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600화 (600/1,214)
  • 600화. 가슴 아픈 이별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 수사의 이름을 알고 있나? 내력은?”

    “여자였고, 유비연(柳飛燕)이라고 했던 것 같았습니다. 내력은…… 저도 모릅니다. 그날 저는 해저에서 수련하고 있었는데 유비연과 다른 남자 인간족 수사가 부근에서 싸웠습니다. 그 남자 수사가 위기에 처하더니 암수를 썼습니다.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유비연을 도와줬더니 그녀가 감사의 뜻으로 수련에 도움이 될 거라며 하얀색 거울을 선물로 줬습니다.”

    거울 요괴는 거울의 내력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유비연? 유비서와 관계가 있는 걸까? 설마 여아촌 수사인가?’

    심협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유비연이라는 여자도 암기와 맹독을 잘 사용했어?”

    “네, 그렇습니다. 그녀는 쌍환(雙環)과 바늘 암기를 사용했는데,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주인님, 혹시 그녀를 아십니까?”

    거울 요괴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그녀와 싸웠던 사람은? 어떤 법보를 썼지? 특징은?”

    심협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물어봤다.

    “별다른 특징은 없었어요. 그가 흙 속성의 비검을 사용했던 것은 기억합니다. 오행술법(五行術法)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거울 요괴가 기억을 더듬으며 답했다.

    “그래, 알겠다.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거라.”

    심협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거울 요괴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인님, 걱정하지 마세요.”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휘둘러 거울 요괴를 내보낸 후, 다시 천책 공간의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금빛 감옥 안에 임심모가 갇혀 있었다.

    백소천은 감옥 옆에 앉아서 대화를 해보려 애썼지만, 임심모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협은 이를 보고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자를 쫓아다녀 본 경험이 없지만, 백소천의 저런 모습을 보니 반감이 생길 것만 같았다.

    “심 도우, 날 언제까지 가둬둘 건가요?”

    심협을 발견한 임심모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 소저, 말이 심하시오. 나는 당신을 가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적을 상대하느라 어쩔 수 없이 잠시 그대의 행동을 제한한 것뿐이오. 이제 일이 끝났으니 임 소저가 내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면 풀어주겠소.”

    심협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게 뭐죠?”

    임심모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봤다.

    “임 소저는 반사동의 자랑스러운 제자이지 않소? 내가 알기로는 반사동은 여아촌과 줄곧 사이가 좋았는데 어찌하여 이번에 연신단을 도와 여아촌을 공격한 게요?”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백소천은 그 질문을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져 임심모를 바라봤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난 반사동에서 평범한 제자일 뿐이니 위에서 지시하면 따르는 수밖에요.”

    임심모가 흥 하며 말했다.

    “허! 임 소저는 모르는 모양인데, 나는 동술을 수련해서 눈빛만으로도 상대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간파할 수 있소. 이 동술에는 또 유혹하는 효과가 있으니 모든 비밀을 털어놓게 할 수도 있지. 허나 귀하와 내가 원수도 아닐진대 동술까지 시전하고 싶지는 않소. 그러니 어려운 길을 택하지 마시오.”

    심협의 눈동자가 푸르게 변하더니 빠르게 회전하는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하늘이 돌고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임심모는 굳은 얼굴로 잠시 침묵하더니 답했다.

    “장로님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연신단이 본문의 백(白) 조사와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무슨 중보(重寶)를 주면서 반사동과 동맹을 맺었다고 했어요.”

    “중보? 어떤 보물이오?”

    “그건 본문의 기밀이라 내 신분으로는 알 수 없어요.”

    임심모는 두 손을 양쪽으로 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심협은 침묵하더니 백소천에게 말했다.

    “백형, 물어볼 것 없소?”

    백소천은 심협의 질문에 어리둥절하다가 머뭇거리며 임심모를 바라봤다.

