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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67화 (567/1,214)

567화. 배신자

죽음의 기운이 흐른 곳마다 순식간에 희뿌옇게 변했는데, 금빛 용도 여기에 닿자마자 비늘이 벗겨지면서 부식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여전히 덤덤하게 손을 휘둘렀다.

금신법상의 손에 모여든 다섯 개의 뇌광이 번뜩이며 빛을 폭사했다.

허공에서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눈부신 하얀 빛이 수만 마리 뱀처럼 사방에서 몰려와 일제히 죽음의 기운을 파고들었다.

종횡으로 교차하는 천둥번개는 멈추지 않았다. 수많은 번개가 충돌하자 엄청난 위력을 뿜어냈고, 어두운 초록빛 죽음의 기운은 햇살에 닿은 눈처럼 빠르게 녹아 사라졌다.

모든 죽음의 기운이 사라진 순간, 거대한 늑대의 세로 눈이 다시 빛났다.

그때,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금빛 곤봉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겹겹의 저항을 뚫고 늑대의 세로 눈에 꽂혔다.

“끄아아!”

사내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곧바로 뚝 그쳤다.

뒤에 있던 검은 늑대의 형상도 입을 크게 벌리고 포효하며 몸부림쳤다.

그때, 허공에 있던 금신법상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작은 사람이 나타나 흑의의 사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심협은 두 손으로 검은 늑대의 눈에 박힌 진해빈철곤을 잡고는 등을 돌려서 어깨 위에 걸쳤고, 산을 뽑을 기세로 힘껏 잡아당겼다. 곤봉이 지렛대처럼 솟아올랐고, 천 장 크기의 거대한 늑대가 붕 떴다. 뒤이어 심협의 두 다리가 별빛으로 반짝이더니 거센 산과 같은 기세로 흑의의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사내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발천난봉!”

심협의 기합과 함께 양 소매에서 금룡이 진해빈철곤을 따라 몸을 휘감으며 날아갔고, 휘날리는 두 손 사이로 금빛 용들이 쏜살같이 날아가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이 소리가 천지를 뒤덮은 순간, 수많은 곤봉과 용이 합쳐진 형상이 한꺼번에 흑의의 남자에게 떨어졌다.

쾅! 쾅! 쾅!

천둥 같은 폭발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흑의의 사내의 몸에서는 청현의 빛이 끊임없이 번득였고, 또한 그가 걸치고 있던 사슬갑옷이 깨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폭발음이 잦아들었을 때, 사내의 법보 갑옷은 완전히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 후드득 떨어졌다. 그의 온몸도 피로 가득하여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우뚝 서 있었다. 단지 심협의 피를 갈망하던 두 눈에는 이제 충격만이 가득했다. 이제야 그는 눈앞의 저자가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한편, 심협은 상대가 여전히 견뎌내는 것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이 정도 공격으로는 쓰러지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그는 진해빈철곤을 거두며 뒤로 물러나서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손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이 하늘 위로 날아갔다.

“삼성멸마!”

심협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이 크게 흔들렸고, 먹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 반짝이더니 만 리 밖의 별들이 빼곡하게 하늘에 나타났다.

심협은 금빛이 흐르는 화안금정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제야 광활한 성역(星域)의 모든 별에서 가느다란 실 같은 빛의 흔적이 세상에 떨어지면서 바람에 휘날려 흩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은하수에서 거대하기 그지없는 별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더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종의 특별한 연결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졌다. 별들이 줄곧 기다렸다가 그의 부름에 응답하듯이 그의 힘에 이끌려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별들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더니 세 개의 거대한 별들이 그의 힘에 이끌려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다.

그것들은 조금 가까이 다가온 후에야 멈췄고, 빛의 기둥처럼 뜨거운 별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만 장 높이의 하늘에서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별의 투영(投影)이 점차 생겨나면서 수많은 빛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점차 실제로 변했고, 뿜어내는 기운도 갈수록 강력해졌다.

흑의의 사내는 고개를 들어 이 현상을 목격하고는 겁을 집어먹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본명 신통을 운공하여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다시 자기 몸으로 복귀시켰다. 그러자 그의 외모가 점점 변하여 머리는 늑대로 변했고, 등에는 청흑색 날개가 생겨났다.

