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71화 (571/1,214)
  • 571화. 권유를 거절하다

    “두 도우는 모두 저희 일약재의 귀한 손님입니다. 일약재는 싸움을 엄금하고 있으니 소첩의 얼굴을 봐서라도 한 걸음씩 물러나 주실 수 없으십니까?”

    녹주는 귀신처럼 심협과 백의 청년의 중간에 나타났다. 그녀가 움직이자 커다란 황색 깃발의 형상이 나타났고, 안개 같은 황색 빛이 자욱하게 피어났다.

    백의 청년은 노란 빛에 뒤덮이자 몸이 마치 만 장 깊이의 늪에 빠진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에 안색이 변하더니 뭔가를 크게 외쳤고, 그러자 몸에서 피식 하는 소리가 울렸다. 유성 같은 푸른 검광이 번개처럼 나타나 엄청난 기세로 노란 빛을 모조리 베어버리려 했다.

    허나 애석하게도 황색 빛의 위력이 더 강했다. 날아온 검광은 바로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대소번(大沼幡)!”

    백의 청년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소스라치게 놀라 경악하고는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심협도 노란 빛에 뒤덮였고 그 위력을 느꼈지만, 그저 눈을 치켜뜨기만 할 뿐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두 분은 귀한 손님인 만큼 예의를 갖출 테니 두 분께서도 본 일약재의 규율에 따라주십시오.”

    녹주는 노란 빛을 거두고는 담담하게 말했고, 이에 백의 청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는 단약도 사지 않고 나가버렸다.

    물건을 팔지 못한 녹주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지 않자 금씨 자매도 단약을 가지고 바로 떠나갔다.

    낯빛이 노란 남자도 곧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는 가기 전에 심협을 잠시 바라봤다. 무언가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심협도 당연히 그자의 행동에 눈이 갔지만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심 도우, 조심하십시오. 여기 동해 해역은 대당 내륙과는 달라서 수선자끼리 조금만 뜻이 맞지 않아도 길을 막고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게 매우 흔합니다.”

    원구의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원 도우의 가르침에 감사하오.”

    심협은 예의를 갖춰 대답했지만, 별다른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금 그의 경지와 보물들이면 대승기 수사와도 맞붙을 만했다. 만약 먼저 달려드는 자가 있다면 오히려 심협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주는 꼴일 것이다.

    모두가 떠나가고 이제 심협과 녹주만이 남았다.

    “더 좋은 단약이 없습니까?”

    심협은 방금 전의 일들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

    “심 도우는 평범한 출규 후기 수사가 아닌가보군요. 소첩이 못 알아봤습니다. 여봐라, 방금 총부에서 보내온 세 종류의 단약을 가지고 오너라.”

    녹주는 이마를 살짝 덮고 내려온 앞머리를 쓸어 올린 뒤 손뼉을 치며 말했다.

    옆에 있던 시종이 깍듯하게 대답하고는 바로 돌아섰다.

    녹주는 심협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는데, 개중에는 사문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심협은 상대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기에 대충 아무렇게나 말했고, 녹주는 결국 아무런 정보도 알아내지 못한 채 우울했다.

    그때, 시종이 쟁반 하나를 들고 왔다. 쟁반 위에는 세 개의 정교하게 만든 옥병이 놓여 있었다.

    심협은 녹주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가장 왼쪽에 있는 옥병에 눈이 갔다.

    옥병은 입구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안에서는 극도로 순수한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 도우의 안목은 훌륭하군요. 단번에 설백단(雪魄丹)을 알아보다니요. 이 단약은 저희 일약재의 연단사가 최근에 만든 영단입니다. 약력이 매우 강한 데다가 빙백(氷魄)의 한기를 담고 있어서 한빙 신통을 수련하는 수사에게는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죠.”

    녹주는 심협의 시선이 고정된 옥병을 들어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설백의 영단 다섯 개가 담겨 있었다.

    심협이 손을 들자 단약중 한 알이 날아왔다.

    단약은 영롱하고 투명하여 한옥으로 만든 구슬 같았다. 주변에는 짙은 백색 빛이 맴돌며 한기를 발하고 있어서 이곳 내부의 온도까지 낮아졌다.

