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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87화 (587/1,214)
  • 587화. 말이 새어 나오다

    두 사람은 마을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박약원을 지나 다시 한참을 돌아서 마침내 넓은 지대에 도착했다.

    이곳은 숲이 무성한 다른 곳과는 달리 큰 돌로 만들어진 광장이 있었다.

    광장 북쪽에는 ‘상점이라고 쓰인 1층짜리 목조 건물이 일고여덟 개 정도 연이어 있었다. 외관은 평범하다 못해 다른 시장의 상점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내가 찾는 게 정말 있을까?’

    심협은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유비서를 따라서 한가운데의 상점으로 들어서니 그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여아촌 제자와 소수의 반사동 요족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안에 서 있던 어린 소녀가 ‘유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오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이라 하오. 잠시 마을에 머물고 있소.”

    심협이 먼저 소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신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요. 유 언니, 이자를 왜 데리고 온 거예요?”

    “괜찮아. 상점은 파파도 허락하셨어. 보통 손님처럼 대하면 돼.”

    유비서는 소녀의 머리를 토닥이며 말했다.

    “음, 그래요. 무엇을 원하세요?”

    소녀는 사양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

    심협은 턱을 쓰다듬으며 건물 안 뒤쪽에 늘어선 나무 선반 위를 훑어봤다. 그 위에는 다양한 병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고 위에는 명칭이 붙어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침침해졌다. 대부분이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소저, 혹시 수명을 연장해 주는 영초 같은 것도 있소?”

    심협의 말에 소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단약도 좋소.”

    소녀는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유비서를 쳐다봤지만, 유비서 역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 여아촌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형의 독약이나 암기를 사러 오지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영약을 사러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우리는 독으로 독을 해독하는 천하의 기이한 독약은 있어도 수명을 연장해주는 건 없어.”

    유비서가 말을 받았다.

    “그럼 구범청련 같은 약초도 없소? 효능이 조금 떨어져도 좋소.”

    심협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소녀는 이렇게 한심한 작자가 있냐는 표정으로 심협을 보며 말했다.

    “구범청련이 영약인가? 그건 거기서 자라는 건데, 저기 구범 비…….”

    “소녹(小鹿)!”

    유비서가 소녀의 말을 끊었다.

    “서, 선약이어서 우리 여아촌에서 팔고 말고 할 물건이 아니에요!”

    소녀는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으나, 소녀가 말하려다 만 내용을 놓치지 않은 심협의 눈이 반짝였다.

    ‘구범 비경! 구범청련은 박야원 같은 곳이 아니라 마을의 독특한 비경에서 자라는 건가? 그런데 그게 어디지?’

    최근 며칠간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그는 직접 마을을 돌아다니는 대신 고충을 보내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고위 수사가 지키는 곳은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야?”

    유비서가 심협의 생각을 끊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여기에 월성자라는 영재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심협은 황급히 아무 말이나 꺼냈다. 월성자는 다른 게 아니라 곤토인뇌부를 정련하는 데 필요한 마지막 영재였다. 그간 찾지 못했기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한데 그때, 소녀가 답했다.

    “아, 그건 있어요.”

    심협은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소녀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였소?”

    “월성자가 있냐면서요? 있다고요.”

    소녀는 심협의 반응에 얼떨떨해 하며 답했다.

    “정말이오? 좀 보여줄 수 있겠소?”

    “기다려요.”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편 진열대로 가더니 잠시 후 돌아와 심협에게 투명한 수정 병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네댓 개의 검은색 정석이 들어 있었다.

    심협은 병을 눈앞까지 들고는 자세히 살펴봤다. 정석의 표면에는 유수(流水)의 문로가 새겨져 있었고, 각각의 중심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세 개의 하얗고 둥근 점이 밤하늘의 별처럼 있었다.

    “진정 월성자로구나! 얼마요?”

    심협이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옥 2백 개요.”

    “부적 제련의 재료일 뿐인데 그리 비싸단 말이오?”

    심협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월성자가 그냥 부적 재료라고 누가 그래요? 이건 연기에서도 아주 중요한 보조 재료라서 우리도 항상 부족하다고요!”

    소녀가 바로 따지듯 외쳤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너무 비싸지 않소? 유 소저, 내가 방금 도와줬는데 그렇게 가만히 보고 있을 겁니까?”

