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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72화 (572/1,214)
  • 572화. 길을 잃다

    심협은 개의치 않고 다시 성 밖으로 나가 백소천과 약속한 곳으로 돌아갔다.

    백소천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빛에서 기쁨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제법 큰 수확을 얻은 모양이다.

    “심형 왔는가? 뭐 좋은 것 좀 얻었나?”

    백소천은 심협을 반기며 물었다.

    “쓸 만한 단약 몇 병을 얻었소. 백형은 어떻소?”

    “운 좋게 잡화점에서 훼손된 독경(毒經) 한 권을 얻었지. 아무래도 상고 시대 어떤 대능이 남긴 물건 같은데, 내게 큰 도움이 될 게야.”

    백소천은 숨기지 않았고 흥분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정말 잘됐소!”

    심협은 최근에 함께 지내면서 백소천이 화생사에서 지내면서 수련 외에도 적지 않은 의술을 공부했고 특히 독공독술(毒功毒術)에 관심이 있음을 알게 됐다. 한데 상고 시대의 독경을 얻었다니, 자기 일처럼 기뻤다.

    두 사람은 곧 하얀 비주를 타고 해도를 따라 동해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백형이 먼저 비주를 조종하고, 이따 교대합시다.”

    “좋아. 가서 쉬시게.”

    백소천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인사를 남기고는 선미(船尾)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손을 휘둘렀다. 10여 개의 하얀 빛이 주위에 나타났다. 심협은 이어서 10여 개의 진기를 세워서 하얀 보호막으로 모든 것을 차단했다.

    여기까지 마친 그는 설백단이 담긴 약병을 꺼내 먼저 하나를 먹었다.

    단약이 배에 들어가자 빠르게 소화가 됐고, 어마어마한 양의 순수한 약력이 단전과 경맥에 충만해졌다. 순수한 한기가 담긴 약력이었다.

    심협은 기뻤다. 설백단의 약력은 그가 예상했던 것처럼 강력했다. 감로수 외의 단약에서 경맥에 원기가 가득 차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심신을 안정시킨 그는 바로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강력한 약력을 흡수했고, 이에 법력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진창해 신통으로 약력에 담긴 한기를 흡수했다.

    반나절이 흘렀을 때, 심협은 설백단의 약력을 전부 흡수했고, 출규 후기의 수련 경지가 단단해 지는 것을 느꼈다.

    “좋아! 설백단만 충분히 있으면 1년 안에 출규 후기 절정에 도달할 수 있겠어!”

    심협은 길게 숨을 내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금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설백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부디 다음 섬에서 많이 모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동해에서는 언제든지 위험이 닥칠 수 있기에 심협은 설백단의 약효를 시험해본 뒤 수련을 멈추고 결인하여 주변의 하얀 보호막을 거뒀다.

    백소천은 뱃머리에 서서 비주를 조종하면서 동시에 신식으로 주변을 살피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형, 고생했소. 이제 가서 쉬시오.”

    “그럼 심형이 고생 좀 하게.”

    백소천은 실로 피곤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선미로 가서 앉았다.

    심협은 결인하여 비주를 몰았다.

    유파성은 바다 근처여서 요수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이 교대로 비주를 몬 덕에 하룻밤 만에 두 번째 섬이자 수사들의 성이 있는 섬, 창월도(蒼月島)에 도착했다.

    창월도는 유파성보다 컸지만 그 안의 성은 조금 더 작았고, 수사도 유파성보다 수가 적었다. 사실 이는 당연했다. 유파성은 바다와 맞닿은 곳이고, 사대상맹이 세운 상점이 있으니 바닷길로 가는 수사나 육지 각 문파의 수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러니 당연히 창월도보다 번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얀 비주는 섬 밖에 멈췄고, 심협은 날아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백소천은 섬에 내리지 않고 배에 남아서 독영을 꺼내 연구하기 시작했다. 푹 빠진 모습이었다.

    창월성의 배치는 유파성과 대동소이했다. 성지 중앙에 광장이 있고, 규격에 맞는 상점들이 전부 광장 부근에 모여 있었다. 그중 일약재도 있었다.

    심협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시종이 서둘러 나와서 맞이했다.

    “점주를 불러주시오. 큰 장사를 함께 의논하고 싶소.”

    심협은 시종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시종은 심협의 당당함에 감히 얕보지 못했고, 곧장 그를 내실로 안내하고는 바로 주인을 부르러 갔다.

