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자세한 상황
심협은 통령 결인을 맺어 거울 요괴 몸에 주입한 뒤 손을 휘둘러 얼음을 녹였다.
거울 요괴는 다시 자유를 얻었지만, 진창해의 한기에 몸이 상하고 곳곳이 얼어붙었을 뿐만 아니라 경맥의 상처도 가볍지 않아 활기차지 않았다.
심협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그 몸에 손을 올리고 순수한 법력을 주입하여 빠르게 온몸을 돌아다니며 몸에 남아 있은 한기를 모조리 흡수했다. 또한 손을 멈추지 않고 치료 부적을 바스러뜨렸다. 녹색 빛이 거울 요괴의 몸으로 들어갔다.
거울 요괴의 몸이 푸르게 빛나면서 상처가 빠르게 치유되었고, 온몸에서 눈부신 푸른 빛이 번져갔다. 이윽고 푸른 빛은 빠르게 사라졌고, 자색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푸른 눈에 백발, 이마에는 자색 구슬이 박힌 옥대를 두르고 있어서 여성스러우면서도 정령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거울 요괴는 복잡한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보더니 고분고분 절을 했다. 그 목소리는 꾀꼬리가 우는 것 같았다.
“그리 예를 차릴 것 없다. 널 영수로 삼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부려먹을 생각은 없다. 앞으로 필요할 때 날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심협은 여인을 안심시켰다.
거울 요괴의 모습은 인간족에 가까웠고, 영지도 다른 요수보다 높았다. 성정도 부드러워 평소에는 동해 은밀한 곳에 숨어서 수련만 해왔기에 나와서 말썽을 일으키는 일은 극히 적었다. 이번에도 견씨 등이 몇 번이고 그녀의 거처를 침범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렇게까지 추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운이 나쁘게도 백 년 만에 처음 나왔다가 하필 심협을 만나 영수가 되었으니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네.”
그녀는 심협의 말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해저의 눈물 요괴와는 어떤 사이지? 그 요괴 경지는 어느 정도냐?”
거울 요괴는 그 질문에 표정이 변하더니 우물쭈물하며 말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눈물 요괴와의 관계가 괜찮은 모양이군. 답하기 싫다면 강요하지 않으마.”
심협의 두 눈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눈동자 깊은 곳의 고리 같은 청색 무늬가 빙글빙글 돌았다.
거울 요괴는 심협과 눈이 마주치자 눈이 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놀라서 눈을 떼려고 했지만, 이미 현음미동의 푸른 빛에 미혹되어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심협이 현음미동을 운공하자 눈동자의 푸른빛이 갑자기 만화경처럼 환상이 일어나 빠르게 움직였다.
거울 요괴의 표정은 몇 번 일그러지더니 곧 꼭두각시가 된 것처럼 무표정으로 변했다.
심협은 무척 기뻤다.
방금 운공한 것은 현음미동의 미혼지법(迷魂之法)으로, 위력이 강력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기와 비슷한 경지의 거울 요괴를 굴복시키지 않았는가.
“눈물 요괴 경지는 어느 정도이지?”
잡념을 버리고 차분히 물어보자 거울 요괴의 무정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녀는 얼마 전에…… 대승기로…… 올라갔고…… 현재 경지를…… 안정시키고 있습니다…….”
그 대답에 심협은 눈을 치켜떴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의 경지와 몇 가지 보물이 있으면 대승기 수사도 크게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원구와 백소천도 있지 않은가.
“너와 눈물 요괴는 어떤 관계지?”
“저와 눈물 요괴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벗…… 유년기 때부터 해저 동굴에 숨어서…… 함께 수련한…… 자매 같은 사이입니다…….”
“눈물 요괴는 어떤 신통에 능통한가? 가장 강력한 수단은?”
“그녀는 물 속성 한빙 신통에…… 눈물 요괴는 원한으로 만들어진 형태…… 그녀의 눈물에는 강력한 원한이 담겨 있어서…… 사람의 정신을 혼란과 광기에 빠뜨립니다…….”
“눈물? 원한?”
