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17화 (617/1,214)
  • 617화. 하도낙서(河圖洛書)

    검은 소용돌이에 닿지 않은 귀물과 마족들은 성난 포효를 외치며 쫓아갔지만, 심협은 어느새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후라 결국 포기해야 했다.

    한편, 선두에 서 있던 강력한 마족의 우두머리들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그중 흡혈귀 같은 귀물이 몸을 돌려서 지부로 돌아갔고, 다른 자들은 휘하를 이끌고 추격을 시작했다.

    흡혈귀는 검은 소용돌이 부근으로 돌아왔으나 소용돌이가 여전히 쉬지 않고 회전하고 있었기에 감히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초조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검은 소용돌이 안에서 구명의 성난 외침이 들려왔다.

    “치우 진원(眞原)이여, 천지를 피로 물들여라!”

    동시에 연꽃과 같은 핏빛 불꽃이 허공에 나타나더니 허공까지 태워버리면서 강하게 검은 소용돌이를 공격했다.

    쿠르릉!

    검은 소용돌이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완전히 부서졌다.

    구명은 치우기에 감싸진 채 날아올랐다. 옷은 갈기갈기 찢겼고 머리카락은 산발이라 보기에도 엉망이었다.

    “구명 대인, 저희가 무능하여 인간족 수사를 놓쳤습니다!”

    흡혈귀는 다급하게 바닥에 엎드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자의 경지는 고심(高深)하고 또 강력한 법보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너희가 아무리 많아도 그를 막을 수 없었을 터. 도망갈 테면 도망가라고 해라. 가서 모든 병사를 불러모아 풍도성을 지키게 해라.”

    구명은 표정 변화 없이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흡혈귀는 당황했으나 곧장 대답하고는 날아갔다.

    “육도윤회반의 상황은 어떠냐?”

    구명은 옆에 있는 소머리의 귀물에게 물었다.

    “이미 움직임을 멈췄고 명계와 바깥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는 모두 닫혔습니다. 저승에서 인간 세계로 나가는 방법은 이제 윤회정(輪回井)뿐입니다.”

    소머리 귀물이 답했다.

    “잘했다. 바로 병사를 보내 윤회정을 겹겹이 포위하고 절대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라. 저들을 저승에 며칠만 가두어두면 된다. 치우 대인께서 완전히 깨어나시면 우리는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네!”

    소머리 귀물은 환하게 웃으며 답하고는 바로 물러났다.

    구명은 심협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고는 풍도성으로 날아갔다.

    * * *

    풍도성에서 수천 리 떨어진 어느 음하(陰河)의 상공. 금빛 유성이 멀리서부터 쏜살같이 날아왔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뒤쪽을 한참이나 살피더니 쫓아오는 자가 없음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 내쉬었다. 이어서 손매를 흔들어 진원자와 양진, 섭채주 등을 천책에서 불러냈다.

    “이토록 빨리 도망칠 수 있다니, 심 아우의 천리지술은 역시 놀랍군.”

    우마왕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감탄했다.

    “우 형, 과찬이십니다.”

    심협은 겸손하게 답하고는 파초선을 돌려주었다.

    “종규 도우는 어디에 있나?”

    진원자는 심협의 표정에서 이미 눈치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종규 선배는…… 제게 활로를 열어주고 운명했습니다.”

    심협이 침통한 목소리로 답하자 진원자는 눈을 감고 침묵하다가 몸을 돌려 왔던 곳을 향해 공수했다. 다른 사람들도 묵묵히 그를 따라서 함께 공수했다.

    “이곳은 풍도성에서 멀지만 그래도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서둘러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세.”

    심협의 말에 진원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우선 인계로 돌아가 모두의 힘을 모아 장안성으로 가시죠!”

    우마왕이 혼철곤을 꺼내고는 검은 부적을 혼철곤에 붙이며 말했다.

    검은 부적에서 강렬한 힘의 파동이 나왔다. 명계와 인간 세계의 공간 장벽을 부술 수 있는 파계부(破界符)였다.