    심협은 유비서를 보며 애원했다.

    “나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어. 상점의 일은 내가 관여할 수 없다고. 가격을 정하는 건 내 소관이 아니야.”

    유비서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곁눈질로 소녀에게 살짝 눈빛을 보냈다.

    “그래요. 당신이 유 언니를 도와줬다 하니 선옥 백오십 개만 받을게요.”

    그녀의 뜻을 알아챈 소녀는 바로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말했다.

    심협은 이를 통해 월성자의 진짜 가격이 실제로는 더 싸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값을 더 깎기는 건 어려울 듯했다.

    “좋습니다. 고맙소.”

    그는 바로 선옥 백오십 개를 건네주고는 월성자 한 병을 챙겼다.

    월성자는 수가 많지 않았지만, 부적을 제련할 때는 갈아서 다른 재료와 함께 부묵(符墨)을 만들면 되니 이 정도면 충분했다.

    “더 필요한 거 있어요? 우리 여아촌 상점에서 가장 잘 팔리는 건 역시 독이랍니다. 우리가 직접 제조한 독약은 외부에서는 해독하기 어렵죠.”

    “독?”

    심협은 본래 별다른 관심이 없었으나, 그녀의 말을 듣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고위 수사에게는 독도 안 통하지 않소?”

    “어떤 독이냐에 따라 다르죠. 우리 여인촌의 독은 금강불괴신공(金剛不壞神功)을 익히지만 않았다면 제아무리 혈을 막고 오식을 봉인해도 저항하기 어렵답니다.”

    “그런 독약도 있소? 천지영기에 섞여 있는 독도 혈을 막으면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지 않소?”

    “어떤 독은 신식 파동만으로도 중독시키는 게 가능하답니다. 혈을 막는다고 감정 기복을 완전히 막을 수 있던가요?”

    “감정의 파동으로도 가능하다니! 그런 독이 있다면 무적이 아니오?”

    심협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아니죠. 소리 소문 없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려면 문중의 외부에 전해지지 않은 독문 비독(秘毒) 만이 가능한데, 그것은 우리 여아촌의 공법과 함께 시전해야만 가능하니까요. 외부에 파는 것 중에 감정의 파동으로 중독시키는 독은 수량도 적고 독성도 그리 강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목숨이 걸린 순간에는 그 정도로도 승부를 뒤집기에 충분하죠. 그렇지 않나요?”

    소녀는 마치 싸움군처럼 능숙하게 설명했고,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런 독약 중 팔 수 있는 것은 어떤 게 있소?”

    심협은 호기심에 물었다.

    “지금 팔고 있는 건 해화어(解花語)랑 옥생향(玉生香), 이렇게 두 종류랍니다. 이름은 예쁘지만, 일정 시간 안에 상대방의 저항력을 상실시킬 수 있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오?”

    “원래는 우리 여아촌의 신통으로 시전해야만 소리 소문 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외부인은 여아촌의 공법을 쓸 수 없으니 무기나 암기 또는 자신의 공법 신통에 결합시켜서 쓰면 돼요. 이 두 종류의 독약은 꼭 여아촌의 공법이나 신통과 배합하지 않아도 막아내기는 어렵답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소녀를 바라봤고, 소녀는 곧장 대답했다.

    “두 개 모두 선옥 오십 개입니다.”

    “오, 그래도 비싼 편은 아니…….”

    심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녀가 보충하며 말했다.

    “한 방울에요.”

    “한 방울! 그건 너무하지 않소?”

    심협의 두 눈이 커졌다.

    “그건 당신이 어떤 적을 상대하느냐에 달렸죠. 대승기 이하는 약액을 조금만 희석해도 한 번에 열 명을 중독시킬 수 있지만, 대승기는 한 방울로 한 명을 중독시킬 수 있답니다.”

    “그럼 진선은?”

    심협이 긴장한 듯 물었다. 앞으로 마주할 적들은 진선, 어쩌면 태을이나 그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음…… 상대가 진선이면 그냥 도망가세요.”

    소녀가 웃으며 답하자 옆에 있던 유비서도 살짝 웃었다.

