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05화 (605/1,214)
  • 605화. 황천으로 들어가다

    심협의 시선이 나무 선반 가장 위의 나무 상자로 향했다. 손을 내밀자 그것이 날아왔다.

    나무 상자에는 아무런 장치도 없었는데, 흑산노요는 안에 담긴 물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어떤 종족의 가죽인지 알 수 없는 두루마리가 들어 있었다.

    “상선님, 이게 분명합니다.”

    청로는 다가와서 상자 안의 두루마리를 보고는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

    “선반 위의 물건 중 원하는 것은 알아서 가져가거라.”

    심협이 그렇게 말하자 청노는 기뻐하면서도 내심 망설여졌다.

    심협은 그를 내버려둔 채 두루마리를 펼쳤다. 매우 번접한 문신 같은 도문과 가로세로로 수천 개의 길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었다.

    지도의 한쪽에는 고전체(古篆體)로 ‘지옥미궁’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도는 매우 상세했지만, 정확한 방향과 경로가 표시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층의 묘사도 매우 복잡했다. 이리저리 뒤섞인 길목이 수십 군데였고, 길은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려던 그의 안색이 갑자기 급변했다.

    “발각됐군!”

    밖에서는 바람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가뜩이나 어두웠던 하늘은 더욱 어두워져갔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누군가가 귀택의 앞뜰 중앙에 내려왔다.

    심협은 지옥미궁의 지도를 챙기고는 몸을 돌려 밀실에서 나갔다. 뒤에서 그때까지 머뭇거리던 청노는 결심한 듯 선반 위의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러나저러나 들킨 거면 어차피 죽을 텐데 무슨 상관이람!”

    나지막이 혼잣말로 투덜거린 그는 재빨리 심협을 쫓아갔다.

    앞뜰에는 크고 어두운 사람이 서 있었다.

    “상선님, 저자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구명이 오면…… 이미 늦었네요.”

    심협은 그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오자 의외인 들 돌아봤다.

    “여기서 참고 사는 것도 이제 질렸고, 이렇게 됐으니 어차피 저도 죽은 목숨입니다. 그래도 상선님께는 아직 쓸모 있으니 절 데리고 가주십시오.”

    청노가 의연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잠시 망설이던 심협은 소매를 늘려 그의 몸을 속박하듯 휘감고는 몸을 쭉 펼쳐 하늘로 날아갔다.

    “어딜 도망가느냐!”

    분노한 외침이 아래서 들려오자 하늘의 황운(黃雲)이 일렁이더니 용솟음쳤다.

    일그러진 귀물의 거대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전에 봤던 것과 거의 똑같았다. 다만 지금의 귀물 얼굴의 기운은 그때보다 강력해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에 청노는 버티기 힘들었다.

    ‘같은 진선기에 경지 차이도 작은데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로군.’

    청노는 울상이었지만, 심협은 침착했다. 지금의 그는 구혼마면의 희생으로 구차하게 살아가던 당시의 약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해도 됐다면 그는 당장 흑산노요를 죽였을 것이다.

    심협이 주먹을 움켜쥐자 황정경공법이 운공되면서 온몸에 법력이 세차게 흘렀다. 그러자 온몸이 금옥처럼 빛났고, 용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심협의 주먹이 험상궂은 귀물의 얼굴로 향하자 금룡의 형상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헤엄치듯이 뿜어져 나가서 팔을 타고 귀물 얼굴에 박혔다.

    꽝!

    허공에서 금색 태양이 작열했고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험상궂은 귀물의 얼굴이 폭발했다. 황운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아래에 있던 흑산노요는 막 날아올라 쫓아오다가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며 추락했다.

    심협의 손아귀에 붙들려 오던 청노는 이 광경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주먹 한 방으로 흑산노요의 신통을 깨뜨리고 중상을 입히다니.’

    심협은 개의치 않고 황운으로 가려진 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러던 중 정면에서 강력하고 고풍스러운 힘이 느껴졌고,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백 장에 이르는 거대하고 시커먼 손이 날아왔다.

    “이런, 구명이다!”

    청노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경악했다.

    심협이 짧게 기합을 외치자 금빛이 증폭했고, 금탑의 허상이 나타나 하늘에 가득한 거대한 손을 막았다.

    콰르릉!

    굉음이 울려 퍼졌고 금탑의 허상이 강렬하게 떨려왔다. 바다처럼 몰려오는 웅대하고 강력한 힘의 여파가 심협과 청노에게까지 몰려왔다.

