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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16화 (616/1,214)
  • 616화. 정면 대결

    모두가 힘겹게 해골의 평원을 통과하자 이번에는 검(劍)이 가시처럼 솟은 숲이 나타났고, 온몸에 강철 갑옷을 입은 괴수들이 막아섰다.

    채 뚫고 지나가기도 전에 뒤에서는 그들의 흔적을 따라 마족이 쫓아왔다.

    심협은 지도를 섭채주에게 건네고는 우마왕 등이 있는 대열의 뒤로 날아가 기세등등하게 쫓아오는 수천의 마족에 맞섰다.

    하늘에 우뚝 선 우마왕이 파초선을 크게 휘두르자 소용돌이가 몰아치면서 마족 대군을 어지럽게 날려버렸다.

    심협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천리비술로 마족 사이를 뚫고 날아올라 진해빈철곤을 쉬지 않고 떨어뜨려 해골들의 평원을 산산조각 냈다.

    이에 깊이 잠들었던 평원 아래의 흉악한 귀왕이 깨어났고, 일제히 땅으로 올라오더니 마족의 추격병과 싸우기 시작했다.

    심협과 우마왕은 그 틈에 다시 일행에 합류했다.

    한데 두 사람이 합류하기 전에 뒤에서 푸른 빛이 날아와서 떨어졌다. 진원자였는데, 가슴의 옷이 피로 물든 것이 다친 것 같았다.

    “대선, 괜찮으십니까?”

    심협이 걱정스레 물었다. 진원자는 지금 그들의 지도자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괜찮네. 그자는 물러갔으니 당분간은 쫓아오지 못할 걸세.”

    “그자는 대체 누굽니까?”

    “아주 고약한 놈일세. 마족에 투항했을 줄이야…….”

    진원자는 고개를 내저었으나, 끝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 * *

    해골 평원 위. 구명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 난장판을 돌아보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자와 힘을 합쳤다면 진원자 등이 이렇게 쉽게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자는 자신보다 강한 자답게 지휘를 따르지 않았다.

    “구명 대인…….”

    마족의 수장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됐다. 더는 쫓지 않아도 된다. 지옥미궁에서 더 추격해봐야 손해다. 차라리 미궁의 출구를 지키면서 그들이 나오길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수장은 짧게 답하고는 마족들을 모아서 18층 지옥에서 물러갔다.

    * * *

    어느덧 7일이 지났다.

    심협 일행은 마침내 간신히 욕망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도중에 여러 번 미궁 괴수들의 공격을 받았고 천여 명의 사상자가 있었다.

    마침내 미궁에서 빠져나온 그때, 대열에서 의견이 갈렸다.

    “지금 바로 나가면 틀림없이 마족이 미궁의 출구를 지키고 있을 테니 스스로 그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양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나타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그렇다고 미궁에 숨어 있는 것은 방법이 아니오. 게다가 모두가 알다시피 치우가 곧 깨어날 테니 최대한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도 있소.”

    우마왕이 걱정하며 말했다.

    “여기 숨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나오지 않아도 곧 쳐들어올 겁니다. 게다가 계속 이런 곳에 숨어 있으면 모두 점차 힘을 잃게 되겠죠.”

    종규도 사기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쳐들어가는 쪽에 찬성했다.

    “심협,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진원자가 갑자기 물었다.

    “지금은 공격만이 살 기회라 생각합니다. 여기 남아 있는 것은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 치우를 이길 방법을 알았는데 이 기회에 봉인하지 못해 그가 깨어난다면 기회가 다시 오겠습니까?”

    심협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쳐들어갑시다!”

    양전과 이나타도 서로 마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 미궁의 황야 위. 황운이 용솟음쳤고, 황천을 관통하는 소용돌이가 사람들에 의해 흔들렸다. 심협 일행은 남은 힘을 모아서 지부로 쳐들어갔다.

    황천 밖을 지키던 흑산노요는 황천에서 쉬지 않고 사람들이 나오는 모습에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지금껏 저놈들이 이곳에만은 나타나지 않기를 수백 번은 기도했다. 그런데도 결국 이곳을 통해 지부로 돌아가려 하니 욕이 절로 나왔다.

    “싹 다 죽여라!”

    흑산노요의 외침이 천둥처럼 허공에 울려 퍼졌다.

