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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09화 (609/1,214)

609화. 배신자라니!

청노가 쫓아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감탄했다.

“종규는 이미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군요!”

심협은 대답 없이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재빨리 내달렸다.

쾅!

폭발음이 울리면서 하늘에서는 검은 빛이 터져 나왔고, 붉은 옷이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음귀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오래된 다리 위로 떨어졌다.

이미 오래되고 심하게 파손된 상태였던 나무다리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하지만 종규가 쇠사슬에 몸을 부딪히고 다리가 심하게 흔들려도 이 낡고 오래된 다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가 몸을 일으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유명귀왕이 끊임없이 주변의 음살의 기운을 흡수하면서 부서진 몸이 다시 회복되고 갑옷마저 함께 복원되고 있었다. 다만 느껴지는 기운은 이전보다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아직도 항복할 생각이 없는 거냐? 계속 싸우면 죽음뿐이다!”

종규가 큰 목소리로 외쳤으나, 허공에 떠 있는 유명귀왕은 묵묵부답이었다. 오히려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음살의 기를 흡수해갔다.

“어리석은 놈. 그렇다면 네놈을 제도(濟度)해주마.”

종규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항마보검(降魔寶劍)을 다시 들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촤르륵!

쇠사슬 소리에 이어 종규의 몸이 우뚝 굳어버렸다.

다리 끝부분에서 갑자기 하얀 인영이 불쑥 나타났다. 그자의 목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고, 몸은 다리 끝에 매달린 채 음풍에 유유히 떠다녔다.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에는 검은 눈동자가 없었다. 쩍 벌린 입에서 커다란 보랏빛 혀가 나타나더니 10여 장이나 늘어나 종규의 목을 향해 다가왔다.

목매 죽은 귀물의 존재 자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심협이 깜짝 놀라 도우려 나서는 순간, 종규는 몸을 크게 돌리며 입에서 진홍색 불꽃을 강하게 뿜어냈다. 불꽃은 혓바닥을 타고 목매 죽은 귀물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불꽃이 타오르는데도 이 귀물은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코를 조금 움찔하더니 푸른색 한기를 콧구멍에서 뿜어냈다. 이 한기는 기다란 혀를 타고 거꾸로 날아가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불길을 꺼버렸다.

종규는 귀물의 한기가 예상보다 강한 것을 보고는 의아한 눈치였다.

그의 뒤에서는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창이 날아들었다. 종규는 검을 휘둘러 막으려 했지만, 강력한 한기에 동작이 조금 늦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위태위태한 싸움에서 잠깐의 차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마련이었다.

검은색 창이 그의 뒤통수에 닿으려는 순간, 검은 빛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어서 시커먼 채찍이 날아와 창끝을 강하게 때렸고, 창날이 부서졌다.

동시에 누군가 목매 죽은 귀물 뒤에 나타났다.

심협은 바로 공격하지 않고 다리 끝에 있는 밧줄을 자르려고 했다.

이에 귀물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종규에게로 뻗었던 혀를 재빨리 방향을 틀어 심협의 심장을 노리고 찌르려 했다.

“멈춰라!”

심협이 짧게 내뱉은 순간, 미간에서 구슬이 튀어나와 푸른 빛을 뿜어냈다.

“정해주!”

종규가 구슬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치며 심협을 바라봤다.

인사를 나누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기에, 심협은 정해주로 잠깐 공간 자체를 멈춰놓고는 귀물의 혀를 피한 뒤 손으로 밧줄을 잘라냈다.

줄이 끊어지는 순간, 목매 죽은 귀물의 몸에서 대량의 살기가 퍼져 나갔고, 기운도 점점 약해졌다. 심협은 자신을 찌르려던 혀를 휘어잡고는 세게 당겼다. 그러자 귀물의 목이 빠르게 휘감겨 왔다.

그가 목매 죽은 귀물을 견제하는 동안, 종규는 돌진해 음살의 기운을 흡수하여 회복하려는 유명귀왕의 가슴팍 부서진 곳을 엄지로 눌렀다.

엄지의 기혈이 열리면서 강력하기 그지없는 흡입력이 흘러나와 유명귀왕 체내에 담긴 음살의 기운을 깨끗하게 흡수했다.