뭔가 이상했다. 이전에 일약재의 점주가 말한 눈물 요괴의 눈물로 만들어진 진주가 설마 사람을 미치게 하는 원한이 담겨 있다니!
어쨌든 진창해 절학을 익힌 그는 눈물 요괴의 한빙 신통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또 몇 가지 눈물 요괴에 관한 일과 거울 요괴의 신통에 관해 물어보고는 현음미동을 거뒀다.
“제게 뭘 한 거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거울 요괴는 좀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자 당황했다.
“알 것 없다. 옆에서 기다려라.”
심협은 대답 대신 그렇게 말했다.
거울 요괴는 심협의 제어를 받고 있었기에 황급히 일어나 한쪽에 섰다.
그때, 주위를 감싸고 있던 하얀 보호막이 갑자기 흔들렸다.
심협이 결인하여 보호막을 거두어보니 백소천이 서 있었다.
“심형, 해저 동굴이 있는 곳에 도착했네.”
백소천은 거울 요괴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가 심협에게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아래 바다를 내려다보며 신식을 펼쳐서 해저를 탐색했다.
이곳 해저는 매우 복잡해 해구와 해산 등이 즐비했고, 해저 동굴이 있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동굴은 매우 은밀한 곳에 있는 듯했다.
그는 힘들여서 찾는 대신 옆에 서 있는 거울 요괴에게 말했다.
“안내하거라.”
거울 요괴는 어쩔 수 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고, 심협과 백소천은 비주를 거둔 후 따라갔다.
두 사람과 거울 요괴는 잠시 후 구석진 해저의 갈라진 곳에 도착했다. 그 너머는 칠흑처럼 어두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울 요괴는 그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심형, 저 요괴는 믿을 만한가?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면 어쩌지?”
심협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해저 균열을 보며 답했다.
“백형, 안심하시오. 내 통령 표식을 심어놔서 지금은 내 영수가 되었소. 모든 행동이 내 제어 아래 있으니 다른 마음을 먹으면 내가 바로 알 수 있소.”
백소천은 그 말에 의아한 기색을 띠었다.
요물을 거두는 통령지술은 대부분의 문파에 다 있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자신과 경지가 비슷한 요물을 굴복시킬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형은 그동안 혼자 수련했어도 익힌 신통과 비술이 나보다 더 많고 적지 않은 비밀이 있구나. 역시 예사롭지 않아.’
백소천은 속으로 탄식하면서도 심협과 좋은 벗이 된 것이 기뻤다.
두 사람은 바로 해저 틈으로 들어가 거울 요괴의 뒤를 바짝 따랐다.
일각(一刻: 약 15분) 정도 후에야 두 사람과 요괴는 멈췄다.
이곳의 틈은 매우 커서 폭이 10여 장이나 됐는데, 그제야 그 너머로 깊은 곳에 숨어 있던 해저 동굴이 앞에 나타났다.
동굴 안은 은연중에 하얀 빛이 비쳐서 어둡지 않았고, 내부는 굴곡이 져 있어 동굴 입구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눈물 요괴는 안에 있습니다. 주인님, 어째서 눈물 요괴와 싸우시려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녀의 목숨만은 살려주시면 안 됩니까? 그리 해주시면 평생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거울 요괴는 갑자기 심협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다.
“걱정 마라. 나도 눈물 요괴를 해칠 생각은 없어.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은 것뿐이야.”
심협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거울 요괴는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환하게 웃으며 심협에게 감사의 절을 했다.
심협은 어둡고 깊은 동굴을 바라보며 뭔가를 읊조리고는 손을 뒤집었다. 그러자 흑곰 요괴에게서 받은 양의미진환진이 나타났다.
그는 이 법진을 얻은 뒤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눈물 요괴의 경지가 대승기에 도달했다 하니 양의미진환진을 시험해보기에 좋은 대상이었다.
그는 서둘러 동굴 입구에서 움직였고, 법진에 일가견이 있는 백소천이 도왔다.
* * *
바다의 어느 산호섬 암초 위. 견씨 남자 등이 초조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먼 하늘에서 한 점의 은빛이 나타났고, 다음 순간 이 은빛은 여섯 사람 앞에 떨어졌다. 믿을 수 없는 속도의 정체는 10여 장 크기의 은색 비사였다.
