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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80화 (580/1,214)

580화. 여아촌(女兒村)

“해독 진주였군! 그리 강한 독무가 순식간 사라지다니, 놀라운 위력이다!”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바로 만독 진주를 꺼내 무언가를 읊조린 후, 저물법기에 넣지 않고 몸에 부착했다. 이제 다시 그 독이 나타나더라도 바로 발동할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뒤이어 남은 두 사람의 저물법기도 살폈지만, 더는 특별한 게 없었다.

그는 모든 물건을 임랑환에 넣고 침상에 누웠다.

그동안 계속 바다에서 길을 재촉하느라 밤낮으로 쉬지 않았더니 심신이 확실히 피곤했는지 금세 깊이 잠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심협은 다시 구범청련의 행방을 조사했다. 백소천과 원구도 천책 공간에서 나와 조사를 도왔다.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심협은 원구의 성격을 완벽히 파악했다. 게다가 그의 실력이 강해진다 해도 계약 표식이 있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마음 놓고 풀어준 것이다.

세 사람은 며칠 동안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아쉽게도, 알아낸 것은 없었다.

심협은 비록 구범청련은 찾지 못했지만, 다른 일에는 그런 대로 수확이 있었다. 곤토인뇌부의 보조 재료를 모두 모은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월성자뿐이었다.

게다가 심협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유능한 연기 대사에게 현황일기곤과 영양신철이 담긴 선장을 맡겼다. 두 보물을 합쳐서 현황일기곤의 위력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설백단을 건네받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자 심협은 일약재로 왕복을 찾아갔다.

소자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와서 맞았다.

“심 선배님, 오셨군요. 왕 장로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소자는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한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올라가려던 심협이 갑자기 몸을 휙 돌려서 가게 밖 거리로 시선을 던졌다.

“선배님, 왜 그러십니까?”

옆에서 소자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가게 밖을 바라봤다. 행인들이 북적거릴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십혐은 시끌벅적한 거리를 한동안 지켜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 일도 아니오.”

그는 고개를 젓고는 계단을 올랐다.

“무슨 일입니까?”

천책 공간에서 원구가 물었다.

“누가 절 엿보고 있었습니다.”

심협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엿보다니, 누가 말입니까?”

원구는 신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인데도 목소리를 낮춰 물어봤다.

심협 정도의 경지는 감각이 더없이 발달해 시선 하나에도 매우 민감할 테니 절대 틀릴 리가 없었다.

“제대로 못 봤소. 봤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라서…….”

“저희는 나성군도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누군가에게 밉보였을 리는 없고, 아마 며칠 동안 구범청련을 알아보고 다녔으니 이곳 세력의 눈에 띈 모양이군요. 너무 개의치 않으셔도 될 겁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오.”

심협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은연중에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방금 전의 시선은 그만큼 강렬했던 것이다.

* * *

일약재에서 두 거리가 떨어진 외진 골목. 금빛이 반짝였다. 그 안에는 금색 유리 거울이 있었다.

금색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가 거울에서 튀어나왔다. 견씨 등의 일행이었으나 양의미진환진에서 사라진 소녀였다.

“저자도 여기로 왔을 줄이야…….”

그녀는 일약재 쪽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다시 사라졌다.

* * *

“심 도우, 시간 맞춰서 잘 오셨소.”

왕복이 허허 웃으며 맞이했다. 이전보다도 더 반기는 듯했다.

“설백단은 완성되었습니까?”

심협은 다소 의아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본론부터 꺼냈다.

“약속이니 당연히 지켜야지요. 오늘 아침에 단약이 도착했소.”

왕복이 웃으며 손을 크게 휘두르자 탁자 위에 다섯 병의 단약이 나타났다.

심협은 그중 하나를 들어 마개를 열었다. 짙은 한기가 흘러나오자 마치 순식간에 겨울이 온 것처럼 방 안이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병에는 다섯 개의 설백단이 담겨 있었는데, 품질은 유파도에서 산 것보다 뛰어났다.

