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13화 (613/1,214)
  • 613화. 의혹이 말끔히 풀리다

    “이제 나는 정체가 탄로 났으니 앞으로의 계획은 뇌 도우에게 맡기겠소.”

    심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저들을 멸망시키는 건 어렵지가 않아. 어려운 것은 그전에 어떻게 저들의 손에서 천책을 가지고 오느냐 하는 것이지.”

    “마침 내 좋은 방법이 있소.”

    심협이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 방법이 있다고?”

    “천책은 분열되었으니 담겨 있는 천도의 힘도 분열되었을 게요. 저들이 마족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힘을 집중해야 하니 천책을 다시 모을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도우가 저들을 그렇게 설득한다면 저들도 기꺼이 천책을 내놓을 터. 그때 기습해서 빼앗으면 되는 것 아니오?”

    “오오, 절묘하군, 절묘해! 정말 좋은 방법이야! 하하하!”

    뇌 도인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말로는 쉽지만 다른 미끼가 필요하오.”

    “미끼?”

    “천책은 매우 귀중하니 저들도 쉽게 내놓지 않을 게요. 그러니 먼저 성의를 보여야 할 겁니다.”

    “자네의 말은 먼저 내 천책을 넘겨라?”

    “그게 아니면 별수 있겠소? 물론 내 천책도 드리리다.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가져왔다고 하시오.”

    “자네의 천책도 주겠다고?”

    황미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아, 진짜 준다는 게 아니라 천책의 일부 기운으로 가짜를 만든다는 거요.”

    황미는 손익을 계산하듯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황미 도우, 우선 이 박룡권부터 풀어주면 안 되겠소?”

    심협은 묶여 있는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 알겠네.”

    뇌 도인은 이제 심협을 향한 경계심을 완전히 내려놓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이 박룡권은 평범한 보물이 아니라네. 태상노군의 금강탁(金剛琢)과 동급의 보물이어서 이거를 열려면…….”

    여기까지 말을 마친 황미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하게 변했다.

    “두 손을 자르는 수밖에 없네!”

    그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두 손으로 심협의 두 팔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심협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두 팔이 갑자기 금빛으로 번득이면서 살과 뼈가 훤히 들여다보일 듯 반투명해졌다.

    챙!

    황미의 손칼이 심협의 팔에 꽂힌 순간, 마치 정강을 벤 것처럼 금옥(金玉)이 충돌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와 동시에 심협은 한 발로 황미의 가슴을 걷어차 멀리 날려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오!”

    심협이 버럭 소리를 쳤다.

    “가짜 천책? 그걸 가져가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진원자 같은 늙은 여우가 속을 것 같은가? 겉으로는 날 도와서 공을 세워주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날 이용하려는 속셈이 아니면 무언가!”

    황미는 몸을 가누고며 비릿하게 웃었다.

    “황미 도우, 남의 호의를 이리 무시하는 게요?”

    심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죽이지는 않을 테니 얌전히 천책을 내놓게. 자네와 공을 일부 나누겠노라 내 약속하지. 어떤가?”

    “결국 천책을 독점하겠다는 거군요. 아무래도 손을 잡긴 힘들겠소.”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양손이 박룡권에 묶인 채로 자네가 뭘 할 수 있겠나? 요풍이 돕는다 해도 자네 하나 죽이는 건 내게 일도 아니지.”

    황미가 섬뜩하게 웃는 순간, 그의 몸에서 불문의 기운이 씻은 듯 사라지고 옅은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허! 보아하니 벌써 마족의 세련을 받은 모양이군. 마기를 어떻게 감추고 있었던 겁니까?”

    “자네도 천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 마기를 억제하는 게 어려울 것 없지.”

    황미가 비아냥거렸다.

    “오, 그런 기능도 있었군요?”

    “이참에 자네에게 좀 가르침을 줄 테니 천책을 꺼내보게.”

    황미는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심협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허나 심협은 이미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발아래 달빛을 흩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선정여산(禪定如山)!”

    그 순간, 심협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태산이 어깨를 누르는 것처럼 몸이 억눌려 두 발이 땅을 파고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황미는 그 틈에 다가와 다시 한번 그의 목을 잡으려 했다.

    심협은 재빨리 소매에서 둔지부를 꺼내 바스러뜨리고는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속으로 파고들어 도망쳤다.

    “어딜!”