살기가 모두 빨려 들어가는 순간, 유명귀왕의 몸이 흩어지고, 검은 안개가 지탱하던 청동 갑옷도 산산이 부서지더니 가루가 되어 종규의 엄지손가락 기혈로 흡수되었다.

심협은 황금승으로 목매 죽은 귀물을 포박하고는 종규의 발밑으로 던졌다.

“심협?”

종규는 앞에 있는 목매 죽은 귀물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선배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심협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종규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들이 자네가 아직 살아 있다고 했을 때 믿지 않았는데, 사실이었군.”

종규가 한참 후에 내뱉은 말에서 심상치 않은 의미가 느껴져 심협은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미처 자세히 묻기도 전에 맞은편 산골짜기에서 여러 사람이 날아왔다.

심협이 돌아보니 가장 앞에 있는 자는 몸에 자금색 도포(道袍)를 입은 채 머리에는 연꽃 보관을 쓰고 있었다. 약간 말랐지만 외모는 매우 청아했다. 가슴 앞에 휘날리는 세 가닥의 하얀 수염은 신선과 같은 외모를 돋보이게 했다.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었다.

그의 뒤에는 황색 승포(僧袍)를 입은 거구의 남자가 있었다. 불문의 복장이었지만, 머리에는 삼천 번뇌를 제거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상투를 틀었고, 생김새는 매우 기이했다.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졌고, 고리눈에 두꺼운 눈썹은 황금빛이라 매우 특이했다.

그 옆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자는 심협도 잘 아는 우마왕이었다.

한데 우마왕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고,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두 개의 뿔 중 하나는 완전히 부러진 것이 매우 처참해 보였다.

청노는 검은 대나무 숲에 숨어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보고는 아예 덜덜 떨었다.

“우마왕 선배.”

심협이 부르자 우마왕도 심협을 발견했다. 한데 어째서인지 복잡한 표정에 얼굴이 차게 굳더니 심협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심협은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져 심협이 막 공수하며 인사하려는 순간, 우마왕의 몸에서 갑자기 검은 불길이 타오르더니 몸도 순식간에 백 장으로 커졌다. 그러더니 그대로 심협을 짓밟으려 했다.

심협은 갑작스런 공격에 미처 대비도 못한 터라 서둘러 황정경을 운공하며 두 팔을 들었다.

우마왕은 본래도 괴력으로 유명해 ‘대력 우마왕’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정없이 공격해오니 그 강력함은 심협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퍽!

대번에 튕겨나간 심협이 음귀곡 맞은편까지 날아가 처박히면서 절벽의 절반은 무너져 내렸다.

그때, 골짜기 쪽에서 또 누군가 날아오더니 황색 승포의 승려 앞에 섰는데, 눈앞의 상황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매우 건장하고 의젓한 사내로, 용과 구름이 새겨진 은색 갑옷을 입었고, 머리에는 백옥 용관(龍冠)을 쓰고 있었다.

손에는 삼첨양인도(三尖兩刃刀)를 들었고, 허리에는 영서망월궁(靈犀望月弓)을 차고 있었다. 외모는 준수하고 비범했으며, 이목구비에서는 영웅의 기질이 풍겼다. 미간에는 붉은 점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금색 무늬가 세로로 박혀 있었다.

“황미(黃眉), 무슨 일인가?”

건장한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어찌 알겠나? 우마왕이 저자를 보자마자 대뜸…….”

황색 승포의 승려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옆에 선 기다란 수염의 노인은 말없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두 눈이 반짝이는 것이 무언가 떠오른 듯했다.

그때, 산 절벽에서 금빛이 솟아오르더니 거대한 코끼리 허상이 부서진 절벽 사이로 우뚝 솟아오르며 우마왕의 발을 들어 올렸다.

“우형, 왜 이러십니까? 저 심협입니다!”

심협이 거대한 코끼리 사이에서 나타나 온몸에서 빛을 내며 우마왕을 향해 외쳤다.

“이 배신자가 태을 경지에 올라섰단 말인가!”

우마왕이 낮게 신음하더니 신통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온몸의 검은 빛을 더욱 강력하게 내뿜으며 다시 한번 강하게 밟았다.

