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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96화 (596/1,214)
  • 596화. 자백

    “질문에나 답해. 안 그러면 이 고충들을 뿌려주지. 그럼 알게 될 거야. 이것들이 그저 흉측하게 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심협은 말투까지 바뀌어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충들이 광막을 뒤덮었다.

    “아, 아니, 말할게요!”

    안색이 창백해진 임심모는 주변의 금빛 광막에 감사하며 급히 말했다.

    심협은 속으로 웃었다. 사실 백소천 때문에라도 그녀에게 심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방금은 그저 위협해본 것뿐인데, 임심모 역시 여인이라 그런지 흉측한 벌레들의 위협 효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말해.”

    그가 손을 들자 고충들은 우뚝 멈췄지만, 여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단지 뭐 하나만 물어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아까 섬에서 원죄와 싸웠던 게 심 도우 당신 맞죠?”

    임심모는 징그러운 고충들이 멈추자 표정이 조금 평안해저 다급하게 말했다.

    심협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구의 중년 남자는 진짜로 연신단주 원죄였다. 일전에 저승의 강에서 원죄는 응혼기 경지의 자신에게도 죽임을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던가.

    ‘그때 내가 죽인 것은 꼭두각시였나? 원죄에게 그런 신통이 있는 건가?’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연신단은 경하 용왕과 지부의 신비한 인물과 협력했는데, 보통 제자를 보내는 것은 적절치 않으니 연신단주의 분신을 보내 상황을 감당하려 했을 것이다.

    임심모는 심협의 표정이 신중해지자 자신이 반문해서 화가 난 것으로 생각하고는 서둘러 덧붙였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해서 제 목적과 관련이 있다고요.”

    “맞소.”

    심협은 생각을 거두고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투도 다시 바뀌었다.

    “역시 그렇군요. 제가 심 도우를 쫓아온 것은 이전에 번개 공격을 반사시켰던 푸른색 거울을 어디서 얻은 건지 물어보고 싶어서예요.”

    임심모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바로 물었다.

    “그건 왜 묻는 것이오?”

    그는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그 거울은 제 언니가 수련했던 본명 법보예요. 언니는 수년 전에 반사동을 나갔다가 행방불명돼서 계속 찾고 있었어요. 심 도우께서 알려주시면 그 은혜에 평생 감사할게요.”

    임심모는 머뭇거리다가 털어놓았다. 큰절이라도 올리려 했으나, 몸이 속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심협은 몰래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임심모의 눈빛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닌 듯했다.

    “그 거울은 내 영수가 사용하는 것이오. 그녀가 어떻게 그 거울을 가지게 됐는지는 나도 알지 못하지. 기회가 되면 그녀에게 물어볼 테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시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짧게 답하고는 임심모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곳에서 사라졌다. 금색 광막은 여전했으나, 좀 전과 달리 속박의 힘은 풀렸기에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잠자코 있더니 멍하니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한편, 심협은 고충을 데리고 원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왔다.

    “고충으로 여자 아이를 놀라게 하다니, 남자답지 못했습니다그려.”

    원구가 쯧쯧 혀를 차며 나무랐다. 몇 년간 가까이 지내면서 심협이 많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연신단 편에 서서 날 해치려 했던 자에게 예의 따위는 필요 없소.”

    심협의 말에 원구는 그저 웃었다. 그도 농담 삼아 한 말이지 다른 뜻은 없었다.

    “명목고는 거리에 제한이 있소? 비경 부근의 광막을 지나 동굴 안의 상황도 볼 수 있겠소?”

    심협은 원구를 찾아온 목적을 바로 꺼냈다.

    “물론 볼 수 있지요. 다만 명목고는 수명이 너무 짧아서 반 시진도 되지 않습니다. 동굴에 남겨놨던 명목고는 이미 죽었을 테지요.”

    원구는 심협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바로 답했다.

    “알겠소. 이따가 명목고를 좀 주시오.”

    “그야 문제없죠.”

    그는 일전에 기르던 명목고를 모두 사용했지만, 본명고(本命蠱)만 있으면 금방 새로운 고충을 탄생시킬 수 있다.