그가 날개를 펄럭이자 온몸에서 혈기가 갑자기 솟구쳤고, 핏빛 빛의 덩어리가 몸을 감쌌다.

“어딜 도망가려고!”

심협이 크게 외치자 아직 완벽하게 모습을 이루지 못한 금빛의 별이 곧장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쾅!

굉음과 함께 본래 부서졌던 오지산은 평지로 변해버렸고, 땅에는 거대한 별자리 그림만 남게 됐다.

심협은 삼성멸마 신통이 사라지자 두 다리가 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어딘가를 바라봤다. 흑의의 남자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망간 게 분명했다.

심협은 가부좌 튼 채, 마지막에 봤던 반인반랑(半人半狼)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자 갑자기 천궁에서 있었던 옛일이 떠올랐다.

과거 마족이 남천문(南天門)을 공격했을 때, 그곳을 지키던 사대천왕이 일제히 패했다. 28성숙 중 열두 명의 성관이 지원을 나갔다가 가는 도중에 몰살당해 전멸했다고 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완패한 이유는 배신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더니, 그게 바로 규목랑(奎木狼)이었던 모양이다.

심협은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서둘러 운공을 시작했다.

이번 싸움으로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기세(氣勢)가 엉망이 되었다. 곧장 제대로 정양하지 않으면 훗날 수련에 많은 후환이 생길 터였다.

* * *

눈 깜짝할 사이 며칠이 지났다. 심협의 온몸은 환하게 번득이고 있었는데,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깨어났다.

저 멀리 백령이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게 보였다.

심협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심, 심 선배…….”

백령의 웃음은 부자연스러웠다.

“왜 네가 겁을 내는 거냐?”

“선배는 모르나 보네. 며칠 전에 나는 10장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선배 몸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거기에 맞고 이틀이나 기절했었단 말야.”

백령이 억울하다는 듯 투덜대자 심협은 말문이 막혔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오지산이 무너졌으니 이곳의 금제도 사라졌을 텐데, 왜 안 가고 남아 있어?”

심협의 물음에 백령은 머뭇거리다가 먼 곳에 있는 바위로 가서 검은 깃발을 끌고 왔다.

심협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이 깃발에는 십이성관의 시신이 담겨 있으니 언제고 쓸모가 있을 터였다.

“고맙구나.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밖에는 심 선배나 조금 전의 그……놈처럼 강한 사람들이 많아?”

심협은 그녀의 질문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확실히 바깥은 위험하긴 하지.”

“그럼…… 난 안 나갈래.”

백령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이번 격전으로 사람들이 이곳을 주시할 거야. 우선은 여기를 떠났다가 나중에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오는 게 좋을 거다.”

“알겠어. 선배 말대로 할게.”

백령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다시 주변을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마침 네게 딱 맞는 수련 공법이 있으니 이걸 주마. 수련할 때는 절대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반드시 천천히 정도(正道)를 걸어야 해.”

말하고는 심협은 저물법기에서 세 권의 서책을 건네줬다.

“고마워, 선배.”

백령은 바로 허리를 숙이고는 두 손으로 받았다.

한데 갑자기 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세 권의 서책이 땅에 떨어졌다.

깜짝 놀란 백령이 고개를 들어 보니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협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선배……?”

혹시나 하고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인사도 없이 갈 수가 있지?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백령은 중얼거리며 땅에 떨어진 공법 서책을 집었다.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온몸이 쑤셨고, 보타산의 객실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잠시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이번 꿈의 경험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마겁이 닥쳤을 때 어떤 세력도, 배후의 어떤 대능도 화를 면하지 못했다. 오로지 자기만을 의지해야 했다.

심협은 고개를 휘휘 저어 생각을 털어내고 침상에 가부좌 틀었다.

그의 외상은 이미 섭채주가 버드나무 가지로 치료해줬지만, 영동구천비법의 후유증으로 오장육부를 크게 상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정양이 필요했다.

