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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83화 (583/1,214)

583화. 포위를 뚫다

하얀 가루가 소리 없이 물 보호막 위로 떨어지자 마치 먼지가 물속에 들어간 것처럼 전부 사라졌다.

심협은 넝쿨 요괴가 어째서 이렇게 요란하기만 한 행동을 하는지 의아했는데, 그때 머리 위에 있던 물 보호막이 마치 안료(顔料)가 퍼진 것처럼 순식간에 자홍색으로 물들어갔다.

이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자홍색으로 물든 물 보호막에 작은 나팔꽃이 피더니 아래에서 갑자기 수많은 넝쿨이 빼곡하게 늘어나면서 순식간에 심협 머리 위의 햇살을 가린 것이다.

그가 시전한 물 보호막도 순식간에 넝쿨에 부서졌고, 모든 수분이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그제야 깨달았다. 넝쿨 요괴가 방금 뿜어낸 것은 포자 가루였다. 제때 물 보호막을 덮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그것들이 몸에 떨어져서 지금쯤 그와 백소천의 몸에 기생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리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하늘에서 빼곡한 넝쿨이 수많은 화살처럼 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심협과 백소천은 서둘러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수많은 넝쿨이 박혔고, 이 넝쿨들은 순식간에 열 배로 늘어나 다시 땅을 뚫고 계속 돌진해왔고, 일부는 떨어지기 전에 방향을 바꿔 두 사람을 뒤쫓았다.

“위로!”

백소천이 외치더니 먼저 뛰어올라 산골짜기 상공으로 날았고, 심협도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산 높이까지 올라갔을 때, 하늘에 갑자기 심연 같은 커다란 구멍이 나타나 두 사람을 그대로 삼키려 했다.

심협은 깜짝 놀랐다.

넝쿨 요괴의 얼굴에 있던 요염한 나팔꽃이 지금은 본체보다 더 커져 있었다. 활짝 핀 꽃 가운데에는 커다란 입 같은 것이 있었는데, 안에는 빼곡한 꽃술이 꿈틀거리면서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다.

꽃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심협은 갑자기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웠다.

그가 몸을 돌려 아래를 바라보니 산골짜기는 이미 번식한 넝쿨 요괴에게 점령당했고, 양쪽의 산에도 넝쿨이 늘어나 있어서 퇴로는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대로 뚫어버려!”

그가 손을 흔들자 법력이 솟구치면서 앞에 용각단추(龍角短錐)가 나타났다. 이어 빛이 흔들리자 갑자기 용의 포효가 들려왔고 넝쿨 요괴의 입을 향해 돌진했다.

용각단추의 금빛이 강해지자 완벽한 금룡이 그 위를 맴돌았고, 절대 막을 수 없는 기세로 넝쿨 요괴의 중심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수많은 꽃술에 붙잡혀 속도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검광이 뒤따라 왔다. 꽃술이 가까워졌을 때, 검명(劍鳴)이 울렸고, 칼날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수많은 예리한 검광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꽃술 대부분을 베었다.

하지만 용각단추는 여전히 수많은 꽃술에 잡혀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칠흑 같은 검은 그림자가 그 안으로 파고들어갔고, 용각단추에 가까워졌을 때 외침이 들려왔다.

“금강호법!”

그러자 새까맸던 백소천의 몸에서는 까만빛이 사라졌고, 그의 뒤로 상반신을 노출한 금강호법의 허상이 나타나 주먹을 불끈 쥐더니 강하게 내리쳤다.

금강호법의 몸이 갑자기 빛나더니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몸의 빛이 백소천의 주먹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눈부신 하얀 빛이 번득였다.

펑!

폭발음이 울렸고, 금강호법 신통의 모든 힘이 담긴 백소천의 주먹이 용각단추 끝에 꽂혔다.

금빛과 하얀 빛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순식간에 용각단추를 휘감았던 꽃술이 끊어지면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고, 나팔꽃 중앙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퍼펑!

나팔꽃의 끝부터 터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금빛이 뿜어져 나와 그대로 산산조각을 냈다.

눈앞에서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자 심협은 주저하지 않고 힘이 빠진 백소천을 잡고 법보를 다시 불러들인 뒤 곧장 쏜살같이 골짜기 밖으로 날아갔다.