    황미는 버럭 외치면서 손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마기를 그대로 땅에 꽂았다.

    꽈르릉!

    땅이 부서지면서 검은 마기가 섞인 흙과 돌들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튀어나왔고, 심협도 땅속에서 도망쳐 나왔다.

    황미는 마치 그가 어디로 튀어나올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심협의 앞에 나타났다.

    검은 마기가 뭉쳐진 그의 손이 다시 한번 심협의 목을 노리며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휙!

    어떤 그림자가 심협의 앞을 가로막았고, 뒤이어 검은 소용돌이가 황미를 향해 휘몰아쳤다.

    “비켜라!”

    황미는 곧장 두 손을 검은 소용돌이로 찔러 넣고는 양쪽으로 벌려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렸고, 요풍을 걷어차 심협에게로 날려보냈다.

    심협의 두 팔이 금과 은빛으로 번득였다. 그는 그대로 진시천리지술을 발동하여 순식간에 강력한 기운을 폭발시켜 달아나려 했다.

    한데 그때, 그의 손을 묶고 있던 박룡권이 갑자기 번득이면서 마지막 남은 법력을 모두 소진한 것처럼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고, 두 팔의 빛도 어두워졌다.

    심협은 당황한 듯 두 눈이 커졌다.

    황미는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심협의 목을 붙들고는 강하게 조였다.

    빠각!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심협은 피를 왈칵 뿜었다.

    황미는 얼굴에 피가 튀었으나 개의치 않고 크게 웃었다.

    “그러게 얌전히 따랐으면 될 것을. 하하하!”

    한데 그는 이내 웃음을 뚝 그치더니 표정이 돌변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방금 전까지 심협의 팔에 달려 있던 박룡권이 지금은 자신의 팔에 채워져 있었다.

    동시에 심협이 금빛이 감도는 주먹을 뻗었다.

    꽝!

    황미는 가슴에 묵직한 충격을 받고는 뒤로 튕겨나갔다.

    그 순간, 좀 전에 황미의 공격에 멀리 날아갔던 요풍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가 황미의 등에 손바닥을 대자 푸르게 빛나더니 청색 사슬이 소매에서 튀어나와 곧장 황미를 이리저리 묶었다.

    땅으로 내려온 심협은 피를 토하며 대개박술로 빠르게 부러진 목을 회복했다.

    “심협!”

    그때, 산골짜기에서 갑자기 포효가 들리더니 몇 사람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은 양전으로, 그는 심협이 풀려났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황미를 제압한 모습에 분노가 치솟았다.

    우마왕 등도 분노한 표정으로 곧장 공격을 가할 듯했다.

    아직 목이 회복되지 않은 심협은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으나,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심협을 갈기갈기 찢어버려도 시원찮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가 멈칫했다.

    “모두 멈추게!”

    당황한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방금 전에 황미를 제압했던 ‘요풍’이었다.

    그가 천천히 삿갓을 벗자 몸이 푸르게 빛나더니 모습도 점점 변하면서 자금색 도포가 드러났다.

    “진원 대선!”

    양전이 흠칫 놀라 외쳤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이나타도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진원자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기운이 드러나자 모두가 진위를 알 수 있었다.

    “배신자는 심협이 아니라 황미였네.”

    진원자가 말했다.

    “황미 존사(尊師), 어떻게 된 겁니까? 대사님 말씀이 사실입니까?”

    불문의 제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목이 어느 정도 회복된 심협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배신자가 아닙니다. 문심경에서 했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황미가 문심경을 조작해 모두를 오해하게 만든 것이지요.”

    우마왕은 크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심협과 황미를 번갈아보았다.

    “진원 대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섭채주는 본래 심협의 탈출이 실패한 줄 알고는 그와 함께 벌을 받을 각오까지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자 당황스러웠다.

    “문심경을 사용할 때, 나는 문심경에서 방해 파동을 느꼈네. 심 도우가 어떤 신혼 비술을 사용할까 봐 그의 신혼을 살펴봤는데, 그때 그의 신혼에서 지장왕 보살이 남긴 신혼 보호를 발견했지. 탁탑 천왕과 지장왕 보살이 믿는 심 도우가 정말로 배신자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

    진원자가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뿐입니까?”

    불문의 제자는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연히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뭐라고 하든 아무도 믿지 않을 듯하여 제가 진원 대선께 이런 연극을 제안했지요. 진짜 배신자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할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말입니다.”