    심협은 품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이건……?”

    원구는 당황했지만 바로 무엇인지 떠올리고는 감격했다.

    “구범청련을 얻었으니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약선집 전반부요.”

    “고맙소.”

    원구는 붉어진 눈으로 옥간을 내려다보며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더니 말했다.

    “별말씀을…….”

    심협은 그렇게 답하고는 사라졌고, 천책 공간의 다른 곳에 나타났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그곳에는 거울 요괴가 거울을 든 채 서 있었다.

    연못에서 정체가 발각될 게 우려됐던 심협은 거울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통영역요지술로 저 거울을 소환한 바 있었다.

    “괜찮다. 양의미진진의 설치는 어떻게 됐지?”

    “아직 절반도 못 했습니다.”

    거울 요괴는 좀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그럼 돌아가서 마저 설치해라. 다시 소환할 테니 한 가지 일을 처리해줘야겠어.”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령수동(通靈水洞)을 열어 거울 요괴를 돌려보냈다. 거울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물어볼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처리한 뒤 심협은 바닥에 앉았다.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야 그는 마음이 놓였다. 보기에는 쉽게 섬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사실 참마검과 두 장의 곤토인뇌부 덕분이었다.

    심협은 자기 실력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참마검과 곤토인뇌부는 외부의 힘이지 자신은 출규 후기의 애송이 수사였다. 그런 보물과 부적이 없는 상황이면 대승기도 상대하기 힘들 터였다.

    다행히 여아촌과 반사동, 연신단은 서로 싸우는 중이니 당분간은 쫓아오지 않을 터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아촌 사람들을 풀어준 것은 구범청련에 대한 빚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들의 힘으로 연신단과 반사동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눈을 감고 잠시 정양하자 피로감이 많이 풀렸다. 두 장의 부서진 곤토인뇌부를 꺼냈다.

    곤토인뇌부의 위력은 상당해 재료 수집에 꽤나 애를 먹었다. 대승기로 들어가면 다시 재료를 모아서 더 많은 곤토인뇌부를 만들 계획이었다.

    망가진 부적을 집어넣은 그는 서둘러 단약을 제련해 법력을 회복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절반의 법력을 회복했고, 그 무렵 백소천은 독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이 맹독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기에 심협에게 알릴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밖으로 나와 백소천을 다시 천책 공간에 넣고는 이전에 남겨둔 표식을 감지한 뒤 만독주로 몸을 보호하며 이내 비경에 들어왔던 장소로 돌아왔다.

    땅속의 표식에는 아무런 손상도, 다른 사람이 지나간 흔적도 없었다. 금양종 수사와 승려들은 여기까지 들어오지 못한 듯했다.

    심협은 살며시 미소 짓고는 그 자리에 앉아 단약을 먹은 후 두 눈을 감고 계속해서 법력을 회복했다.

    * * *

    반 시진 뒤.

    “명목고.”

    심협은 두 눈을 뜨며 말했다.

    선약집 전반부를 보느라 정신이 없던 원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황급히 명목고를 풀었다.

    심협의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주먹만 한 옅은 회색 안개가 나타났다.

    그는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회색 안개를 자세히 살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작은 벌레로 가득했다.

    “이게 명목고로군.”

    그는 자세히 살펴보더니 금방 시선을 옮겼고, 다른 손으로 통영지술을 시전해 물줄기를 흘렸다.

    “주인님.”

    거울 요괴가 나타났다.

    “우선 거울로 내 분신을 몇 개 만들어라. 그리고 너는 예전에 살았던 동부 안에 이것을 풀어라.”

    심혐은 손에서 안개를 건네주고는 참마검, 순양검배, 기혈번을 꺼내며 말했다.

    거울 요괴는 회색 안개를 받아 들고는 거울로 심협의 몸을 비추었다.