산골짜기 너머를 몇 리나 날아간 후에야 심협은 뒤에서 쫓아오는 기미가 없음을 깨닫고는 백소천을 부축한 채 천천히 내려갔다.

두 사람은 땅에 내려오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대단한 놈이었어. 만약 저놈의 포자 가루에서 나온 넝쿨에 걸렸으면 우리 둘 다 빠져나오기 어려웠을 걸세.”

백소천이 아직도 두려운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저놈을 임심모가 몰랐을 리가 없소. 잠깐 쉬었다가 그녀를 찾아가서 따집시다.”

심협은 그녀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치솟았다.

“심형, 그래도…… 너무 화내지는 말게. 내 보기에 임 소저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네.”

백소천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면 누구에게 협박이라도 당했겠소?”

심협은 눈을 치켜뜨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

“그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안 그런가?”

백소천은 멍하니 웃으며 답했다.

“정말 홀렸나 보군.”

심협은 눈을 부릅뜨고 백소천을 노려봤다.

“아, 알겠네. 이제 말 안 하면 되잖나.”

백소천은 항복을 선언하듯 두 손을 들었다.

심협은 그를 무시하고 의식을 움직여 원구를 불러냈다.

“심 도우, 무슨 일로 날 부르셨소?”

원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고충을 풀어서 사람 좀 찾아주시오.”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은 있습니까?”

심협이 손을 뒤집자 손에서 하얀 옥갑이 나타났다. 딸깍하고 열린 옥갑 안에는 화홍색 식물 줄기가 있었다. 이전에 따놓았던 낭독화령이었다.

“이 꽃이 그 여자의 치마에 묻었을 것이오. 냄새가 남아 있나 확인해보시오.”

“심형, 그래서 그 꽃을 땄던 건가?”

“그 여인은 맨손으로 낭독화령을 꺾었소. 그게 어떻게 보통 사람이겠소? 그러니 당연히 대비해야지.”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구는 옥갑을 받아 꽃 위에서 손을 살짝 흔들어 냄새를 맡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오? 뭔가 다른 게 있소?”

심협이 서둘러 물었다.

“아닙니다. 단지 낭독화령의 비린내가 너무 독해서요.”

심협과 백소천은 당황했다. 그들은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우가 말한 여자는 아마도 호족인 모양이군요.”

“호족! 역시…… 백형, 정말 미혹술에 넘어간 모양이구려.”

“그럴 리가!”

백소천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백 도우가 환술이나 유혹에 넘어간 건 확실히 아닌 듯합니다.”

원구가 거들듯 말했다.

“그럼 더 문제인데……. 그건 정말로 정신이 나간 게 아니오!”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원구는 손가락을 두어 번 문질렀다. 그러자 손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네 마리의 좁쌀만 한 푸른 고충이 나타나 날갯짓을 했는데,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네 마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고, 몸이 빛나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원구의 두 눈이 갑자기 커졌다.

“심 도우가 찾는 사람이 부근에 숨어 있군요. 한데 방금 그녀가 갑자기 내 고충 한 마리를 죽였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를 계속 감시한 모양이군. 백형, 이래도 그녀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할 거요?”

심협의 물음에 백소천은 혼란스러운 듯했다.

“갑시다. 안내해주시오.”

원구는 고충이 죽은 방향을 향해 날아갔고, 심협과 백소천도 바로 뒤따랐다.

세 사람은 매우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해 몇 리를 날았고, 잠시 후 비교적 높고 경사진 땅에 도착했다. 그곳의 가장 높은 나무에서 산산이 부서진 고충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찾기 쉬워졌군.”

원구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는 다시 회백색 고충을 꺼낸 뒤, 이미 죽은 고충의 시체를 흔들었다.

회백색 고충은 냄새를 맡고는 바로 동쪽으로 빠르게 날아갔고, 세 사람은 다시 고충을 따라갔다.

10여 리를 쫓아가던 심협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찾았다!”

고충의 추격에 다급해진 임심모는 기운을 숨겼지만, 더는 참지 못하고 신식을 방출하여 등 뒤를 살폈다. 그리고 그 순간 심협에게 포착된 것이다.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임심모를 쫓았다.

임심모는 서둘러 도망치던 중 불과 10여 리 뒤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자 화들짝 놀랐다. 그 순간, 몸에서 하얀 빛이 흐르더니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흐릿해졌고, 심협의 시야에서 다시 사라졌다.

