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화. 벌들의 습격
“그림처럼 아름다운 건 알겠는데 순결한 건 어찌 아시오? 설마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심경을 꿰뚫어보는 신통이라도 익힌 것이오?”
심협은 일부러 비꼬았다.
“심형은 모르는군. 누구는 평생 봐도 아무런 관심이 안 생기는 데 누군가는 한 번만 봐도 아주 오랜 세월을 봐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이지.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가을바람에 옥 같은 이슬이 맺히는 칠월칠석, 그 1년에 단 하루의 만남이 인간사의 무수한 속된 만남보다 낫구나.”
“그건 모르겠고, 누군가의 바보 같은 얼굴이 여인을 놀라게 한 것은 알겠소.”
심협은 인정사정없이 비웃었고, 백소천은 자기 얼굴을 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티가 났나?”
“백형, 정말로 저 여인이 마음에 든 거요? 그 잠깐 본 걸로?”
심협이 궁금하여 물었다.
“첫눈에 반하면 안 될 게 있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사문이 어딘지 알아내지 못했군그래.”
백소천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자 심협도 따라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우선 할 일부터 합시다. 그 뒤에 같이 임 소저를 찾아보는 거요. 어떻소?”
“역시 의리가 좋긴 좋군. 그럼 이제 어디로 가면 되나?”
엄지를 치켜들면서 바보처럼 웃는 백소천을 보며 심협은 어이가 없었다. 백소천은 방금 그 여인의 미모에 넋이 나가 길을 물었던 것은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여인과의 대화를 짧게 설명했고, 이어 두 사람은 걸음을 옮겼다.
떠나기 전, 심협은 백소천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몸을 돌려 화독천 너머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는 순양검배로 낭독화령을 잘라 재빨리 옥갑에 담았고, 절대로 손은 대지 않았다.
“그건 뭐하려 그러나?”
그가 다시 몸을 돌리자 백소천이 궁금한 듯 물었다.
“언젠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러오.”
심협은 얼버무리며 앞장섰고, 백소천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따라나섰다.
임심모의 말대로 산골짜기는 멀지 않았고, 찾는 데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두 사람은 반 시진 만에 울창한 숲을 지나 그곳에 도착했다.
산골짜기 입구에 서서 심협은 숨을 골랐다.
‘정말 작은 산골짜기로구나.’
입구는 마치 조롱박 입구처럼 좁아서 두 사람이 어깨를 딱 붙여야 나란히 갈 수 있을 정도였지만, 멀지는 않았고, 좀 더 들어가니 갑자기 확 트였다.
“이 골짜기에서 무채색의 빛이 나온다 하지 않았나? 길을 잘못 든 건가?”
백소천은 골짜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서남쪽 10여 리 떨어진 산골짜기는 여기뿐이오. 다른 산골짜기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아 그녀가 말한 산골짜기는 여기가 맞을 게요.”
“그럼, 여기가 맞겠지. 임 소저도 빛을 우연히 봤다 하지 않았나?”
“그녀가 백형 같은 호색한을 속여넘기려고 둘러댄 말이라는 생각은 안 하오?”
심협이 웃으며 농을 건넸다.
“임 소저는 그런 사람이 아닐세! 됐네. 혹시 모르니 신식으로 살펴보세.”
백소천은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감고는 두 손가락을 미간에 대고 신식을 펼쳤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뜨고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신식이 스며들지가 않아!”
그 말을 듣고는 심협도 바로 두 눈을 감고 신식을 뻗었다.
“이곳에 있는 독무가 신식을 막고 있는 모양이오.”
“그럼 맞는 거 아닌가!”
백소천이 대뜸 소리쳤다.
“맞다니? 뭐가 말이오?”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곳을 찾았으니 여기가 맞지 않느냐 이 말일세.”
백소천이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지 않겠나?”
백소천은 앞장서서 성큼성큼 골짜기로 들어갔고, 심협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10여 보를 들어갔을 때, 갑자기 앞에서 하얗고 짙은 안개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두 사람을 뒤덮었다. 이어서 두 사람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땅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비틀거렸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그대로 짙은 안개가 낀 전방으로 내달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의문이 든 순간, 무언가가 발목을 힘껏 잡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
“땅이 움직이고 미끄러지고 있네!”
백소천이 크게 외쳤다.
