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94화 (594/1,214)
  • 594화. 은원(恩怨)

    한데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태양처럼 떠올랐다.

    이어서 세 개의 거대한 은빛 번개가 하얀 빛에서 날아와 순식간에 섬 전체를 비추었고, 번개와 같은 기세로 흑홍색 광막이 있는 곳을 내리찍었다.

    쾅! 쾅! 쾅!

    세 번의 천둥이 울리면서 흑홍색 광막이 세 번 강하게 흔들렸다.

    첫 번째 뇌격에 흑홍색 광막이 반쯤 사라졌다.

    두 번째 뇌격에 광막에 균열이 생겼다.

    세 번째 뇌격에 흑홍색 광막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절반으로 줄어든 은색 번개가 광막 안으로 떨어지자 이어서 폭발음이 법진 안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은색 번개가 마치 또 무언가를 공격한 것 같았다.

    원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더니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곧장 화생전혼대진으로 날아가 흑과 적의 두 깃발을 꺼냈다. 깃발 위에는 법진 안에 있는 용 그림과 똑같은 흑룡이 그려져 있었다.

    그가 양손으로 결인하자 법결이 그 위에 떨어졌고, 깃발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와서 검은 법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검은 법진의 운공 속도는 몇 배나 빨라졌고, 흑홍색의 광막 위에 생긴 커다란 구멍 주위로 머리와 꼬리가 이어진 거대한 용과 같은 혈홍의 마문(魔紋)이 생겼다.

    핏빛 마문이 빠르게 움직이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면서 마문 중간에 있던 커다란 구멍이 빠르게 닫히려 했다. 하지만 완전히 닫히기 전에 세 줄기 빛이 빠져나왔다.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은 손 파파였다. 그녀는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는 하얀 옥책(玉冊)을 들고 있었다. 그 겉에는 빼곡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고, 진도(陣圖), 진반(陣盤)과 같은 물건 주변에는 은빛 번개가 흐르고 있었다. 방금 은색의 번개를 소환한 물건이 분명했다.

    손 파파의 가슴 부상 부위에는 녹색 부적이 붙어 있었고, 이미 피가 멎은 상태였다. 하지만 상처 주위에 여전히 기이한 짙은 남색이 남아 있었다. 이견설의 공격에 맹독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 파파의 옆에는 박 장로가 있었고, 현재 그녀는 오래된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법진 안에 이견설을 봉인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손 파파와 박 장로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율율이 있었다.

    한편, 연못 속의 심협은 이미 사람 모습으로 돌아와 부러진 참마검이 이에 다른 법보를 꺼내려던 중 명목고를 통해 바깥의 상황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율율? 그녀의 실력은 여아촌 중에서도 가장 아래였는데 어떻게 나온 거지?”

    심협은 무언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스쳐간 생각이라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심협은 이내 생각을 접고 다른 물건을 꺼냈다. 보랏빛 구슬이었다.

    그가 결인하자 구슬에서 물결 모양의 보랏빛이 비치면서 흉악해 보이는 검은 갑옷이 나타났다. 위청에게서 얻은 갑옷이었다.

    그동안 보랏빛 구슬을 온양하면서 갑옷의 균열도 조금 줄어든 상태였다.

    그가 갑옷을 걸치고 있는데 옆에서 갑자기 금빛이 떠오르면서 누군가 나타났다. 바로 율율이었다.

    심협은 깜짝 놀라서 옆으로 피했다.

    “당신은……?”

    율율 역시 심협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옆으로 몇 걸음 물러났다.

    심협은 곧 냉정을 되찾았다. 명목고로 바깥을 보니 역시나 바깥에서는 율율이 보이지 않았다.

    “심협?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율율은 심협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놀라서 소리쳤다.

    “그 질문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귀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오?”

    심협이 담담하게 되물었으나,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여아촌의 위험을 내버려둔 채 갑자기 연못 안으로 들어왔다면 구범청련이 목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보자 아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던 생각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여아촌의 율율이 아니라 그녀를 납치한 자로군. 넌 누구냐? 어째서 날 모함한 거지?”

    심협은 바깥의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차갑게다.

