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04화 (604/1,214)

604화. 흑산의 오래된 저택

‘그게 문제다.’

심협은 혀를 찼다. 현재 그의 실력으로 천책과 영롱탑의 도움을 받으면 태을 중기 수사와도 충분히 싸울 수 있고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태을 후기의 대능 수사를 만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너라면 여기를 지키는 마족을 피해 바로 연옥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

심협은 청노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건…….”

“말해라!”

심협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길이 매우 위험해 마족과 정면으로 싸우는 것 못지않고…… 어쩌면 정면으로 쳐들어가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청노는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말해보거라. 어떤 방법이지?”

심협은 차갑게 다그쳤다.

“상선께서 모르는 바가 있습니다. 저승의 강 끝 황천길 외에도 지부에는 특별한 곳이 있는데, 바로 지옥미궁(地獄迷宮)입니다. 순조롭게 이 미궁을 지난다면 연옥에 바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미궁은 곳곳에 위험이 있고 만약 정확한 길을 모르고 들어섰다가는 죽을 공산이 큽니다. 게다가 그곳을 지나서 18층 연옥에 도착한다 해도 다시 나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청노가 긴장한 얼굴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고민에 잠겼다.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곳으로 가느니 차라리 황천길로 치고 들어가는 게 나을 수도 있을 듯했다.

“지금 지부를 지키는 자는 누구지?”

“몇 명이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수령은 구명마군(九冥魔君)이고 그의 휘하인 몇 명의 생신존자(生辰尊者)를 데리고 왔다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패했던 흑산노요까지…….”

청노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심협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도의 힘이 지부를 지킨다면 쳐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몰래 잠입하는 것도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차라리 지옥미궁으로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도 같았다.

“지옥미궁 지도가 있나?”

심협이 묻자 청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선님, 정말 미궁으로 가시게요?”

“지도가 있는지만 답하라.”

“이, 있습니다. 다만 그게…… 흑산노요의 동부 안에…… 있을 겁니다.”

“그자의 동부는 어디에 있지? 안내해.”

“상선님, 그건…….”

청노는 그야말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가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음을 증명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나를 원망하게 해주지.”

심협의 손에서 육진편이 검게 번득였고, 청노는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어, 어르신. 소인이 안내하겠습니다.”

심협은 청노의 몸을 짓누르던 영롱탑을 거두고는 육진편으로 그의 턱끝을 당겨 일으켰다.

“두 번의 기회는 없으니 괜한 짓은 시도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흑산노요의 귀택(鬼宅)은 황천 부근에 있는데 나하교(奈何橋)와 귀문관(鬼門關)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냥 가시다가는 바로 발각될 겁니다.”

청노는 울먹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내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안내나 잘해라.”

말을 마친 심협의 몸이 번득였다. 칠십이변을 운공한 것이다. 그러자 몸의 모든 기운이 사라지더니 모습도 투명해졌고 몸에서는 귀기가 흘러나오면서 비명횡사한 유혼으로 변했다.

청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벼댔다. 만약 심협의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정말로 유혼으로 알았을 것이다.

“뭘 멍하니 있는 것이냐! 안내하라!”

심협의 꾸짖음에 정신을 차린 청노는 잠시 쭈뼛쭈뼛하더니 조금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선님, 이런 변화술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하여 몰래 잠입하지 않으신 겁니까? 마족도 분명히 알아채지 못할 겁니다.”

그는 당연히 심협에게 길을 안내하고 싶지 않았다. 발각되든 안 되든 자신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으니 저 인간 수사를 혼자 보내고 싶었다.

칠십이변은 물론 강력하지만, 구명은 치우 수하의 대장 중 한 명이자 치우의 부활과 관련해 중요한 인물이다. 실력이나 지위 모두 보통의 12존자보다도 위이니 어떤 특별한 수단과 보물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큰 위험 앞에서는 차라리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나았다. 게다가 지도만 얻으면 지옥미궁을 지나가는 건 문제도 아니니 쉽게 풀리지 않겠는가?

“알 것 없으니 길이나 안내하란 말이다.”

