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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14화 (614/1,214)
  • 614화. 삼키다

    다음 날, 지부 18층 지옥의 부서진 제단 위. 황미는 박룡권에 포박된 채 제단 중앙에 던져졌다.

    진원자, 양전, 이나타, 우마왕, 섭채주, 종규 그리고 심협, 일곱 명이 제단 주변을 에워싸고는 서로의 몸 아래에 각자 작은 진법을 새겨 놓았다.

    “헛수고하지 마라! 네놈들 중에는 신혼술에 능통한 자가 없으니 내게서 강제로 천책을 빼내는 건 절대 불가능할 게다. 하루빨리 반항할 마음을 접고 마족에 투항해라. 천도는 이미 견디지 못하고 파국에 직면했으며, 마족은 부상하여 마도가 다시 대세를 이룰 것이다. 너희는 대세에 끼어 있는 개미들에 불과하니 아무리 발악해도 헛수고다!”

    황미는 침착한 표정으로 차갑게 비웃었다.

    그들은 그의 발악을 무시한 채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법진을 발동했다.

    진원자가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금칠로 새겨진 매우 복잡한 문양의 짙은 색깔 부적 일곱 장이 나타났다.

    “명혼부(明魂符)라네. 방금 내가 모두에게 알려준 명혼 주문을 읊으면 대진이 발동할 걸세.”

    진원자의 말에 모두가 손을 들어 올리자 일곱 장의 명혼부가 각자의 앞으로 날아가 허공에 떠올랐다.

    진원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두 눈을 감고 조용히 무언가를 읊조렸고, 다른 사람들도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일곱 명의 목소리가 점점 합쳐지자 그들의 앞에 있는 부적에서 일제히 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명혼 대진, 열려라.”

    진원자가 눈을 뜨면서 외치자 모두의 앞에 있던 부적이 일제히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면서 잿더미가 되었고 남은 금빛의 부문은 흩어지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동시에 발아래에서 진법이 빛나면서 하늘 높이 솟구쳐 그들은 그 빛에 휩싸였다.

    뒤이어 그들의 미간에서 빛나는 점이 나타나 금색 부문을 뚫고 지나가 황미의 이마에 떨어졌다.

    황미는 갑자기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을 강하게 떨더니 머리를 뒤로 홱 젖혔다.

    “끄윽…….”

    가벼운 신음과 함께 젖혀진 머리가 의식을 잃은 것처럼 무력하게 앞으로 떨어졌다. 이어서 그의 식해 공간에 일곱 개의 빛들이 모여들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바로 심협 등이었다.

    식해 공간의 정중앙에는 뇌 도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실제 뇌도인보다 표정은 더욱 사나웠다. 두 귀도 어깨까지 늘어지지 않았고 둥근 고리를 달고 있었다. 승포를 입고 있었지만 살기가 가득한 검은 가사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졌다.

    소인으로 나타난 심협 등의 신혼은 황미의 신혼을 둘러싸고는 결인했다.

    황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내 식해에서 나의 신혼을 제어할 수 있겠느냐?”

    황미의 식해인 만큼 그에게 유리한 점이 있음은 분명했지만, 일행은 개의치 않고 일제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들의 손에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금색 사슬이 뻗어 나와서 황미의 신혼을 찔렀다.

    아주 작은 부문들로 빼곡하게 이어진 금색 사슬에서 강렬한 신혼 파동이 흘러나오자 황미는 표정이 굳더니 급히 뭔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퍼져 있던 힘이 그의 신혼 안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검은 가사가 바람도 없이 흔들리더니 점점 팽창하면서 검은 빛을 발하며 부문의 사슬을 막아냈다.

    챙!

    일곱 개의 금색 사슬이 찔러 들어갔지만, 금속 부딪히는 소리만이 울렸다.

    ‘저 검은 가사는 지장왕 보살의 금색 가사만큼 단단한 것 같군.’

    심협은 내심 감탄했다.

    그때, 진원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경 쓸 것 없네. 혼자서 우리 일곱 명을 막지 못할 테니 계속 명혼 주문을 읊게.”

    심협 등은 바로 심신을 가다듬고는 명혼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번의 읊조림은 이전과는 다르게 신혼이 바로 읊조렸기에 신혼의 힘을 크게 소모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자 천둥처럼 황미의 식해에서 폭발했다.