    심협은 놀림거리가 된 듯했지만, 개의치 않고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이 독약은 나중에 쓸 곳이 있을 듯했기에 그는 한바탕 가격을 흥정한 뒤 선옥 2백 개로 각각을 세 방울씩 샀다.

    심협은 상점에서 나와 인사를 남기고는 혼자 숙소로 돌아갔다.

    나무 건물로 돌아와보니 아무도 없었다. 백소천은 임심모를 만나러 가서 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심협은 백소천을 생각하자 한숨이 나와 고개를 젓고는 방문을 닫고 부적 제작의 재료를 꺼냈다. 서둘러 곤토인뇌부를 만들 생각이었다. 이 부적은 위력이 약하지 않으니 분명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현실에서 곤토인뇌부를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심협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 있었다. 꿈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 이 부적을 그려봤으니 경험은 충분했다. 또한, 부적을 만드는 것은 숙련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꿈속 세상에서 얻은 많은 깨달음을 활용할 수 있고, 그는 현실 세계에서도 무척 숙련된 부적술사였다.

    * * *

    저녁 무렵,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심협이 문을 열어보니 백소천이 흥분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백형, 기분이 좋아 보이오?”

    “그녀가 오늘 내 꽃을 받아줬네!”

    “오늘 아침에?”

    “아니, 저녁에 돌아와서.”

    심협은 의자에 앉고는 두 눈을 감았다.

    “꽃이 다 시들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니까!”

    백소천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안 받아주면 붙잡고 귀찮게 할까 봐 그런 거 아니겠소?”

    “지금까지는 뭐 내가 귀찮게 안 했던가?”

    백소천은 그렇게 답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심협은 이런 일로 백소천과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한나절 내내 부적을 써서 세 장의 곤토인뇌부를 만들어낸 결과, 신혼의 소모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은 인사라도 해주지 않을까?”

    백소천이 신이 나 주먹을 비비는 모습에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제야 백소천은 심협의 피곤한 기색을 발견하고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

    “무슨 일 있는가?”

    “부적을 만드느라 좀 피곤한 것뿐이니 개의치 마시오.”

    심협은 고개를 젓는 것조차 귀찮았다.

    “옛날 춘추관에서 심형이 부적을 제련한다고 들었을 때는 성공할 거라 생각도 못 했는데…….”

    백소천은 추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온종일 고생해서 반쪽짜리 세 장 만든 게 전부요.”

    심협이 자조하자 백소천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반쪽짜리?”

    “곤토인뇌부는 낙뇌부와 같아서 뇌전을 넣어야 하오. 한데 번개가 쳐야 뇌전을 넣든 말든 할 것 아니오. 지금은 그려두기만 했소.”

    “오, 그렇군. 한데 구범청련을 찾는 건 어떻게 되었나?”

    “아, 잊은 거 아니었소? 임심모에게 영혼까지 팔려간 줄 알았는데…….”

    심협은 또다시 비아냥거렸다.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 인생에서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리고 나도 완전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네. 몰래 마을을 좀 살펴봤지.”

    백소천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디 무엇을 알아냈는지 들어봅시다. 별 기대는 안 되지만.”

    “그게…… 아직 정확한 정보는 없네만, 최근 반사동 사람의 왕래가 잦아졌네.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백소천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럴듯하게 말했다.

    “여아촌과 반사동은 줄곧 교류했으니 반사동의 왕래가 잦은 건 당연한 거 아니오?”

    “달라! 요 며칠 마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 오전에 손 파파가 여아촌 제자 여럿을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 돌아왔는데, 어딘가 모르게 다급한 모습이야.”

    심협은 그 말에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비경에 갔다 온 건가?’

    백소천은 심협이 오랫동안 말이 없자 팔을 툭 쳤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가?”

    “별거 아니오. 백형이 보기에 여아촌에 비경이 있을 것 같소?”

    “구범청련이 마을의 비경에 숨겨져 있을 것 같다?”

    백소천은 단번에 심협의 뜻을 알아챘다.

    “음, 그런 생각이 드오.”

    여기까지 말한 심협은 갑자기 이전에 꿈속에서 동해의 눈물 요괴를 쫓다가 부근에서 비경의 존재를 느꼈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그 안은 보랏빛 독무가 가득해 들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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