    수많은 마족 귀물이 기세등등하게 연합군을 향해 달려들었고, 지부에는 고함이 가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명이 나타나더니 화색이 도는 눈으로 싸움을 지켜보았다.

    “저들을 모두 죽여라!”

    그의 말이 끝나자 더 많은 유명 귀물과 마족 대군이 달려들어 황천 근처를 물샐틈없이 에워쌌다.

    “응전하라!”

    심협 등은 각종 법보를 꺼내 맞섰다. 진원자, 심협, 우마왕, 양전, 이나타, 섭채주, 종규 등 고수들이 선두에 나섰다. 진해빈철곤, 삼첨양인도, 화첨창 같은 강력한 법보가 휩쓸고 지나가는 곳마다 귀물들이 죽어갔다.

    허나 그들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귀물과 마족 대군은 죽여도 끝이 없었고, 이들은 생사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구명은 멀리 서서 직접 나서지 않고 심협 등을 지켜보며 냉소를 지었다.

    “대선, 이대로 가면 우리 모두 여기서 발목이 잡힐 겁니다. 서둘러 포위를 뚫어야 합니다.”

    심협이 신식으로 진원자에게 말했다.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이 많은 수로는 도망치기도 힘듭니다. 모두를 천책 공간으로 들이고 제가 천리지술로 저들을 뿌리치겠습니다!”

    “그건 너무 위험하네. 자네 혼자서 어떻게 저 대군을 뚫는단 말인가? 게다가 구명과 휘하의 고수도 적지 않아서 천리신통을 펼친다 해도 도망은 무리일세.”

    진원자가 바로 지적했다.

    “진원 대선, 제가 남아서 심 도우를 돕겠습니다. 저에게 잠깐이나마 주변의 귀물과 마족, 구명까지 견제할 방법이 있으니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옆에 있던 종규가 갑자기 끼어들자 심협은 화들짝 놀랐다. 전음으로 대화하고 있었건만 종규가 어떻게 들었단 말인가?

    “종규 도우, 정말 방법이 있는 겐가?”

    진원자 묻자 종규는 엄숙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분명 가능성은 있습니다.”

    “알겠네. 그럼 두 사람에게 부탁하지. 천책으로 들어가는 건 번거로우니 내가 심 도우를 조금 도와주겠네.”

    진원자가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소매의 입구가 수천 배로 커지면서 커다란 금색 광환이 쏟아져 나와 아군 대다수를 감쌌다. 다음 순간, 그들은 몸이 흔들리더니 전부 사라졌다.

    뒤이어 진원자의 모습도 사라지면서 한 권의 천책만 그곳에 남았다.

    심협은 천책을 거두고는 진해빈철곤을 잡은 오른손에 황정경을 운공했다.

    곤봉이 순식간에 천 배로 커지면서 금빛을 사방으로 뿜어내 주변의 적군을 휩쓸었다.

    콰쾅!

    주위의 수백 마리 귀물 마병이 거대한 곤봉의 금빛에 휩쓸려 터져 나가면서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모두 천책 안으로 피하세요. 제가 모두를 데리고 벗어나겠습니다!”

    그의 왼손에서 금빛이 번득이자 수십 장 크기의 금빛 문이 나타났다. 그에게는 진원자와 같은 신통이 없었기에 빛의 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진원자의 행동에 놀라던 와중에 심협의 법술까지 보자 더 어리둥절했지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빛의 문으로 들어갔다.

    “심 아우, 잡병들을 쓸어버리는 데는 파초선이 제격이니 잠시 빌려주겠네.”

    우마왕이 가장 마지막으로 천책에 들어가기 전에 파초선을 던져주었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기뻐하며 파초선을 받았다.

    “흠…….”

    먼 곳에 있던 구명은 이 광경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곧장 심협과 종규를 에워쌀 것을 명했다.

    진해빈철곤의 위력에 물러났던 귀물과 마족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목표는 심협과 종규 두 사람이었다. 수많은 귀기와 마광이 하늘을 뒤덮었고 빼곡한 공격에 시야가 가려지면서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 종규가 심협의 앞을 막아서더니 오른손 엄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갑자기 검은 빛이 하늘 높이 뿜어져 나갔다.

    이어 거대한 귀안이 나타나더니 눈을 떴다.