    “단번에 내 정체를 파악하다니, 심 도우는 역시 날카롭군. 허나 경거망동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우리 둘 다 재미없게 될 테니까요.”

    율율은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바로 인정했다.

    심협은 문득 살기가 치솟았으나 억지로 참아냈다. 저자의 말처럼 만약 여기서 싸우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되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대치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심협이 낮게 외치자 부러진 참마검이 나타나 매우 빠른 속도로 주변의 허공을 베었다. 뒤이어 영광이 반짝이며 유리 같은 반투명한 손이 허공에서 흔들리더니 참마검에 베였고, 수많은 빛의 부스러기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율율은 놀란 듯 안색이 굳었다.

    “이런 꼼수를 부리다니! 네가 하지 말라던 경거망동을 해봐야겠군.”

    심협은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잠깐!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하지만 다른 뜻이 있던 게 아니라 그저 구범청련을 따려고 한 것뿐이에요.”

    율율은 마치 천적을 마주친 것처럼 섬뜩한 느낌에 황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심협은 대답이 없었다.

    지금은 싸우기에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에게는 보물이 많고 현음미동이 있다. 순식간에 율율을 제압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율율은 심협의 살기에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지자 숨을 쉬기 힘들었다. 압도적인 강자들에게서나 느껴본 위압감이었다.

    “저의 경거망동을 부디 용서하세요. 저에게 유리금경부(琉璃金境符)가 있습니다. 거리가 멀지 않은 곳으로 전송할 수도 있고, 문이 없는 벽이나 이 섬 밖에 있는 하얀 빛의 금제처럼 여러 금제 광막의 문을 열고 통과할 수 있는 부적입니다. 사죄의 뜻으로 이 부적을 드릴 테니 용서해주세요.”

    율율은 서둘러서 말하고는 금색 부적을 건넸다. 겉에 그려진 금색유리경의 도안은 매우 신비로웠다.

    “유리금경부?”

    심협의 머릿속에는 율율이 방금 갑자기 나타난 상황이 떠올랐다. 아마 이 부적의 신통을 이용한 것일 터. 그렇다면 이 부적은 자신에게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또한 그와 율율 사이의 은원(恩怨)은 무겁다면 무겁고 가볍다면 가벼우니 화해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나를 속이고 내 목숨을 노려놓고는 고작 부적 하나로 넘어가겠다?”

    “더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보세요.”

    율율은 심협의 말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보고는 재빨리 말했다.

    “이 부적을 제련하는 방법.”

    “음…… 좋아요. 하지만 부적의 재료는 찾기 어려우니 직접 찾아야 해요.”

    율율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그야 당연하지.”

    율율은 텅 빈 옥간을 꺼냈다. 옥간을 쥔 손이 금빛으로 번쩍이자 옥간과 금색 부적이 함께 날아왔다.

    심협은 옥간과 부적을 받고는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곧장 챙겼다.

    율율은 몸을 돌려 구범청련을 한 송이 땄고, 심협도 제지하지 않고 다시 바깥을 살폈다.

    * * *

    연못의 금제 밖. 손 파파와 박 장로는 율율이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자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그들이 살펴보기도 전에 빼곡한 하얀 거미줄이 갑자기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그들을 뒤덮었다. 특히 손 파파에게는 더욱 많은 거미줄이 나타나 빠르게 칭칭 감았다.

    그녀는 몸이 나른해졌고, 몸에 조금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법력 운공도 느려졌고, 들고 있던 옥책의 빛도 빠르게 어두워졌다.

    “거미줄 진법!”

    손 파파는 곧바로 거미줄을 알아보고는 분노한 표정으로 법력을 끌어모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줄이 허공을 날아와 순식간에 그녀의 옥책에 떨어졌다. 이 거미줄은 더 크고 두꺼웠으며, 전체가 은백색이었다. 그 기운 또한 원죄가 사용했던 은연법진(銀燕法陣)과 매우 비슷했다.

    하얀 옥책에서 번득이던 은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10여 장 밖의 누군가의 손 위에 나타났다. 바로 모용옥으로, 주위에는 다른 반사동 요족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하얀 거미줄은 바로 그들의 것이었다.

