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99화 (599/1,214)
  • 599화. 합작

    “그리 복잡한 부탁도 아닌데 금 도우는 어째서 굳이 나를 찾은 것이오?”

    심협은 금유리 파편을 보고는 내심 경계하며 물었다. 사실 그의 말은 떠보는 것이었다. 눈앞의 이 여인은 여러 번 자신에게 접촉해왔고 또 천계에서 왔으니 어쩌면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사람을 찾는 일이니 당연히 적절한 조력자를 찾아야죠.”

    금유리는 심협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한데 내가 왜 귀하를 도와야 하는 것이오? 그대와 나는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벗도 아니지 않소.”

    심협은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유리 파편은 제 본명 원기로 만든 겁니다. 이것을 맑은 물에 사흘 동안 담가 놓는다면 유리 금액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 액체가 바로 금유리부경의 주요 재료죠.”

    금유리가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심협이 신식을 임랑환 안으로 넣어 금유리부경의 제작 옥간을 살펴보니 주재료는 유리 금액이라 쓰여 있었다. 부재료들은 흔한 것들이었다.

    “금 도우께서 이렇게 성의를 보였으니 응하지 않으면 제가 너무 매몰찬 사람이 되겠군요.”

    그는 금유리 파편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심 도우.”

    금유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단서를 찾으면 어떻게 금 도우에게 알려야 하오?”

    “이 유리 파편은 제 심신과 같으니 그곳에 글자를 쓰면 제가 바로 감지할 수 있어요. 저는 천계에 오랫동안 있었기에 견식이 넓은 편이죠. 그러니 혹시 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 파편을 통해 말씀하셔도 됩니다.”

    심협은 그 말에 내심 기꺼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 도우께서 서두르셔야 하는 듯하니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금유리는 몸을 돌려 떠나려고 했는데, 심협이 급히 그녀를 불러세웠다.

    “잠시만! 진짜 율율은 어디에 있소?”

    “심 도우는 심성이 선하군요. 여아촌은 당신을 며칠이나 가둬놨는데 지금도 그녀들이 신경 쓰이세요?”

    심협은 대답 없이 그저 상대를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마족처럼 살인을 즐기는 미치광이가 아니니까요. 율율은 이미 풀려났으니 곧 여아촌으로 돌아갈 겁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을목선둔을 운공했고, 초록 빛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멀리서부터 수많은 둔광이 날아왔다. 잠시 이를 지켜보던 금유리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거울이 스쳐 지나갔고, 그녀의 모습도 사라졌다.

    * * *

    바다의 어느 곳, 갑자기 초록 빛이 번득이더니 주변으로 퍼져 나가면서 녹색 광진이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심협이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망설임 없이 순양검배를 꺼내 멀리 날아갔다.

    수백 리를 날아간 후에야 멈춘 그는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 은밀한 곳에 숨은 뒤, 천책 공간으로 들어갔다.

    천책 공간의 어느 곳. 높이 10여 장의 빙산이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주변에는 금색 광환이 빙산과 안에 있는 민천을 묶어두고 있었다.

    심협은 잠시 이 금색 피부의 사내를 바라보다가 손을 빙산에 가져다 댔다.

    그의 손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거대한 빙산이 빠르게 줄어들었고, 몇 호흡 뒤에는 그의 손바닥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지만 민천은 여전히 몇 개의 금색 광환에 묶인 상태라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너는 누구냐?”

    빙산이 사라지면서 말을 할 수 있게 된 민천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금양종 종주인 당신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단 말이오?”

    심협이 차갑게 웃었다.

    “내 아들을 죽인 게 네놈이냐? 감히 금양종의 소주를 죽이고 이제는 나까지 해하려 들다니, 간이 부었구나! 우리 금양종의 배후에는 동승신주의 거대한 세력이 있다! 내 이미 그들에게 알렸으니 어서 나를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게다. 그러지 않는다면 네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력이 네놈을 쫓을 것이다!”

    민천은 숨이 막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다시 차갑게 웃었다.