    ‘좋은 단약이다!’

    심협은 내심 감탄했다.

    설백단의 약력은 기이할 정도로 강력해 남목단보다 두 배는 더 강했다. 게다가 이 단약에 사용된 재료는 대부분이 물 속성 영재여서 무명공법과 적격이었다. 그야말로 그를 위한 단약이었다.

    “비록 설백단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두 가지 역시 좋은 단약이랍니다.”

    녹주는 다른 두 개의 약병을 열었다.

    그녀의 말대로 다른 두 단약도 매우 훌륭하여 약력이 남목단 이상이었고, 설백단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무명공법과는 조합이 별로 좋지 않아 심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설백단이면 충분합니다. 한 병에 선옥 몇 개입니까?”

    심협은 설백단이 들어 있는 병을 흔들며 물었다.

    “설백단에 사용된 모든 재료는 매우 진귀하고 특히 주재료가 동해의 기이한 요수인데 매우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백단은 값이 조금 비쌉니다. 한 병에 선옥 이백 개입니다.”

    녹주는 상인을 본성을 드러내어 설백단을 한바탕 칭찬하고는 가격을 말했다.

    “음.”

    심협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한데 그때, 원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설백단의 약력만 보면 그 가격은 비싼 편이 아닙니다.”

    심협은 그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30개 주십시오.”

    30병의 설백단이면 경지를 출규 후기 절정까지 밀어내기에 충분할 듯했다.

    “30병이요?”

    녹주는 깜짝 놀랐다. 설백단 삼십 병이면 선옥 6천 개 아닌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사내가 그리 재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심 도우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다만…… 설백단은 본재에서도 이제 막 만들기 시작한 단약이라 보름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절반을 팔고 지금은 열 병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말 송구합니다.”

    녹주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하자 심협은 미간을 슬쩍 찌푸렸다. 왜 갑자기 물건이 없다는 건가? 가격을 더 올리려는 건가?

    “더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하시오.”

    불쾌해진 그는 다소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심 도우께서 오해하셨군요. 저는 사실을 말씀드린 겁니다. 설백단은 본재의 대사 심묘의(沈妙衣)께서 고대 단방을 근거로 최근에 만들어낸 단약입니다. 이 단약의 주재료로 동해의 신비한 요수인 눈물 요괴가 필요한데, 이 요수는 수도 매우 적은 데다 성년의 실력은 거의 출규 중기 수사와 맞먹죠. 게다가 은닉에 매우 능하여 사냥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백단은 생산량이 매우 적죠. 가격을 올리려는 뜻은 없습니다.”

    녹주는 심협의 차가운 눈빛에 가슴이 철렁했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황급히 답했다.

    ‘이자는 도대체 누구지? 눈빛만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하다니! 설마 출규 후기가 아니라 경지를 숨긴 대승기 존재인가?’

    녹주는 속으로 매우 놀랐다.

    이런 오해를 하는 것도 당연했다. 심협의 경지는 출규 후기지만, 법력이나 기세의 운용 등은 이미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또한 현음미동을 수련했기에 안력은 대승기의 수사에게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심지가 깊은 듯하긴 한데, 저 말의 어느 정도가 진실이고 어느 정도가 거짓인지 누가 알겠나?’

    녹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심협은 손가락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가볍게 두들기면서 생각에 잠겼다.

    “저 여자의 말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일약재가 동해의 바닷길을 제패하고 단약을 팔기 시작하면서 평판이 좋아졌죠. 그런 작은 이익을 위해 평판을 저버릴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내가 알기로도 눈물 요괴는 확실히 보기 드물어서 사냥하기가 어렵습니다.”

    원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고,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 지금 있는 것부터 주십시오.”

    “지금 본재에 남은 것은 여덟 병이 전부입니다. 가지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녹주는 심협의 분위기가 누그러든 걸 보고는 그제야 안심하고 서둘러 단약을 가지러 갔다.

