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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78화 (578/1,214)
  • 578화. 단약을 구하다

    금빛 피부의 남자는 슬슬 초조해졌다. 친아들을 잃은 것도 당연히 마음이 아팠지만, 그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물건이었다. 자신이 큰 위험을 감수하고 얻어낸 것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에게 들킨다면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니 반드시 바로 회수해야 했다!

    사내가 굳은 눈빛으로 손을 뒤집자 손바닥만 한 수많은 부문으로 가득한 전음 부적이 나타났다.

    “금양종의 모든 제자를 데리고 와라!”

    그는 부적을 향해 낮은 소리로 말한 뒤에 결인했다. 그러자 부적은 곧장 하얀 빛으로 변하여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승려는 이런 사내의 행동을 기이하게 여겼지만, 자신도 조용히 전음부를 꺼내 들었다.

    * * *

    심협과 백소천은 뒤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한 채 남쪽을 향해 날았다.

    백소천은 뱃머리에 앉아서 보랏빛 독무를 연구했고, 심협이 비주를 조종하는 중이었다.

    이내 크지 않은 섬이 눈 아래 바다에 나타났다. 섬에는 수많은 알록달록한 초목과 꽃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맹독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는 커다란 섬이 보였는데, 마찬가지로 맹독을 가진 초목이 자라고 있었다.

    심협은 이를 보고는 내심 안도했다. 견씨 남자가 자신을 속이지는 않은 것이었다. 나성군도는 정말로 남쪽에 있었다.

    해도에 따르면 먼 곳의 커다란 섬은 나성군도 변경에 있는 채운도(彩雲島)임이 분명했다. 이 해도는 매우 정교해 각 섬의 이름과 상황이 표기되어 있었다.

    채운도는 맹독성 물질로 가득한 섬이라 매우 위험했다. 독충과 독초를 채집하는 소수의 사람 외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 비경에 가득하던 보랏빛 독무도 위치로 보면 채운도와 별로 멀지 않다. 두 곳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고민한다 해도 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계속 비주를 몰았다.

    채운도가 나타난 뒤로는 섬이 점점 많아졌다. 크기는 제각각이었는데, 가장 큰 섬은 대당의 군(郡)과 비슷할 정도였고, 수많은 평범한 백성들이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섬들에도 수선자는 있었는데, 이곳과 대당의 차이점은 평범한 백성들은 수선자들을 자주 봐서 신기해하지도, 거리를 두지도 않았다.

    심협은 한두 개의 수선의 성에 잠시 멈춰서 나성군도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는 다시 출발했다.

    정보들에 따르면 나성군도는 영역이 매우 넓고,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든 곳의 면적을 합치면 대당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곳은 동해였기에 바닷속에는 수많은 요수가 살고 있는데, 때때로 섬에 사는 백성을 공격했기에 수선자의 보호가 없으면 백성들은 평안한 삶을 누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수선자에게 유리한 환경과 동해의 풍부한 자원까지 더해져 나성군도의 수선계는 대당보다 번성하여 사대상맹 외에도 수많은 수선 종파가 있었다.

    물론 대당과 동승신주에서 온 산수들도 있다. 그러나 대당과는 워낙 멀어, 산수의 대부분은 동승신주에서 온 자들이었다.

    하룻밤을 더 날아간 비주는 거대한 섬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우뚝 솟은 커다란 산봉우리의 웅장함에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커다란 산봉우리는 구름 위까지 솟아 있었고, 정상에는 두꺼운 눈이 쌓여 있었고, 그 아래로는 유파성보다 다섯 배는 큰 성이 있었다.

    이 성의 이름은 나성성(羅星城). 나성군도의 첫 번째 성으로, 나성군도의 절반에 가까운 수사가 이 섬에 몰려 있다.

    규모로 볼 때 나성군도는 장안성은커녕 건업성보다도 작았지만, 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수선자였고, 건물들도 수선과 관련된 상점들이었다. 나성군도의 수선이 대당보다 발전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심협은 내심 감동하며 즉시 비주를 몰아 나성성으로 향했다.

    백소천은 보랏빛 독무를 연구하고 몇 가지를 실험해보고 싶다며 심협의 천책 공간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어느 정도 날아가다 보니 주변의 하늘에 둔광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나성성에 가까워질수록 그 빛들은 점점 모여들어 마치 모든 신선이 절을 하는 것 같았다.