이번에는 심협도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했다. 용의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여섯 마리 용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여섯 마리의 코끼리는 발을 높이 쳐들어 우마왕의 발을 들이받았다.

콰쾅!

천둥이 음귀곡에 울려 퍼졌고, 여섯 마리 용과 코끼리의 힘이 일제히 폭발하면서 우마왕의 일격에 맞섰을 뿐만 아니라 전세를 뒤집을 기미마저 보였다.

“배신자라니!”

심협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때, 금빛이 갑자기 반짝이더니 긴 수염의 노인이 우마왕의 발등 위에 갑자기 나타나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노인이 우마왕의 발등 위에 서는 순간, 갑자기 태산과 같은 힘이 떨어지면서 심협을 둘러싼 여섯 마리 용과 코끼리의 허상이 무너지더니 흩어졌다.

“도대체 왜들 이러시는 겁니까?”

심협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버럭 외쳤다. 동시에 금빛이 다시 솟구치더니 금색의 커다란 탑이 우뚝 솟아 우마왕의 발을 밀어내며 10여 장 높이까지 커졌다.

심협은 탑에서 날아올라 영롱보탑을 축소해서 손에 올려두고는 다른 손으로 금색 곤봉을 소환해 우마왕을 겨눴다. 그는 정말로 화가 났다.

“보령탑이 자네 손에 있는 걸 보니, 심협…… 탁탑천왕이 보관하던 천책이 자네에게 있는 모양이군.”

우마왕이 말하기도 전에 긴 수염의 노도(老道)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금색 눈썹의 승려와 은색 갑옷 사내가 급변한 표정으로 심협을 돌아봤다.

심협은 그들의 말에서 무언가를 떠올린 듯 물었다.

“원 도인?”

긴 수염의 노도는 부정하지 않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군…….”

심협의 미간은 점점 찌푸려졌다. 불쾌함이 들끓었다. 어째서 우마왕이 자신을 보자마자 공격해온 건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만약 화안금정으로 보지 않았다면 앞에 있는 우마왕이 가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해라! 왜 우리를 배신한 것이냐?”

우마왕이 마침내 입을 열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심협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으나 이내 따지듯 외쳤다.

“배신이라니, 내가 언제 배신했다는 겁니까?”

“심협이라고 했나? 이번의 막심한 피해가 모두 네놈의 짓이었구나!”

은색 갑옷의 남자가 분노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애당초 사람들이 네 정체가 불분명하다고 의심했을 때도 널 지켜줬거늘…… 네게 정해주까지 준 내가 우습구나.”

심협을 노려보는 우마왕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된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심협은 분노 못지않게 의혹도 컸기에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흥!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우리의 행적을 네가 마족에게 누설한 게 아니냐? 적뢰산에서 공격을 받을 때도, 이번에 오장관이 협공을 받을 때도 너는 없었다. 도대체 네 정체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구나!”

우마왕이 차갑게 말했다.

“저는 오행산으로 가서 수련을 했습니다. 안 그러면 내가 어떻게 태을 경지가 됐겠습니까?”

심협은 조금 굳은 채 설명했다.

“또한, 마족과의 싸움에서 제가 간사한 짓을 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 터놓고 말해서 그때 내가 적뢰산으로 간 것도 원 도인, 당신이 적극적으로 재촉해서 성사된 일이 아닙니까?”

“진원 대선, 이게 무슨 말입니까?”

심협의 질문에 우마왕은 긴 수염의 노도를 돌아보며 물었다.

‘진원 대선라고?’

심협은 원 도인의 신분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조금 놀라긴 했다.

“그래, 지금 와서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그때 우리가 심협을 적뢰산으로 보내 자네를 끌어들인 게 맞네.”

긴 수염의 노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그렇다면…… 당신들이 바로 화 도인과 뇌 도인이오?”

심협은 망설이다가 은색 갑옷 사내와 금빛 눈썹의 승려를 바라봤다. 이 추측이 맞다면 은색 갑옷 사내는 화 도인, 금빛 눈썹의 승려는 뇌 도인일 것이다.

두 사람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네. 사실 오늘은 마침내 우리가 모인 날일세. 허나 아쉽게도……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군.”

진원 대선이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자가 바로 저자란 말인가?”

은색 갑옷의 사내, 화 도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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