    녹주가 간 뒤로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덟 병으로는 부족했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 나성군도로 가는 도중에 있는 섬에도 일약재 상점이 있을 테니 가는 곳마다 찾아보면 충분히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풀렸다. 한데 그는 설백단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원 도우, 일약재의 이 단약들과 대당 내륙의 단약은 크게 다른 듯하군요. 대당 내륙의 단약의 주재료는 기본적으로 각종 영초와 영재인데 이쪽의 단약은 요단을 주재료로 삼는 듯하오. 그렇소?”

    심협은 전음으로 원구에게 물어봤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동해 바닷길에는 영초가 많지 않으니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요수의 재료를 영초나 영재 대신으로 사용하죠. 게다가 요단에 들어 있는 영력은 더 풍부해서 약력으로만 보면 여기 단약이 더 뛰어납니다.”

    “그렇군요. 이런 연단법을 생각해내다니, 동해 바닷길의 연단사들은 정말 대단하오.”

    “이 연단법은 바닷길의 연단사가 독창적으로 생각해낸 게 아니라 동승신주쪽에서 전해져 온 겁니다.”

    “오, 동승신주 말이오?”

    심협은 놀라서 되물었다.

    “동승신주는 영토가 넓고 인간족이 매우 적어서 요수와 영수가 훨씬 많지요. 그래서 이런 연단법이 생겨난 겁니다. 듣기로는 그곳의 수선법은 남첨부주와는 매우 다르다더군요. 나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계속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 나성군도로 가면 정말 한 번 보고 싶군요.”

    약간 흥분한 원구의 목소리에 심협도 동승신주에 동경심이 생겼다.

    두 사람이 다시 동해 바닷길에 관해 대화하고 있을 때 발소리가 들려왔다. 녹주가 단약을 가지고 온 것이다.

    심협은 여덟 병의 설백단을 모두 살펴보고 문제가 없자 바로 선옥을 내놓고는 말없이 나왔다.

    녹주는 본래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심협이 안색이 좋지 않은 듯하자 막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심협은 일약재에서 나와서 바로 떠나지 않았다. 일약재에서의 수확에 만족한 그는 더는 유파성을 무시하지 못하고 백운거와 청옥각, 천화루까지 둘러봤다.

    하지만 그의 운은 일약재에서 모두 쓴 것인지 나머지 세 상점에서는 쓸 만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실망한 심협이 광장을 떠나 백소천을 만나러 성문 부근으로 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심 도우, 잠시만!”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다름 아니라 일약재에서 만났던, 낯빛이 노란 사내였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견(甄) 도우였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방금 일약재에서 그의 성씨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허허, 대당 내륙 출신의 심형께서 이렇게 동해 바닷길까지는 무슨 일로 온 거요? 이 견모는 이 바닷길에서 몇 년을 지내봤기에 이 일대에 아주 익숙하다오.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 도울 수 있을 것이오.”

    견씨 수사가 공수하며 말했다.

    “동해 바닷길이 번화하다는 소문을 듣고 여행 삼아 와본 거지 별다른 계획이 있는 건 아닙니다. 견 도우께서는 그저 한가한 이야기나 하려고 부른 건 아닌 듯한데, 무슨 일인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십시오.”

    “심 도우는 그리 시원시원하니 저도 더는 숨기지 않겠소. 내 실력이 미천하여 산수들 몇 명과 사냥단을 꾸려서 바다 요수를 사냥하곤 합니다. 심 도우께서 중요한 일이 있는 게 아니면 함께 요수를 사냥하러 가시지 않겠소?”

    견씨 수사가 은근히 권유했다.

    “바다로 나가서 요수를 사냥한다고요? 흥미롭긴 하나, 저는 방금 유파성에 도착했기에 아직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혹시라도 심형께서 안전이 걱정되는 거라면,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사냥단 도우들은 모두 인품이 훌륭하고, 두 명은 정도 종문의 수사지요. 저도 여러 번 함께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다로 나가서 요수를 사냥하면 선옥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심 도우는 실력이 강하니 사냥단에 들어오면 몇 년 안에 많은 선옥을 벌어서 대승기로 돌파할 준비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견씨 사내는 서둘러 재차 권유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지금은 바다로 나가서 사냥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심협은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심 도우께 다른 계획이 있다면 더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죠.”

    견씨 사내는 심협의 표정이 굳어지자 더는 권하지 못하고 쓰게 웃으며 공수하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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