심협은 곧장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다시 쫓았다.

그가 이번에 나타났을 때는 임심모의 뒷모습이 보였는데, 그녀는 아래의 우거진 숲으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고, 심협이 뒤쫓아 내려갔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백소천과 원구가 도착했을 때, 심협은 커다랗고 기이하게 생긴 나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크고 기묘한 꽃은 높이가 10여 장이나 되었고, 요염한 혈홍색을 띠고 있었다. 꽃줄기도 없고 녹색 잎도 없는 것이 마치 넓은 대지에 덩그러니 자란 외로운 꽃 같아서 몇 번을 봐도 이상했다.

“무슨 일인가?”

백소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 심협이 대답하기도 전에 원구가 이 크고 이상한 꽃에서 회백색 고충을 회수하며 말했다.

“여기까지 쫓아왔는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사람은 놓쳤지만 마을은 찾은 듯하오.”

그 말에 백소천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인가? 여아촌을 찾은 건가? 어디 있나?”

하지만 한참을 둘러봐도 마을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지 않소. 저 커다란 꽃 안에 말이오.”

심협이 답했다.

방금 그는 현음미동으로 살펴본 결과 커다란 꽃 가운데에서 마을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았다.

“아마도 결계 금제겠지. 원 도우, 서원고로 해보시죠.”

“내게 맡기십시오.”

말을 마친 원구가 두 소매를 크게 흔들자 두 줄기의 뿌연 구름이 쏟아져 나와 커다란 꽃을 향해 몰려갔다. 물론 서원고충이었다.

심협과 백소천은 이 온몸에서 썩은 내가 나는 작은 고충들을 피해 얼른 뒤로 물러났다.

서원고충이 일제히 커다란 꽃에 다가가자 커다란 꽃도 붉은 빛을 희미하게 반짝였다.

모든 서원고충이 회색 안개가 되어 재빨리 커다란 꽃의 곳곳으로 스며들자 커다란 꽃의 혈홍색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하지만 잠시 후, 커다란 꽃에 붙어 있던 회색 안개가 일제히 흩어지더니  회색 곤충으로 변하여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원구의 소매로 들어오기도 전에 모두 생기를 잃고 땅에 떨어졌다.

“죽다니!”

심협은 일순 긴장했다.

“금제의 영기에 강렬한 독이 담겨 있었는데 서원고충이 해독을 못할 정도였습니다.”

원구는 땅에 가득한 서원고충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심협은 조용히 대책을 생각했고, 백소천은 한 걸음 나아가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찾지 못했다.

한데 갑자기 심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골짜기에서 독액이 묻은 모양이오. 정양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두 분이 호법을 서주십시오.”

“어찌 지금에야 그런 말을 하는 겐가?”

백소천이 당황한 듯 물었다.

“큰 지장은 없소. 잠시 정양하면 괜찮을 거요.”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백소천과 원구는 몇 장 떨어져 호법을 섰다.

심협은 두 눈을 감았지만, 법력을 운공하여 정양하는 대신 천책 공간으로 들어갔다. 앞에 있는 커다란 꽃의 결계에 관한 실마리를 찾지 못해 염치 불구하고 원 도인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의 모습이 천책 공간의 금빛 대청에 나타났다.

잠시 후, 금빛 대전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점차 모습을 갖추었고, 백의를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원 도인이었다.

“심 도우, 또 무슨 일이 생긴 것이오?”

원 도인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큰일은 아닙니다. 사실 비경의 결계를 마주쳤는데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선배님께 방법을 묻고자 합니다.”

“어디 말해보시오. 어떤 결계가 그대를 괴롭히는 것이오?”

심협은 여아촌의 커다란 꽃의 결계를 원 도인에게 상세하게 말했다.

“벌써 여아촌에 도착한 것이오?”

“어떻게 여아촌이라는 걸 아셨습니까?”

원 도인의 놀란 목소리에 심협도 놀라서 되물었다.

“그대가 말한 꽃의 결계는 일화일세계(一花一世界)라는, 불문에서 매우 심오한 결계술이오. 다행히 내가 파훼법을 알고 있으니 알려주리다.”

“감사합니다, 원 도우.”

심협이 서둘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원 도인은 파훼법을 자세하게 설명했고, 심협도 점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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