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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70화 (570/1,214)

570화. 우물 안 개구리

잠시 후, 심협은 단약 상점 앞에서 멈춰 섰는데, 안을 들여다보고는 무척 놀랐다. 현재 그의 안력은 상당하여 밖에서도 가게 안의 사정을 거뜬히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지금 응혼기 경지를 정진시켜주는 단약을 팔고 있었다!

건업성이나 장안성에서도 수련 정진 단약은 매우 진귀했건만, 고장 폭이 2장에 불과한 이 작은 상점에서 팔고 있다니!

심협은 눈빛을 반짝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선배님, 이 단약을 사시려고요?”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난 노인이 심협의 경지를 살펴보고는 곧장 다가왔다.

“출규기 수련을 정진시켜주는 단약도 있습니까?”

일전에 얻은 이원진수가 조금 남았지만, 출규 후기에 도달하면서 필요가 없어졌기에 수련 정진을 빠르게 향상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제 막 출규 후기에 도달했으면서 바로 정진시켜줄 단약을 찾는 겁니까? 수련 속도가 너무 빠르면 깨달음이 쫓아오지 못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원구가 훈계했지만, 심협은 가볍게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는 꿈속에서 수많은 수련 경험을 쌓았으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흥! 호의를 무시하시다니요! 알아서 하십시오. 다만 단약을 살 거라면 다른 곳을 찾으시는 게 나을 겁니다. 동해에는 단약 영재가 장안성보다 풍부하지만, 이런 작은 가게에서는 좋은 재료를 쓰지 않으니까요.”

원구는 마음이 상한 듯 콧방귀를 뀌면서도 아는 바를 풀어놓았다.

“출규기 단약이라……. 그건 너무 진귀해서 이런 작은 곳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본점에는 엄청난 보물이 있죠. 해독성단(解毒聖丹)과 요물의 독을 해소해주는 단약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역시나 상점 주인은 손사래를 치고는 다른 물건을 소개하려 했다.

심협은 그런 보물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바로 거절하고는 상점을 나와 거리를 따라 계속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성 한복판의 광장에 도착했다.

바닥에는 커다란 백옥이 깔려 있어서 빛이 반짝였고, 푸른빛 거대한 보호막이 광장 상공을 뒤덮고 있어 다른 곳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광장 중심에 있는 네 개의 크고 화려한 상점이었다. 전부 옥석으로 만들어 푸른 빛과 은은한 형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청록색 건물에는 청옥각(靑玉閣)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푸른 영지(靈芝)로 수놓은 깃발이 걸려 있었다.

심협은 수많은 시장을 봐왔기에 이런 쪽으로는 식견이 매우 넓었다. 이 청옥각은 아마도 영초(靈草)를 파는 곳일 터였다.

다른 세 가지 건물의 색깔도 백색, 남색, 홍색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이름은 각각 백운거(白雲居)와 일약재(一藥齋), 천화루(天火樓)였다.

심협은 우선 신식으로 그곳들을 살펴봤다. 백운거는 요수 재료와 광석을 팔고 있었고, 일약재는 단약, 천화루는 연기를 팔고 있었다.

“좋은 단약을 판다는 곳이 여기 일약재입니까?”

“맞소. 일약재에서 만든 단약은 대당 단약의 명가 취보당보다 훨씬 더 좋죠.”

심협의 물음에 원구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부디 그러길 바라오. 한데 취보당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좀 이상하군요. 여기는 수선자가 많고 이리 번화한데 어째서 대당의 삼대상회인 취보당, 헌원각, 박물행이 여기에 상점을 열지 않는 게요?”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안 해봤겠습니까? 앞에 있던 청옥각과 백운거, 일약재 그리고 천화루는 동해 바닷길의 사대 상점으로, 합쳐서 사대상맹(四大商盟)이라고 하지요. 그 뿌리는 사성군도이고요. 실력은 대당 삼대상회보다는 아래입니다. 그러니 삼대상회도 이전에 여기로 손을 뻗으려고 했고, 반대로 사대상맹도 대당 내륙의 수선계에서 장사를 해보려 했지요.

그렇게 쌍방이 여러 해 동안 싸우던 끝에 협정을 맺었습니다. 바다를 기점으로 사대상회는 대륙으로 오지 않고, 삼대상회는 동해의 어떤 섬에도 상점을 내지 않기로 말이죠.”

심협은 사대상맹이 이렇게까지 클 수 있었던 연유와 삼대상회와의 충돌이 궁금했지만, 굳이 묻기는 귀찮았기에 바로 일약재로 들어갔다.