심협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소용돌이가 그의 소매에서 뿜어져 나와 몸 아래를 감싼 하얀 안개를 걷어냈다. 그러자 팔뚝 굵기의 검은 넝쿨 두 개가 그의 발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 그가 서 있던 곳은 땅이 아니라 넝쿨이 엉켜서 만들어진 그물 같은 곳이었고, 지금 그들은 그물에 붙들려 산골짜기로 끌려가고 있었다.
잠시 후, 심협은 갑자기 전방의 짙은 안개 속에서 윙윙거리는 날갯소리에 이어 주먹만 한 검은 물체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심협이 서둘러 피수결을 결인하자 한 겹의 푸른 광막이 그를 보호했고, 백소천 역시 뭔가를 중얼거려 금빛 광막으로 몸을 뒤덮었다.
펑! 펑!
빠르게 날아오던 검은 물체가 차례대로 그들의 보호막에 부딪혔다가 튕겨 나가면서 작은 충돌음이 어지럽게 들려왔다.
뒤이어 검은 물체가 날갯짓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심협은 그제야 그것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몸체에는 노란색과 검은색이 뒤섞여서 호랑이 얼룩 같은 줄무늬가 있었고, 꼬리에는 검푸른 빛깔의 영롱한 바늘이 꼬리처럼 달려 있었는데, 길이가 3촌에 달했다.
“호문독봉(虎紋毒蜂)!”
심협의 경악성이 울렸다.
독벌 중에서도 독성이 가장 강하고 매우 흉악한 것으로, 살아 있는 물체가 접근하면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공격을 가한다. 게다가 독침이 부러지더라도 상대가 완벽하게 독에 중독되어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이 독벌들은 점점 더 빠르게 날갯짓을 했고, 일제히 꼬리에 달린 독침을 두 사람에게 조준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땅! 땅!
굉음에 돌아보니 피수결 광막에 10여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렸고, 날카로운 독침이 그 구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독침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감히!”
심협이 차갑게 외치자 기세가 갑자기 증폭하면서 강력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피수결 광막이 커져갔다.
휭!
강한 바람 소리가 울리면서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호문독봉들이 일제히 밀려났다. 하지만 녀석들은 금세 다시 달려들었다.
심협이 손을 들자 순양검배가 나타났다. 이어서 심협이 한 손으로 검결을 맺고는 손을 휘두르자 순양검배가 휙 소리와 함께 움직였고, 순식간에 앞에서 달려들던 예닐곱 마리의 독벌이 반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곧바로 사방에서 더 많은 독벌이 다시 돌격해왔고, 그 날개 소리는 마치 폭우처럼 요란했다.
심협은 빼곡하게 돌격해오는 독벌을 보자 소름이 돋아 서둘러 다시 피수결로 몸을 보호하는 동시에 신식으로 검을 제어하여 용이 헤엄치듯 주변을 베었다.
검광이 쉬지 않고 반짝였다. 독벌은 쉽게 썰려 나갔지만, 그 수가 너무나 많다 보니 금방 순양검배를 뒤덮었다.
심협이 다시 손목을 돌리자 손에서 10여 장의 푸른 부적이 나타나 독수리처럼 하늘 가득한 독벌 떼를 향해 날아갔다.
“폭(爆)!”
심협이 가볍게 외치자, 폭발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면서 부적이 불꽃을 뿜었고, 벌 떼를 휩쓸었다.
수많은 호문독봉이 날개를 잃고 떨어졌지만, 여전히 심협을 향해 달려드는 것들이 있었다.
그때, 외침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금강호체!”
거의 동시에 심협은 몸 주변에서 뜨거운 기운이 치솟았고, 발밑에 금빛 물결이 일렁이더니 희미한 금빛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와 거대한 금종(金鐘) 형태의 광막이 생겨났다. 광막이 주변으로 확장하자 독벌들이 물러났다.
심협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백소천이 기이한 법결을 맺은 채 온몸에서 강력한 법력 파동을 발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금강호체가 언제부터 두 사람을 보호할 수 있게 된 거요?”
심협이 놀란 듯 물었다.
“서역에서 돌아온 뒤로 깨달음을 좀 얻었지. 두 사람이 아니라 두 명이 더 있어도 보호할 수 있게 됐다네.”
백소천이 자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데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몸에서 법력이 강렬하게 요동쳤고, 금종의 광막도 반짝이면서 곧 사라질 것 같았다.
“허풍 좀 떨자마자 바로…….”