    황미는 그제야 명혼진의 강력함을 깨달은 듯 표정이 돌변했다.

    심협 등은 현재 작은 신혼 분신에 불과하지만, 법진의 도움으로 위능을 발휘하여 마음껏 힘을 쓸 수 없었다.

    식해가 부서지고 신혼이 의지할 곳이 사라지면 신혼은 몸 밖으로 떠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애초에 식해가 부서지면 신혼이 도망갈 기회조차 주지 않을 테니 명혼 주문에 제어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다 같이 죽자 이건가? 좋다! 한 명도 살아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황미 신혼이 악에 받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검은 가사가 갑자기 줄어들어 신혼을 단단히 감싸는 순간, 일곱 개의 금색 사슬도 함께 찔러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신혼은 벌떡 일어서서 공중에서 회전하며 모든 사슬을 온몸에 휘감았다.

    쇠사슬이 말리기 시작하자 심협 등의 신혼은 황미의 신혼에게로 끌려갔다.

    “이런! 신혼을 자폭시킬 생각이다!”

    우마왕이 크게 소리쳤다.

    태을 후기 수사의 신혼은 그 강력함이 육신 못지않기에 일단 자폭하면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터였다. 그래서 법진을 설치하기 전 진원자는 모든 사람을 멀리 떨어지게 지시해놓았다.

    “어림없다!”

    진원자의 신혼 분신이 외치며 갑자기 앞으로 나서더니 커다란 손으로 변하여 황미 신혼을 억눌렀다.

    손에서 흑백의 빛이 모이더니 태극쌍어(太極雙魚) 문양이 천천히 돌면서 내려왔다.

    그것을 본 황미가 눈을 반짝였고, 터질 것 같았던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다.

    “걸려들었구나! 크하하!”

    황미의 비웃음이 끝나자마자 그의 신혼 허리춤에서 금색 주머니가 날아오르더니 크게 벌어져 진원자를 에워싼 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인종대(人種袋)?”

    양전이 경악했다.

    “저 보물은 미륵불이 전사하면서 부서진 게 아니었나?”

    이나타도 놀라서 외쳤다.

    식해 안에서 법보를 쓰는 것을 처음 본 심협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곱 명의 법진에서 주(主)가 되는 진원자가 사라지니 위능은 대폭 감소하였다. 이에 황미는 양전의 사슬을 붙잡더니 강하게 끌어당겼다.

    양전의 신혼 분신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단숨에 끌려갔다. 그 기세에 황미의 발길질이 더해지자 양전의 손에서 나온 금색 사슬은 단박에 부서졌다.

    식해 공간 밖, 양전과 진원자가 차례대로 깨어났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빛의 기둥도 이미 사라졌고, 안색도 좋지 않았다.

    “대선, 이제 어찌 하면 좋습니까?”

    양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물었다.

    “설마 저자에게 인종대가 있을 줄이야. 너무 방심했군. 대진은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바꿀 수 없으니 저들이 실패하고 물러나면 다음에 다시 시도해야겠지.”

    “다음에는 성공할 자신 있습니까? 신혼 분신이라도 이런 소모는 견디지 못할 겁니다.”

    “인종대가 있는 걸 알았으니 다음에는 대비해야겠지. 다만, 저자에게 또 다른 수가 있을까 걱정이군.”

    진원자도 불안한 듯 말을 맺었다.

    확실히 그들 오장관은 신혼의 도에는 능하지 못했다. 명혼진도 오랜 벗인 지장왕 보살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그때 둔광이 쏜살같이 내려오더니 마라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진원 대선, 구명이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몸을 가누기도 전에 황급히 외쳤다.

    “뭐라?”

    진원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미 그놈이 정체가 탄로 나자 구명에게 몰래 정보를 보낸 듯합니다. 무슨 수를 썼는지 수많은 귀물이 몰려들었습니다. 법진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라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모두 모아서 철수 준비하게.”

    진원자가 바로 외쳤다.

    “저들은 어떡합니까?”

    양전이 심협 등을 바라보며 물었다.

    “황미의 신혼이 저들의 분신을 격파해야 물러날 수 있네. 강제로 중단하고 불러내면 신혼과 신혼 분신의 연결이 아직 끊어지지 않아서 충격이 더 심해질 걸세.”

    진원자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걱정스런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곳을 지키게. 내 가서 상황을 보고 시간을 벌어보겠네.”

