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06화 (606/1,214)

606화. 꿈같은 환상

“오라버니…….”

심협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섭채주’의 손을 잡고는 금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화안금정으로 보자 옆에 서 있는 ‘섭채주’의 몸은 실오라기 같은 금색 광선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머리 위에는 더 굵은 빛이 뻗어 나와서 자신의 미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갑자기 발에 차가운 느낌이 들어 고개를 숙여 보니 두 발은 늪에 빠져 있었고, 그 아래에서 기이한 힘이 두 다리를 감싼 채 끌어당기고 있었다.

두 발을 살짝 움직여보니 그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기에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다시 청노를 돌아봤다.

심협이 이제 막 늪지에 빠지기 시작한 것과 달리 청노의 몸은 벌써 절반이나 늪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시종일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지금의 처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과 건물들도 전부 사라졌고, 실오라기 같은 금색 광선이 뻗어 나와서 심협의 미간과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에 청노의 몸에서 영혼의 힘의 파동이 쉬지 않고 새어 나왔다.

심협은 그제야 깨달았다. 욕망의 늪의 독기는 몸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신혼을 흔들고 깊이 들어가 신혼의 힘을 밖으로 새어 나오게 한다. 그렇게 가슴에 품고 있던, 모든 바라는 것들을 환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환상은 지배받는 자의 신혼의 힘으로 유지되는 것이기에 그 풍경이 복잡할수록 소모되는 신혼의 힘이 더 커지고, 사람도 늪지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신혼의 힘을 모두 소모하면 지배받는 자의 신혼은 그대로 부서져 사라지게 되고 사람도 완전히 늪지에 빠져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얼마 버티지 못하겠군.”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옆에 있는 ‘섭채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들어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자 미간에 연결된 금색 실이 대번에 끊어졌다.

신혼의 연결이 끊어지자 ‘섭채주’의 모습도 점점 흐려졌고, 금색 광선도 완전히 사라졌다.

뒤이어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자 두 다리가 떨리면서 발을 잡고 있던 이상한 힘이 무너졌고, 일순 몸이 가벼워지면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신식을 굳게 지키면서 청노에게 다가가 그 어깨를 붙잡았다.

환상 속, 청노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집의 대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진 느낌에 고개를 돌려보니 얼굴이 희미한 사람이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호통을 치려 했다.

심협은 청노의 두 눈이 더 어두워진 것을 눈치챘다. 본래 귀선이었던 몸이 더 흐려지면서 한눈에 봐도 영혼의 힘이 극심하게 소모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심협은 서둘러 그의 신혼의 연결을 끊고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밖으로 새어나가는 신혼의 힘을 봉인했다.

청노는 시야가 흔들리더니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가족들의 모습이 일그러지고 주변의 건축물도 잇달아 무너지고 사라지면서 전부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자 절규했다.

“아, 안 돼! 가지 마!”

그는 한동안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소리치며 발버둥 쳤다.

“깨어나라!”

심협이 불문의 사자후처럼 우렁차게 포효했다.

청노는 식해가 흔들리는 느낌에 그제야 눈빛이 돌아오며 완전히 깨어났다.

그는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절반이나 늪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상선님, 이게……?”

청노가 두려움에 몸부림쳤다.

“움직이지 마라. 너는 방금 환상에 빠져서 신혼을 거의 다 소모했다. 이제 끌어올려 주마.”

심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청노는 조금씩 사라져가는 주변의 금빛에서 무언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자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상선님, 이 늪지가 신식의 힘을 흡수한 겁니까?”

“그렇다. 허나 의지가 강하거나 신혼이 강한 자는 영향을 받지 않지. 너는 귀선이고, 귀혼을 가졌으나, 의지가 약하고 생전에 집착이 너무 심해 환상에 빠진 것이다. 내가 잠시 네 신혼을 봉인했다.”

심협의 의지력은 청노보다 백배는 강인하고 신혼 또한 강해서 본래 환상에 빠질 일이 없었다. 다만 청노의 신혼을 염탐하느라 독기에 노출되어 그의 신혼의 힘도 끌려간 것이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청노의 얼굴은 창백한 정도가 아니라 더 투명해져 있었다.

“됐다. 내가 당길 테니 너도 법력을 하반신으로 모아서 협조해라.”

청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이 주저앉아 한 손은 늪의 수면에 대고 한 손은 청노의 어깨를 잡더니 외쳤다.

“지금이다!”

이와 동시에 바닥을 집고 있는 손으로 결인하여 무명 공법을 운공했다. 늪지의 물이 강하게 요동치더니 수면 위로 솟구쳤고, 청노를 붙잡고 있던 팔에 금빛 비늘이 떠오르면서 손가락이 용의 발톱으로 변하여 힘차게 들어 올렸다.

쾅 하는 소리가 땅에서부터 들려왔다.

검은 물결이 하늘 높이 치솟았고, 청노의 몸은 그곳에 끼어서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심협은 그것을 보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방금 물보라가 치솟은 늪지가 갑자기 흔들리더니 거대한 무언가 땅을 비집고 나왔다. 사방 수백 장의 대지에서 진흙이 솟아오르면서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커다란 입이 쩍 벌어지더니 심협과 하늘에 있는 청노를 삼키려고 다가왔다.

심협의 몸에서 빛이 반짝였고, 다음 순간 백 장을 치솟았다. 그러자 괴수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는데, 온몸이 칠흑처럼 새까만 거대한 메기 요괴였다.

커다란 입이 벌어지는 동시에 입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 안개가 몸에 닿자 식해가 흔들리면서 신식의 힘이 미간에서부터 새어나갔다.