청노는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부디 상선님은 제가 안내하는 유혼이 되시는 겁니다. 다른 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절대로 이상한 행동을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때, 심협이 갑자기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더니 청노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후환을 남길 수는 없지.”

청노는 심협이 생각을 바꾼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

“사, 상선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그 순간, 심협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청노는 이 틈에 도망가려고 했지만, 백 장 밖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바로 포기했다. 저 멀리서 석시귀의 몸이 폭발하더니 끝내 신혼까지 소멸한 것이다.

‘석시귀 저 멍청한 놈! 도망치지 않고 숨어서 보고 있었던 거야? 어휴, 저 돌대가리. 음, 그래. 돌이 맞긴 하지.’

청노는 속으로 혀를 찼고, 도망치지 않은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다.

어느새 돌아온 심협은 다시 유혼으로 변신했고, 청노는 식은땀을 흘리며 서둘러 안내하려 했다.

“잠깐!”

심협이 또다시 갑자기 부르자 청노는 바짝 긴장해 몸을 돌렸다.

심협은 귀번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유혼들이 일제히 나타났다. 아까 황천도에서 모은 유혼들이었다.

저승의 강에 나타난 유혼들은 대부분이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이었기에 강에 들어가지 않고 심협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심협이 전음으로 무슨 말인가를 하자 청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심협이 유혼들 사이로 숨어들자 결인하고는 손을 펼쳤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힘이 바람처럼 모든 유혼을 스쳐 지나갔다.

갈 곳 잃은 듯 황망하기만 하던 유혼들은 눈에서 갑자기 빛이 생겨나더니 청노의 인도를 받아 저승의 강 하류로 유유히 떠내려갔다.

심협과 청노는 저승의 강을 따라 10여 리를 갔다. 반대편에서 한 무리의 귓병이 나타났는데, 선두는 얼굴이 청자색(靑紫色)인 마족 남자였다.

청노는 누가 다가오자 처음에는 좋아했다가 바로 실망했다. 진선 중기의 마족으로는 심협을 이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청노, 방금 상류에서 누가 싸웠나?”

마족 남자는 그를 보고는 무뚝뚝하게 물었다.

“석시귀 그 멍청한 놈이 제가 데리고 오는 망혼을 먹으려고 들어서 한 대 때려주고 도망친 겁니다.”

청노는 심협의 당부대로 이렇게 대답했다.

“들개 같은 놈. 미리 말하는데, 최근에 연옥의 그놈들이 참지 못하고 꿈틀거리며 탈출하려고 한다더군. 흑산 대인께서 지원하러 가셨으니 너희들은 저승의 강을 잘 지켜라. 문제라도 생기면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

마족 남자는 약간 경멸하듯이 말했다.

“존명!”

청노는 포권했으나,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마족 남자는 그를 무시하고 귓병들을 이끌고 상류로 올라갔다.

그들이 멀어지자 청노는 다시 수많은 귀혼을 안내해 황천으로 향했다.

대략 반 시진 뒤, 앞의 물살이 갑자기 느려졌고, 저승의 강도 점점 혼탁해졌다. 심협은 귀혼 무리에 섞여 앞을 살폈다. 강물 앞에 작지 않은 호수가 보였다.

호수 중앙에는 황갈색의 소용돌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누런 물이 끓어오르면서 강렬한 영력 파동을 간간이 흘려보냈다.

“황천에 도착한 건가……?”

그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청노의 전음이 들려왔다.

“상선님, 황천 옆에 저 귀택이 바로 흑산노요의 거처입니다. 그는 이전에 그 무리에게 당하고 중상을 입어 요양 중이었는데, 최근 전출된 모양입니다.”

“그건 나도 들었다. 어쨌든 만약을 위해 먼저 저택에 가 보거라.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상선님, 저와 흑산노요는 아는 사이도 아니고 직속 관계도 아닌데 무작정 갔다가 혹시라도…….”

청노는 머뭇머뭇 말했다.

“그가 지금 집에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라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못 한단 말이더냐? 설마 나를 속이려는 건 아니겠지?”

