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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601화 (601/1,214)
  • 601화. 신불(神佛)을 모시지 않고 천지를 모실 수 있다

    푸른 별빛이 끊임없이 떠오르자 연꽃 모양이 허공에 뭉쳐졌고, 거기에서 물결처럼 부드러운 빛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힘차게 밀려오는 그 부드러운 힘을 느끼자 마치 파도가 해안가를 치는 것만 같았다. 이 파도는 강렬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밀려왔다.

    “역시 선가(仙家)의 영초로군!”

    심협은 감탄하며 서둘러 손을 들었다.

    별빛이 뭉쳐서 만들어진 구범청련은 맑은 바람에 스쳐 지나가듯 천천히 흩어졌다. 마치 타오르고 남은 불기운 같은 별빛이 그의 몸에서 타오르던 불꽃과 하나로 합쳐지려는 듯 그를 향해 몰려왔다.

    삽시간에 왕성한 생기가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마침내 화색이 돌면서 두 손으로 다시 결인하고는 크게 외쳤다.

    “합쳐져라!”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 종류의 불꽃이 갑자기 충돌했고, 서로 뒤엉키면서 둥근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색깔도 각기 달랐고 서로 배척했지만, 그 힘은 심협이 충분히 억누를 수 있었다.

    그가 두 손을 천천히 합치자 세 종류의 불꽃이 커다란 불덩어리 안에서 천천히 돌면서 푸른 별빛을 쉬지 않고 흡수했고, 천천히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색깔도 점점 같아졌다.

    갑자기 불덩어리가 확 줄어들더니 심협의 몸으로 다가가 그대로 흡수되었다.

    식해 안에 있던 심협의 신혼 소인(小人)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더니 팍 하고 깨지면서 10여 개의 반투명한 빛 덩어리로 변해 천천히 그의 몸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퍼펑!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심협은 자신이 식해 안에 있는지 바깥에 있는지도 분별할 수 없었다. 그저 두 귀가 멍해진 느낌과 함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머리 위쪽에서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붕의 기와가 쏟아지는 천지영기에 부서졌고,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영기 소용돌이가 그의 정수리로 쏟아져 내려왔다.

    “윽!”

    심협은 참지 못하고 짧게 신음했다.

    대전 밖, 장안의 허공에서 마치 벌건 대낮에 울려 퍼지는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먹구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장안 관부를 중심으로 반경 백 리 안의 천지영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영기의 빛 덩어리들이 일제히 떠오르더니 대전을 향해 빠르게 모여들면서 본래의 영기 소용돌이가 10여 배로 커졌다. 금색 대진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대당관부의 많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주목했고, 장안성의 수많은 백성도 궁금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백 장 떨어진 곳의 대전에서 우람한 체구에 귀밑머리가 긴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하늘의 요란한 소리를 보고는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더욱 커졌다.

    “이 녀석, 대승기로 돌파하는 것뿐인데 천겁과 같은 형상이 일어나?”

    정교금은 가볍게 탄식하며 령부를 꺼내 중얼거리고는 허공으로 휙 던졌다.

    잠시 후, 종문 호종대진 같은 법진이 나타나더니 원래 있던 대진보다 더 커다란 법진의 광막이 대당관부 전체를 뒤덮었다.

    광막이 한층 더 밝아지면서 모든 요란한 소리가 사라졌다. 오직 천둥소리만이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

    “역시 젊은 후학들이 두렵군.”

    정교금은 손을 털고는 뒤로 돌아서 다시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장안성의 모든 이상이 사라졌다.

    대당관부 안. 심협은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온몸의 혈이 아직 전부 닫히지 않아서 몸 밖으로 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재 그는 보광에 휩싸인 선인 같은 자태였다.

    하지만 그가 몇 번 깊게 호흡하자 몸 밖으로 흘러나오던 빛도 점점 어두워졌고,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빛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심협은 오히려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그는 잠시 몸을 풀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천장에 뚫린 구멍을 올려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돌파했구나. 육화명을 따라잡은 셈인가. 백형은 무슨 자극을 받았기에 돌아오자마자 폐관에 돌입한 건지…….”