    심협은 이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고, 바로 비주의 속도를 올려서 나성성 상공에 도착했다.

    나성성 상공에는 금제가 없었다. 심지어 장안성처럼 수선자가 등록을 해야 할 필요도 없었기에 둔광들이 바로 성안으로 떨어졌다.

    “정말 자유롭구나! 이게 바로 수선자들을 위한 세상이지.”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주를 몰아 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향했다.

    성안의 거리는 하나같이 네 대의 마차가 나란히 다녀도 될 정도로 넓었고, 바닥에는 청석이 깔려 있었다. 길 양쪽에는 높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생김새와 분위기는 대당의 건물들과 사뭇 달랐다.

    거리에는 수사들이 가득하여 발 디딜 틈도 없었고, 유파성보다 열 배는 번화한 모습이었다. 인간족뿐만 아니라 요족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이곳의 요족 수사들은 거울 요괴나 눈물 요괴 같은 바다의 요수들과는 달리 탁한 기운이 적었다.

    심협은 이에 관련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요족들은 동승신주에서 왔을 터였다. 동승신주는 땅이 매우 넓고 물자도 풍부하여 각종 요물이 많다고 했다.

    이곳의 요족은 대부분이 여전히 흉악하고 야만스러웠지만, 천성이 부드러운 종족도 있었다. 이런 요족들은 예법을 존중했고, 학문을 배웠으며, 일부는 인간처럼 종문을 세웠다. 요수(妖修) 문파를 세운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인간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온건파 요족들은 동승신주의 인간들에게도 조금씩 받아들여졌고, 나름 조화롭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인간과 요괴가 조화롭게 공존하다니, 대당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야! 이번 여정으로 식견이 크게 늘겠구나!”

    천책 공간 안의 원구가 혀를 차며 혼잣말로 연신 감탄했다.

    심협은 거리를 잠시 둘러보다가 한 상점에서 무언가를 물어보고는 성 중심부로 향했다.

    잠시 후, 30여 장 크기에 비취 옥석으로 만든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건물 대문의 현판에는 ‘일약재’라는 세 글자가 크게 적혀 있었다. 그 뒤로는 녹색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이 건물들이 차지한 공간은 방대했고, 주위로는 금제가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일약재 총부였다. 앞의 건물은 단약을 파는 곳이고 뒤에 있는 건물은 단약을 제련하는 곳들이다.

    심협은 안으로 들어섰고, 매우 크고 넓은 곳이었다. 널찍한 대청에는 수백 개의 판매대가 놓여 있었는데, 각 판매대마다 단약이 가득했다. 대청에는 단약을 사려는 수사가 가득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경지가 낮지 않아서 그와 같은 출규기 수사가 한눈에 봐도 몇 명은 됐다. 가게의 점원들은 곳곳에서 손님들에게 단약을 설명하느라 바빠 보였다.

    심협이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보려는 순간, 보라색 옷의 소녀가 갑자기 나타났다. 열일곱 정도로 보이는 소녀의 아리따운 얼굴에는 약간 어린 티가 났다.

    “심 선배시죠? 설백단을 찾으러 오셨고요?”

    보랏빛 옷의 소녀가 몸을 숙이며 인사했다.

    “누구시기에 내 이름과 방문 목적까지 알고 있는 것이오?”

    심협은 내심 경계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는 소자(小紫)라 합니다. 일약재 왕 장로님 아래의 시녀지요. 심 선배께서 유파성과 창월성, 두 곳의 일약재에서 설백단을 사기 위해 방문하셨던 소식이 여기까지 전해졌습니다. 소녀는 줄곧 선배님께서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자는 몸을 일으키고는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반면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일약재의 세력은 놀라울 정도로 방대한 듯했다. 이렇게 절묘하게 접근해오다니, 그가 일약재 건물로 오기도 전부터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내부에 전했으리라.

    “소 소저의 말대로요. 나는 심협이라 하고, 설백단 때문에 왔소. 최근에 운 좋게 눈물 요괴의 진주를 얻어서 단약 제조를 부탁하러 온 것이오.”

