 대전 때의 비화(祕話)이니 자네들은 모를 만도 하지. 상고시대에 홍황 대지를 차지한 무와 요, 두 종족은 매우 번성했네. 한데 훗날 홍황의 주인 자리를 두고 싸움이 일어났지. 하지만 요족의 쌍성제준(雙星帝俊)과 동황좌(東皇坐)는 선천지보 동황종(東皇鐘)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도 막아낼 수 없었다네.
요족에 대항하기 위해 무족은 모든 일족의 힘을 동원하여 열두 명의 조무(祖巫)가 절대적인 위력의 무기를 하나씩 만들어 동황종에 대항했지. 전신편과 양전 도우의 삼첨양인도 모두 그 십이무기 중 하나라네.”
진원자의 말에 모두가 놀라며 전신편과 삼첨양인도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심협은 손에 쥔 채찍을 자세히 바라봤다. 설마 이 보물에 이런 엄청난 이력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곳의 주천성두대진은 요족의 절세 법진이로군. 당시에도 무족을 한두 번 상대한 게 아니었을 텐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도 무기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공격했으니 말일세. 어쨌든 잘된 일이지. 심 도우의 채찍이 본체를 드러내게 되지 않았는가.”
진원자가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전신편을 휘둘렀다.
마치 그 위력을 견디지 못하듯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심 도우, 조심하게.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전신편은 조무제강(祖巫帝江)의 무기일세. 제강은 진법에 능통하여 무족의 연신대진(煉神大陣)을 결합해 전신편 안에 더욱 사나운 서혼대진(噬魂大陣)을 설치했다 하네. 이 채찍은 공격력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신혼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서 닿기만 해도 바로 혼백을 뽑아 흡수하고 연화시켜 버린다네.”
진원자가 서둘러 주의를 주었다.
“서혼대진이라고요?”
심협은 전신편을 거두고는 신식을 펼쳐 채찍 안을 살폈다. 가장 깊은 곳에 검은색 금제가 있었다.
이 금제는 요란하게 회전하면서 무서운 소용돌이를 만들어 믿기 힘든 흡수력을 뿜어내 이전에 빨아들인 귀물을 끊임없이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신식마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바로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란 심협은 황급히 신식을 거두었다.
몇 호흡 뒤, 천 마리에 가까운 귀물이 남김없이 서혼대진에 흡수됐다.
‘강력한 대진이로군. 천 마리에 가까운 귀물이 이렇게 녹아버리다니!’
그때, 서혼대진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역행하더니 칠흑 같았던 법진의 소용돌이가 하얗게 변했다.
전신편의 새 머리 조각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리더니 엄지손가락만 한 반투명한 구슬을 뱉었다. 이 하얀 구슬은 그대로 날아서 심협의 미간으로 흡수되어 식해로 들어갔다. 신념의 힘이 뭉쳐져 만들어진 구슬은 그의 신혼과 만나자 바로 하나가 되었다.
심협의 미간이 갑자기 부풀어 올랐고 식해에서는 신혼의 힘이 단숨에 5할 이상 높아졌다.
“서혼대진이 이렇게 정교할 줄이야! 신혼의 정신 낙인을 완전히 지우고 순수한 정신 본원으로 바꿔 신념의 힘으로 만들다니!”
진원자는 이 광경에 탄성을 금치 못했고, 다른 사람들은 감탄하는 한편 부러운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았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심협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눈빛은 다른 옥기둥들을 보고 있었다.
‘온전하게 보존된 2백 개 정도의 옥기둥에 담긴 군혼을 전부 연화하면 신혼의 힘이 어디까지 강해질까?’
그때, 그 눈빛을 눈치챈 진원자가 황급히 말했다.
“심 도우, 주천성두의 남은 법진은 내게 쓸모가 있으니 잠시 부수지 말아주게.”
“어디에 쓰시려는 건지 물어도 됩니까?”
심협의 물음에 진원자는 웃으며 말없이 소매를 휘둘렀다.