    혼자서 중얼거리던 심협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쿵! 쿵!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기 시작했고, 심협은 당황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이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느낌에 심협은 바짝 긴장했다.

    그때, 뭔가를 눈치챈 그는 고개를 휙 돌려서 저물반지를 들여다봤다.

    저물반지에서는 한 줄기 빛이 번득였고, 그가 제어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날아올랐다.

    “옥침!”

    그 순간, 갑자기 이변이 일어났다.

    졸음이 엄습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옥침이 직접 날아올랐다. 별빛이 반짝이고 하얀 소용돌이가 생겨나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심협의 식해가 강하게 흔들리면서 신혼이 순식간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모든 의념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무슨 일……?”

    심협은 큰 위기감에 바짝 긴장했으나,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의식을 잃었다.

    * * *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는 어질어질했고, 시선은 흐렸다. 사방에 연기가 피어올라서 자욱한 것을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정신없는 와중에 그는 목소리를 들었다. 말투는 애처로웠고, 목소리는 쉬어서 꼭 죽기 전의 구슬픈 울음 같았다.

    힘껏 눈을 비빈 심협은 벌떡 일어나 경계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안개가 뿌옇게 덮여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피냄새……?”

    너무나 짙은 피비린내에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고, 비릿함 속에는 미지근한 온기가 배어 있었다. 바로 근처였다.

    심협은 눈빛을 굳히고는 현음미동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 떨어진 곳에 매우 커다란 고목이 있었고, 나무껍질은 이미 불에 타서 새까맸는데, 아직도 불씨가 남아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무 뒤에는 기다란 돌계단이 위로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엿보였다.

    “오지산은 아닌데…… 여기는 어디지? 어째서 실낱같은 여운이 느껴지는 걸까?”

    문득 의문이 피어올랐다.

    주변의 안개는 단순한 안개가 아니라 어떤 방어 법진이 부서지면서 남은 기운과 여운이 천지영기와 섞이면서 생겨난 것이었다.

    “신식을 흐트러뜨려서 현음미동으로도 완벽하게 간파할 수 없다니. 부서진 법진은 아무래도 위력이 상당했던 모양이군.”

    심협은 신식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결인을 하더니 작게 ‘금(禁)’이라고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법력 파동이 사라진 그는 조심스레 오래된 건축물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고, 금세 오래된 소나무 아래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고목은 이미 불에 타서 뚫려 있었고, 나무 중심에는 금속 재질의 부적 반 토막이 있었다. 부적에는 대금(大禁)이라는 두 글자만 남아 있었다.

    이 고목은 원래 호종 대진의 진추(陣樞)였으리라.

    심협은 돌계단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108개의 계단 위에는 흑백색 도가의 사원이 보였다.

    하얀 벽과 검은 기와가 보였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단지 걸려 있는 현판이 조금 비뚤어져 있었다.

    심협은 현판에 적힌 글자를 보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오장관(五莊觀)……?”

    그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더니 허공에 한줄기 잔상만 남았고, 순식간에 사원 정문 앞에 나타났다.

    오장관의 정문은 소박했다. 춘추관보다는 조금 더 좋아 보였지만, 고문 대종의 화려하고 웅장한 기세는 없었다.

    굳게 닫힌 문에는 마치 방금 닦은 것처럼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았고, 부서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손을 들어 두껍고 무거운 검은 나무문을 밀었다.

    끼익!

    을씨년스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휭!

    바람이 불자 짙은 피비린내가 홍수처럼 밀려왔다. 분명 아무것도 없건만,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옷마저 붉게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심협은 피하지도, 술법으로 제지하지도 않고 그 혈기들이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는 안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심협의 두 눈이 가늘게 떨렸다. 눈앞의 장면을 보자 소름이 끼쳐왔다.

    문 뒤의 뜰 곳곳에는 부서진 시체와 잘린 신체가 뒤엉켜 쌓여 있었고, 더 뒤로 보이는 대전은 거의 부서져 있었다. 보이는 곳마다 피로 물들어 있었다.

