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91화 (591/1,214)
  • 591화. 청련

    바다표범 요물은 몸이 소리도 없이 둘로 갈라졌지만,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몸이 투명해지면서 사라졌다.

    “환술? 법력으로 만들어진 요물이었던가!”

    심협은 내심 긴장하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꽈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새하얀 번개가 내리쳐 심협의 머리 앞까지 날아왔다. 공기는 뜨겁게 달궈졌고,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 순간, 갑자기 커다란 핏빛 깃발이 나타나 심협의 몸을 뒤덮었다.

    하얀 번개는 깃발에 꽂히자마자 환상처럼 사라졌고, 기혈번의 붉은 빛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번개도 환영이라면…… 강력한 환상 세계(幻境)가 있는 것인가?”

    심협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위험에 대비해 이미 현음미동을 운공하고 있었지만, 번개 환술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이곳의 환술 등급은 양의미환진보다 약하지 않았다.

    심협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히 기뻤다.

    ‘이토록 강력한 환술 금제가 지키고 있다면 비경 안에는 귀중한 보물이 있다는 것이겠지.’

    그때, 마치 벌집을 쑤신 것처럼 수많은 포효와 함께 아래 바다에서 온갖 요물들이 쉬지 않고 뛰어올라 적색 검홍(劍虹)을 향해 돌진했다.

    검홍의 속도는 무척 빨랐는데, 요수들은 힘들이지 않고 따라붙어 물어뜯으려 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뇌광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번개들이 일제히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요물들이 모두 환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내 속도를 쫓아올 수 있었던 거라면 번개도 마찬가지일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터.’

    검홍이 계속 전진하며 몇 마리의 요수와 번개를 뚫었다. 검홍은 그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역시…….”

    심협은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또다시 커다란 번개가 떨어졌고, 심협은 이를 보고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조심하십시오! 저 번개는 환상이 아닙니다!”

    그때, 원구의 목소리가 갑자기 심협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심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순양비검을 운공하여 속도를 높였다.

    꽝!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하얀 번개가 적색 검홍의 꼬리에 떨어졌다. 검홍은 강렬하게 흔들렸고,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상어 같은 요물이 바다에서 뛰어올라서 커다란 입으로 검홍의 머리 부분을 물었다.

    콰직!

    검홍의 절반이 뜯겨 나갔다.

    “이런!”

    심협은 서둘러 기혈번으로 몸과 발아래의 검홍을 보호했다. 하지만 기혈번까지 사용하자 적색 검홍의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진짜 번개가 떨어졌지만 기혈번은 가볍게 막아냈으나, 충격으로 크게 휘청거렸고, 속도는 더 줄어들었다.

    심협은 낮게 신음하더니 법력을 순양검배로 주입했다. 그러자 검홍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고, 속도도 조금 더 빨라져서 번개와 요물의 습격을 피해 날아갔다.

    전력으로 이동하려면 법력 소모가 극심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만약 여아촌 사람들이 이곳에 누군가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구범청련을 훔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어느덧 반 각(1각은 약 15분)이 지났다.

    심협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날았지만, 주변의 번개와 요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심지어 저 앞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환상 세계에 갇혀서 같은 곳을 돌고 있는 것 같군요.”

    원구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원구의 목소리에 심협은 나는 것을 멈추고 전력으로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주변을 둘러봤다.

    허공에 비정상적인 환상의 색채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다른 것은 없었기에 그도 환상의 색채가 무엇인지 간파할 수 없었다.

    “원 도우, 아까 그 번개가 환상이 아니란 걸 어떻게 알았소?”

    자신은 줄곧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주변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음에도 번개와 요물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원구는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원구의 경지는 자신보다 조금 높다고는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가 화술이 능해서가 아니라 이 금색 공간 덕분입니다. 이 공간에 환술의 힘을 차단할 수 있는 효력이 있는데…… 모르셨습니까?”

