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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77화 (577/1,214)
  • 577화. 광막을 부수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마침내 동굴 끝에 도착했다. 눈앞이 밝아지면서 폭이 백여 장에 달하는 동굴이 나타났다.

    이곳의 천지영기는 기이할 정도로 짙었다. 바깥보다 서너 배는 짙은 듯했다. 또한, 동굴 안에는 영초와 광석도 많아서 거의 동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땅속이 아니라 커다란 화원 같은 광경이었다.

    “빙개초(氷蓋草), 자석영(紫石英), 통영심옥(通靈心玉)…….”

    심협은 그곳에 자란 영재의 절반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우선 이곳 영재들의 등급은 매우 높았다. 출규기 단방과 연기 재료에서 봤던 것도 있고, 심지어 대승기 수사에게도 유용한 것들도 보였다.

    대충 봐도 여기에 있는 영재의 가치는 선옥 만 개 정도는 될 터였다.

    “절반씩 나눕시다.”

    심협의 제안을 백소천이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두 사람은 바로 채집에 나섰고, 금방 모든 영재를 거뒀다.

    동굴의 한쪽 벽에 두 개의 석실(石室)이 뚫려 있었다. 거울 요괴와 눈물 요괴의 거처인 듯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물건이 있었는데 영재며 요수 재료, 인간 수사를 사냥해 얻은 법보나 법기 등이었다. 하나같이 진귀한 물건들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석실로 들어가 보물들을 챙겼는데, 이번 싸움에서 주로 활약한 심협이 눈물 요괴 석실로 들어갔다.

    석실에는 보물 외에도 벽에 수많은 하얀 진주가 박혀 있었다. 족히 30개는 될 법했다. 진주에서는 뼈를 찌르는 한기가 흘러나와 석실은 마치 얼음동굴 같았다.

    “이게 바로 눈물 요괴의 진주로구나! 엄청난 한기야. 설혼단을 만들 만하군.”

    심협은 눈을 빛내며 손을 휘둘러 이 하얀 진주를 전부 거뒀다.

    “음?”

    하얀 진주를 거둔 심협은 눈물 요괴의 석실 가장 안쪽 벽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순수한 천지영기가 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안에 뭐가 있나?”

    심협이 손가락을 튕기자 커다란 검기가 날아가 벽을 찔렀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벽에 주먹만 한 구멍하나 생기는 데 그치자 심협은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지금 그의 경지로 순양검배를 휘두른다면 최상품 법기의 일격에 맞먹을 만한데 고작 이런 작은 구멍 하나 생기는 데 그치다니!

    “이토록 단단하다니, 무슨 재료로 만든 것인가?”

    이번에는 참마검을 꺼내 들었다. 그의 수많은 보물 중 가장 날카로운 검.

    참마검에 법력을 주입하자 부러진 부분에서 찬란한 금빛이 솟아 나오면서 부러진 검날을 채웠다.

    심협은 크게 팔을 휘둘러 금빛 장검으로 돌벽을 베었다.

    샥!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돌벽이 두부처럼 쉽게 잘렸다.

    이에 심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의 돌은 매우 단단할 뿐만 아니라 왕성한 원기까지 담겨 있으니 둔지부 같은 수단으로도 뚫을 수가 없었는데 참마검으로는 가볍게 잘려 흡족할 만도 했다. 그는 계속해서 참마검을 휘둘렀다.

    거울 요괴의 석실에서 나온 백소천은 심협의 행동을 보고는 눈물 요괴의 석실로 들어왔다.

    이곳의 영기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아쉽게도 그에게는 날카로운 보물이 없었기에 그저 잘린 돌을 밖으로 옮김으로써 심협을 도왔다.

    참마검 덕분에 심협은 금세 벽에 10여 장 깊이의 통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깊이 파고들수록 안에서 흘러나오는 영기는 더욱 짙어졌다. 심협은 이곳이 해저 동굴의 짙은 천지영기의 근원임을 알게 됐다.

    벽은 안으로 파고 들어갈수록 더욱 단단해졌고, 참마검이 없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심협은 힘껏 칼을 휘둘러 돌을 부수고는 또 몇 장을 나아갔다. 그러자 전방의 돌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하얀 빛의 광막이 앞에서 솟아났다.

    “흠!”