심협의 말투가 차가워지자 청노는 기겁하며 두 손을 내저었다.

“어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속임수는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금방 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잠깐! 나와 함께 간다.”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귀혼 무리에서 나와서 청노의 뒤에 섰다.

“예.”

청노는 속으로는 욕설을 퍼부었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다. 뒤이어 그가 손을 흔들자 모든 귀혼은 저절로 황천으로 향했다.

심협과 창노는 함께 뭍으로 올라가 호숫가의 귀택으로 다가갔다.

귀택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밖에는 호위도 없었다. 혈홍색 대문 위에는 두 개의 백색 등잔이 걸려 있었는데, ‘흑산’이라는 두 글자가 보기만 해도 음산해 보였다.

“저승의 강 물귀신 청노가 흑산 대인을 뵙고자 합니다!”

청노가 문밖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청노가 긴장한 얼굴로 다시 크게 외치자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혈홍색 대문이 천천히 열렸고, 안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허리가 굽고 얼굴이 창백하고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었다.

심협은 시선을 어둡게 하여 본래의 광채를 가리고는 노인을 훑어봤다. 옷은 여기저기 헤졌고 잔뜩 구겨져 있었다.

“주인님은 안 계시니 돌아가시오.”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실례…….”

청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순식간에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다음 순간, 노인의 머리부터 하반신까지 한 줄기 선이 생겨나더니 반으로 갈라졌다.

손 하나가 노인의 잘린 몸 가운데를 뚫고 나와 방금 타오르기 시작한 부적을 잡았고, 금빛으로 뒤덮어 손아귀에 가두었다.

금빛으로 뒤덮인 부적은 순식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불꽃이 꺼지지 않았다.

청노는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심협의 번개 같은 기습에 놀라는 한편 자신이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안 그랬으면 심협은 정말로 경고했던 것처럼 단숨에 자신을 죽였으리라.

놀라는 와중에도 의아했던 것은 노인의 시신에서는 피도 흐르지 않았고 영력이 사라지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순식간에 두 장의 종이 인간으로 변하더니 스스로 불이 타올랐다.

“종이 꼭두각시! 흑산은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듣긴 했지만, 하수인마저 꼭두각시일 줄이야.”

청노가 중얼거렸다.

심협은 완전히 불타 잿더미가 되어버린 부적을 거두고는 화안금정을 운공한 채 흑산노요의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법진이 설치되어 있군.”

앞뜰 곳곳에 설치된 각종 진부와 진기가 보였다. 어떤 것은 눈에 띄게 설치해 주의를 끄는 용도였고, 어떤 것은 숨겨져 있었다. 저것에 닿으면 바로 흑산노요에게 알려지게 되리라.

하지만 화안금정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심협은 한 손으로 작은 닭을 잡듯이 청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가볍게 피하며 빠르게 움직여 앞뜰을 통과했다.

앞뜰에는 여전히 수많은 종이 꼭두각시와 숨겨진 장치가 가득했지만, 두 사람은 무사히 귀두등(鬼頭燈)이 밝혀져 있는 다락방 앞에 도착했다.

“흑산은 여기서 지냈을 겁니다.”

청노가 말했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심협이 화안금정으로 살펴보니 다락방 안에 밀실이 숨겨져 있었다.

방 안의 검은 탁자 옆에 놓인 향로를 돌리자 그 뒤에 숨겨진 문이 열렸다.

비밀 문이 나타났지만 심협은 서둘러 들어가지 않고 결인하여 법력으로 만든 뾰족한 가시를 문의 양쪽에 하나씩 꽂았다. 그러자 문에서 빛이 흐르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사라졌다.

심협은 그제야 청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밀실은 크지 않았고, 보아하니 흑산노요가 평소에 수련하는 곳 같았다. 장식도 간단했다. 앉을 수 있는 장판 외에는 검은 나무로 만든 선반과 위에 놓여 있는 병들이 전부였다.

물건 대부분에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귀도를 수련할 때 도움이 되는 물건 같았다. 그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지만, 옆에 있는 청노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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