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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98화 (598/1,214)
  • 598화. 내력

    심협은 광막을 부수는 대신 결인을 했다. 그러자 커다란 핏빛 깃발이 나타났고, 눈부시게 반짝이면서 열 배로 커져 그의 몸을 휘감았다.

    보선선사는 이런 심협의 반응이 의외였으나, 무시하고 몸을 돌려 뒤를 향해 외쳤다.

    “모든 현구도 제자는 들어라! 출구의 얼음은 신경 쓰지 말고 전력을 다해 저자를 잡아라!”

    그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법결을 바꿨다. 그러자 주위의 오색 광막이 더욱 짙고 두꺼워지면서 사방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가둬 심협의 퇴로를 막았다.

    그의 낭아봉은 손에서 벗어나 커다란 금빛이 되어 강하게 깃발을 공격했다.

    보선선사는 심협이 왜 여기 다시 나타난 것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저 젊은 수사가 모든 맹독을 물리치는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만약 그것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비경을 탐색하기가 한결 편할 터였다. 게다가 저자는 이미 비경에 들어갔다 나왔으니 분명 많은 보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보선선사는 탐욕으로 눈을 희번덕거리며 금색 계도(戒刀)를 꺼내 휘둘렀다.

    현구도의 제자들도 그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심협에게로 달려들었다. 수많은 법보가 번득이며 핏빛 깃발을 향해 쏟아졌다.

    한편, 금양종 제자들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러나 민천이 없는 이상 자신들만으로는 보선선사와 경쟁할 자신이 없었다.

    몇몇 제자들은 눈을 마주치고는 동굴의 얼음을 법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얼음을 부수고 민천에게 이곳 상황을 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음은 너무도 견고해 몇 명의 법보 공격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고, 짧은 시간에 완전히 부수기란 불가능할 터였다.

    오색 광막 안의 핏빛 깃발은 보선선사 등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공격이 계속되자 표면의 핏빛이 빠르게 어두워졌고, 금세 완전히 부서지면서 안에 있던 심협의 모습이 드러났다. 심협의 상체 일부는 폭발의 충격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보선선사는 이 모습에 크게 기뻐하며 심협에게로 다가갔다. 한데 상처 가득한 심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더니 갑자기 수많은 푸른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금빛의 검과 기혈번 등도 마찬가지로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분신! 아차, 당했다!”

    보선선사는 어리둥절하더니 버럭 화를 냈다.

    그제야 다른 사람들도 퍼뜩 상황을 깨달았다. 심협이 먼저 동굴의 출구를 막은 이유는 자신들의 시선을 이곳에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런 계략을 알아채기란 사실 어렵지 않다. 단지 그들은 심협이 분신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서 얼음을 부숴라! 그자의 목적은 민천 도우일 터! 그가 위험하다!”

    보선선사는 서둘러 외치고는 낭아봉과 계도를 금빛으로 번득이며 강하게 얼음을 내리쳤다.

    쾅!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얼음이 부서져갔다. 현구도의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다가와서 법보로 입구의 얼음을 향해 공격했다.

    * * *

    민천은 현재 끝없는 바다에 있었는데, 주변에는 짙은 하얀 안개가 가득해 가시거리는 고작 3~4장밖에 되지 않았다. 더 먼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신식도 펼칠 수 없었다.

    10여 장 밖의 하얀 안개 속에서 심협이 결인하자 순양검배가 날아가 수백 개의 붉은색 검사로 변하여 민천의 등을 향해 찔렀다.

    민천은 마치 귀가 먹은 것처럼 검사가 주변 5장 거리까지 다가온 후에야 눈치채고는 서둘러 금색 발우를 꺼내서 뒤를 막았다.

    땅! 땅!

    맑은 충돌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으나 금색 발우는 매우 견고해 뚫리지 않았고, 민천은 예상했다는 듯 침착했다.

    그때, 엄청난 바람 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뒤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10여 장 크기의 금색의 항마장(降魔杖)의 허상이 떨어졌다.

    이번에도 민천은 항마장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야 알아채고는 재빨리 결인하여 다른 발우로 머리 위를 막았다.

    땅!

    또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고, 항마장이 폭발했다. 그러나 금색 발우는 여전히 멀쩡했다.