    심협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광막에는 지렁이처럼 부문이 흐르고 있어서 매우 현묘해 보였다. 게다가 광막 뒤에는 또 다른 별천지가 있었는데, 안력을 운공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저 동굴의 영기는 이 광막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 하는 곳이란 말인가? 비경인가?”

    심협은 광막 앞에서 주저했다.

    “이 기운은……? 광막 뒤는 평범한 곳이 아닌 것 같군! 심 도우, 내 서원고로 시도해보십시오.”

    천책 공간에서 원구가 이 하얀 빛의 광막의 기운을 느끼고는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팔을 휘저었다.

    심협이 결인하여 손을 앞으로 내밀자 손끝이 금빛으로 빛나더니 구름 한 덩어리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수많은 회색의 작은 곤충이 몰려나와 광막을 덮었다. 뒤이어 회색 연기가 광막으로 침투했다.

    조음동의 연화금제를 부쉈을 때처럼 서원고가 광막 안으로 스며들자 하얀 금제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지금보다 열 배나 많은 서원고가 있다 해도 몇 개월은 걸릴 터였다. 심협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괜히 힘 빼지 마시오. 참마검으로 베어 봅시다.”

    심협은 담담히 말하고는 법력을 참마검에 주입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운공하는 것은 무명공법이 아닌 순양검결이었다. 참마검에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순양의 힘이 담겨 있었기에 순양검결과 더 잘 어울렸다.

    그의 법력이 주입되자 참마검의 금빛이 더욱 밝고 뜨거워졌다. 날카롭고 강력한 검기가 갑자기 솟구치면서 부근의 허공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하얀 금제를 부술 수 없음을 직감한 심협은 계속해서 순양검결을 운공하여 참마검에 법력을 주입했다.

    몇 호흡 뒤, 참마검에서 파열음이 들려왔다.

    그 파열음은 한계를 깨뜨린 소리였던 것일까? 참마검의 금빛이 갑자기 열 배는 강해졌고, 광망이 만 장 크기로 커졌다!

    검의 붉은 자국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벗겨져 사라졌다. 검은 마치 금색 빛으로 만든 것처럼 순수하고 밝아져 조금도 흠잡을 곳이 없게 됐다.

    필적할 수 없는 순양의 힘이 검에서 갑자기 폭발하자 부근의 바닷물이 모두 밀려났고, 해저 깊은 곳인 만큼 동굴에 가득했던 음한(陰寒)의 힘도 모두 증발하면서 따뜻함이 들어쳤다.

    심협의 체내에서는 순양검배가 갑자기 흥분한 듯 떨려오더니 스스로 휙 날아올라 마치 즐거워하는 제비처럼 참마검 주변을 날아다녔다. 뿐만 아니라 순양검배는 빠르게 참마검에서 흘러나오는 순양의 힘을 흡수하였다. 검배에서 희미한 금빛 무늬가 떠올랐고, 기운도 빠르게 강해졌다.

    심협은 이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백소천은 심협이 잘라낸 돌을 옮겨놓고 돌아오다가 변해버린 참마검의 모습에 놀라워했다.

    그제야 심협도 정신을 차리고는 팔을 휘둘렀다.

    금빛 성검(聖劍)이 하얀 빛의 광막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마치 소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현묘하기 그지없던 하얀 빛의 광막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잘렸다!”

    심협은 기뻐하며 광막 너머를 살폈다.

    한데 제대로 보기도 전에 짙은 보랏빛 안개가 그 틈으로 벌 떼같이 몰려와 심협의 몸을 뒤덮으려 했다.

    안색이 변한 심협은 서둘러 물러났지만, 왼손이 보랏빛 안개에 닿고 말았다.

    그 순간, 그의 왼손이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감각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보랏빛은 빠르게 퍼져 나가 순식간에 팔꿈치까지 다가왔다.

    “독!”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바로 전력으로 대개박술을 운공했다. 이어 왼손에서 찬란한 빛이 떠올랐다.

    동시에 심협은 나지막이 기합을 넣고는 참마검으로 망설임 없이 왼팔 팔꿈치를 베었다.

    “심 형!”

    백소천이 안색이 급변하여 바로 팔을 휘두르자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가 푸른 옥벽으로 변해 심협의 앞을 막았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청룡이 나타나 눈앞의 동굴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벌 떼처럼 몰려오던 보랏빛 안개는 푸른 옥벽에 막혔으나, 옥벽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빛도 바로 보라색으로 물들면서 바깥으로 빠르게 부식되어갔다.

