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화. 음모
갑자기 폭증한 법력으로 인해 그간 독경에 쌓아둔 맹독이 어지러워지면서 몸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견설은 전력을 다해 독경을 운공하여 폭주하는 맹독을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현재 그녀의 몸은 팽창했고 외부의 천지영기가 벌떼같이 쏟아져 들어왔기에 법력을 운공하는 것도, 힘들었고 도저히 체내의 맹독을 제어할 수 없었다.
이것이 여아촌 수사가 진선으로 돌파할 때 겪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특히 만독혼원주를 잃어버린 뒤로는 거의 해결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년간 이미 열 명이 넘는 여아촌 대승이 이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를 본 손 파파는 가슴이 내려앉아 화생전혼대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만약 화생전혼대진이 정말로 맹독의 반격을 억제할 수 있다면 연신단과 힘을 합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터였다.
한데 그때, 금빛 연못 안에 있는 심협의 임랑환에서 만독주가 이견설의 맹독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갑자기 강렬하게 떨렸다.
“이 구슬이 정말 여아촌의 물건이었나?”
화생전혼대진 옆에 있던 열여덟 명의 여아촌 제자들이 바로 법결을 바꾸자 법진 안의 흑홍색 빛도 같이 변했다. 그러자 수백 개의 흑홍색 빛이 폭발하면서 이견설 몸의 곳곳을 찔렀다.
우웅 하는 가벼운 소리가 울리면서 마치 괴이한 피가 퍼지는 것처럼 이견설 주변에 겹겹의 흑홍색 빛무리가 떠올랐고, 몸에 나타난 반점도 흑홍색으로 변했다. 퍼져 나가는 속도 또한 느려졌다.
화생전혼대진이 정말로 맹독을 억제하자 손 파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법진 안 이견설의 얼굴에서도 고통스러운 표정이 점점 사라졌고, 서둘러 공법을 운공해 영혼과 몸의 융합을 이어갔다.
금탑 옆, 원죄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뒤로 돌아가 있던 그의 손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움직이자 손가락에 있던 혈홍색 반지에서 혈광이 반짝였다가 바로 사라졌다.
그 순간, 법진 옆에 있던 열여덟 개의 혈홍색 조롱박이 동시에 펑 하고 폭발하면서 열여덟 개의 끈적끈적한 혈광이 화생전혼대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화생전혼대진의 움직임이 열 배나 빨라졌고, 실제 같은 음혼의 기운이 폭발하면서 손 파파의 신식을 밀어냈다.
“어찌 된 일이오!”
손 파파는 원죄를 돌아보며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 초록빛이 반짝이면서 녹색의 넝쿨 지팡이가 나타났다.
넝쿨 지팡이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는데 그 끝에는 짙은 녹색 맹독이 흘렀고, 넝쿨 지팡이 끝에는 살아 있는 듯한 녹색 뱀 조각이 웅크리고 있었다.
동시에 박 장로의 손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오래된 거울이 나타나 연신단 무리를 겨냥했다.
“두 분은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 조롱박의 외부는 기혈 결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내부의 기혈과 음혼이 거의 바닥나 터진 것뿐입니다.”
원죄는 손을 내저으며 설명했다.
박 장로가 손을 내밀자 땅에 떨어진 조롱박 조각이 그녀의 손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손을 움켜쥐자 파편이 터지면서 혈광으로 변했다.
손 파파도 미간을 찌푸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화생전혼대진 주변의 영기가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난 것처럼 갑자기 몇 배로 커졌다.
열여덟 명의 여아촌 제자들은 밖으로 튕겨나가듯 날아갔고, 누군가는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손 파파는 재빨리 넝쿨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녹색 넝쿨이 날아가 제자들의 몸을 묶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그 무렵, 거대한 영기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견설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의 눈은 빛으로 반짝였고, 피부도 영롱하게 빛났다. 모든 움직임마다 강력한 위세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마치 환골탈태한 듯했다.
“견설, 성공했나?”
손 파파와 박 장로는 이견설의 모습을 보고는 기뻐했다.
“다행히 성공했습니다. 모두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견설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연신단 사람들에게 예를 올렸다.
“서로 돕기로 한 사이인데 이 정도로 감사의 말을 하실 것 없습니다. 하하하!”