    심협의 몸에서 금빛이 번득이면서 버텼지만, 그의 옷은 강력한 풍압에 온몸에 착 달라붙었고 얼굴의 피부도 떨려왔다. 아래에 있던 청노는 더 죽을 맛이었다. 입에서는 피가 흘렀고, 마치 신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금탑마저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

    이를 본 흑산노요가 서둘러 쫓아왔다.

    심협이 손목을 흔들어 진해빈철곤을 움켜쥔 채 싸울 준비를 하는데 청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상선님, 싸우시면 안 됩니다. 황천도 지옥미궁의 입구 중 한 곳이니 거기로 가십시오.”

    위를 힐끗 보자 허공에서 마영(魔影)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심협은 손을 들어 청노를 호수 중앙의 황색 소용돌이를 향해 던졌다.

    “아니, 나는 왜……?”

    청노는 자기도 모르게 억울함에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 그는 심협과 한패로 보였을 테니 함께 가지 않으면 마족의 손에 죽고야 말리라.

    심협은 뒤이어 몸을 회전시키면서 진해빈철곤을 휘둘러 발천난봉을 사방으로 시전했다. 곤봉의 허상이 끊임없이 떠오르더니 쉬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졌다.

    구명이 거의 다가왔을 무렵, 모든 곤봉의 허상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면서 금빛을 발하는 거대한 곤봉으로 변했다. 심협도 진해빈철곤과 하나가 되어 하늘을 태울 기세로 강하게 휘둘렀다.

    금빛 곤봉 허상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자 주변이 순식간에 진공 상태가 되었고, 거센 바람이 심협을 향해 몰아쳤다. 옆에서 공격해오던 흑산노요도 이 힘에 휩쓸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떨어졌다.

    금빛 곤봉의 허상과 허공에서 내려오는 마영이 충돌하자 태양이 하늘에서 폭발한 것처럼 사방으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꽈광!

    폭발음이 울렸다. 금빛 곤봉의 허상이 먼저 부서졌지만 용맹한 기세가 다시 폭발하면서 그 위력에 구명의 본체도 천 장정도 밀려났다.

    이와 동시에 심협의 몸도 강하게 흔들렸고, 대지가 무너지면서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흑산노요가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주먹을 뻗었다.

    금빛으로 빛나는 주먹에는 황정경공법을 전력으로 담지 못했지만 흑산노요를 터트리고 그대로 땅에 처박기에는 충분했다.

    심협이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러 흑산노요를 완전히 말살시키려던 순간,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월보로 피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리비술로 호수 중앙의 황색 소용돌이로 날아갔다.

    청노는 소용돌이 중앙에서 수천의 귀혼에게 둘러싸인 채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 황천에 떨어지려던 심협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자 깜짝 놀랐다. 그의 신혼 혼백이 황천에 떨어지는 순간 육신과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육신은 황천의 소용돌이 깊은 곳으로 떨어졌고 혼백은 물 위를 떠다녔다.

    그가 청노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큰 소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상선님, 황천은 유혼을 씻겨내고 육체는 뜨지 않으니 어서 육체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저를 잡으세요! 가라앉을 겁니다. 아래가 지옥미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심협은 진위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공수지술(控水之術)로 황천의 물을 밀어내고는 청노를 붙잡고 아래로 떨어졌고, 육체에 닿는 순간 다시 합쳐졌다.

    이때, 위에서 커다란 검은 빛이 황천을 향해 떨어졌다.

    쩌렁쩌렁한 굉음과 함께 검은 빛이 황천을 폭발시켰고, 물 위에 떠 있던 수천의 유혼이 빛에 닿는 순간 소멸하였다.

    그러나 황천 아래 심협 등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구명이 천천히 내려와 균열이 간 땅에서 흑산노요의 부서진 몸이 조금씩 합쳐지는 걸 어두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여봐라.”

    구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대인.”

    일고여덟 명이 다가와 그의 앞에 엎드렸다.

    “미궁의 모든 출구를 봉쇄하고 저들의 흔적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해라.”

    “존명!”

    * * *

    심협은 청노와 함께 어둡고 기다란 통로를 끊임없이 떨어지다가 마침내 황천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람이 떨어진 곳은 황야였다. 주변에는 붉은 흙이 펼쳐져 있었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봤다. 허공에 있던 소용돌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고 거기서 흘러나오던 황천의 기운도 조금씩 흩어졌다.

