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11화 (611/1,214)
  • 611화. 명혼법진(明魂法陣)

    심협이 한참을 머뭇거리며 말을 하지 않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섭채주 역시 한순간도 심협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마치 대답을 독려하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제가 앞으로 하는 말을 모두가 믿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제가 겪은 사실입니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결백을 증명하려면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다.

    “문심경이 우리에게 진위를 알려줄 테니 어떤 대답이든 좋다.”

    우마왕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고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였다.

    “사실 저는 이 시대 사람이 아닙니다.”

    심협의 첫마디에 그곳에 있는 모두가 멍해졌고 모두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래도 좀 그럴듯한 거짓말을 할 줄 알았더니…….”

    양전이 눈살을 찌푸리자 미간의 표식이 더욱 붉어졌다.

    “저는 천 년 전의 사람입니다. 우연히 기이한 선침(仙枕)을 얻었고, 매번 불규칙하게 꿈속으로 들어가 시공간을 뚫고 이곳, 천 년 뒤의 이곳으로 넘어왔습니다. 다만, 매번 꿈속으로 넘어갈 때마다 현실의 제 수명을 소모했고, 머무는 시간도 일정치 않지요.

    오고 가는 시기도 제가 정할 수 없습니다. 일전에 적뢰산이 습격당할 때도 저는 천 년 전으로 돌아갔었고, 돌아왔을 때는 대전이 이미 발생했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꿈속으로 돌아왔을 때, 오장관은 이미 피바다였습니다.”

    심협은 개의치 않고 숙연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의 말이 끝났으나 주변은 조용했다.

    진원자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으나, 심협을 향한 눈빛이 반짝거리는 게 뭔가 생각난 듯했다.

    심협은 고개를 숙여서 거울을 바라봤다. 잔잔한 물결만 일어날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바라보며 놀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저자의 말이 사실인가?’

    한데 그때, 심협은 갑자기 몸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거울이 갑자기 난폭해지더니 마치 화가 난 듯 성난 파도가 일었고, 진정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심협의 표정이 돌변했다.

    “흥! 역시 거짓말이었군!”

    양전이 버럭 호통을 쳤다.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 됐다.

    심협을 바라보던 섭채주의 눈빛도 흔들렸다. 그녀는 그를 매우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이번 말은 정말로 도가 지나쳤고, 문심경의 반응마저 저러하니 설령 그녀라고 해도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이 증명되었다. 더 할 말이 있느냐?”

    우마왕이 소리쳤다.

    “당신들이 믿든 안 믿든 내 말은 사실입니다.”

    심협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천책을 내놓아라.”

    양전이 삼첨양인도로 심협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영롱보탑도 내놓아라. 아버님의 물건은 네게 어울리지 않는다.”

    이나타도 순살을 찌푸렸다.

    “그…… 그건 줄 수 없습니다.”

    심협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미타불. 심 도우,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게. 직접 천책을 내놓지 않으면 자네의 생명을 거두고 천책을 빼내는 수밖에 없네.”

    뇌 도인이 말했다.

    “천책은 선인의 부탁으로 잘 보관하겠노라 약속했기에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습니다. 빼앗고 싶다면 해보십시오.”

    심협은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 권주(勸酒)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겠다는 것이냐!”

    양전이 버럭 소리를 치고는 순식간에 뒤에 나타나 한 손을 내밀어 심협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안 돼!”

    섭채주가 외치며 달려 나가려 하는데, 누군가 그녀를 막아섰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뇌 도인이 천천히 팔을 거두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섭채주는 현재 보타산의 장문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불문 세력은 뇌 도인이 이끌고 있었다.

    그때, 양전의 손은 심협의 머리를 덮었다. 금빛의 파문이 손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면서 아래로 흘러내려 갔다.

    “섭혼술(攝魂術)?”