허공에 떠 있는 청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몸 곳곳에서 끊임없이 신식의 힘이 연기처럼 새어 나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대로는 메기 요괴에게 먹히기도 전에 유혼의 몸이 사라질 판이었다.

“어딜 감히!”

심협이 나지막이 외치자 몸 앞에 금빛이 반짝이면서 천책이 떠올랐고, 빛이 퍼져 나가면서 신혼을 흔드는 검은 안개를 전부 흡수했다.

동시에 심협의 손에는 진해빈철곤이 나타났다.

심협은 하강하면서 곤봉을 연이어 휘둘렀다. 허공이 우웅 하고 울리더니 수백 개의 금색 곤봉 허상이 하나로 모여 메기 요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금색 곤봉의 허상은 마치 허공을 지나가듯 아무런 저항도 없이 메기 요괴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허상인가……?”

심협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랐다.

“상선님, 이건 메기 요괴가 아니라 허곤(墟鯤)입니다. 이것은 허상과 실체 사이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지요. 저것의 안으로 들어가면 분명히 몸을 실체로 바꿀 겁니다. 그때 안에서 봉인하세요!”

청노는 멀리서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심협은 이 괴물의 실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운명대로 죽은 사람은 지부로 와서 생전의 공과(功過)를 심판받고 윤회에 들어가는데, 비명횡사한 자들은 죽은 후에도 원망이 풀리지 않아 윤회에 들어가지 않고 홀로 떠돌아다니다가 혼비백산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혼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유랑민처럼 음지를 떠돌다가 대량의 탐욕과 분노, 원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섞이면서 부서진 혼백과 하나가 되어 망령의 곤(鯤)에 붙으면서 허곤이 된다.

허곤은 인간 세계와 저승을 넘나들면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으로 사람, 귀물, 신선, 마족을 가리지 않고 넋을 빼앗고 혼백을 흡수하며 몸을 삼켜 매번 현세에 재앙을 일으킨다.

듣기로는 지장보살이 신수 체청(諦聽)과 9981일 동안 싸워 마침내 쓰러트렸다 한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것을 죽이지는 못했고, 결국은 저승 어딘가에 가뒀다.

“지옥미궁이 바로 그곳인 모양이군.”

심협은 허상이 된 허곤의 몸에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다. 그의 두 팔이 금과 은빛으로 번득이더니 천리지술을 펼쳐 순간이동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곳에는 이제 청노와 허곤만 남게 됐다.

허곤은 심협을 찾을 수 없자 다시 실체로 돌아왔다. 그러자 입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음파가 몸에서 출렁이더니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청노는 이 소리에 충격을 받아 가뜩이나 흩어져가던 혼백이 순간 부서져서 세 개로 나뉘었다. 하나같이 너무나 약해서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음파가 멈추는 순간, 하늘 높은 곳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였고, 영롱탑이 순식간에 백 장 크기로 커지더니 떨어져 내렸다.

쿵!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백 장 크기의 탑이 척추에 꽂히자 허곤은 그대로 늪지에 처박혔다.

허공에서 나타난 심협이 결인하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영롱탑에서 금색 진문이 물결처럼 퍼져 나왔고, 거기에 담긴 강력하기 그지없는 금제의 힘이 허곤의 몸을 끊임없이 짓눌렀다.

뒤이어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세 개로 나뉘어진 청노의 유혼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그의 앞으로 끌려왔다.

잔뜩 쇄약해진 청노는 입을 벌려도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심협은 청노의 미간에 손을 대고 법력을 조금씩 주입하여 신혼이 다시 안정되도록 도왔다. 신식의 파동이 조금씩 일어나자 바로 손을 떼고 청노를 소매 안으로 넣고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심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백 장 크기의 탑은 절반쯤 늪지에 박힌 채 서 있었으나 허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심협이 손을 흔들자 영롱보탑이 빠르게 줄어들어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여기는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당장 떠나자.’

그의 두 팔에서 금빛과 은빛이 떠올랐고, 몸은 순식간에 번개처럼 날아갔다.

하지만 천 장을 날기도 전에 심협은 형용할 수 없는 위기감에 오싹했다.

그는 두 팔을 흔들어 허공에서 90도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그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 위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뒤덮었고, 아래에서도 검은 허상이 나타나 솟구치면서 그를 위아래로 덮쳐왔다.

심협은 어느새 허곤의 입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뒤에서 기류가 갑자기 생겨나더니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흡입력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심협은 진해빈철곤을 꺼내 들었다. 곤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거대한 기둥으로 변하여 빠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진해빈철곤이 수십 장이나 커졌을 때, 소용돌이에서 나오는 흡입의 힘에 끌려 들어갔다.

심협은 기겁해 진해빈철곤을 다시 작게 만들어서 챙기려 했으나, 한 발 늦어버렸다. 곤은 그의 제어를 벗어나 흡수의 힘에 이끌려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졌다.

검은 소용돌이로 들어가자 심협은 갑자기 머릿속이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혼란스럽고 강력한 신념의 힘이 미친 듯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신혼으로 침투했다.

엄청난 혈기가 식해 사방으로 퍼졌다. 식해 신혼 소인의 눈에는 마치 온몸이 붉은색인 혈인(血人), 혈수(血獸) 같은 천군만마가 질주해오는 것처럼 보였다.

사방에서 하늘을 뒤흔드는 고함이 들려왔는데 그 사이사이로 수많은 절망의 울부짖음이 섞여 있었다. 혈인과 혈수는 절규하며 심협에게 달려들었고, 끊임없이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지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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