    “아무래도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인 모양이군. 그렇다면 나 또한 당신과는 할 말이 없소. 당신의 신혼과 대화를 나누는 편이 낫겠지.”

    심협은 쓸 데 없이 시간과 심력을 낭비하기 싫었다. 두 눈이 푸른 빛을 발하자 현음미동이 운공되어 민천의 신혼을 조종하려 했다.

    “이놈!”

    민천은 노발대발했지만, 이내 표정이 멍해졌다. 그렇다고 완전히 빠져들지는 않아서 전력으로 저항했다. 현음미동으로도 쉽게 조종할 수 없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전력으로 현음미동을 운공하며 손을 뒤집어 양의미진부를 꺼냈다. 이 부적에 담긴 환력으로 현음미동의 위력을 증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천은 역시 대승 후기 수사답게 신혼이 매우 견고했다. 양의미진부로 위력을 증폭해도 여전히 그 신혼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없었다.

    수차례 시도에도 실패한 심협은 속으로 혀를 찼다.

    ‘현음미동이 현묘하긴 하나 내 경지가 부족하니 신혼의 힘이 너무 약하구나.’

    그는 길게 한숨을 쉬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현음미동은 법력 소모가 심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었다.

    심협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기가 손에서 날아가서 민천의 단전을 뚫었다.

    민천은 기운과 공법을 잃은 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심협의 옆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원구가 나타났다.

    원구는 심협과 민천을 보더니 바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여덟 마리의 분홍색 나비가 날개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민천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그 날개에서 분홍색 가루가 떨어지면서 민천의 몸을 덮었고, 콧구멍과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갔다.

    민천의 머릿속에 팽팽하던 신혼의 힘이 갑자기 혼란에 빠졌고, 법력도 모두 사라지면서 심협의 현음미동에 대한 저항도 많이 풀렸다.

    심협은 그 틈에 상대의 신혼을 잡고는 현음미동의 환력을 안으로 주입했다.

    그러자 민천의 얼굴이 몇 번 일그러지더니 이내 백치처럼 멍해졌다.

    “드디어 성공했군. 고맙소, 원 도우.”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 광란분접(狂亂粉蝶)의 가루 효과는 반 각 밖에 되지 않으니 뭘 물어보려면 최대한 빨리 물어보셔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효과도 사라지고 이자의 신혼도 금방 정신을 차릴 테니까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구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낸 후, 민천의 신혼을 향해 질문을 시작했다.

    “네 아들이 가지고 있던 만독주는 네가 준 건가?”

    “그렇다……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으라 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모든 독을 해독할 수 있다…….”

    민천은 멍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 구슬은 어디서 얻었지? 그것의 내력을 알고 있나?”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계속 물었다.

    “몇 년 전, 나와 몇 명의 동승신주 도우가 힘을 합쳐서…… 대승 수사를 죽였고…… 그자에게서 얻었다. 조사해보니 여아촌의 물건이었다.”

    “당신들이 죽인 그자는 여아촌의 수사인가?”

    심협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모른다……. 그자는 남자였으니…… 아마 아닐 거다…….”

    민천은 막힘없이 말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민천이 만독주를 여아촌에서 뺏은 것으로, 그 배후에는 여아촌의 적대 세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보아하니 완전히 잘못 짚은 듯했다.

    “금양종과 동승신주의 큰 세력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

    “사실이 아니다. 몇 년 동안 그 세력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들이 받아주지 않았다.”

    “그랬군. 허풍이었어!”

    심협은 웃으며 그제야 안심했다.

    그는 다시 여아촌에 대해 물어봤지만, 민천은 아는 것이 적었다. 다만 구범비경과 그 안에 수많은 영물이 살고 있다는 정도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었다.

    심협은 내심 실망했으나, 다시 나성군도에 대한 소식과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몇 가지 비밀을 알아낸 뒤 민천의 머리를 내리쳤다.

    펑!