원죄는 허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손 파파도 이제 부드러워진 눈으로 연신단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박 장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기 세 권의 독경입니다. 다른 물건은 마을에 있으니 잠시 후에 드리겠습니다.”
박 장로는 한껏 부드러워진 태도로 옥간을 꺼냈다.
옥간은 하얀 빛으로 변하여 원죄의 앞에 떨어졌다.
그는 옥간을 받아서 이마에 대고 내용을 훑어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여아촌으로 돌아갈까요?”
말을 마친 그는 금탑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편, 모든 상황을 지켜본 심협은 내심 놀랐다.
‘정말로 연신단에게 다른 음모가 없단 말인가?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
그는 이견설을 몇 번이나 자세히 살폈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괜한 걱정을 했나 보군. 저들이 이렇게 떠난다면 다행이지.”
한편, 원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손 파파의 눈빛이 흔들렸다.
‘화생전혼대진을 그대로 두고 가는 건가?’
여아촌 사람들은 이미 법진을 발동하는 법을 익혔고 법진을 발동할 때 필요한 재료나 음혼의 힘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니 그녀들이 직접 화생전혼대진을 사용할 수 있다. 여아촌의 대승기 경지를 진선기로 돌파시키기 위해 더는 연신단에게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의미다.
‘연신단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 건가? 하지만 어째서?’
손 파파는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여아촌 제자들을 데리고 금탑으로 향했다.
한데 그때, 그녀의 뒤에서 가벼운 바람이 일더니 푸른 빛이 번개처럼 그녀에게로 날아왔다.
푸른 빛 안에는 쪽빛 빗방울이 약한 빛을 반짝이고 있어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손 파파는 섬뜩한 느낌에 몸을 돌리며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허공에 녹색의 작은 거울이 나타나 초록빛 고리가 몸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 발 늦었다. 쪽빛 빗방울은 순식간에 초록빛의 고리에 이어 손 파파의 가슴까지 관통했다. 손 파파의 가슴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어서 또 다른 하얀 빛이 뒤에서 강하게 그녀를 공격했다. 새하얀 옥여의(玉如意)였다.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손 파파의 손에서 넝쿨 지팡이가 뒤로 날아가 하얀 옥여의를 튕겨냈으나, 그녀는 옆으로 몇 장이나 날아갔다.
“이견설!”
손 파파가 소리쳤다.
하얀 옥여의는 이견설의 독문 법보 자화여의(紫火如意)였고, 쪽빛 빗방울은 여아촌의 비전 절기 우낙한사(雨落寒沙)였다. 우한낙사는 체내의 본명 원기를 응축해 여아촌의 비전인 몇 가지 부식성 맹독을 혼합하여 만든 암기로, 특히 몸을 보호하는 광막을 부수는 데 특화된 것이었다.
손 파파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웅웅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검은 발우 법보가 머리로 강하게 떨어졌다. 원죄가 번개같이 돌아와 기습한 것이다.
동시에 다른 연신단 수사들도 몸을 돌려 여아촌 사람들을 공격했다.
“네놈들 짓이구나!”
손 파파는 격노한 얼굴로 소리치고는 한 손으로 부상 당한 가슴을 감싸쥔 채 남은 손의 소매를 휘둘렀다.
녹색 넝쿨 지팡이가 날아가면서 녹색 교룡으로 변하여 검은 발우에 맞섰다.
손 파파 옆의 여아촌 사람들도 모두 분노하며 각종 법보를 동원하여 연신단 무리의 법보에 응전했다.
여아촌의 또 다른 진선 경지인 박 장로는 연신단을 공격하는 대신 오래된 거울로 빛의 기둥을 쏴서 이견설의 몸을 뒤덮였다.
현재 이견설의 두 눈은 혈홍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포악함이 넘쳤다.
그녀의 몸은 빛의 기둥에 뒤덮이자 마치 호박(琥珀) 안의 파리처럼 변했고, 법보의 빛과 기운의 파동 등도 봉인된 것처럼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박 장로가 소매를 크게 휘두르자 뱀 모양 은색 단검이 날아가 수백 개의 은색 검의 허상으로 변하여 연신단 무리에게 쏟아졌다.
