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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92화 (592/1,214)
  • 592화. 스스로 살길을 도모해라

    연못 주변에 있던 금빛 광진이 사라기지 전에 심협의 몸에 붙어 있던 명목고들은 밖에 남겨두었기에 바깥의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심협은 상황을 이해했다.

    “여아촌은 반사동과 여기서 무슨 일인가를 하려는 것이로군. 반사동 사람들이 구범청련을 발견할까 봐 연못 전체를 뒤덮은 거야. 덕분에 두 송이가 부족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군. 다행이야.”

    그의 변신은 진선 경지라 해도 간파하기 힘들 테니 실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꿈속 경지를 소환하지 않는 이상 저 많은 고수들 틈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한데 그때, 또 한 무리가 금탑에서 걸어 나왔다. 10여 명의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몸을 꽁꽁 싸매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에게서 음산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들은……? 연신단 수사들이잖아! 저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심협은 그들의 정체를 눈치채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데…… 설마 여아촌이 연신단과 결탁한 건가?”

    그는 연신단과 여러 번 싸워본 적이 있기에 저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여아촌이 정말로 연신단과 결탁하여 뭔가를 도모하고 있다면 결말은 절대로 좋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영초와 영화라니, 역시 여아촌의 금지입니다. 몇 가지는 진선기 수사에게도 큰 도움이 될 듯하군요.”

    연신단의 가장 앞에 있는 커다란 체구의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웃으며 아첨했다.

    “이 정도면 그대들이 요구하는 환경에 적합합니까?”

    손 파파는 담담하게 되물었다.

    “훌륭합니다. 저희 예상보다 더 좋군요. 여기라면 탈태관정대법(脫胎灌頂大法)을 진행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거구의 남자는 화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목소리인데…… 저승의 강 근처에서 내가 죽인 그 검은 도포! 분명 죽었을 텐데 어떻게 살아난 거지?”

    심협은 저승의 강 근처에서 일어났던 싸움을 떠올리며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재빨리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다시 바깥 상황을 정탐했다.

    “손 도우께서는 부디 나무라지 마십시오. 저희도 여아촌의 금지에 들어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권태관정대법의 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반드시 천지영기가 짙은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영기가 짙을수록 성공할 확률이 더 커진답니다.”

    거구의 사내가 공수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가 적합하다니, 빨리 시작하죠. 미리 경고하는데, 이곳은 우리 여아촌의 금지라 본문의 조사께서 금제를 설치해놓았습니다. 만약 다른 뜻을 품는 자가 있다면 노부가 이곳에 묻어 버릴 겁니다.”

    손 파파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이 여아촌의 금지이다 보니 손 파파께서도 신중해지실 수밖에 없답니다. 원(元) 도우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손 파파의 말투가 너무 딱딱하다고 느꼈는지 반사동의 모용옥이 서둘러 분위기를 풀었다.

    “손 도우, 심려 마십시오. 저희는 이견설 장로를 진선기로 올려주기 위해 온 거지 다른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그 순간, 금빛 연못 안의 심협의 눈빛이 흔들렸다. 원 도우라니, 저자가 원씨란 말인가!

    “원구 도우, 연신단에 대해 잘 알지 않소? 성이 같은데 저자를 아시오?”

    그는 원구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 원씨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모든 사람을 알겠습니까?”

    원구는 비웃듯 답했다.

    “아, 그래도 성이 원씨인 연신단 남자 하나는 압니다. 연신단주 원죄(元罪).”

    “연신 단주!”

    심협은 기겁했다.

    “가능성은 충분하죠. 저자가 정말 그라면 조심해야 합니다.”

    원구가 긴장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맞습니다, 파파. 우선 의식을 치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죠.”

    이견설이 옆에서 끼어들자 손 파파는 불쾌한 듯 그녀를 노려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원씨 사내가 뒤에 선 사람들에게 손을 휘둘렀다.

    그들은 바로 바쁘게 움직였다. 금탑 부근 공터에 무언가를 설치하기 시작해 반나절이 지나서야 10여 장 크기의 금색 법진을 완성했다.