    땅에는 시체와 피가 뒤섞여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피의 연못이 생겨났고, 수많은 잘린 신체가 그 위를 떠다녔다.

    어지럽게 쌓여 있는 시체더미에서 심협은 은색 갑옷을 입은 천병들을 보았다. 그 수는 적지 않았고, 가슴과 배를 드러낸 수많은 역사(力士)와 옥호족도 간간이 보였다.

    ‘저들이 정말로 이곳으로 도망쳤구나. 허나 불행을 피해가지는 못했어.’

    심협은 온몸에서 오한을 느꼈고, 가슴에서는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주먹을 꽉 쥔 채 걸음을 옮겼다. 뜰에 가득한 시체를 지나 남아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말이 잔존이지, 대전은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아하니 커다란 요물이 밟아서 그대로 부서진 듯했다. 남은 절반도 흔들려서 곧 무너질 것 같았다.

    거의 무너진 대전으로 들어가자 신위(神位)를 모시는 향안(香案)이 아직 남아 있었고, 그 위에 놓인 향로에는 다섯 개의 자흑색 향이 꽂혀 있었는데, 아직 다 타지도 않은 상태였다.

    향안 뒤에는 부서진 신상이 보였고, 오래된 두루마리에는 천지(天地)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심협은 오장관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천책 공간에서 인연을 맺은 원 도인, 바로 명성이 자자한 지선(地仙)의 선조 진원자(鎭元子)였다. 그와 같은 대능의 수사만이 신불(神佛)을 모시지 않고 천지를 모실 수 있다.

    심협은 말없이 향로를 향해 손을 휙 그었다. 향로가 깔끔해지면서 끝에 불꽃이 튀었고,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는 대전을 나와 후원으로 갔으나,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얀 바위가 깔린 광장 멀지 않은 곳에는 피가 흐르는 사람의 머리로 허리춤까지 오는 작은 산이 만들어져 있었다. 심협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호왕…….”

    심협은 한눈에 산꼭대기에 놓여 있는 머리를 알아봤다. 만세호왕이었다.

    호왕은 여전히 두 눈을 뜨고 있었고, 눈에는 생기가 없었지만, 원한의 기운이 여전히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호왕 선배…… 누구를 향한 원망입니까?”

    심협은 속으로 탄식하고는 시선을 돌려 시체 산 뒤쪽에 우뚝 서 있는 10여 장 높이의 고목을 바라봤다. 나무는 이미 말라서 생기가 전혀 없었다.

    ‘인삼수(人參樹)…….’

    나뭇가지 위로 넝쿨 하나가 늘어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시체가 걸려 있었다.

    그 시체를 본 심협은 눈을 홉떴다. 홍해아, 옥면 공주, 옥이…… 낯익은 얼굴들이 모두 걸려 있었다.

    “이럴 수가……!”

    심협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

    여태껏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없었고,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마족…… 분명 마족의 짓이렷다! 허나 왜…… 왜 그들이 기습을 한 거지? 설마…… 치우가 깨어난 것인가!”

    심협은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는 아직 피가 마르지 않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체를 보며 억지로 냉정함을 되찾았다.

    “진원자도, 우마왕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거지?”

    심협은 스스로 묻고는 이내 퍼뜩 스쳐가는 생각에 곧장 천책으로 들어갔다.

    그는 현실 세계로 돌아가 있던 동안 이곳의 상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천책 공간의 뇌 도인 등에게 연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 시진 뒤, 심혐은 더욱 굳은 얼굴로 천책에서 나왔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 뇌 도인, 화 도인…… 모두……. 생각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구나!”

    그때, 그의 신식에서 갑자기 파동이 일어났고,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심협은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이미 말라버린 인삼수 아래 뿌리 부근에 비녀가 있었다.

    “이 구슬 비녀…… 이 기운……틀림없어. 그녀의 것이 틀림없어!”

    심협은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천년이 지난 꿈속에서 천년 뒤의 그녀를 만난다는 것을…….

    하지만 구슬 비녀는 자신이 처음 보타산으로 갔을 때 그녀에게 선물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결코 잘못 봤을 리가 없다.

    그의 마음은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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