그러나 영유단을 복용하지는 않았다. 생명을 구하는 단약인 만큼 중요한 순간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무명공법을 운공했다.

몸에서 한 줄기 푸른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푸른 빛은 실처럼 단전에서 뿜어져 나와 사지와 머릿속 혈로 들어가 모든 경맥을 지나 오장육부를 돌더니 마지막에 단전으로 흘러 들어갔다.

현재 그의 몸 위로는 흐르는 물 같은 푸른 빛이 돌고 있었다.

이번의 꿈속에서 그는 태을 경지로 돌파했고, 칠십이변을 완벽하게 익혔으며, 도법 수련의 깨달음도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꿈속 경험의 도움으로 무명공법에 대한 깨달음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지금 시도하고 있는 이 치료법은 칠십이변과 황정경 그리고 몸을 단련하는 비전(祕典)을 융합하여 스스로 만들어낸 법문이었다.

심협을 감싼 푸른 빛은 빠르게 흘렀는데, 한 바퀴 돌 때마다 내상이 조금씩 치료됐다.

하룻밤 만에 그의 안색은 완전히 돌아왔고, 내상도 많이 회복됐다.

한데 그때, 무언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의 몸에서 푸른 빛이 파동을 일으키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잠시 후 두 눈을 떠 보니 눈앞에는 하얀 빛이 춤추며 날고 있었다. 전음부였다.

“채주? 아니면 백형인가?”

그는 손을 들어 하얀 빛의 전음부를 들이마시고는 신식으로 살폈다. 그리고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향했다.

거실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모르는 얼굴이지만, 보타산 제자의 복장이었다. 다른 한 명은 거대한 덩치의 흑곰 요괴였다.

백소천과 섭채주는 그곳에 없었다. 아무래도 각자의 방에 있는 듯했다.

“호법 선배,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 어서 앉으십시오.”

심협은 흑곰 요괴를 반겼다.

“심 소협,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네. 소우의 안색이 좋아진 걸 보니 다행이군. 만약 영동구천비술 때문에 화근이 남았다면 내 마음이 무거울 뻔했어.”

흑곰 요괴는 심협을 살펴보더니 놀란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호법 선배의 관심에 감사합니다.”

심협이 웃으며 답했다.

잠시 인사말을 나눈 후,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이번 대겁에서 소우의 도움이 컸으니 본문 모두가 정말 감사하고 있네. 오늘은 장문의 명을 받아 사례하러 왔으니 심 소우는 사양하지 말게.”

흑곰 요괴의 말에 심협은 어리둥절했지만, 뒤늦게 마족을 물리친 다음에 청련선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단지 꿈속 세상에 다녀오느라 잊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청련 장문인께서 너무 예의를 차리셨습니다. 저 같은 후배 때문에 호법 선배를 직접 보내시다니요.”

심협이 겸손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내 당연히 직접 와야지.”

흑곰 요괴는 밝게 웃으며 말하더니 옆에 선 보타산 제자에게 눈짓을 했다.

제자는 곧장 혈홍색 옥합과 청색 옥병을 꺼내 심협 앞 탁자에 올려두었다.

“혈색 옥합은 본문의 성약(聖藥)인 홍설산(紅雪散)이네. 아무리 깊은 내상도 치료할 수 있지. 소우를 보아하니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지만, 가지고 있게. 언젠가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이 청색 옥병에는 감로수 한 방울이 담겨 있다네.”

“감로수! 선배께서 전에 말씀하셨던, 옥정병 안에서 잉태하여 죽은 사람도 되살린다는 그 감로수 말입니까?”

심협은 홍설산에는 큰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감로수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버드나무 가지와 함께 사용해야 가능하지. 그래도 이 감로수는 특별하다네. 치유 효능이 담긴 게 아니라, 청련 장문인이 본문의 비술을 운공하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오로지 순수한 물의 정수만 남겨 놓은 것이지. 소우는 물의 공법을 수련했으니 이 감로수가 큰 도움이 될 걸세.”

심협은 흑곰 요괴의 설명을 들으며 청색 옥병을 들었는데, 놀랍게도 무게가 수백 근은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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