    우마왕이 팔을 휘두르자 혼철곤이 머리 위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파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허공에 빛의 문과 같은 커다란 균열이 생기자 그는 그곳으로 들어가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10여 장 밖의 허공이 흔들리더니 우마왕이 다시 날아서 돌아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우마왕의 놀란 표정에 막 날아오를 준비를 하던 다른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파계부에 문제가 있을 리가 없소! 이전에도 인간 세계와 명계를 자주 넘나들었는데…… 다시 해보겠소!”

    우마왕은 몸을 돌려 다시 공간의 틈으로 날아갔지만, 여전히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됐네. 지부의 육도윤회반을 닫아서 지부와 인간 세계의 공간 통로를 끊었을 테지. 이제 보통의 방법으로는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걸세.”

    진원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섭채주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명계는 천지에서 가장 깊고 가장 어두운 곳이자 삼계에서 가장 독립된 곳이라 육도윤회반에 의지해서 공간 장벽을 부수고 다른 곳과의 통로를 만들었네. 명계의 귀사는 삼계 곳곳으로 영혼을 데리러 갈 때나 육도윤회의 혼백을 인간 세계로 환생시킬 때 모두 이것에 의지하지.

    공간의 통로가 있고 인간 세계와 천계 수사의 법력이 있어야만 허공을 부수고 명계에 강림할 수 있는 법. 한데 지금처럼 육도윤회반의 통로를 닫으면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지니 아무리 법력이 강해도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오.”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섭채주는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물어봤다.

    “섭 도우, 서두르지 마시오. 진원 대선께 다른 방법이 있는 것 같소.”

    “허허, 진군 대인께서 빈도를 너무 높이 평가했소. 육도윤회반이 닫힌 이상, 음조 지부로 쳐들어가 육도윤회반을 직접 조작하지 않는 이상 빈도도 다른 방법이 없소이다.”

    진원자가 쓰게 웃으며 말하자 모두도 망연자실해 서로를 돌아보았다.

    “뭔가 좀 이상합니다. 구명은 어째서 우리를 명계에 가둔 걸까요? 육도윤회반은 혼백의 윤회를 관리하는 삼계 흐름의 근간이라 그것을 닫으면 모든 세계를 뒤흔드는 것과 같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명이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단 말입니까?”

    심협이 불쑥 물었다.

    “심 도우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 따지고 보면 밖에서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구명이 별다른 이유 없이 우리를 이곳에 가둬둘 리가 없겠구려.”

    진원자는 동의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손을 흔들어 현청색(玄靑色)의 옥반(玉盤)을 꺼냈다.

    옥반의 중간에 구궁(九宮)와 같이 생긴 도안이 새겨져 있었는데, 구궁의 도안보다는 좀 복잡했다. 양의사상(兩儀四象), 오행팔괘(五行八卦)의 신비도 담겨 있어서 더없이 현묘한 느낌이었다.

    구궁 도안 외의 다른 부분에는 옥으로 만든 콩알만 한 네모 조각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각 조각마다 부문이 새겨져 있었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옥 조각들이 매우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방향도 모두 달라 보기에는 복잡하고 무질서했지만, 또 어떤 신비한 이치가 그곳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하도낙서(河圖洛書)!”

    양전이 이 옥반을 보고는 감탄했다.

    심협은 그 말을 듣자 몸이 떨려왔다.

    그는 서책에서 이 보물의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상고 시대 우왕(禹王)이 물을 다스리기 위해 황하의 지류인 낙하 기슭을 지나던 중 홍수가 난 것을 보고는 고심하고 있었는데, 신비한 거북이가 낙하에서 나타나 보물을 우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게 바로 하도낙서였다.

    우왕은 그 보물을 보고는 해와 달의 변화, 기후와 바람의 세기, 홍수의 흐름 등등을 예측하여 마침내 물을 다스리는 큰 업적을 세웠다고 했다.

    천지 삼계의 어떤 일이든 예측할 수 있다는 이 보물이 진원자의 수중에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진원자가 두 손으로 결인하자 옥반의 작은 조각들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부신 푸른 빛이 옥반에서 번득이더니 주변에 광진이 생겨나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진원자는 엄숙한 표정으로 푸른 광진을 바라보며 두 손을 결인하여 관측했다.