    “임 소저, 이 백모의 마음은 소저도 알 거라 믿소. 하면, 정말 내게는 조금의 기회도 없는 것이오?”

    “당신은 인간 수사고 난 요족이에요. 인간과 요족은 길이 다르니 우리는 불가능해요. 백 도우도 더는 내게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임심모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답했고, 백소천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결인하여 임심모 주변의 감옥을 해제했다.

    “이제 귀하의 수중에 있으니 날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죠?”

    임심모는 자유를 얻었지만 도망가려고 시도하지 않고 심협을 바라봤다.

    “백형 생각은 어떻소?”

    “보내주게.”

    백소천은 한참 뒤에야 답했다.

    이 말에 임심모를 놀란 듯 흠칫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협이 빙긋 웃고는 결인하자 세 사람은 천책 공간에서 나와서 해저의 어느 해구에 나타났다.

    “심 도우, 푸른 거울에 대해서는 물어봤나요?”

    임심모는 금색 공간에서 나온 걸 보고는 안도하며 물었다.

    “그 거울은 내 영수가 어느 인간 수사에게서 얻은 거라더군.”

    심협은 거울 요괴와 나눴던 대화를 간략하게 말했지만, 유비연이라는 이름만은 숨겼다.

    “다른 것은 내 영수도 잘 기억하지 못했소. 하지만 그녀에게 조사해보라 했으니 어쩌면 뭔가를 찾아낼지도 모르지”

    임심모는 반사동의 제자이니 언니의 일을 통해 어쩌면 나중에 그녀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수를 남겨둔 것이다.

    “고마워요, 심 도우. 나중에 뭔가를 찾게 된다면 이걸로 저에게 알려주세요. 반드시 사례할게요.”

    임심모는 잠시 생각하더니 전음 진반을 건넸다.

    “과거 우리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으나, 임 소저가 마족의 하수인이 되지는 않았으니 우리는 벗이라 할 수 있소.”

    심협은 전음 진반을 받아 들며 웃었다.

    임심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에 공수한 후 은색 둔광으로 변하여 멀리 날아갔다.

    백소천은 눈빛으로 임심모를 배웅했다. 그녀가 점점 멀어져서 하늘의 은색 점이 되어도 여전히 시선을 뗄 줄을 몰랐다.

    “모든 일에는 인연이 있는 법. 정말 인연이 있다면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될 것이요.”

    심협은 백소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백소천은 묵묵부답이었으나, 하늘의 은빛 점이 마침내 하늘로 사라지자 시선을 거두고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가세.”

    * * *

    광활한 바다의 상공. 심협과 백소천은 비주를 타고 낮게 날았다. 비주의 기류가 바다 위에 기다란 꼬리를 남겼다.

    “심 형, 이제 어쩔 생각인가? 장안으로 돌아가겠나?”

    백소천은 뱃머리에 서서 침울하게 물었다.

    “왜 이렇게 풀이 죽었소. 그 여우 미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소?”

    심협은 실소했다.

    “그런 일 없네. 단지……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연신단의 유혹에 넘어갈 줄은 몰랐어.”

    백소천이 한숨을 쉬었다.

    “신선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오? 한데 연신단이 지름길을 알려준다 하니 도 닦는 이들 중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소? 그저 마족과 관련되니 일이 좀 복잡한 것뿐이지.”

    심협은 숙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온 지 오래되었으니 이제 장안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종문과 관부에 보고해야 할 텐데…….”

    “그것도 그렇소. 그러니 백형이 열심히 비주만 몰아주면 되겠소. 하하하! 나는 최근에 깨달음을 좀 얻어서 출규 절정의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소.”

    심협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후기로 돌파한 지 얼마나 됐다고! 심형, 사실대로 말해보게. 연신단의 사도(邪道)를 훔쳐 배운 것 아닌가?”

    백소천도 고개를 휙 돌리며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으나, 눈빛은 장난스러웠다.