    작은 굉음과 함께 민천의 머리가 폭발했고, 신혼도 부서지면서 음산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바람 소리와 함께 귀장이 건곤대에서 나와 입을 벌리자 이 음산한 바람은 바로 모여들어 귀장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수사의 영혼은 매우 강력하니 날려버리면 아깝죠.”

    모든 일을 마친 뒤에야 심협의 허락을 받지 않고 멋대로 나선 것에 대해 변명하듯이 말했다.

    “괜찮다. 앞으로도 적을 죽이고 흩어지는 영혼은 마음껏 흡수해도 좋다.”

    심협은 개의치 않는 듯 대꾸했고, 귀장은 크게 기뻐하며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귀장이 다시 건곤대로 돌아간 후, 심협은 민천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손을 휘둘러 그의 저물팔찌를 챙겼다.

    신식으로 저물팔찌를 살핀 심협은 호흡이 가빠졌다.

    민천은 역시 일종의 종주다웠다. 선옥만 해도 5만여 개였고, 다른 진귀한 영재도 매우 많았다.

    “삼성석(三星石)과 자뇌화(紫雷花)라니! 지난번에 남은 봉황미가 충분하니 이제 주재료를 모으느라 애를 먹지 않아도 금방 곤토인뇌부를 만들 수 있겠어.”

    심협은 자신에게 유용한 영재를 찾고는 기뻐하며 저물팔찌를 마저 살폈다.

    그 안에는 다른 법보들도 있었고 품급도 낮은 편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 속성이 민천의 공법과 맞지 않아 이전의 싸움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듯했다.

    심협은 그중 푸른 삼지창을 불러내 움켜쥐고는 법력을 운공하여 주입했다. 삼지창에서 갑자기 눈부신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그가 팔을 크게 휘두르자 세 줄기 날카로운 푸른 빛이 날 끝에서 뿜어져 나와 천책 공간 안의 금빛을 베었다.

    금빛에 세 줄기 길고 깊은 균열이 생겼다가 잠시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책의 영향 때문에 주변 공간 안의 금빛은 매우 견고한데 이 삼지창은 대충 휘두른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효과를 보였으니 상당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심협이 손가락을 튕기자 불꽃이 민천 몸에 떨어졌고 곧 잿더미로 변했다. 그가 다시 한번 결인하자 거울 요괴가 나타났다.

    “주인님.”

    거울 요괴가 심협에게 절을 했다.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난 동해를 떠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해라. 나와 함께 가겠느냐? 아니면 동해에 남겠느냐?”

    심협이 물었다.

    “저는…… 동해가 익숙해서…….”

    거울 요괴는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여기 남아라. 일이 생기면 통영술로 소환하겠다.”

    심협은 강요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거울 요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허리를 조아렸다.

    “오늘 네 능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삼지창은 금영종주의 저물법기에서 찾은 것이다. 너에게 주마.”

    심협은 삼지창을 건넸다.

    거울 요괴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삼지창을 잠시 살펴보더니 황급히 인사를 하고는 이 범상치 않은 보물을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요족은 연기에 능하지 못하다. 요물들은 해저에서 재료를 얻은 뒤 요화(妖火)로 간단하게 제련하는 정도로 무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오랫동안 요력으로 제련해도 인간 수사의 법기나 법보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거울 요괴의 공격 수단은 매우 단조로웠는데, 이제 삼지창이 생겼으니 그녀의 실력도 크게 증폭한 셈이다.

    “네 거울은 어디서 얻은 거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심협은 그녀가 손에 든 푸른 거울을 보며 물었다.

    “저희 거울 요괴들은 태생적으로 몸속에 보경(寶鏡)을 품고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 거울은 순수하게 제가 품었던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인간 수사에게서 얻은 것입니다. 제 본명보경을 이 안에 넣어 제련하였습니다.”

    거울 요괴는 푸른 거울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답했다.

    한편, 심협은 이 말에 눈을 반짝였다.

    ‘그렇다면 저 거울은 정말로 임심모의 언니 것이란 말인가? 허나 임심모는 호족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언니도 호족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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