    허나 민천이 안도하기도 전에 일고여덟 개의 검은 비검과 번개로 가득한 푸른 광구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그의 허점을 노리고 돌진해왔다. 또한 붉은 검사들 역시 빗발처럼 뒤덮으며 날아왔다.

    민천은 이를 악물고는 몸을 빙글빙글 돌려 두 개의 금색 발우로 수많은 금색 잔상을 만들어내 검은 비검과 푸른 뇌구 그리고 붉은 검사를 모두 막아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 민천을 거울 요괴가 설치한 양의미진진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곳은 진짜 바다가 아니라 양의미진진이 만든 공간인 것이었다.

    심협과 백소천, 거울 요괴, 원구까지 총 넷은 주변에 숨어 있다가 대진의 보호를 받으며 민천을 협공했다. 이 정도면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민천은 역시나 대승 후기의 수사답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크게 낭패를 겪지는 않았다.

    ‘이대로는 동굴 안에 있는 자들이 곧 빠져나올 터! 그전에 민천을 생포해야 한다!’

    심협은 결심한 듯 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백색과 금색 두 줄기 빛이 날아갔다.

    금빛은 민천의 앞에서 참마검으로 변하여 날카롭게 내리쳤다.

    민천은 이런 상황에 어느덧 익숙해졌는지 참마검이 10장 밖에서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금색 발우를 돌려서 맞이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민천의 실책이었다. 이번 법기가 다름아닌 참마검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콰직!

    참마검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금색 발우를 절반으로 가르고 민천의 어깨를 베었다.

    보선선사의 추측 대로 율율이 형세를 어지럽히고 심협의 분신이 시간을 끈 목적은 민천을 생포하는 것이었다. 물어볼 것이 있지 않았다면 이미 죽였을 터였다.

    한편, 민천은 기겁하며 곧장 물러났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해 오른팔에서 피가 튀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위에서 휙 하는 소리를 울리며 하얀 빛이 날아왔고, 동시에 하얀 옥병이 그의 머리로 떨어졌다.

    민천은 더는 방심하지 않고 재빨리 옆으로 피하면서도 가슴에서 노란 동경(銅鏡)을 소환했다. 동경에서는 밝은 노란 빛이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반 척 두께의 노란색 보호막으로 변하여 그의 온몸을 덮었다.

    하얀 옥병은 보호막에 닿자 폭발했고, 보랏빛 독무가 보호막 위로 쏟아졌다.

    보랏빛 독무는 바로 보호막에 달라붙더니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뿐만 아니라 옥병에서 은색 팔찌가 튀어나와 노란색 보호막에 붙었다. 그것은 임랑환이었다.

    민천은 이 광경에 화들짝 놀라 다시 먼 곳으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랏빛으로 뒤덮인 팔이 갑자기 은색 팔찌에서 불쑥 튀어나와 노란 광막을 눌렀다. 하늘을 찌르는 푸른 빛이 손에서 뿜어져 나왔고, 기이할 정도의 차가운 힘이 폭발했다. 이어 10여 장 높이의 빙산이 나타나더니 노란 광막까지 통째로 얼렸다.

    광막 안에 있던 민천의 몸에도 한기가 빠르게 침투했다. 한기는 매우 강력해 그의 깊고 두터운 경지에도 불구하고 법력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온몸도 굳어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광막 위를 누르고 있던 보랏빛에 뒤덮인 손은 갑자기 금빛을 번쩍였고, 뒤이어 천책의 허상이 나타나면서 촤라락 펼쳐졌다. 그러자 민천와 주변의 빙산까지 단숨에 천책 공간으로 사라졌다.

    심협은 곧장 땅에 떨어진 임랑환을 주워 다시 손에 꼈다.

    이제 천책 공간에 숨은 상태에서 임랑환을 적 부근까지 접근시킨 후 공격하는 방법은 거의 완벽하게 숙련됐다. 만약 임랑환을 법기처럼 조종할 수 있다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심협은 양의미진진을 멈췄다. 그러자 백소천과 원구, 거울 요괴의 모습이 나타났다.

    심협은 양의미진진에서 세 사람의 신식을 제한하지 않았기에 그들도 모든 것을 간파했다. 이들의 표정은 매우 미묘했다. 대승 후기 수사를 생포하는 모습을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곧 올 테니 우선 이곳을 벗어난 뒤에 다시 얘기합시다.”