그는 나머지 단약도 확인한 다음에야 흡족해했다.

“역시 일약재는 동해 바닷길 제일의 연단 명가로군요. 감복했습니다.”

심협은 다섯 병의 단약을 챙기고는 공수하며 인사했다.

“과찬이오. 도우께서 전에 말한 나머지 눈물 요괴의 진주는 가지고 오셨소?”

왕복의 물음에 심협은 말없이 탁자 위로 소매를 흔들었다. 그러자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이전과 같은 네 개의 옥합이 탁자 위에 나타났다.

왕복이 옥합을 열어보니 눈물 요괴의 진주로 가득했다.

“심 도우의 재주는 정말 신통하오. 이렇게 많은 눈물 요괴의 진주를 얻다니, 감복은 내가 해야 할 것 같소! 하하하!”

왕복이 놀란 듯 감탄했으나, 심협은 그저 웃을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이것들도 전부 설백단으로 연단할 것이오?”

“그렇습니다.”

“알겠소. 보름이면 완성될 것이오.”

왕복은 옥함의 뚜껑을 닫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그럼 보름 뒤에 올 테니 부탁드립니다. 아, 혹시 왕 장로님께서는 구범청련을 아십니까?”

거래를 마치고 일어나려던 심협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었다. 며칠간 성안의 수많은 세력에 묻고 다녔지만, 일약재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구범청련? 당연히 알고 있소. 구범청련을 찾고 있는 것이오?”

왕복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습니다. 혹시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심협의 눈에 희망의 빛이 서렸다.

“이거 참……. 우리 일약재도 공을 들여서 찾아 다녔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소. 허나 구범청련의 출현은 규칙적이니 몇 년 후면 몇 송이의 청련이 세상에 나타날 터. 심 도우가 그때 군도에 머문다면 기회가 생길 것이오.”

왕복의 대답에 심협은 실망했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일약재를 나온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백방으로 알아봤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정말 원구의 말대로 사대상맹의 수사를 납치하기라도 해야 하나?’

한숨을 내쉬던 심협의 머릿속을 어떤 생각이 퍼뜩 스쳐갔다.

심협은 서둘러 객잔으로 돌아갔다. 구범청련에 대해 알아보러 돌아다니느라 백소천과 원구 모두 자리에 없었다.

심협은 문과 창문을 잠그고 금제를 열어서 천책 공간으로 들어가 금색 대청에 몇 명을 소환했다.

반나절이 지나자 누군가 나타났다. 원 도인이었다.

“심 도우,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겐가?”

원 도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원 도인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나성군도의 구범청련을 아십니까?”

심협은 말을 돌리지 않고 직접 물어봤다.

“구범청련이라……. 들어는 봤네. 서쪽 영산 어느 불문의 영련으로, 생존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서천 영산 외에 나성군도의 여아촌(女兒村)에서만 자란다고 들었네. 이 청련은 진선기 이하의 수사는 신혼이 견고해지고 돌파에 도움이 되지. 허나 진선기 이상의 수사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심 도우는 어찌하여 구범청련을 궁금해 하는 것인가?”

원 도인이 의아해하며 물었으나, 심협은 가슴이 벅찼다. 역시 원 도인은 구범청련을 알고 있었다.

“후배를 위해 찾고 있습니다. 나성군도는 알겠는데 여아촌은 어디입니까? 어느 종파의 이름입니까?”

그는 바로 핑계를 대고는 계속 물었다.

“여아촌에 대해서는 못 들어봤을 수 있지. 여아촌은 은둔하는 종파니 말일세. 누가 세웠는지는 모르나 여아촌의 제자는 독공에 능하고 암기와 봉인 법술에 뛰어나다네. 다만 그곳 제자들은 천하에 돌아다니는 게 극히 드물어서 그 존재를 아는 자가 확실히 적지.”

“여아촌은 나성군도에 있는 겁니까?”