    콰쾅!

    유명기혈이 나타나면서 반경 백 장의 검은 소용돌이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에 마병들의 모든 공격은 검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심 도우, 날 따라오게!”

    종규가 나지막이 외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에 의지해 바깥쪽으로 날아갔다.

    심협은 서둘러서 뒤를 따랐다.

    검은 소용돌이에 강력한 힘이 담겨 있어 충돌할 때마다 모든 귀물과 마족을 흡수했다.

    심협은 그 위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종규의 이 신통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이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위급했기에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종규의 뒤를 따르면서 뒤를 향해 노랗게 번득이는 파초선을 쉬지 않고 흔들었다. 황색 폭풍이 몰아치면서 뒤쫓던 귀물과 마족들을 전부 날려보냈다.

    심협과 종규는 쏜살같이 내달려 몇 호흡 만에 포위망 가장자리에 도착했고, 이내 포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허공에 갑자기 수많은 혈광이 나타나더니 하늘을 뒤덮는 혈색의 커다란 깃발이 두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

    “어딜 도망치느냐!”

    커다란 깃발 위에는 구명이 서 있었다.

    그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잡자 혈홍의 깃발에서 수많은 혈운이 용솟음치면서 종규와 심협을 덮쳐왔다.

    경천동지할 만한 흉악한 살기에 휩쓸린 심협은 순식간에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치우기(蚩尤旗)로군! 내가 막을 테니 심 도우는 어서 달아나게!”

    종규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어서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손가락의 귀안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종규 선배!”

    심협은 깜짝 놀랐다. 종규가 뿜어낸 검은 기운에 그의 신력의 힘 대부분이 담겨 있는 걸 똑똑히 본 것이다!

    종규가 뿜어낸 검은 연기가 흡수되자 검은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열 배 이상으로 커지면서 하늘을 삼킬 커다란 입처럼 변하여 핏빛 깃발을 깨물었다.

    깃발의 혈운 역시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면서 주변에 가득하던 흉악한 살기도 일시에 사라졌다.

    “귀안 기혈을 그 경지까지 발동하면 혼이 완전히 부서지고 윤회전생의 기회도 얻지 못할 텐데, 두렵지 않은 게냐?”

    구명은 전력을 다해 소용돌이의 흡입력을 버텨내며 외쳤다.

    종규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눈동자에서 혈홍의 마광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이 마기에 침식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그의 오른쪽 팔은 계속해서 검은 소용돌이 안에 들어가 있었다. 마치 소용돌이가 종규의 본체마저 함께 삼키는 것 같았다.

    “어서 가게! 치우기는 치우의 정혈로 제련한 마보(魔寶)라 나도 오래 버틸 수 없어!”

    종규가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선배는……?”

    심협이 머뭇거렸다.

    “귀안 기혈을 최대한으로 발동했으니 다시 닫을 수 없네. 나는 이미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어! 어차피 나는 명계의 책임자이니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겠나! 어서 가게! 뒷일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종규의 담담한 미소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협은 가슴이 울컥했고 눈이 시큰해졌다.

    하지만 그는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종규에게 공수하고는 옆으로 날아서 검은 소용돌이를 돌아서 빠져나갔다.

    “어딜 가려는 게냐!”

    구명이 크게 외치더니 치우기에 피를 뱉어냈다. 그러자 치우기의 가장자리가 빛나더니 커다란 혈광이 검은 소용돌이의 속박을 부수고 촉수처럼 심협을 뒤쫓았다.

    “세상이 어지럽고 중생들이 고통스러우니 내 몸을 희생하여 살핌이 절대 진리로다.”

    종규가 불경을 읊자 그의 몸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콰쾅!

    검은 소용돌이가 더 커지더니 미친 듯이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고, 치우기와 구명마저 소용돌이 깊은 곳까지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둘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을 뒤쫓던 혈광도 빨려 들어가자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파초선을 크게 휘둘렀다.

    천지를 잇는 노란 폭풍이 휘몰아치더니 앞의 귀물들을 모조리 찢어발겼고, 온 하늘에 가득하던 귀물들 사이로 통로가 열렸다.

    심협은 곧장 두 팔을 펼쳐서 거대한 날개를 만들고는 순식간에 유성 같은 금빛으로 변하여 그 통로 사이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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