“모용 도우, 도와주시오!”
그녀는 이견설을 공격하면서 반사동 요족들에게 외쳤다.
반사동 사람들은 격변에 놀라 멍하니 서 있다가 그제야 움직였다.
“역시 싸움이 붙었구나. 자업자득이지.”
심협은 눈을 번득이며 서둘러 주문을 외워서 변신을 풀었고, 천책 공간 안의 원구와 백소천도 싸울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굉음이 울렸다. 손 파파의 넝쿨 지팡이와 검은 발우가 충돌한 것으로, 둘은 막상막하였다.
손 파파가 빠르게 법결을 맺자 넝쿨 지팡이 끝이 초록빛으로 번득이더니 붉은 꽃과 연둣빛 잎사귀가 달린 여덟 줄기의 넝쿨이 뚫고 나와 촉수처럼 민첩하게 검은 발우를 휘감았다.
발우의 검은 빛이 갑자기 빠르게 어두워지더니 두세 호흡 만에 곧 꺼질 것처럼 약해졌다.
손 파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넝쿨 지팡이가 지금 시전한 것은 비화적엽(飛花摘葉)이라는 신통이었다. 적에게 명중하면 빠르게 상대의 법력을 흡수하고 적이 사용한 법도의 법력도 흡수해 상대의 법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녀는 이 신통으로 발우의 영기를 전부 흡수한 뒤에 원죄를 상대하려 했다.
한데 검은 발우가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더니 짙은 검은 안개가 나타나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가 순식간에 여아촌의 모든 사람을 뒤덮었다.
그 순간, 여아촌 사람들은 갑자기 끝없는 어둠에 빠진 것처럼 바로 옆의 동료마저 보이지 않게 되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원죄는 계략이 성공하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발우 안에 들어 있던 검은 안개는 유암마무(幽暗魔舞)로, 이곳에 갇히면 오감을 빼앗기게 된다.
이 안개들은 매우 상대하기 까다로워서 진선 존재라 해도 안에 갇히면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다.
“서둘러라!”
원죄는 계략이 성공했음에도 마음을 놓지 않고 곧장 연신단 수사들에게 명을 내리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면서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은색의 작은 깃발이 검은 안개 주변으로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원죄가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작은 깃발이 모두 은빛으로 번득이면서 서로 연결돼 몇 호흡 사이에 은색 법진을 만들었다.
검은 안개 안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고,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밖으로 팽창했다. 안에 있는 여아촌 사람들이 검은 안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검은 안개는 매우 견고해 격렬하게 흔들기긴 해도 부서지지는 않았다.
원죄는 이 광경을 보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결인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은색 법진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은빛 제비로 변하여 날아오르려 했다.
“전송!”
원죄가 양손을 가슴 앞에 교차하며 기쁜 목소리로 낮게 외쳤다.
은색 제비가 두 날개를 펼치자 거대한 은빛이 하늘로 치솟았고, 부근의 공간이 물결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은색 법진 안에 있던 검은 안개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먼 곳에 있던 화생전혼대진 안에 나타났다.
이미 법진 부근에 있던 10여 명의 연신단 수사가 암홍색 기둥 뒤에 가부좌를 틀었다.
화생전혼대진의 법진 안에서는 어느새 검은 진문이 나타나 있었는데, 점점 모습이 바뀌더니 용 그림이 나타났고, 매우 사악해 보이는 용이었다.
10여 명의 연신단 수사는 검은 법진이 나타나자 동시에 각자의 손목을 베더니 피를 암홍색 기둥에 뿌렸다.
우우웅!
모습이 변한 법진이 귀신 울음소리를 내더니 대량의 핏빛 안개와 음산한 바람이 법진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흑홍색 광막으로 변하면서 여아촌의 모든 사람을 뒤덮었다.
원죄는 그제야 안도한 듯 표정이 풀어졌다.
흑염복천진(黑魘覆天陣)이 펼쳐졌으니 여아촌 사람들은 이제 죽은 목숨과 같다. 그때가 되면 그는 대신이 전수해준 비술로 그들의 사체를 조종하여 여아촌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리라.
이런 엄청난 공을 세우면 대신께서도 분명 더 많은 것을 하사하실 것이다.
원죄는 흥분으로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