그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하얀 부채를 들고 있는 청년이었고, 한 명은 뚱뚱하고 귀가 큰 승려였다. 홍포(紅袍)를 입은 그가 손에 든 황금색 석장의 반짝이는 금빛은 먼 곳에서도 무거운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얀 부채를 든 청년은 다름 아니라 심협이 일전에 유파성의 일약재에서 만났던 민(閩) 공자였다.
“견남여(甄南如), 날 무슨 일로 부른 건가?”
민 공자는 거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동해 금양종의 소종주였다. 금양종은 보타산이나 화생사 같은 거대 문파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세력이 꽤 컸고, 문파에는 대승기 수사가 있었다. 그러니 그곳의 소종주인 민 공자는 견씨 남자 같은 산수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민 소주를 모신 건 당연히 큰일을 상의하기 위함이죠. 한데 이 대사님께서는……?”
견남여는 히죽거리며 옆에 선 홍포의 승려를 바라봤다.
이 승려의 기운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정도여서 절로 신경이 쓰였다.
“이분은 현구도(玄龜島)의 보상선사(寶相禪師)시네. 내 부친의 벗이신데, 마침 날 도와주러 함께 오셨네.”
민 공자는 견씨 남자가 조바심을 내자 매우 불쾌했지만, 홍포를 입은 승려는 자신보다 선배였기에 담담하게 소개했다.
견씨 등은 보상선사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동해 바닷길에서 명성이 자자했고, 이미 대승기에 도달한 자였다. 단지 외부 활동이 매우 적어서 알고 있는 자가 적었다.
“보상 선배셨군요. 후배가 인사 올립니다.”
일행은 황급히 예를 올렸다.
“시주님들, 과찬이십니다.”
홍포의 승려, 보상선사는 매우 상냥하였고, 조금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으며 두 손을 합장해 답례했다.
“자, 인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무슨 일로 날 부른 건가?”
민 공자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민 소주님, 일전에 유파성 일약재에서 본 심씨 성의 남자를 기억하십니까?”
견씨 남자는 더는 뜸을 들이지 않고 말했다.
“그 망할 놈 말인가! 사람들 앞에서 내게 창피를 주다니, 죽어 마땅한 놈이지! 그때 또 다른 일이 있어서 유파도에서 그놈을 찾지 못했는데, 자네가 그자를 찾은 건가?”
민 공자가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방금 그와 마주쳤는데…….”
견남여는 심협을 만났던 일과 그들이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대략 말했다. 심지어 은혜를 원수로 갚겠다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동해 바닷길에서 의리나 도의가 사라진 것은 이미 공공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라 하였소? 대승기의 눈물 요괴!”
이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보상선사였다.
“그렇습니다. 그 눈물 요괴는 대승기로 돌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견남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기뻐했다.
‘보상선사는 눈물 요괴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군! 이자까지 끌어들이면 절대 실패할 리는 없겠어.’
“좋네. 그 요괴가 있다니, 빈승과 민 공자가 자네들을 도와주겠네. 다른 건 자제들이 모두 가져도 좋지만, 눈물 요괴는 빈승에게 넘겨주게.”
“문제없습니다.”
견남여는 본래 눈물 요괴에 욕심이 없었기에 바로 승낙했다.
“보상 선사께서 허락하셨으니 나도 당연히 거절할 수 없겠군. 일이 끝나고 나면 심가 놈과 그곳의 보물 절반은 내 것이네!”
“물론입니다!”
견남여 일행은 속이 쓰렸지만, 동굴의 보물 절반만 차지해도 그들에게는 엄청난 수확이었기에 승낙하기로 했다.
“좋아. 자네들은 내 천운사(穿雲梭)에 타게. 머뭇거리다가 이변이 생길 수도 있으니 바로 출발하세.”
보상선사는 마음이 다급했는지 결인하여 남은 은사를 꺼냈다. 은사는 바로 두 배로 커졌다.
견남여 등은 바로 은사에 올라탔고, 은사는 은빛을 발하며 유성처럼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