    내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점잖은 중년 사내가 걸어왔다.

    “이곳 일약재의 점주인 원랑(元朗)이라 합니다. 귀하의 성명은 어떻게 됩니까?”

    점잖은 남자가 공수하며 물었다.

    “저는 심씨입니다. 제가 온 것은 설백단을 사기 위함입니다. 가지고 있는 걸 전부 주십시오. 전부 사겠습니다.”

    심협은 다른 말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설백단? 심 도우께서 본재의 그 단약을 아시는군요. 한데 실망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저희 일약재에는 설백단을 팔지 않습니다.”

    그 말에 심협은 당황했다.

    “설백단이 없다니요? 어찌 그런 일이…… 유파성의 일약재서 몇 병을 샀습니다.”

    “심 도우께서는 모르셨군요. 설백단은 본재의 대사가 최근에 제련한 진귀한 단약이라 생산량이 매우 적습니다. 현재 나성군도의 일약재 총부와 육지와 근접한 유파성에서만 팔고 있지요.”

    점잖은 남자의 설명을 들으며 심협은 상대를 자세히 관찰했다. 말투나 표정으로 미루어 거짓말은 아닌 듯했기에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설백단을 조금씩 사 모으겠다는 계획이 허사가 되는 것 아닌가. 더욱이 나성군도에 설백단이 있다한들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자 사내가 한 가지 소식을 알려줬다.

    “허나 그리 비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백단 제련에 가장 큰 문제는 주재료인 눈물 요괴의 진주입니다. 저희 일약재 총부에서 임무가 내려왔는데 어떤 도우든 눈물 요괴의 진주를 가지고 오면 무료로 연단해주는 대신 설백단 절반을 주겠다 합니다. 보아하니 심 도우의 경지라면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군요. 몇 마리만 잡을 수 있다면 설백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렇습니까?”

    심협은 그 말에 화색이 돌았지만, 이내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원구의 말대로라면 눈물 요괴는 동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요물이 아니다. 한 마리를 찾기도 어려울 텐데 어디 가서 몇 마리를 찾는단 말인가. 게다가 그의 이번 여정은 구범청련을 찾는 것이니 시간도 많지 않았다.

    “좋은 소식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설백단이 없다면 더 머물 이유도 없었기에 그는 일어섰다.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자 창월성을 구경할 마음도 들지 않아 바로 성에서 나왔다.

    “심형, 설백단을 못 구한 모양이지?”

    백소천은 심협의 표정을 보고는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이미 그도 오는 도중 설백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다.

    심협은 한숨을 쉬고는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말했다.

    “일이 어렵게 됐군. 우선 나성군도로 가서 상황을 보고 거기서도 사지 못하면 다시 계획을 세워보자고.”

    “그게 좋겠소.”

    심협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사람은 바로 비주를 조종하여 동해 깊은 곳으로 향했다.

    * * *

    망망한 동해 상공. 한 척의 비주가 허공을 날았다. 그 뒤로는 기다란 빛이 하얀 꼬리처럼 이어졌다.

    심협과 백소천은 뱃머리와 선미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했으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어떤가? 찾았나?”

    백소천도 반나절을 찾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물었다..

    심협의 두 눈은 푸른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현음미동은 멀리 있는 것을 보는 데는 큰 효능이 없었다.

    “동해 바닷길이 이렇게 넓은 줄은 몰랐군. 조금만 방심하면 길을 잃다니 말이야. 새로운 길로 가겠다는 게 실수였어.”

    심협이 고개를 젓자 백소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10여 일 전, 두 사람은 창월도에서 출발해 동해 깊은 곳으로 향했다. 도중에 설백단을 사지 못하니 더 머무를 필요가 없었고, 바닷길을 따라서 단숨에 나성군도로 갈 계획이었다.

    바닷길은 하나였지만 일직선이 아니었고, 많은 섬을 지나야 했기에 굽이굽이 돌아가야 했다.

    두 사람은 교대로 비주를 조종했는데, 백소천이 조종하던 중 해도에 따라 돌아서 가지 않고 그대로 하늘 가득한 해무(海霧)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만 것이다.

    두 사람은 다시 해로를 보며 길을 찾으려 했지만, 그들 눈에 바다는 어디든 똑같았다. 두 사람은 그제야 일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고 다급하게 원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도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심협과 백소천은 동쪽으로 향하면서 주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의 운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동해가 너무 큰 것인지, 두 사람은 그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각종 요물만 만났을 뿐이다.