    원구가 오히려 당황한 말투로 되물었고, 심협은 당황했다. 천책 공간에 그런 능력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내가 멍청했구나. 아무래도 천책 허상을 더 연구해봐야겠어.’

    그때, 허공이 일렁이더니 백소천이 나타났다.

    “심형, 무슨 일인가?”

    백소천은 원구와 심협의 대화를 듣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백형, 일단 이걸 받으시오. 그리고 내가 말을 하면 그대로 가주시오.”

    시간이 촉박했기에 심협은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임랑환을 빼서 백소천에게 건넸다.

    “어…… 알겠네.”

    백소천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심협의 몸이 흔들리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천책 공간으로 들어간 것이다.

    심협은 천책 공간의 힘을 운공하여 자신의 시선을 밖으로 내보냈다.

    원구의 말처럼 천책 공간을 통해 주변을 둘러보자 채색 광선이 더욱 선명해졌고, 그 안에 수많은 환상의 진문(陣紋)이 떠다니고 있었다. 심협은 그 진문에서 점점 많은 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천책 공간이 이 정도로 신비할 줄이야! 하긴, 당연한 일이지. 이 공간은 천 년 뒤의 장소이니 현실과 완전히 단절됐을 터. 비경 안의 환술 금제도 당연히 이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

    “백형, 왼쪽으로 가시오.”

    그는 마음을 다잡고 백소천에게 전음을 전했다.

    백소천은 바로 그의 말을 따랐다.

    “왼쪽으로 꺾으시오!”

    “뒤로 삼백 장!”

    “위로!”

    심협은 천책 공간 안에서 바깥을 살피면서 백소천에게 길을 안내하는 동시에 진짜 번개와 요물의 공격을 피했다.

    다시 반 각이 지났을 때, 눈앞의 풍경이 갑자기 변하더니 섬이 앞에 나타났다.

    그리 큰 섬은 아니라서 한쪽 폭이 2, 3리쯤 되어 보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섬 전체는 황금색이었다. 게다가 천지영기가 매우 짙어서 보타산의 조음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백소천은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섬에는 몇 군데 밭이 있었는데, 안에는 수많은 영초와 영재가 심어져 있었다. 모두가 고급 영재로, 그가 줄곧 고생고생하며 찾아다니던 것들도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전에는 겹겹의 광막이 덮여 있었고, 그 위로 빛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분명 엄청난 금제가 있을 터였다.

    백소천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섬의 가장 중심부에 커다란 금탑 건물이 우뚝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8층짜리 탑은 전체가 금빛으로 반짝였고, 겉에는 수많은 부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금탑 꼭대기에서는 더 밝고 찬란한 금빛이 비쳤는데, 마치 그곳에 보물이 있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금탑 옆의 연못도 옅은 금빛을 띠었다.

    백소천은 연못이 섬 전체에 퍼진 짙은 영기의 중심임을 알아챘다. 연못 아래에 영안(靈眼)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정순하기 그지없는 천지영기가 그곳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연못에는 대량의 연잎이 자라고 있었고, 10여 그루의 금빛 연꽃이 천천히 떠다녀 맑고 그윽한 향이 풍겼다.

    “구범청련!”

    백소천은 숨을 들이켜더니 곧장 하강했다.

    펑!

    백소천이 땅과 백여 장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하얀 광막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섬 전체가 반구(半球) 형태의 광막에 덮여 있었다.

    게다가 하얀 광막은 통로 안의 광막과 똑같았고, 심지어 더 두꺼웠다.

    “이건 뭐야!”

    백소천이 소리쳤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이지 금제로 보호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허공이 흔들리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그는 금빛 연못 안의 금빛 연꽃을 보고는 한껏 흥분된 표정이었다.

    “금제가 통로 안의 것보다 더 강해 보이는데, 부술 자신 있나?”

    백소천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광막에 부딪혔을 때, 마치 커다란 산에 부딪힌 것만 같았다. 그의 추측으로는 진선 경지는 돼야 부술 수 있을 듯했다.