    “천잠사! 모용옥, 너희가 감히 우리를 배신하고 연신단 도적놈들에게 투항한 것이냐! 설마 너희 반사동 조사와 여아촌의 창파 선조가 맺은 혈맹을 잊은 것이더냐!”

    손 파파는 놀람과 분노가 교차한 얼굴로 밝은 초록색 빛을 뿜어내어 하얀 거미줄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거미줄들은 착 달라붙더니 몸속으로 파고들기까지 해서 도저히 밀어낼 수 없었다.

    상황은 박 장로도 마찬가지라 거의 고치처럼 변해 있었다.

    모용옥의 표정은 어두워졌다가 금세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손 파파를 외면한 채 계속 거미줄 법진을 발동했다.

    “모용옥, 잘했다. 그들을 더 붙잡고 있어라! 치우 대신께서 세상에 다시 강림할 날이 가까워졌으니 그분의 종이 된 것은 너희의 영광이다. 손 파파, 내 몇 번이나 우리 주인님께 복종하라 했거늘, 그리도 고집을 부리더니 결국은 여기서 죽게 됐구나!”

    원죄의 목소리에 손 파파는 이를 갈았다.

    “치우! 너희 연신단 놈들은 마족을 위해 일하고 있었구나!”

    이런 악마들과 어울리려고 했다니, 손 파파는 후회가 막심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금빛 영전에서 갑자기 금빛이 크게 번득이더니 커다란 광진으로 변했다.

    콰쾅!

    폭발음에 이어 눈부신 금빛이 광진에서 날아왔다. 3장 정도 되는 길이에, 부러지고 밑동만 남은 금빛 검의 허상이 순식간에 검은 법진 구석에 나타나더니 강하게 내리쳤다.

    순간 원죄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왼손으로는 흑홍색 깃발을 흔들었고, 번개같이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검은 기운이 하늘을 뒤덮더니 집채만 한 검은 발톱이 나타났다. 시커먼 비늘로 뒤덮인 데다 수많은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오는 이 발톱이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챙!

    금속이 부딪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검은 손톱이 금빛 검의 허상을 움켜잡았다.

    그 순간, 검의 허상에서 차가운 비웃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더니 본래 눈부시게 빛나던 검의 허상이 갑자기 더욱 찬란한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금탑 부근은 마치 뜨거운 태양이 갑자기 강림한 것처럼 금빛 세계로 변했고, 그 빛에서 악(惡)과는 상극인 강렬하고 순수한 순양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손톱 주변의 검은 기운이 갑자기 사라졌고, 검은 손톱도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회백색으로 변해갔다. 그 손톱 아래의 검은 법진 곳곳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완전히 실제를 갖춘 검의 허상은 마치 금빛 성검처럼 위세를 뿜어내며 맹렬하게 내리쳐왔다.

    검은 손톱이 너무도 쉽게 잘려 나갔다.

    “말도 안 돼!”

    원죄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금빛 검의 허상은 멈추지 않고 번개처럼 내려와 검은 법진을 베어버렸다.

    꽈릉!

    굉음이 울리면서 검은 법진이 잘린 곳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검은 연기로 변하여 날아갔다. 본래 온전했던 검은 빛의 광막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원죄는 들고 있던 흑홍의 두 깃발을 다급히 발동하여 광막을 다시 복구시키려 했다.

    쿠르릉!

    갑자기 굉음이 폭발하면서 뇌성이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이어 크고 강력한 기세의 번개 수십 줄기가 금빛에서 뿜어져 나와 번개의 숲이 되어 원죄에게 떨어졌다.

    허공이 강렬하게 흔들리면서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늘의 뇌신이 분노를 쏟아내는 것만 같았다.

    원죄는 경악하며 한 손으로는 법진의 결인을 유지했고, 다른 손으로는 회색 방패를 꺼내 방어했다.

    광포한 번개가 순식간에 회색 방패와 원죄를 뒤덮었다. 원죄는 전력을 다해 회색 방패로 몸을 보호했지만, 온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검은 도포가 번개에 찢겨나가면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썹이 귀밑머리까지 내려온 매우 준수한 중년 사내였다.

    동시에 금빛의 검광에서 다시 천둥이 울려 퍼졌고, 번개의 숲이 금빛에서 뿜어져 나와 이번에는 반사동 요족들에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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