    진원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섭혼술은 법력으로 신식의 힘을 흩트린 후 강제로 타인의 식해에 침투해 신혼을 조종하는 거친 술법으로, 조종당하는 자의 신혼은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이 술법으로 신혼을 조종을 받는다면 꼭두각시처럼 지시를 받게 되어 거역할 수 없게 된다.

    “이러면 천책을 안 내놓을 수 없을 거다.”

    양전이 의기양양하게 웃더니 두 눈을 감고 신식의 힘을 손으로 주입하여 심협의 식해에 침투하려 했다.

    심협의 식해 안. 가부좌를 틀고 있던 신혼 소인(小人)의 머리 위에서 빛이 비치더니 거대한 손이 식해를 찢을 듯한 기세로 침투해왔다.

    그 손에서 이상한 부문(符文)이 떠오르더니 펼쳐진 손가락에서 투명한 실이 길게 늘어져서 신혼 소인의 몸을 찔렀다.

    신혼 소인은 그저 고개를 들어서 바라보더니 다시 천천히 고개를 숙일 뿐, 아랑곳하지 않았다.

    투명한 실이 몸을 찔렀을 때, 소인이 걸치고 있던 가사에서 갑자기 금빛과 붉은빛이 비치면서 심협의 신혼을 보호했다. 투명한 실은 가사의 빛에 닿자마자 튕겨나갔다.

    “음, 신혼 보호막을 가지고 있군!”

    양전은 두 눈을 부릅뜨더니 놀란 듯 외쳤다. 이어서 다시 두 눈을 감고 남은 손으로 결인하여 주문을 읊고는 심협의 머리에 얻은 손을 찔렀다.

    “양전, 신혼이 부서질 수 있으니 적당히 하게!”

    뇌 도인이 황급히 외쳤으나, 양전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심협에게 강력한 신혼 보호막이 있음을 알게 됐으니 전력을 다해 부술 생각이었다.

    “부서져라!”

    그가 가볍게 외친 순간, 두 손가락 끝에서 금빛이 순식간에 심협의 머릿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온몸을 흠칫 떨었고, 다음 순간 식해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금빛이 번개처럼 그의 식해에 나타나더니 신혼 소인을 향해 내리쳤다.

    식해에서 날카로운 고통이 스쳐가면서 번개가 그대로 신혼 가사를 덮은 빛을 가르고 소인의 몸에 꽂혔다.

    양전이 마침내 그 보호막을 뚫었다고 생각했을 때, 심협의 식해에서 갑자기 불경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가사의 빛이 한층 크게 번득이면서 몇 개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날이 뿜어져 날아갔다.

    “크아악!”

    양전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심협의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거두더니 오히려 자신의 머리를 잡으며 뒷걸음질 치다가 하마터면 제단에서 떨어질 뻔했다.

    “이건…… 신혼의 반격을 받은 건가?”

    뇌 도인이 놀란 듯 외쳤다.

    옆에 선 진원자가 눈을 빛내더니 한 걸음 다가와 심협의 머리를 내리쳤다.

    심협은 흠칫 떨더니 갑자기 온몸의 기력이 풀린 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섭혼술도 소용없는 건가?”

    뇌 도인이 중얼거렸다.

    “뭘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 게요? 저놈을 죽이고 잔혼을 모은 뒤 천책을 꺼내는 방법도 있소.”

    우마왕이 한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그때, 심협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왜 웃는 거냐?”

    우마왕이 소리쳤다.

    “시시비비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당신들 꼴이 우습고, 천 리를 날아서 지옥까지 스스로 뚫고 들어온 나 자신이 너무 우스워서 웃소이다.”

    “문심경이 네 거짓을 증명했는데도 아직까지 그런 말을 하느냐!”

    누군가 소리쳤다.

    “믿건 말건 상관없다. 죽이려면 죽여라. 꿈속 세상에서는 어차피 나는 되살아날 테니, 그때는 진정으로 천책을 가지고 마족에게 투항하마. 그럼 너희 같은 멍청한 것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을 거다.”