    다행히 두 사람의 경지는 크게 진전하였고 보물들도 있으니 큰 위기는 없었다.

    “됐소. 계속 가봅시다. 설마 계속 이렇겠소?”

    심협의 말에 백소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주를 계속 동쪽으로 몰았다.

    한참을 날던 중 문득 법력의 파동이 먼 곳에서 느껴졌다. 그 안에는 요수의 포효도 섞여 있었다.

    “사람이다!”

    두 사람은 기뻐하며 서둘러 비주를 몰았고, 몇 호흡 만에 10여 리를 날아 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했다.

    바다에서는 대여섯 명의 수사가 싸우며 도망치고 있었고, 요수 한 마리가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요수는 바닷속 소용돌이에 숨어 있어서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소용돌이는 강력한 요기로 가득했고, 수많은 푸른 빛이 반짝일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리는 것이 마치 천군만마가 달리는 듯했다.

    도망치는 수사들 중 네 명은 출규기였고, 두 사람은 응혼기 절정이었다. 두 웅혼기 수사는 힘을 합쳐서 노란색 비석 보물로 싸우고 있었는데, 그 위력이 출규기 수사 못지않았다.

    “저 사람은……?”

    심협의 시선이 출규기 수사 중 하나에게 향했다. 바로 그에게 함께 사냥을 권유했던 견씨 수사였다.

    다른 출규기 수사들은 이남일녀로, 청의의 중년 사내와 검은 수염의 노인 그리고 금색 치마를 입은 여자였다.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은 봉황 같은 눈매에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수사들은 이상한 제사장 가운을 걸친 젊은 사내들로, 피부도 솥처럼 까무잡잡해 더욱 기이해 보였다.

    이들은 여섯 명이었음에도 바다의 요수를 상대로 애를 먹었다. 요물의 몸에서 푸른 빛이 솟았다가 줄었기를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주변의 바닷물이 각종 공격을 퍼부었다. 그 요물은 더욱 많은 푸른 빛을 뿜어냈다. 거기에는 엄청난 뇌전의 힘이 담겨 있었고 위력도 매우 강력했다.

    수사들의 법기나 법보는 남색 뇌광과 충돌하자 바로 날아가버렸다. 이들은 요물에게 전혀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그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면 이미 누군가는 다쳤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몇 명은 이미 땀으로 등이 흠뻑 젖었고, 법력도 절반 정도 소모하여 오래 버틸 수 없었다.

    그때, 심협과 백소천을 발견한 견씨 수사가 반색하며 외쳤다.

    “심 도우! 도와주시면 나중에 보답하겠소!”

    그리고는 곧장 몸을 돌려 비주를 향해 다가왔는데, 다른 이들도 곧장 뒤를 따랐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자신을 끌어들이는 행동에 매우 불쾌했다. 그렇다고 죽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었기에 바다의 요물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견씨 남자는 심협이 곧장 요물을 향해 돌격하자 내심 놀랐다.

    ‘무슨 생각이지? 저렇게 곧장 돌격하다니!’

    그는 우뚝 멈춰 서서는 도망갈지 아니면 도우러 갈지 고민에 빠졌다.

    그사이 바닷속 요물은 위험을 느꼈는지 추격을 멈췄는데, 몸 주변의 푸른 빛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긴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뒤이어 천둥소리가 소용돌이 깊은 곳에서 울리더니 주먹만 한 푸른 뇌광이 잔뜩 뿜어져 나왔다. 흉흉하고 강력한 기세가 심협을 향해 날아들었다.

    “심 도우, 조심하시오! 저건 거울 요괴의 수강신뇌(水剛神雷)요!”

    견씨 사내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심협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핏빛을 번득이는 커다란 깃발로 몸을 감쌌다. 풍식의 기혈번(嗜血幡) 법보를 자신의 것으로 연화한 것이다.

    남색 뇌광은 기혈번과 충돌하자 갑자기 폭발했고, 허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기혈번은 가볍게 모든 뇌광을 막아냈다. 풍식이 공들여 연단한 상품 법보에 금제가 무려 54도였기에 방어력이 매우 뛰어났다. 심협의 자금령으로도 깨지 못했는데 하물며 요물의 수뇌라고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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