    심협이 말을 마치자 모두가 대답을 원하는 듯 진원자를 바라보았다.

    진원 대선은 말없이 눈썹에 손을 대고는 마치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것처럼 당겼다. 그러자 금빛이 그의 손을 따라 빠져나왔다.

    이 금빛은 허공에 펼쳐져 움직이는 화면을 그려냈다. 진원자의 눈으로 봤던 심협과 황미의 대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화면을 다 보고서야 모두가 마침내 알게 됐다. 그들 사이에 줄곧 숨어 있던 배신자는 심협이 아니라 바로 황미였다는 것을…….

    “아미타불. 황미, 미륵불께서는 당신을 신임하여 의발까지 물려주셨건만…… 당신의 행동은 불문을 향한 모욕이고, 불법을 더럽힌 것이오.”

    몸이 묶인 황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줄곧 심협을 노려았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가 이렇게 발각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우마왕의 두 눈이 붉게 물들더니 성킁성큼 다가가서 손을 들어서 혼철곤을 잡고는 그의 머리를 찍을 기세였다.

    “우 형,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자에게는 천책이 있으니 먼저 꺼내야 합니다.”

    심협이 서둘러 말리자 우마왕은 우뚝 멈추더니 부들부들 떨었으나, 살기를 간신히 참고는 혼철곤을 천천히 내렸다.

    “이놈은 매우 교활합니다. 본래 먼저 천책을 꺼내게 한 다음에 공격하려 했으나 어찌나 탐욕스럽던지 오히려 절 죽이고 제 천책까지 뺏으려 하더군요.”

    한숨을 내쉬는 심협을 바라보는 모두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모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뜻밖의 변고에 모두의 마음에 의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제 혐의는 벗겨졌으니 모두 개의치 마십시오.”

    심협이 먼저 나서서 그리 말하자 우마왕은 고개를 들어서 허공을 바라보고는 무거운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내 심 아우에게 너무도 큰 실수를 저질렀군. 정말 미안하네.”

    그는 말을 마치며 몸을 굽혀 절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여기 오기 전에 우 형이 무너졌을까 우려했는데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아우는 오히려 안심했습니다.”

    심협은 서둘러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복수를 하기 전까지는 난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걸세.”

    우마왕은 의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오장관은…… 제가 시신을 잘 묻어줬습니다.”

    “고맙네.”

    우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은 어떻게 하지?”

    양전이 황미를 보며 말했다.

    “황미 존사, 이 지경이 되어서도 아직도 회심하지 않는 건가? 고해는 끝이 없지. 회개만 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다네.”

    불문의 나한(羅漢)이 한숨을 쉬며 권했다.

    “마라나(摩羅那), 모든 금신나한(金身羅漢) 중 자네가 가장 혜근이 없는데 그 대전에서 자네가 살아남다니, 정말 우스운 일 아닌가.”

    황미는 비릿하게 비웃었다.

    “당신은 혜근이 있어도 결국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니 결과가 좋지 못할 것이오.”

    마라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네놈들, 날 몰아세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조심하지 않으면 천책까지 사라질 테니 그리 되면 네놈들의 계획도 모두 허사가 될 것이야!”

    황미는 마라나를 내버려둔 채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그 순간, 그를 휘감은 사슬에서 갑자기 번개가 쳤다. 이에 그는 몸이 마비된 듯 부들부들 떨었다.

    “우선 데리고 가세.”

    진원자가 소매를 펼쳐서 그를 소매 속으로 넣었고, 모두는 지부로 돌아갔다.

    섭채주는 심협 옆으로 조용히 다가오더니 다소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봤다.

    “미리 말할 수 없었어. 그리고 설마…… 날 구하러 올 줄은…….”

    심협이 그의 손을 잡으며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오라버니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으니 됐어요. 사실 황미의 금요가 그렇게 쉽게 열려서 저도 조금 이상했는데, 지금 보니 그가 일부러 꺼내준 거였군요.”

    섭채주는 웃으며 말했다.

    “진원 대선의 박룡권도 나를 완벽히 묶지는 않았어. 그러니 법력을 쓸 수 있었던 게지. 지금 황미는 아무 힘도 못 쓰고 있잖아.”

    심협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음살곡의 다리가 아니라 춘화현의 거리를 걷는 것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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