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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69화 (569/1,214)
  • 569화. 바다의 수선자의 성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타산 사람도 아닌데 벌써 1년을 머물렀으니 이제 떠나야 할 것이오. 백형은 앞으로 어찌할 계획이오?”

    “당분간 화생사로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 어디로 가든 자네 뜻대로 하시게.”

    백소천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과 동행하면서 여러 번 위험을 만나기도 했지만, 화생사와 백씨 가문에서 겪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일들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여러 번의 혈투를 통해 자신의 실전 능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이번에 돌파한 계기도 바로 그러한 실전을 통해서였다.

    한편, 심협은 생각에 잠겼다. 1년간의 고된 수련과 몸에 쌓아둔 선행의 힘을 완전히 흡수하면서 수명도 2백여 년이 늘어났다. 이제 당분간은 수명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게 됐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꿈속이든 현실이든 마겁이 눈앞까지 다가왔으니 언제든 강림할 수 있다. 계속해서 실력을 키워야만 했다. 이제 출규 후기에 도달했으니 대승으로 돌파할 준비를 할 차례였다.

    일전에 꿈속의 금탑 안에서 여러 번 대승기로 돌파하는 경험을 했지만, 현실에서의 자질은 형편없었다. 꿈속 경험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성공 확률은 여전히 높지 않았다. 그러니 도움이 될 만한 보물을 찾아야만 했다.

    심협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꿈속 세계의 용궁과 적뢰산에서 본 수많은 전적을 찾아낸 끝에 대승기 돌파에 도움을 줄 비법과 보물을 알아냈다. 지금부터 모으기 시작해야 한다.

    “백형은 견식이 넓지 않소? 혹시 부령옥(附靈玉)과 구범청련(九梵淸蓮)을 들어봤소?”

    심협은 백소천에게 물었다.

    구범청련은 선계에서 인간 세계로 떨어졌다는 전설의 성련(聖蓮)이다. 방대한 원기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꽃의 꽃술은 정기(靜氣)를 다잡게 해줘 대승기로 돌파를 돕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부영옥 또한 대승으로 돌파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물로, 단전의 용량을 늘려주기에 체내의 법력도 늘어나게 된다.

    “부령옥와 구범청련? 부령옥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구범청련은 책에서 본 적이 있지. 대승기로 돌파할 때 도움을 주는 보물 아닌가? 벌써 대승기로 돌파할 준비를 하는 건가?”

    백소천이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다.

    “나야 문파가 없는 떠돌이 아니오? 스스로 준비해야지. 혹시 구범청련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소?”

    심협이 웃으며 물었다.

    “실망시켜 미안하네만, 종문의 서적에서 기록을 봤을 뿐,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네.”

    백소천의 대답에 심협은 약간 실망했으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청련선자에게 묻는 게 좋을 듯했다. 그녀라면 알고 있으리라.

    한데 그때, 원구의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심 도우, 구범청련이 어디 있는지 내가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오? 어디에 있소?”

    심협이 눈을 치켜들며 전음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물었다. 백소천도 이미 원구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숨길 필요가 없었다. 실제로 백소천은 심협이 갑자기 혼잣말을 하는 듯하자 흠칫했으나,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방해하지 않았다.

    “알려드리면 제게는 뭘 해주실 겁니까?”

    원구가 슬며시 거래를 제안해오자 심협은 화내기는커녕 가볍게 웃었다.

    “뭘 원하시오?”

    “약선집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원구의 말에는 열정이 담겨 있었다.

    “약선집? 좋소. 구범청련을 찾는 걸 도와준다면 약선집 절반을 보여드리지.”

    심협은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까?”

    원구는 절반이라는 말에도 실망하는 게 아니라 매우 기뻐했다.

    “물론이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선수계(仙修界)에는 구범청련의 수가 아주 적습니다. 백 년마다 네다섯 개가 외부로 떨어지는데, 예외 없이 동승 신주(東勝神州)의 나성군도(羅星群島)로 흘러간다더군요.”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원구도 심협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임을 파악했기에 숨김없이 말했다.

    “나성군도?”

    심협은 동승신주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나성군도라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성군도는 동승신주 서북쪽 변방에 있는 곳인데, 수선의 군도라고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남첨부주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심 도우가 못 들어본 것도 당연하죠.”

    “알겠소. 그렇다면 나성군도로 가야겠군. 구범청련을 찾으면 약속대로 약선집 절반을 보여드리겠소.”

    심협은 다시 한번 약속했다.

    “심 도우를 믿겠소! 하하하!”

    옆에서 지켜보던 백소천이 물었다.

    “심형, 방금 원구와 대화한 건가? 동승신주로 가려고?”

    “지금은 다른 단서가 없으니 가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마침 다른 대주의 특색과 풍습도 경험해보고 싶었던 참이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그건 아닐세. 나도 동승신주는 가본 적이 없으니 한번 여행해보고 싶군.”

    “그렇다면 채주와 인사한 뒤에 바로 출발합시다.”

    “듣기로는 섭 소저는 지금 폐관수련 중이라더군. 아마 당분간 만날 수 없을 걸세.”

    백소천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해주자 심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폐관? 설마……?”

    심협과 백소천은 곧장 섭채주의 방으로 갔지만,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근처에 있던 제자에게서 물어보니 보타산 어느 금지(禁地)로 갔다는 답이 돌아왔다.

    심협은 섭채주를 만나러 가야 할지 아니면 청련선자를 찾아가야 할지 고민했는데,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에 사람의 모습이 어른거리더니 청련선자가 나타난 것이다.

    “청련 장문.”

    심협이 예를 갖추자 백소천도 서둘러 몸을 굽혔다.