    심협은 대답 대신 현음미동으로 자세히 안의 상황을 살폈다. 매복은 없었다.

    이어서 그는 참마검을 꺼내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우웅!

    참마검에서 하늘을 찌르는 검광이 번득이더니 검날이 완전히 순수한 금빛으로 변하면서 태양 같은 강력한 순양의 기운이 폭발했다.

    순양검배가 다시 단전에서 날아와 신이 난 것처럼 참마검 주변을 날아다니며 뿜어져 나오는 순양의 힘을 흡수했다.

    심협은 두 손으로 참마검을 움켜쥐고 산을 가를 기세로 광막을 내리쳤다.

    꽝!

    매우 두꺼운 하얀 광막이 베어지더니 몇 척 길이의 균열이 생겼다.

    백소천은 어안이 벙벙해져 심협의 부러진 검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갑시다!”

    심협은 재빨리 균열 안으로 들어갔고, 백소천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균열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뒤를 따랐다.

    안으로 들어선 심협은 곧장 금빛 호수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호수 10여 장 앞까지 갔을 때, 허공에서 불경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더니 눈부신 금빛이 나타나 금색 광진(光陣)으로 변하여 연못을 뒤덮었다.

    순식간에 범음(梵音)이 사방에 충만했다!

    수많은 불문의 진언 부문이 번쩍이더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력(佛力)이 용솟음쳤고, 이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가라!”

    참마검이 손에서 벗어나 광진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고, 심협은 지체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금빛 광진 안. 심협은 지척에 있는 구범청련을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망설임 없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휙! 휙!

    두 개의 붉은 검기가 순식간에 금빛 연못으로 들어갔다.

    섬에는 누구도 쫓아올 사람이 없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두 송이의 구범청련의 뿌리가 잘렸다.

    금빛이 번득이더니 연못이 흔들렸고, 몇 개의 금빛 물보라가 솟구치면서 금붕어들이 날카로운 검기를 느끼고는 서둘러 먼 곳으로 도망갔다.

    심협이 손을 들자 잘린 구범청련이 바로 그의 손으로 들어와 천책 공간으로 들어갔다.

    구범청련을 손에 쥐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백소천도 뒤이어 연못 상공으로 들어왔고, 심협이 두 송이의 구범청련을 얻는 걸 보자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때, 연못 상공의 금빛 광진이 다시 빛을 발하더니 심협이 뚫은 구멍이 순식간에 합쳐졌고 금빛 광진의 외형도 갑자기 금빛 안개로 변하여 연못 전체를 뒤덮었다.

    “설마 발각된 건가?”

    심협이 긴장한 표정으로 참마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금빛 안개는 두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환영처럼 변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금빛 연못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신에 수많은 영초를 심은 금빛 영전이 나타났다.

    “이건……?”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참마검을 집어넣고 백소천 옆으로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금빛의 천책 허상이 스쳐 지나갔고, 백소천은 천책 공간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심협은 빠르게 주문을 외웠고, 금붕어로 변신하여 연못 안으로 들어가 연잎 속으로 파고들어 모습을 감췄다. 그가 살펴본 결과, 이 연못이 금빛을 띠는 것은 안에 수많은 불문 영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심협이 자신을 숨기자마자 옆에 있던 금탑의 대문이 금빛으로 반짝이더니 빠르게 법진이 펼쳐졌다. 그리고 금탑 아래에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사람들이 나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손 파파였고, 그 뒤로는 박 장로를 비롯해 20여 명의 여아촌 장로와 제자들이었다. 유비서와 율율도 있었다.

    이들 중 경지가 가장 낮은 자도 출규기였고, 대승기 경지도 10여 명이나 됐다. 진선기의 손 파파와 박 장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들 뒤로는 10여 명의 요족, 반사동 휘하인 모용옥과 임심모도 있었다.

    반사동 요물들의 경지도 낮지 않아 가장 앞의 몇 명은 대승기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