일약재 내부에는 각종 단약이 진열되어 있었고, 신선한 약향이 온 가게에 퍼져 사람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적지 않은 손님들이 가게 안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약재를 고르고 있었다.

심협이 들어서자 푸른 옷의 점원이 곧장 다가오려 했으나, 옆에 있던 관사처럼 생긴 중년 남자에게 밀려났다.

“선배님, 어떤 단약이 필요하십니까? 선배님의 경지면 밖에 있는 평범한 단약은 눈에 차지 않으실 겁니다. 저화 함께 후원으로 가시죠. 본점의 진짜 좋은 단약은 그곳에 있습니다.”

중년 관사의 경지는 응혼 후기였기에 한눈에 심협이 출규기 수사임을 알아보고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럼 안내해주시오.”

밖에 진열된 단약들은 확실히 눈에 차지 않았기에 심협은 담담하게 말했다.

심협의 이런 반응에도 중년 관사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뒤쪽 편청(偏廳)으로 안내했다.

편청은 넓지 않았는데, 일고여덟 개의 의자에 네댓 명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는 녹색 옷의 젊은 부인이었는데, 복장으로 미루어 일약재 사람 같았다.

이들의 경지는 모두 출규기였고, 특히 녹색 옷의 젊은 부인은 출규 후기 절정으로 심협보다 위였다.

중년 관사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젊은 부인에게 인사하고는 물러갔다.

“들어오십시오. 소첩은 녹주(綠珠)라 합니다. 이곳의 점주죠. 도우께서는 어떤 물건이 필요하십니까?”

녹색 옷의 젊은 부인, 녹주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달콤해 마치 유혹하는 술법이라도 수련한 것처럼 사람의 가슴을 뛰게 했다.

“일약재는 동해의 사대상맹 중 하나로써 단약 제작에 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심모는 출규기의 수련을 정진시켜주는 단약을 찾고 있습니다. 진귀할수록 더 좋습니다.”

심협은 현음미동에 대성을 이루면서 어떤 유혹의 술법도 두렵지 않았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녹주는 자신의 미음지술(媚音之術)이 심협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자 의아해하면서도 서둘러 신통을 거두어 고인(高人)에게 죄를 짓는 일을 피하려 했다.

한편, 심협의 말을 들은 네 명의 출규기 손님들 중에는 놀라는 자도 있었고, 가소롭다는 듯 웃는 자도 있었다.

“심 도우시군요. 도우의 호의에 감사합니다. 사실 이 도우들께서도 심 도우와 같은 종류의 단약을 찾으시기에 소첩이 이미 수하를 보내 가지고 오도록 했지요. 심 도우께서도 잠시 기다렸다가 함께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녹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네 사람을 돌아봤다.

네 사람 중 둘은 곱고 아름다우면서도 요염하게 생긴 소녀들이었는데, 서로 닮은 것을 보니 자매인 듯했다. 경지는 출규 중기로, 둘 모두 의상이 매우 대담했다. 딱 달라붙는 상의는 새하얀 팔이 모두 드러났고, 하의는 얇은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었고 눈처럼 새하얀 다리가 어렴풋이 보이는 게 매혹적이었다.

다른 둘은 남자로,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은 하얀 비단옷을 입은 채 손에는 하얀 부채를 들고 있었다. 외모가 준수해 언뜻 부잣집 귀공자처럼 보였지만, 미간에는 은연중에 잔인함이 묻어났고, 경지는 출규 후기였다.

남은 한 명은 얼굴이 노란 남자였는데,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입술 위의 두 가닥 노란 수염은 계속 떨리는 게 마치 커다란 쥐 같았다. 출규 중기의 경지였다.

심협은 네 사람을 훑어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심 도우는 처음 보는 얼굴이군요. 대당 내륙에서 오셨습니까? 저는 금운(琴韻)이라 하고 여기는 제 동생 금향(琴香)이라고 합니다.”

심협은 굳이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으나, 두 소녀 중 언니로 보이는 쪽이 방긋 웃으며 말을 걸었다.

“그렇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심 도우의 고심한 경지에 제 동생이 감탄한 모양입니다. 저희 자매는 동해 묵련도(墨蓮島) 출신이라 유파성에 여러 번 와봤기에 익숙하죠. 처음 오셨다면 모든 것이 낯설 텐데 저희 자매가 안내해드려도 괜찮을까요?”