“그건 빈도도 잘 모르겠네. 문하의 제자가 수백 년 전에 한번 가봤다고 하여 간단하게 물어보긴 했는데…… 어디였더라……?”

원 도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 생각에 잠겼다.

심협은 기대와 긴장이 뒤섞인 심정으로 원 도인을 바라봤다. 그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할까 봐 걱정됐다.

“옳거니! 그때 제자가 여아촌은 나성군도의 채운도에 있다고 했네. 허나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군.”

“채운도…….”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나성군도로 올 때 지나친 적이 있는 섬이었다.

“원 도우의 조언에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심협은 원 도인에게 공수했다.

“구범청련이 필요한 거라면 뇌 도우에게 말하면 더 편했을 걸세. 그라면 분명히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일세.”

원 도인의 말에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 도우, 왜 그러는가?”

“아,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을 좀 했습니다. 저와 뇌 도우는 친분이 깊지 않으니 갑자기 그런 영물을 달라 하기는 쉽지 않겠군요.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겠습니다. 아, 원 도우. 이전의 그곳에 옥령과와 봉인 법구가 아직도 있습니까?”

심협은 고개를 젓고는 화제를 돌렸다.

“물론 있지. 필요하다면 주겠네.”

원 도인은 바로 옥령과와 봉인 법구를 꺼내 건넸다.

심협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원 도인을 바라봤다.

그는 오래전부터 천년 뒤 꿈속 세상의 물건을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왔고, 옥령과와 봉인 법구를 원 도인에게 맡겨뒀었다. 단지 지난 번 현실로 돌아온 후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에 잊고 있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심협은 제발 성공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현실에서 수련에 필요한 자원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꿈속의 드높은 경지를 앞세워 모든 일을 순조롭게 해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원 도인은 옥령과와 봉인 법구를 심협에게 건넸지만, 마치 강력하기 그지없는 장애물이 있는 것처럼 둘 사이의 금빛 안개 공간을 뚫지 못했다.

“아니, 이게 왜 이러지? 심 도우, 지금 어디 있는가? 주변에 혹시 강력한 금제가 방해하고 있는 겐가?”

원 도인은 손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심협은 실망을 금치 못하고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네, 지금 어떤 비경에 들어와 있는데 아무래도 이곳의 금제가 문제인 모양입니다. 옥령과와 봉인법구가 필요한 건 아니니 괜찮습니다. 나중에 주십시오.”

“알겠네.”

원 도인은 심협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답했다.

심협은 다시 객잔의 방으로 돌아왔다. 천책을 통해서도 꿈속 세계에서의 물건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긴 했으나,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마침내 구범청련의 위치를 찾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것이다.

이제 설백단과 현황일기곤이 완성되면 바로 채운도로 가서 구범청련을 찾으면 된다.

심협은 침상 위에 가부좌 틀고는 심신을 가라앉히고 설백단을 복용했다. 언제 마겁이 닥칠지 모르니 잠시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 경지를 올려야 했다.

저녁 무렵, 백소천과 원구가 객잔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게 분명했다.

“두 분은 마음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구범청련이 어디서 나는지 알아냈으니까요. 설백단이 모두 완성되면 그리로 가죠.”

심협의 말에 백소천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사실인가? 그게 어딘가?”

“채운도라는군요. 구체적인 곳은 모르니 가서 찾아봐야 할 것 같소.”

“채운도? 이전에 해도에서 본 적이 있는데…… 나성군도 변경의 맹독 식물이 가득한 섬 아닌가? 구범청련이 그런 곳에 있다고?”

백소천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심 도우는 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습니까?”

원구도 믿기 힘든 듯했다.

“어느 선배님께 들었소. 믿을 만한 정보요.”

심협은 그 이상 설명하지 않았으나, 확신에 찬 모습에 백소천과 원구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후 심협은 방에 틀어박혀 설백단을 복용하며 수련했다.

원구와 백소천도 천책 공간으로 들어가 한 명은 얌전히 기다렸고 한 명은 계속해서 보랏빛 독무를 억제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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