    심협은 세 사람을 천책 공간에 넣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푸른 빛이 날아가 양의미민진의 진기를 전부 거둬 임랑환 안으로 넣었다.

    양의미진진이 사라지자 동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한데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빠져나가려던 심협은 우뚝 멈췄다. 한 가녀린 여인이 동굴 밖에 나타난 것이었다. 금색 치마의 여자였다.

    “당신은……?”

    심협의 두 눈이 커졌다. 상대는 견씨 사내와 함께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고 양의미진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인이었다.

    “좀 전의 율율은 당신이었군! 일약재에서 나를 염탐해 여아촌으로 갈 것을 알고는 내 모습으로 변신해 율율을 납치하고 여아촌의 주의를 나에게 향하게 한 것이지. 그 틈에 마을로 침입했을 테고. 좋은 계략이었소.”

    심협의 머릿속에서 그간 풀리지 않았던 일들이 잇달아 연결되었다.

    “호호, 단번에 내 정체를 간파하다니, 심 도우는 역시 안목이 훌륭하군요. 이전에는 정말 미안했어요. 하지만 함께 힘을 합쳐 비경을 탈출했으니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하죠.”

    금색 치마 여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그저 확인하고 싶어서 물었을 뿐이오. 우리의 은원은 모두 끝났소. 한데 귀하는 왜 아직 여기에 있는 것이오?”

    심협은 상대의 옥처럼 새하얀 얼굴을 보며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 도우의 용맹함에 깊게 감탄했는데, 몇 번을 만났으면서도 정식으로 소개한 적이 없으니 정식으로 소개하러 왔어요. 제 이름은 금유리(金琉璃)입니다. 도우와 벗이 되고 싶군요.”

    금색 치마 여자는 옷소매를 여미고 예를 올렸다.

    “그런 헛소리에는 흥미 없소.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심협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당 사람들의 풍문은 소문으로 들었건만 심 도우는 왜 이렇게 무례한가요? 그게 대당 사람들이 손님을 접대하는 방법인가요?”

    금유리는 조금 어두워진 얼굴로 가볍게 머리카락을 넘겼다.

    “귀하가 정말로 인사를 하러 온 것이라면, 내가 결례를 범한 거겠지.”

    언제 추격병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던 심협은 헛소리나 이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곧장 몸을 초록 빛으로 번득였다.

    “잠깐! 말할게요.”

    금유리는 바로 태도가 누그러져 서둘러 말했다.

    심협은 몸에서 여전히 초록 빛을 번득이며 금유리를 바라봤다.

    “심 도우를 찾아온 것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예요.”

    금유리는 손바닥만 한 금색 유리 파편을 꺼내며 말했다.

    그 유리 파편을 본 심협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 파편에는 매우 강력한 영성이 담겨 있어서 아주 멀리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심 도우는 견식이 고명하니 벌써 제 본체의 내력을 알아챘겠죠?”

    금유리는 바로 자신의 부탁을 말하지 않고 다른 일을 먼저 꺼냈다.

    “귀하의 기운은 독특하여 평범한 영물(靈物)이 요괴로 둔갑한 것이 아닐 거라고는 예상했소. 게다가 몸에서 느껴지는 선기(仙氣)까지……. 내 추측이 옳다면, 귀하는 천계(天界)에서 왔겠구려.”

    심협이 읊조리듯 답했다.

    “역시 심 도우의 안목은 훌륭하군요. 맞습니다. 저는 천계에서 왔어요. 상계(上界)의 유리 영물 파면이 요괴로 둔갑한 것이죠. 어떤 이유로 인간 세계에 떨어졌는데 저와 함께 청유리(靑琉璃), 백유리(白琉璃), 자유리(紫琉璃) 세 조각도 함께였죠.

    저는 그들을 찾고 있는데, 애석하게도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어요. 심 도우께서는 천하를 자주 돌아다니는 것 같으니 이 파편으로 다른 사람들을 찾는 일을 도와주세요. 이것이 다른 세 개의 유리 파편의 기운을 감지할 겁니다. 만약 도와주신다면 섭섭지 않게 사례하겠습니다.”

    금유리는 파편을 건네고는 다시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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