금운은 심협의 냉담함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맞아요. 유파성에는 상점이 많아서 심 도우께서 하나하나 다 알아보려면 아마 며칠이 걸릴 거예요. 저와 언니가 알려주면 도우도 시간을 많이 절약하실 수 있지 않겠어요?”

동생 쪽인 금향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 여인의 외모는 금운보다 더 뛰어났고, 부드러운 미소는 남자라면 거절할 수 없을 매력이 담겨 있었다.

두 여인이 심협에게 적극적으로 대하자 백의 청년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심협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아니오, 괜찮소. 나는 단약 외에 더 살 게 없소.”

심협은 담담한 목소리로 거절했고, 금씨 자매도 실망한 듯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녹주는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는 화제를 바꿔 분위기를 풀려 애썼다.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시녀가 커다란 은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위에는 하얀 비단이 덮여 있었고, 아래는 불룩한 게 무언가가 가득한 듯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단약이 왔으니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녹주는 은쟁반을 받아 들고 하얀 비단을 거두었다. 쟁반에는 다섯 개의 옥병이 놓여 있었는데, 색깔과 외형이 모두 달랐다.

옥병에서 흘러나오는 약향으로 미루어 분명 바깥의 단약들보다 더 뛰어난 최상급이 분명했다.

다른 네 사람은 눈빛이 반짝였지만, 심협은 약병 몇 개를 둘러보고는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시선을 거두었다.

이에 녹주는 내심 놀랐으나,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백색 옥병에 들어 있는 것은 옥향단(玉響丹)입니다. 옥향수(玉響獸)의 요단이 주재료죠. 파란 병에는 남목단(藍目丹)이 들어있는데, 남린요(藍鱗妖)의 요단과 독목어(獨目魚)의 영안을 주재료로 합니다. 수련 속도를 늘려주고 안력까지 상승시켜주어…….”

“부인, 이 남목단을 자세히 살펴봐도 되겠소?”

백의 청년이 남목단을 바라보며 황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역시 민(閩) 공자님의 안목은 훌륭하십니다. 이 남목단은 다섯 개의 단약 중 약효가 가장 강합니다. 보시죠.”

녹주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남목단을 건넸다.

“아주 좋군! 내 이걸 사겠소. 한 병에 선옥 몇 개요?”

청년은 약병을 내려놓고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목단은 출규기의 남린요와 독안어를 재료로 제련하기에 다른 부재료들도 모두 상품이어서 값어치가 상당합니다. 한 병에 선옥 백 개입니다.”

금씨 자매와 얼굴빛이 노란 남자는 가격을 듣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병에 선옥 백 개라니, 상품 법기와 비슷한 가격 아닌가! 게다가 이런 단약은 보통 한두 알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기에 대량으로 복용해야 했다.

“남목단이 귀한 것이야 당연한 일. 열 병 주시오.”

백의 청년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득의양양해 화통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녹주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옆에 있던 시종에게 단약을 가져오게 했다.

금씨 자매와 낯빛이 노란 남자는 망설이는 표정으로 다른 단약을 살폈다.

“두 도우께서는 어떤 단약이 마음에 드십니까? 말씀만 하시면 이 민모가 두 분께 선물하리다.”

그렇게 말하며 금씨 자매를 바라보는 백의 청년의 눈에는 음탕한 빛이 슬쩍 스쳐갔다.

“아닙니다. 저희 자매도 선옥을 가지고 왔습니다.”

백의 청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금운의 목소리는 냉담했다. 이에 청년의 눈에 분노가 서렸지만, 녹주를 힐끗 보고는 간신히 억눌렀다.

금운은 다른 단약의 가격을 물어보고는 다섯 병을 샀고, 낯빛이 노란 남자도 바로 다른 단약을 골랐다.

“심 도우께서는 여기 단약에 별로 흥미가 없는 모양입니다? 도우의 눈에 안 차십니까?”

녹주는 줄곧 아무 말도 없는 심협을 향해 담담하게 웃으며 물었다.

“단약들은 훌륭하나 저에게는 필요가 없군요.”

“흥! 귀하는 정말 뻔뻔하시구려! 남목단의 약력은 출규 후기 수사가 복용해도 여유가 넘친다오. 단약을 살 수 없으면 바로 말할 것이지 대범한 척을 한단 말이오!”

백의 청년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자신을 향한 그의 적의를 느끼고도 지금까지는 무시했는데, 상대가 저리 나오니 피식 웃으며 되받아쳤다.

“우물 안 개구리로군.”

“뭐라고!”

백의 청년은 노발대발하며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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