    심협이 거울을 자세히 바라보니 거울에서 현묘한 부문이 흘렀는데, 임심모가 시전했던 환경술과 매우 비슷해 보였다. 두 신통의 유사함을 보니 이 거울은 정말 반사동과 연관이 있는 듯했다.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빠르게 흐르더니 옆에 똑같이 생긴 세 명의 심협이 나타났다. 손에는 참마검과 순양검배 기혈번 등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가지고 계신 법보가 너무 강해서 세 개밖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거울 요괴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충분하다. 수고했다. 우선 돌아가 있거라.”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울 요괴에게 설백단을 하나 주고는 돌려보냈다.

    거울 요괴의 눈앞이 흐려지더니 해저의 은밀한 동굴로 돌아갔다.

    * * *

    눈물 요괴가 사는 해저 동굴 부근. 커다란 해저의 틈에는 수많은 동굴이 존재했다.

    이곳은 면적이 꽤 넓었고, 동굴 중앙의 바닥은 평평했다. 위에는 많은 진문이 새겨져 있었고, 수많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절반쯤 설치된 양의미진진이었다.

    거울 요괴는 강한 약력이 느껴지는 설백단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심협의 영수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할 수 있고, 이렇게 상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설백단을 소중하게 챙겨 넣은 후, 손에 있는 회색 안개를 바라보며 이것을 어떻게 동굴 안에 넣고 올까 생각했다.

    동굴에는 현재 수많은 인간족 수사가 있었기에 그녀의 경지로는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간 수사들이 여기를 발견했을까? 그럴 리가 없어. 여기는 매우 은밀해서 신식을 사용해도 발견하기가 어려울 테니까.”

    거울 요괴는 조금 혼란스러워보였다.

    심협이 여기에 법진을 설치하라고 한 것은 아마 인간 수사들을 상대하기 위함일 테니 저들에게 이곳이 발각된다면 법진을 설치하는 의미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한데 그때, 기척이 느껴졌다.

    “살려서 보내지 않는다!”

    거울 요괴의 눈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그녀는 바로 잠복하더니 다가오는 자를 공격했다.

    “무슨 짓이야? 그자의 영총이 되더니 언니까지 죽이려고?”

    동굴 밖에 나타난 자는 눈물 요괴였다.

    “언니였군요! 진짜 놀랐잖아요. 왜 기운을 드러내지 않은 거예요? 인간족 수사인 줄 알았잖아요!”

    거울 요괴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눈물 요괴를 반겼다.

    “기운을 숨기지 않았으면 여기 오지도 못했을 거다. 인간 수사가 너무 많아.”

    말을 마친 그녀는 동굴 쪽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동생, 진심으로 그 인간을 위해 일하는 거야?”

    “주인님은 저에게 잘해주세요. 싸울 때도 그저 제 능력만을 사용하고 저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죠. 게다가 가끔 좋은 상도 줘요. 다른 수사와는 다르게…….”

    거울 요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매일 동굴에서 수련만 해서 그런지 순진하구나. 인간 수사 중에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는 거니?”

    “다른 수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주인님은 좋은 분이세요. 게다가 그분을 열심히 도와주면 더 빨리 풀려날 수 있잖아요.”

    거울 요괴가 해맑게 웃자 눈물 요괴는 따로 반박하지 않고 법진을 힐끗 봤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건 무슨 법진이지? 매우 현묘한데…….”

    “이건 주인님이 저에게 설치하라고 한 거예요. 아, 주인님이 방금 또 새로운 임무를 주셨어요. 저한테 이 물건을 우리가 전에 살던 동굴 안에 놓으라고……. 그런데 밖에 인간 수사가 너무 많아서 못 가겠어요. 언니가 좀 도와줘요.”

    거울 요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에 든 회색 안개를 들어 보였다.

    “이래도 그자가 너한테 위험한 일을 안 시킨다고? 곳곳이 인간 수사야. 네 경지로 가면 죽는 거나 다름없다고! 이리 줘.”

    눈물 요괴는 퉁명스럽게 거울 요괴를 노려보고는 회색 안개를 받아 들더니 그림자로 변해 바깥으로 향했다.

    거울 요괴는 무거운 짐을 던 것처럼 크게 숨을 내쉬고는 양의미진진을 마저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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