허나 심협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갑자기 몸에서 법력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숙여 보니 발목을 감싸고 있던 검푸른 넝쿨에서 은은한 빛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법력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심협은 팔을 휘둘러 순양검배를 불러들여 검푸른 넝쿨을 베었다.
그 순간, 넝쿨이 심협을 끌어당겨 순양검배의 궤도를 막아섰다. 다행히 순양검배와 그는 연결된 상태라 그의 이마를 스치는 순간 검광이 비껴났다.
허공으로 돌진한 검배는 심협에게서 멀리 떨어져 먼 곳에 있는 넝쿨을 베었다.
챙!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광이 땅에 떨어지면서 그대로 깊은 지하에 있는 넝쿨을 베자 검푸른 수액이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심협의 몸을 휘감은 넝쿨은 법력 흡수를 멈췄지만, 끊어진 부분을 다시 연결하려는 듯 그를 더욱 거세게 땅속으로 끌어당겼다.
심협은 법력을 두 다리에 불어넣고는 사월보를 시전하여 있는 힘껏 넝쿨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넝쿨은 엄청난 속도로 땅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위타호법(韋駝護法)이여, 악마를 물리치러 현신하소서.”
백소천의 외침과 함께 금빛이 사라지더니 피부가 순식간에 칠흑처럼 검게 변했고, 긴 머리카락이 솟아오르더니 온몸의 기운이 돌변했다. 본래 준수하던 외모가 갑자기 험악하게 변하여 절에 있는 위타호법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수많은 독벌의 침이 꽂혔으나, 금빛으로 번득이는 그의 몸에는 조금의 손상도 없었다.
“내 법력을 흡수하라!”
백소천이 외치더니 도(刀) 같은 손을 강하게 땅속에 꽂았다.
그의 손은 그대로 땅속의 검푸른 넝쿨을 관통했다. 그러자 안에서 검푸른 즙이 튀어나와 그의 옷과 팔을 적셨다.
치이익!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고, 백소천의 가슴 부근 옷은 빠르게 부식되어갔지만, 그의 팔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리 나와!”
백소천이 일갈하며 산골짜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가 강하게 팔을 잡아당겼다.
쿠르릉!
땅이 무너지는 소리가 산골짜기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왔다. 뒤이어 커다란 무언가가 안개 깊은 곳에서 뽑혀 나와 허공에 곡선을 그리며 골짜기 입구 쪽으로 강하게 떨어졌다.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산골짜기 가득하던 짙은 안개가 양쪽 산을 타고 위로 솟구치면서 산골짜기는 삽시간에 텅 비어 버렸다.
백소천에게 끌려 나온 것은 수많은 넝쿨이 교차해 만들어진 것으로, 줄기에는 가늘고 자질구레한 넝쿨이 서로 엉켜서 괴상하고 흉악한 얼굴이 되었다.
커다란 얼굴 왼쪽 끝에 물항아리만 한 시커먼 벌집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요염한 색깔의 꽃이 보였다. 나팔꽃처럼 생겼지만 보통 나팔꽃보다 10배는 컸다.
“우리를 공격한 게 저 넝쿨 요괴였군.”
백소천은 침을 뱉으며 말했다.
“저것들이 우리를 공격한 게 아니라 우리가 저들의 영토에 쳐들어온 것이오. 아직도 모르겠소? 임심모가 우리를 속인 것이오.”
“임 소저가……그럴 리가 없네. 분명 좋은 마음으로 알려준 게야. 그녀는 들어와본 적은 없다고 했잖은가.”
백소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대꾸했다.
“백형, 정말 귀신에 홀린 게요?”
심협은 정말로 할 말이 잃었다.
‘임심모가 백형에게 미혹 술법을 시전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평소 냉정했던 백형이 이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한데 그때, 뒤에서 희미하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주…… 죽여.”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넝쿨 요괴의 입은 닫혀서 가만히 있었다. 그 목소리는……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커다란 나팔꽃에서 나왔다.
희미한 목소리가 멈추자 활짝 피어 있던 요염한 색깔의 나팔꽃은 잎사귀가 갑자기 수축해 기다란 관 같은 모양이 되었다. 이어서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수축했던 나팔꽃이 갑자기 다시 펴졌고, 그 가운데에서 하얀 가루가 화산 폭발하듯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두 사람은 바로 뒤로 물러나 호흡을 멈췄다.
동시에 심협은 손을 휘둘러 반원 모양의 물 보호막을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