    심협은 마음을 추스르고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로 눈물 요괴의 진주를 얻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본재의 왕 장로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소자는 놀란 듯하더니 이내 기쁜 내색으로 말했다.

    “고맙소. 안내해주시오.”

    심협이 담담하게 답하자 소자는 그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 금방 5층의 우아한 장식의 작은 청에 도착했다.

    청에는 모자를 쓴 누군가 앉아 있었다. 뚱뚱하고 속물처럼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그가 뜨거운 물을 잔에 붓자 김이 모락모락 솟으면서 차향(茶香)이 사방으로 퍼졌다.

    “왕 장로님, 심 선배를 모셔왔습니다.”

    소자는 들어가자마자 중년 남자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허허, 심 도우, 일약재에 오신 걸 환영하오. 어서 앉으시오. 나는 왕복(王福)이라 하오. 일약재의 집사 장로를 맡고 있소.”

    중년 남자는 심협을 격렬하게 반겼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현음미동을 운공했다. 이제 그의 동력은 모든 것을 꿰뚫어볼 정도가 되었는데, 그의 눈에 비친 왕 장로는 무려 대승 중기로, 눈물 요괴나 보상선사보다도 위였다.

    하지만 지금의 심협에게는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는 침착했다.

    “노부가 방금 운무영차(雲霧靈茶)를 끓였소. 이 차는 동승신주 오래국(傲來國) 것인데, 도우도 좀 맛을 보시지요.”

    왕복은 눈에 의아함이 스쳐갔으나, 이내 웃으며 심협에게 영차를 따랐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척 보기에도 매우 훌륭한 영차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심 도우께서 이리 오신 것은 설백단 때문이겠죠? 한데 실망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 만든 설백단이 이미 전부 팔렸다오.”

    왕장로는 심협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왕 장로님, 심 선배께서 눈물 요괴의 진주를 구하셔서 설백단 제련을 청하러 오셨다 합니다.”

    옆에 있던 소자가 끼어들었다.

    “눈물 요괴의 진주가 있다고? 참말이오?”

    왕 장로는 하얀 눈썹을 추켜올리며 바라봤다.

    “그렇습니다.”

    심협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성성에 도착한 날, 눈물 요괴는 마침내 굴복했고, 충분한 양의 진주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그녀를 바로 놔주기로 했고, 거울 요괴도 3년 후에 놔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문제없소. 진주를 얼마나 가지고 계시오?”

    왕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대략 백 개 정도 됩니다.”

    심협은 천책 공간 안에 있는 눈물 요괴의 수를 세어보고는 대답했다. 눈물 요괴가 진주를 만들 때에는 본명원기를 소모해야 했기에 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든 것은 70여 개에 불과했고, 눈물 요괴의 석실에서 얻은 30여 개를 합쳐 대략 100개쯤 됐던 것이다.

    “백 개!”

    왕 장로는 놀란 표정으로 마치 상대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려는 것처럼 심협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요즘 적지 않은 수사가 눈물 요괴의 진주를 얻어서 일약재에 제련을 부탁하러 오곤 했는데, 대부분은 많아야 30개 정도를 들고 왔다. 한데 눈앞의 이 평범해 보이는 대당의 수사가 백 개나 가지고 왔다고 하니 놀랄 만도 했다.

    “설백단 한 알 만드는 데 진주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심협은 옥 장로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단약법에 따르면 설백단 하나에 눈물 요괴의 진주 하나가 필요하오. 다만 설백단을 만드는 건 매우 어려워서 성공률이 높지 않다 보니 우리 일약재의 심묘의 대사가 성공할 확률은 절반밖에 되지 않소.”

    왕 장로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심협은 질문을 던지고는 현음미동으로 몰래 왕 장로의 표정 변화를 관찰했는데 거짓말이 아닌 듯하자 오히려 곤란했다. 왕 장로 말대로라면 백 개의 눈물 요괴 진주로는 50개 정도의 설백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또 그 절반을 일약재에 넘겨주고 나면 남는 건 30개가 채 되지 않을 터였다. 수련하기에는 부족했다.

    다행히 눈물 요괴가 쉬지 않고 진주를 만들고 있긴 하지만, 며칠이 걸려야 다 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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