    “채주는 지금 폐관하며 대승기로 돌파할 준비를 하고 있네. 이번에 특별한 의식의 도움을 받아야 하여 적어도 반년은 나오지 않을 걸세. 무슨 일로 그 아이를 찾는 건가?”

    청련선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와 백형은 1년 동안 보타산에 머물면서 큰 보살핌을 받았기에 이제 떠나려 합니다. 가기 전에 인사를 하려던 참인데, 폐관 중이라니…… 장문께서 저희 대신 재난이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더욱 수련에 정진하라고 말을 전해주십시오.”

    심협은 청련선자에게 공수하며 말했다.

    청련선자는 그 말에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몸을 돌려서 그곳에서 사라졌다.

    “환난? 설마 마겁을 말하는 건가? 설마 외부에서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백소천이 어두워진 얼굴로 물었다.

    “물론이오. 이번 동해 일정이 순조롭기나 바라시오.”

    심협도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두 사람은 곧장 보타산을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 심협은 정교금과 원천강에게 서신을 남겼다. 자신은 이미 수명을 보충하였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의 경험을 자세하게 썼지만, 몇몇 부분은 생략했다. 그는 보타산 제자에게 맡겨 대당 관부에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백소천도 화생사에 서신을 썼다. 한데 심협이 힐끗 보니 황동진인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동진인이 경지가 봉인되고 보타산 쇄천봉(鎖天峰)에 갇혔단 말이오?”

    “나도 우연히 알게 됐네. 보타산에서는 반대하는 소리가 컸지만, 청련 장문이 그런 의견을 묵살하고 황동진인을 가뒀다는군.”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본래 청련선자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녀는 보타산 장문으로서 일처리에 공정한 편이었다.

    * * *

    며칠 뒤, 심협과 백소천은 원구의 안내를 따라 대당 동부의 유파성(流波城)에 도착했다.

    유파성은 수선자들이 세운 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동해안에서 백여 리 정도 떨어진 섬에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성에는 거리가 많았고, 수선 관련 물품을 판매하는 사람과 건물이 거리마다 넘쳐나 매우 번화한 모습이었다.

    백소천은 이곳을 잘 알고 있는지, 도착하자마자 무언가를 사러 간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동해에 이런 수선의 성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한데 어째서 그렇게 먼 길을 돌아서 온 게요? 동승신주는 동해안 건너편에 있으니 보타산에서 곧장 날아가면 더 편하지 않소?”

    심협은 주변의 가게들을 둘러보며 원구에게 물었다.

    “심 도우는 동해가 대당처럼 그렇게 쉽게 날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는 겁니까?”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원구는 여전히 깍듯한 듯하면서도 내심 편해져서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비아냥거림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심협은 그런 사소한 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여정에서 원구의 도움이 필요하니 화를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동해가 위험하다는 거요?”

    “당연하죠! 동해 해역에는 수많은 요수와 해수(海獸)가 살고 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다 강하오! 그래서 무모하게 바다를 건너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이지요.”

    “흠, 동해는 동해 용궁의 세력일 텐데…… 용궁이 그런 요수와 해수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는 게요?”

    “동해 용궁이 동해에서 가장 큰 세력이긴 하지만, 그들이 동해의 모든 구역을 관리할 수는 없지요. 게다가 동해 용궁과 우리 같은 수선자와는 관계가 좋지 않으니 당연히 그 요수들을 관리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요. 많은 수사들이 동해에서 요수를 사냥하고 선옥을 얻으니까요. 동해 용궁과 선수계의 관계가 좋다면 오히려 그럴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동승신주로 가야 하오? 우리 실력이면 무사히 동해를 건널 수 있지 않겠소?”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물었으나, 원구는 딱 잘라 말했다.

    “무리입니다! 아마 바다에 떨어지고 말 걸요? 그래서 여기로 안내한 겁니다.”

    “여기 뭐 특별한 거라도 있소?”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며 의아한 듯 다시 물었다.

    “유파성에는 당연히 없지요. 여기서 동해로 들어가는 바닷길에는 수많은 섬들이 있는데, 단속적으로 동승신주와 연결됩니다. 그 바닷길 끝이 바로 나성군도지요. 요 몇 년 동안 각지의 수선자가 이 바닷길로 모여들어 수많은 성을 쌓으면서 바닷속 요수들도 더는 감히 이곳 바다로 접근을 못 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바다로 나가는 게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안전하지요.”

    “그렇군. 그렇게 많이 아는 걸 보면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 모양이오?”

    “당연히 와봤지요. 허나 동해는 건너본 적이 없습니다. 이 군도 지역은 남첨부주 수선계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라 수련 자원이 풍부하고, 대당 관부와 보타산, 화생사 같은 거대 세력과는 거리가 멀어서 수많은 산수들이 이곳으로 모이지요. 한데…… 심 도우는 어째서 여기를 모르는 거요?”

    심협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 그는 수선계에 발을 들인 지 오래되지 않았고, 현실과 꿈속을 끊임없이 넘나드느라 바빴으니 대당의 수선계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매우 적었다. 이는 지금 그의 경지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긴 했다.

    “유파성은 크지 않지만, 각종 수선 재료가 많으니 한번 둘러보시면 좋을 겁니다. 아! 상세하게 그려진 해도(海圖)를 구입하는 걸 잊지 마십시오.”

    원구는 심협이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하자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해도?”

    “이쪽 해역은 광활하고 끝이 없는 동해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섬이 많고 꽤 넓은 편이라 길을 잃으면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니 해도는 반드시 필요하죠.”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점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찾았다.

    유파성은 확실히 자원이 풍부해 장안성의 시장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특히 물 속성 재료가 매우 많았다. 다만 아쉽게도 지금 그의 경지는 상당히 높아진 터라 어지간한 재료는 별 효과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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