    원씨 사내가 손을 휘두르자 열여덟 개의 핏빛 진문이 새겨진 암홍색 기둥이 날아가 법진 주변에 떨어졌다.

    웅웅웅!

    검은 법진이 곧장 발동하더니 붉은 빛을 뿜어내 바깥의 암홍색 기둥과 함께 빛나면서 귀신이 우는 소리를 냈다.

    “저 법진은 눈에 익은데……? 맞아! 조음동에서 마수수가 설치했던 법진과 매우 비슷해!”

    멀리서 지켜보던 심협의 눈이 커졌다.

    “됐다. 이 도우, 법진 안에 앉으시죠.”

    거구의 사내가 여아촌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견설은 기뻐하는 얼굴로 심호흡을 하고는 바로 법진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손 파파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잠깐! 단주, 그대가 설치한 법진은 음기가 서려 있고 귀기(鬼氣)가 하늘을 찌르는데, 이게 정말 탈태관정대법인란 말입니까?”

    원씨 성에 ‘단주’라니, 그렇다면 그가 정말 연신단주 원죄란 말인가!

    “음기가 서려 있고 귀기가 하늘을 찌른다니요! 손 도우, 경지가 높으신 분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음기가 있으면 사물(邪物)입니까? 수사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도 태어나고 자랄 때까지 누가 수많은 생명의 피를 탐하지 않고 시산혈해를 지나지 않는단 말입니까! 수련의 길은 본래 피범벅이 된 원기를 쌓는 것! 아무리 미화해도 자기기만일 뿐, 영혼은 음(陰)에 속하고 피는 붉은 게 진리 아닙니까?”

    원죄는 살며시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이견설은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법진이 이렇게 사악한데 어떻게 안심하라는 거요?”

    손 파파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차분한 목소리로 따졌다.

    그제야 다른 여아촌 사람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대들은 우리를 믿지 않은 모양이군요. 좋습니다. 관례를 깨고 이 법진의 비밀을 설명해드리죠. 이 법진의 이름은 화생전혼대진(化生轉魂大陣)으로, 우리 연신단의 선배께서 오랜 시간 고심한 끝에 만들어낸 것입니다. 혈을 열어주고 영혼을 강화해주는 효능이 있죠.”

    원죄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 도우, 박 도우. 두 분은 진선기의 존재이니 진선으로 올라갈 때의 가장 큰 난관 두 가지를 아실 겁니다. 첫 번째는 백회혈(百匯穴)을 뚫는 일이고, 두 번째는 바로 영혼이 변하여 몸과 융합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대승 절정 수사는 이 둘을 완성할 충분한 힘을 축적하지 못하죠. 허나 화생전혼대진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게다가 여아촌의 독경은 수천 가지 독물을 삼키고 몸에 주입하였으니 진선으로 올라갈 때 방심하면 역으로 충격이 올 수 있을 터. 화생전혼대진은 인체의 모든 혈을 뚫어주니 극독의 반항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시전 과정은 여기 옥간에 있으니 손 도우께서 직접 살펴보시죠.”

    원죄는 회색 옥간을 꺼내 손 파파에게 던졌다.

    손 파파는 옥간을 받고는 이마에 갖다 댔다가 잠시 후 다시 내렸다.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별다른 말은 없이 옆에 선 박 장로에게 건넸다.

    박 장로도 옥간을 받아서 안의 내용을 살펴보았으나 아무 말도 없었다.

    “두 도우께서는 이제 저를 믿으십니까?”

    “옥간의 내용으로 봐서는 그대들의 화생전혼대진은 확실히 비결이 있군요. 허나 법진의 발동은 우리 여아촌 사람들이 하겠습니다. 옥간에 따르면 이 법진은 설치는 어려워도 발동하기는 매우 간단하더군요.”

    손 파파는 잠시 생각하더니 박 장로와 눈빛을 교환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죠.”

    원죄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손 파파는 조금 놀랐으나, 이내 옥간을 다른 여아촌 사람들에게 확인시킨 뒤 시작하라는 뜻을 표했다.