    “어찌 알았소? 눈치가 빠르면 명이 짧은 법이오!”

    심협이 짐짓 놀라는 척하며 답하자 백소천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리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찼다.

    “쯧! 말을 말아야지. 이전에는 몰랐는데 심형은 자질이 가히 천부적이군.”

    심협은 그 말에 크게 웃고는 가부좌 틀고 두 눈을 감은 채 수련을 시작했다.

    * * *

    어느덧 반년이 흘렀다.

    대당관부 안의 별채. 사방형의 금광 대진이 주변을 덮어 대전과 사방의 뜰을 에워싸고 있었다.

    뜰의 네 귀퉁이에는 사람 키의 절반 정도 되는 돌기둥들이 세워져 있었다. 겉에는 복잡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고, 은은한 금빛으로 빛났다.

    법진 밖에는 육안으로도 분간하기 어려운 천지영기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금색 광진으로 흘러들어가 중앙의 대전으로 향했다.

    법진 밖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법진 안의 대전에는 천지영기로 인해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대전 안. 심협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주변의 모든 물건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오직 청련 한 송이만 몸 앞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의 주변은 금색 불꽃으로 뒤덮여 있었고, 미간과 단전 곳곳에 색깔이 확연히 다른 불꽃이 마치 통제를 잃고 그의 몸을 태우려는 듯 위로 치솟으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꿈속에서 이미 수십 차례나 이렇게 융합을 시도해봤지만, 현재 그의 심신은 여전히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꿈속 세상에서는 몇 번을 시도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두 번의 기회란 없다. 실패하면 삼원지화(三元之火)에 불타 잿더미가 되어 모든 것이 사라질 테니 말이다.

    심협은 극도로 긴장한 채 전방을 응시하며 양손으로 결인을 시작했다.

    주변의 금색 불꽃이 쉬지 않고 줄어들면서 가슴 부근으로 모여들자 미간의 불꽃도 함께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면 단전 앞의 불꽃은 위로 올라가 삼원지화가 점점 합쳐지는 형국을 이루었다.

    세 종류의 불꽃이 끊임없이 서로 가까워지자 심협의 가슴 앞에서 열기가 느껴졌고, 단전이 있는 곳에서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식해(識海)였다.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꿈속에서 대승기로 돌파할 때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천부적 체질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삼원지화를 견뎌내기도 더 힘들었다.

    ‘이대로는 불꽃이 합쳐질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식해가 먼저 타버리겠어!’

    심협은 몸의 격렬한 변화가 느껴지자 중얼거렸다.

    천부적인 차이로 인해 삼원지화에 타버릴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이 생겼다.

    “모르겠다. 우선 구범청련의 효과를 시도해 보고, 정 안 되면 천책으로 이 불꽃들을 흡수하자. 충격이야 좀 있겠지만, 진짜 타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생각을 정리한 심협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금색 불꽃이 법력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면서 불꽃의 선이 구범청련 위를 휘감았다.

    다음 순간, 구범청련에서 금색 불꽃이 치솟더니 타올랐다.

    심협은 구범청련의 잎이 시들어 불꽃에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보며 의아해했다.

    ‘구범청련은 전설의 선계가 인간 세계에 남긴 성련(聖蓮) 아니던가! 방대한 원기를 가지고 있고 꽃술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줘 대승기로 들어설 때 도움을 준다고 했거늘, 어찌 아무런 효능도 없는 거지?’

    그는 서적에 기록된 구범청련 사용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삼원지화를 이끌어 구범청련에 붙게 하는 것이다. 한데 어찌하여……?

    심협은 눈물을 삼켰다.

    ‘지금이라도 복용해볼까?’

    그가 고민에 빠진 그때, 몸 앞에 떠 있던 검은 잿더미가 점점 떨어지고 타오르던 불꽃에서 푸른 별빛이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불꽃은 그 수가 점점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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