    푸른 옥벽만이 아니라 단단하기 그지없던 동굴의 벽도 빠르게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심협의 잘린 팔은 순식간에 녹아서 보랏빛 점액으로 변해버렸다.

    “엄청난 맹독! 어서 나가세! 내 반룡옥벽(蟠龍玉璧)도 얼마 못 버틸 게야!”

    놀란 백소천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심협은 가늘게 뜬 눈으로 독안개를 바라볼 뿐, 떠나지 않고 대개박술을 운공했다. 그의 잘린 왼팔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팔이 자라났다. 지난번 꿈속 세상에서의 경험으로 대개박술이 장족의 진보를 이루었기에 잘린 팔을 회복하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한편, 이 광경을 본 백소천은 깜짝 놀랐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심협은 팔을 회복한 다음에 바로 청색의 옥벽 뒤의 보랏빛 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예리한 소리와 함께 천책의 허상이 그의 앞에 나타나 빠르게 펼쳐졌다. 이이서 금빛의 소용돌이가 천책 허상 주변에 나타나더니 강력한 흡입력을 뿜어냈다. 보랏빛 안개에 물들어 반쯤 사라진 하얀 빛의 광막 뒤에서 보랏빛 안개가 벌 떼처럼 계속 몰려왔지만, 금빛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통로 깊은 곳의 광막에서는 균열이 빠르게 닫혔고, 몇 호흡 뒤에는 완벽하게 사라져 더는 보랏빛 안개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통로 안의 보랏빛 독무도 금색 소용돌이에 모두 흡수되어 서서히 평온해져갔다.

    백소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방금 보랏빛 독무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그가 해독에 능하다고는 해도 그런 독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반룡옥벽도 천책에 흡수됐지만, 독무에 크게 부식되었으니 이제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 터라 개의치 않았다.

    “심 형, 독무를 조금 줄 수 있나? 연구해서 막아낼 방법을 찾아내 보고 싶군.”

    “안개를 담아도 부식되지 않을 용기(容器)가 있소?”

    그는 독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심 중이었다. 이곳은 미지의 비경이었기에 그 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다. 독무 때문에 포기하기는 싫었는데, 마침 백소천이 나서준다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기 있네.”

    백소천은 반투명한 수정 병을 꺼냈다. 병 입구가 수정으로 꽉 막혀 있는 것이 꽤 범상치 않아 보였다.

    심협은 손을 내밀어 병을 건네받고는 가볍게 살피더니 천책 공간에 넣어서 보랏빛 독무를 담았다. 무엇으로 만든 병인지는 모르겠으나, 보랏빛 독무에도 문제없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을 꺼내 백소천에게 건넸다.

    “이제 가세. 아까 그자들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으니 누군가 쫓아올지도 모르지. 우리 같은 외부인이 본토 수도사들과 시비가 붙으면 괴로운 법이거든.”

    백소천은 병을 받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심협도 이견은 없었으나, 가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다시 통로를 막았다. 그리고 방금 싸웠던 곳에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지웠다.

    잠시 후, 하얀 비주가 두 사람을 태우고 바다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떠나고 일각 뒤, 금색과 붉은색의 무지개가 멀리서 쏜살같이 날아와 순식간에 해저 상공에 도착했다. 뒤이어 금색 옷을 입은 데다 피부도 기이한 금빛은 띤 중년 남자와 가사를 입은 흉악한 얼굴의 덩치 큰 승려가 허공에 나타났다. 두 사람의 모두 대승 후기였다.

    “내 아들이 가지고 있던 금양보부(金陽寶符)의 마지막 기운이 여기서 느껴졌소! 누가 감히 금양보의 소주를 죽였단 말인가!”

    금색 피부의 남자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외쳤다.

    “보상 사제가 민 소주와 함께 있었으니 그도 무사하지 못한 것 같소! 어떤 놈이 감히 소양종과 현구도의 사람을 공격했는지, 어떤 작자의 소행인지 밝혀내 일벌백계하겠소!”

    덩치 큰 승려도 분개했다.

    두 사람은 분노를 쏟아내면서도 신식을 펼쳐 아래의 바다를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해저의 상황은 복잡했다. 해저 동굴은 깊은 곳에 있었고, 심협이 보상선사 등의 기운을 완전히 제거했기에 그들이 한참을 찾아도 해저 동굴이 있는 곳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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