    양전은 머뭇거렸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황미의 식해 공간에 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더욱 버티기 어려워졌다.

    이때, 황미의 신혼은 점점 커지면서 이내 산처럼 거대해졌다. 심협 등의 분신은 그에 비하면 개미 같았다.

    “그리 겁먹을 것 없다. 네놈들의 분신은 쓸 데가 있으니 바로 부수지는 않으마.”

    황미 신혼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심해 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어서 그가 한 손을 내밀자 마치 먹구름이 태양을 가린 것처럼 심협 등은 완전히 그림자에 가려졌다. 손에서 검은 마기가 흐르더니 그들을 덮쳐왔다.

    “위험해! 우리 분신을 마화(魔化)해서 신혼과 식해로 파고들 속셈이야!”

    우마왕은 다급하게 외치고는 신념 비술을 발동했다. 그러자 분신에서 갑자기 강력한 영혼의 힘이 솟구쳤고, 몸이 빠르게 커지면서 거대한 뿔이 달린 푸른 소로 변하더니 커다란 손을 막아섰다.

    커다란 손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대부분은 일순 푸른 소에게 막혔다.

    심협 등은 그 틈에 빠르게 흩어졌고, 일제히 손에서 황미의 신혼 미간을 향해 쇠사슬을 뿜어냈다.

    황미는 남은 손을 휘둘러 모든 쇠사슬을 부수고는 손에서 짙은 마기를 뿜어내 순식간에 심협 등을 휘감았다.

    신혼 분신이 마기에 빠르게 침식되면자 몸이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나타는 몸에서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조금씩 마기의 침투를 막아냈지만,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벅차 보였다. 오히려 섭채주의 상황이 더 나았다. 몸 주변에 나타난 허광의 버드나무 가지가 그녀를 감싸고는 마기의 침투를 막아준 것이다.

    “심협, 지난 오랜 세월 동안 날 이토록 처참하게 속인 것은 네가 처음이었다. 네 분신을 가장 먼저 거두고 네 신혼을 점심으로 먹어주마. 물론 천책도 반드시 받아내야겠다! 크하하하!”

    황미의 커다란 이마가 심협의 몸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어서 그는 입을 쩍 벌려 단숨에 심협의 신혼 분신을 삼켰다.

    “안 돼!”

    섭채주의 비명에 주변을 감싼 버드나무 가지가 용이 헤엄치듯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과연, 미륵불이 원적할 때 천책을 너에게 줄만 했구나. 너에게는 뭔가 다른 자질이 있어. 허나 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황미가 내심 감탄하더니 섭채주에게 쏟아지는 마기에 더욱 힘을 실었다. 마기가 세차게 일렁이더니 강력한 위세로 몰아쳤다. 주변에서 강해졌던 생기가 다시 시들면서 그녀는 다시 위기에 처했다.

    그때,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

    “황미, 우리의 잔혼을 삼키고 싶다면 위를 더 키워야 할 거다. 내 신혼도 받아봐라!”

    종규의 신혼 분신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홍포를 입은 허상이 허공에 나타나 분신과 순식간에 합쳐졌다. 그러자 몸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면서 황미와 비슷한 정도로 거대해졌다.

    이어서 그는 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마기를 부수더니 황미에게 다가가 신혼을 잡고는 손을 머리 위에 얹었다.

    엄지에서 귀안(鬼眼)이 눈을 뜨더니 바로 유명기혈(幽冥氣穴)이 나타났고, 그 안에서 귀물의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종규, 이 미친놈!”

    황미는 경악과 분노가 뒤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기혈의 소용돌이에서 강력한 찢는 힘이 느껴지자 황미의 신혼이 불안정해지고 영혼의 힘이 찢겨나가면서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도 먹고 싶다면 실컷 먹어라!”

    황미가 버럭 소리치자 몸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면서 마기가 미친 듯이 흘러나와 귀안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명은 거침없이 마기를 뿜어내고 한 명은 마다하지 않고 거침없이 빨아들이자 우마왕 등이 받던 압박감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종규의 몸에서는 귀선의 기운이 점점 약해졌고 마기는 점점 강해졌다. 점점 마(魔)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를 본 황미는 껄껄 웃었다.

    “네가 먼저 내 마기를 전부 흡수할지 아니면 네가 버티지 못하고 먼저 마가 될지 두고 보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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