    잠시 후, 결인했던 그의 손이 멈추면서 표정이 변했다.

    “그랬군, 그랬어. 치우가 곧 깨어나는구나! 그래서 구명이 우리를 이곳에 가둬둔 거였어.”

    진원자의 조용한 중얼거림에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심협이 바로 물었다.

    “사흘 안에 깨어날 듯하네.”

    진원자의 표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심협은 심장이 철렁했다.

    “이제 어찌 하면 좋습니까?”

    이나타도 다급해졌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진원 대선, 하도낙서는 매우 신비하니 우리가 어떻게 명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도 예측할 수 있을까요?”

    섭채주가 물었으나 진원자는 고개를 저었다.

    “이 하도낙서는 선천영보여서 천기(天璣)와 소통하고 삼계의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소. 허나 이 보물은 1년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오.”

    그 말에 섭채주의 표정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너무 실망들 하지 마시오. 빈도가 복산술(卜算術)에 능하지는 않으나 소귀지술(燒龜之術)이 있으니 한번 예측을 해보겠소.”

    진원자는 가볍게 말하더니 황색 옥반을 꺼냈다.

    그가 결인하자 옥반에서 눈부신 노란 빛과 함께 제단 같은 광진이 나타나면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서서 지켜봤다.

    진원자가 무언가를 읊조리고는 잠시 뒤에 청흑색 거북이 등껍질을 꺼내더니 노란색 광진 안으로 던졌다.

    작은 소리를 내면서 등껍질이 노란 광진으로 들어가자 바로 푸른 불꽃이 타올랐고, 몇 호흡 뒤에는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북이 등껍질에 몇 가닥의 균열이 생겼다. 언뜻 크게 입을 벌린 것 같았다.

    진원자가 조금 굳은 얼굴로 소매를 휘두르자 황색 광진이 천천히 흩날리더니 타오르던 거북이 등껍질이 모두의 앞으로 날아왔다. 거북이 등껍질의 불꽃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진원 대선, 결과가 어떻습니까?”

    양전이 거북이 등껍질을 보고는 다급하게 물어봤다.

    “대흉(大凶)일세!”

    진원자가 눈을 감으며 탄식했다.

    그 말에 모두의 안색이 변했다. 정말로 그들의 실패는 피할 수 없단 말인가?

    “저는 점술에 관해 잘 모르지만, 운명은 사람이 극복할 수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삼계에 남은 수선은 저희뿐이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지장왕 보살과 우리를 위해 목숨 걸고 구명을 막아준 종규 선배를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육도윤회반을 빼앗아야만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풍도성으로 가시죠! 구명이 우리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고 명계를 닫았으니 그들에게도 지원군이 오지 못할 겁니다!”

    “맞습니다. 싸워야 합니다!”

    심협의 말에 절망에 빠졌던 사람들은 하나둘 마음이 다시 살아나 외쳤다. 이를 본 진원자는 심협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데 진원자가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순간, 그의 손에 있던 거북이 등껍질에서 파열음과 함께 아주 작은 무늬가 갈라졌다.

    그 소리는 작았지만, 그곳에 있는 자들은 경지가 높은 사람들답게 일제히 그곳을 돌아봤다.

    “이, 이건…… 하늘…… 하늘의 뜻이로다!”

    진원자가 거북이 등껍질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대선, 점괘에 변화가 있는 겁니까?”

    양전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봉신 대전 당시 점술 신통에 능통한 고인이 적지 않았고, 자신은 못 해도 직접 본 적이 많았기에 진원자를 제외하면 그나마 그가 점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편이었다.

    “그렇다네. 본래 죽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는데 이제 이 작은 균열로 인해 죽음에서 살아나거나 이 어려움에서 우리를 도와줄 계기가 나타나게 됐네.”

    “그건 어떤 계기인가요?”

    “그것은 빈도도 모르겠네. 허나 점괘에 나온 계기는 명하 일대라고 나오는군.”

    심협의 물음에 진원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가시죠.”

    양전이 하얀 빛으로 변하더니 명하 방향으로 날아갔다. 진원자의 점괘를 철저히 믿는 듯했다.

    다른 사람들도 뒤를 따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