별빛이 소매에서 뿜어져 나가 하얀 옥기둥 곳곳에 떨어졌다. 이는 성진의 깃발로, 총 365개였다. 그 위에는 수많은 성진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진원자가 결인하자 모든 성진 깃발이 순식간에 찬란한 별빛을 뿜어냈다.
그 아래 옥기둥 대진도 밝은 별빛을 뿜어내더니 별빛의 울타리를 만들어 동굴 전체를 뒤덮었다.
그 순간, 모두의 몸이 무거워졌다. 동굴 안의 금제 힘이 폭증하면서 마치 바다 깊은 곳에 잠긴 것 같은 압박감에 그들의 경지로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성진 깃발은 설마 대주천성진번(大周天星辰幡)?”
우마왕은 반짝이는 눈으로 성진 깃발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요족의 기록에 따르면 주천성두대진은 365개의 대주천성번진을 설치해서 하늘의 365개의 주성진(主星辰)과 대응하고, 14,800개의 소주천성진번이 14,800개의 부성진(副星辰)과 대응하며, 15,165명의 수사가 각자 하나의 성진 깃발을 제어하면 경천동지할 주천성두대진이 되어 천지를 파멸시킬 수 있다 하였네.”
그 말에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365개의 깃발을 바라봤다.
깃발들에 별빛이 감돌았다. 안에는 수많은 금제가 있었고, 모든 깃발이 법보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아니, 대주천성진번은 만들기 너무 어렵고 재료도 모으기 어려워 모조품을 만들었다네. 위력은 진짜의 절반밖에 안 되지. 허나 이 옥기둥 법진의 도움을 받는다면 주천성두법진의 위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네.”
진원자가 설명했다.
“진원 대선께서는 주천성두대진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모양입니다.”
“안다고 할 정도는 못 되네. 그저 조금 알고 있을 뿐이지. 빈도가 이전에 우연히 기연을 얻었는데 이 법진의 부족한 진보(陣譜)였다네.”
“모자란 진보요? 혹시 제게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심협이 눈을 반짝이로 간청했다.
“이 우 아무개도 좀 보여주십시오.”
우마왕도 바로 말했다.
“안 될 것 없지.”
진원자는 두 개의 옥간을 꺼내 뭔가를 기록하더니 두 사람에게 건넸다.
심협은 감사를 표하고는 신식을 옥간에 넣었다.
그 안에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법진이 기록되어 있었다. 주천성두대진이었다. 이 진법은 양의미진진보다도 복잡했고, 진법의 설치도 매우 엄격했다. 우마왕의 말처럼 365개의 대주천성진번과 14,800개의 소주천성진번이 필요했다.
이는 외물의 조건일 뿐, 이 진법을 설치하려면 천공성진과 연계를 맺어야 했고 통진도 등에 대해 완벽히 깨달아야 했다. 태을 경지와 자원으로는 주천성두대진을 만드는 것이 절대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심협은 주천성두대진의 진도를 가슴 깊이 새겼다. 태을 경지인 데다 신혼의 힘도 강력했기에 이미 한 번 보면 잊지 않을 정도의 기억력이 생겨난 터라 어렵지는 않았다.
“주천성두대진을 연구해서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이 법진의 위력이 강력하긴 하나 우리에게는 큰 쓸모가 없습니다. 차라리 치우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의논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이나타가 끼어들었다.
“이 도우의 말이 맞습니다.”
심협은 신식을 거두고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주천성두대진을 연구한 것은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곳의 성진 옥기둥에는 강력한 군혼이 넘쳐난다. 현실의 자신에게는 육진편이 없지만, 방법만 찾아낸다면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만약 법보를 제련할 수 있다면 선기급 법보가 생기는 셈이니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다만 옥기둥 안에는 수천에 가까운 군혼이 봉인되어 있고, 현실의 그는 경지가 낮다. 그러니 주천성두대진을 익혀 이 군혼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