    이견설은 참지 못하고 법진 안으로 들어갔고, 여아촌 사람 중 열여덟 명이 나와서 각자 암홍색 기둥 뒤에 앉았다. 그중에는 유비서와 율율도 있었다.

    “이것이 법진을 발동하는 재료이니 받으시오.”

    원죄가 손을 휘두르자 열여덟 개의 혈홍색 조롱박이 날아가 열여덟 명의 손에 떨어졌다.

    이어서 그는 금탑 부근으로 날아갔고, 다른 연신단 사람들도 그 옆으로 옮겨갔다.

    손 파파는 혈홍색 조롱박을 살펴봤다. 그 안에는 짙은 기혈의 무언가와 약간의 음혼(陰魂)이 들어 있었다. 옥간에 기록된 대로 모두 화생전혼대진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시작하시오!”

    손 파파는 박 장로에게 눈짓을 보내서 연신단 사람들을 주시하도록 한 후, 담담하게 말했다.

    열여덟 명의 여아촌 제자들이 결인하여 화생전혼대진을 발동했다. 웅웅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더 진한 검은 빛이 솟구쳐서 이견설의 몸을 뒤덮었다.

    열여덟 명이 들고 있는 혈홍색 조롱박에서 혈광이 뿜어져 나오자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면서 붉은 빛을 둘러싼 요혼이 법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법진 안의 검은 빛은 바로 흑홍색(黑紅色)으로 변했고, 날카로운 소리도 열 배나 더 커졌다.

    부근의 천지영기도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법진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거대한 영기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여아촌 사람들이 연신단의 도움을 받아 대승기에서 진선기로 올라서려는 것인가! 허나 연신단과 마족의 수단을 통해 진선으로 올라가게 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길 텐데…….”

    연못 안에서 지켜보던 심협은 내심 우려가 됐다. 여아촌이 비록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큰 원한을 사지도 않았다. 게다가 구범청련까지 훔쳤으니 내심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반면 연신단은 그의 대적(大敵)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여아촌을 도와서 연신단의 음모를 깨트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드러내면 구범청련을 훔쳤다는 사실이 발각될 터. 자칫하면 저 두 세력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군. 여아촌이 스스로 살길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심협은 속으로 한탄했다. 만약 연신단이 정말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라면 아마도 잠시 후에는 엄청난 싸움이 일어날 테니 그 틈에 도망치기로 하고는 계획을 세워 원구와 백소천에게도 전했다.

    그 무렵, 금탑 부근에서는 화생전혼대진이 뿜어낸 흑홍색 빛이 점점 강해져 열여덟 명의 여아촌 제자까지 뒤덮으면서 안쪽이 보이지 않게 됐다.

    이곳의 금제를 제어할 수 있는 법보를 가지고 있던 손 파파는 신식을 밖으로 펼쳐 법진 안의 상황을 수시로 살폈다.

    법진 안에서 거대한 검은 기운과 혈광이 끊임없이 이견설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그녀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은 불가사의한 속도로 치솟아 진선기의 한계를 향해 나아갔다. 이견설의 반응으로 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손 파파는 의아한 표정이었고, 내심 연신단을 높게 평가하게 됐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이견설의 피부는 점점 암홍색으로 변하여 어딘가 이상해 보였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흥분이 감돌았다.

    이때, 그녀의 몸이 갑자기 강렬하게 떨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백회혈이 그녀의 법력과 법진의 도움으로 뚫렸고, 미친 듯이 주변의 천지영기를 흡수했다.

    쾅!

    이견설의 모든 혈이 갑자기 열리면서 대량의 천지영기를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탐욕스럽게 집어삼켰다. 동시에 그녀의 몸은 커다란 공처럼 빠르게 팽창했고, 신혼도 변화해 빠르게 투명해져 몸과 융화되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이견설의 표정이 갑자기 고통으로 일그러지더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떨려왔다. 그녀의 가슴 부근에는 알록달록한 반점이 생겨나 빠르게 주변으로 번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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