    얼굴이 창백해진 청노를 한번 바라본 그는 지옥미궁의 지도를 꺼냈다.

    지도는 매우 여러 구역으로 나눠져 있었고 지형도 복잡했다. 산지와 골짜기, 협곡, 늪지도 있어서 마치 대륙 같았다. 그러니 한참을 봐도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청노가 다가와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지도 오른쪽 구석의 작은 구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선님, 저희가 있는 곳은 여기입니다.”

    심협은 그가 가리킨 곳을 보자 손톱 크기 정도의 붉은 구역이 보였다. 그도 청노의 말에 동의했다.

    지도는 그리 크지 않아 붉은 구역 또한 작게 그려져 있었는데, 분명한 것은 아직 이들은 미궁에 들어서지 못한 상태였다.

    “우선 여기 욕망의 늪으로 가자.”

    심협은 지도를 집어넣고는 다시 청노를 붙들고 붉은색 흙 근처 늪지를 향해 날아갔다.

    두 사람은 금세 이 지역의 변경에 도착했다. 하지만 늪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앞에 만 장 높이의 회색의 구름 벽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심협은 신식으로 구름 벽을 자세히 살폈지만, 예상대로 신식은 막혔다.

    그는 청노를 데리고 구름 벽 근처로 내려가며 화안금정 신통으로 안쪽을 다시 살폈다. 화안금정으로도 그 너머로 10여 장밖에 볼 수 없었다.

    그곳은 검은 물로 덮여 있었고, 위에는 수많은 청흑색의 수초(水草)가 떠다녔다. 일정한 거리마다 검은 섬이 떠다녔는데 온통 검은 진흙투성이였다.

    “상선님, 욕망의 늪은 독으로 가득해서 신혼을 환상에 빠트려서 탐욕스러운 환각을 일으킨다 했습니다. 경지와는 무관해 태을 선인도 막아내지 못한다고 들었습죠.”

    청노가 조심스레 주의를 주었다.

    심협은 신혼의 힘에 상당한 자신이 있었고 화안금정 신통까지 익혔으니 걱정이 없었기에 개의치 않고 늪지로 향했고, 청노도 울며 겨자 먹기로 뒤따랐다.

    회색 구름 벽은 높아서 하늘까지 닿았지만, 그리 두껍지는 않았다. 안으로 3장 정도 들어서니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늪지에 들어서자 시야가 갑자기 확 트였다. 더는 구름이 덮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전방 수백 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별로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데…….”

    뒤따라 들어온 청노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눈에서 이상한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곧바로 넋을 잃은 듯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독에 당한 건가?”

    심협은 신념을 방출해서 청노를 감쌌다. 한데 그 순간, 눈앞의 광경이 갑자기 확 달라졌다.

    주변에서 하얀 빛이 퍼지면서 지나가더니 늪지와 같은 황량한 곳이 아닌 시끌벅적한 거리가 나타난 것이다.

    타탁! 타닥!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던 장면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고, 각종 환호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양쪽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나왔다.

    거리 곳곳에서 기품 있는 저택들이 서 있었고, 문 앞에는 수십 명의 남녀노소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청노가 푸른 옷이 아닌 붉은 옷을 입고 가슴에는 비단 꽃 한 송이를 단 채 검은 말을 타고 다가왔다.

    앞에 있는 사람들이 길을 열면서 크게 외쳤다.

    “장원급제, 금의환향!”

    심협은 속으로 꽤 놀랐다.

    ‘청노가 생전에 장원급제를 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이 장면은 청노의 환상이고 집념이다.

    사실 청노는 생전에 정말로 선비였고, 10년간 과거를 봤지만, 매번 떨어지자 실의에 빠져 장안성 외곽의 경하에 투신하여 물귀신이 된 것이다.

    내심 긴장하며 고개를 돌리던 심협은 이내 멍하니 넋이 나갔다.

    “오라버니, 오늘은 어디 갈까요?”

    누군가 그의 옆에 기대어 서 있었는데, 봄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섭채주였다.

    “채주야, 어떻게……?”

    “왜 멍하니 있어요? 장원급제한 사람이 부러워요?”

    섭채주가 웃으며 물었다.

    심협이 다시 앞을 보니 청노가 저택 앞에 도착해 말에서 내려 자신의 부모에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거 환상임을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한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나도 걸려든 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앞에 있던 청노가 몸을 일으키더니 불현 듯 심협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표정에는 어딘가 미심쩍은 빛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