    심협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고, 이 말에 사람들은 더욱 분노했다.

    “이놈이!”

    “저놈을 죽입시다!”

    “구제불능이로군!”

    사람들은 감정이 격해져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댔다. 모두가 배신자 심협을 죽이라는 말뿐이었다.

    “조용!”

    진원 선자가 갑자기 말했다.

    진원자는 잔여 세력 모두가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수장이었다. 다만 오장관의 싸움으로 그의 심기도 적잖은 좌절을 겪어 최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번에 심협이 나타났을 때도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양전 등에게 처리를 맡겼다.

    그런 그가 지금 나섰으니, 모두 말없이 진원자를 바라봤다.

    “천책에 관한 일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만일 천책이 부서지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먼저 간 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거다.”

    진원자가 말했다.

    “대선,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저 배신자 놈을 저대로 둬야 합니까?”

    누군가 물어봤다.

    “대선, 무슨 방법이라도 있소?”

    뇌 도인의 물음에 진원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하오. 섭혼술과 비슷하나 조금 더 번거롭지. 명혼법진(明魂法陣)을 설치할 것이오. 효능이 섭혼술보다 강하니 그의 신혼 보호막을 부수는 건 문제도 아닐 것이오.”

    “그렇다면 더 안전하고 확실하겠군요.”

    양전의 말에 우마왕은 옆에서 머뭇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동의한다면 이자를 가두었다가 내일 내가 법진을 설치하여 다시 한번 신혼을 뽑아내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진원자가 모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선의 뜻대로 하시죠.”

    뇌 도인이 가장 먼저 대답하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선, 이자의 능력은 무시할 수 없으니 도망치지 못하도록 제 금요(金鐃)와 대선의 박룡권으로 가두면 절대 실수는 없을 겁니다.”

    “그게 좋겠소.”

    진원 대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뇌 도인이 손바닥을 치켜세워서 예를 올리고는 손을 휘두르자 한 줄기 빛이 그의 소매에서 날아가 심협 주변을 뒤덮었다. 그러더니 금빛의 금요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심협을 그 안에 가두었다.

    금요가 합쳐지는 순간, 심협은 섭채주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이 모습을 본 그녀는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럼, 여기는 그대들에게 맡기고 나는 돌아가서 법진을 준비하겠소.”

    진원자는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서 떠나갔다.

    그가 가고 나자 양전이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누가 이곳을 지키겠소?”

    “내가 지키겠소.”

    종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했다.

    “당신이?”

    뇌 도인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이곳은 유명지옥(幽冥地獄)이오. 구명이 지원을 올까 봐 걱정인 것이오, 아니면 당신과 진원 대선의 봉인이 걱정인 것이오?”

    종규가 그를 보며 되물었다.

    “그대가 나서준다니, 고마운 일이지. 그럼 그대에게 맡기겠소.”

    뇌 도인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이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났고, 종규 외에는 섭채주와 우마왕만이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금요 안. 심협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았다. 한번 시도해봤지만, 금요 안은 모든 영력과 신식의 파동을 막을 수 있었고, 여기서는 조금의 천지 영기도 흡수할 수 없었기에 신식을 펼쳐서 바깥을 살필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감옥이었다.

    하지만 바깥의 소리를 통해 심협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떠나자 주변은 점차 조용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 몇 년 동안 도대체 어디 갔었던 겐가? 어째서 수백 년 동안 자네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게야?”

    “설마 선배님이 남아서 감시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심협은 종규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묻고 싶은 게 있네.”

    종규가 말했다.

    “무엇입니까?”

    “자네 지장왕 보살을 만났었나? 자네에게서 미약하게나마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종규가 전음으로 물었을 때, 심협은 잠시 당황했지만 바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분은 이미 입적(入寂)하시지 않았습니까?”

    밖은 조용했다. 종규가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물었다.

    “정말로 만난 적 없나?”

    “없습니다.”

    누가 배신자인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당연히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