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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65화 (565/1,214)

565화. 더 강하다

나무 구멍 밖. 검은 옷의 사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다급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의 인내심은 진즉 바닥이 났다. 만약 최근 며칠 동안 고목 주변의 금색 실이 갑자기 난폭해지지 않았다면 그는 참지 못하고 들어갔을 것이다.

“요 며칠 확실히 이상했지. 그놈은 도대체 죽은 거야, 산 거야?”

검은 옷의 남자는 나무 동굴 입구를 매섭게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백령을 보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됐다. 더는 안 기다려!”

그는 백령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백령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한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집게 같은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잡더니 들어 올렸다.

“원망하려면 저 안에 처박혀 나올 생각도 않는 그놈을 원망해라. 내 인내심이 이미 바닥났으니까. 더구나 너는 살려둬도 쓸모가 없을 것 같구나.”

검은 옷의 남자는 차갑게 웃더니 백령을 고목 쪽으로 던졌다.

“아, 안 돼!”

백령은 반항조차 할 수 없었고, 그저 금색 실이 난무하는 구역으로 날아가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두 눈을 꼭 감고는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펑!

작은 폭발음이 울리더니 백령의 두 발이 땅에 닿았다. 그녀는 무서워서 똑바로 서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끔찍한 통증도, 금색의 칼날의 움직임도 없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는 광경도 보이지 않았다.

“어, 나 안 죽었네?”

벡령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검은 옷의 사내가 경악한 듯 외쳤다.

“사라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백령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금제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달려가 나무 동굴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검은 옷의 사내도 곧장 나무 구멍으로 돌진했다.

* * *

잠시 후, 백령의 눈앞이 밝아지더니 곧 무너진 오지산이 보였다.

“심 선배!”

그녀는 산 정상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며 크게 외쳤다.

검은 옷의 남자도 뒤이어 나타나더니 오지산을 살폈다. 그의 시력은 백령보다 훨씬 뛰어났기에 무너진 산에서 누군가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자의 온몸은 숯처럼 검게 그을려 있었다.

검게 그을린 시체, 심협 주변의 뇌지는 어느새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그저 땅에 있던 바위에 크고 작은 구멍이 파여 있어서 천 번, 만 번의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백령이 산 정상에 오를 때쯤, 검은 옷의 남자도 턱밑까지 쫓아왔다.

“심 선배!”

백령은 심협을 보는 순간 화들짝 놀라 외쳤다.

“아무래도 저자의 운이 다한 모양이지? 아무런 보호와 준비도 없이 이곳에서 뇌겁을 겪은 걸 보면 말야. 아쉽게도 실패했군. 하하하!”

검은 옷의 남자는 이 ‘그을린 시체’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비릿하게 웃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자 백령은 씁쓸했다.

검은 옷의 남자는 한마디도 없이 그녀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소매에서 뿜어져 나온 바람에 모래바람이 일어나 이미 검게 그을린 심협의 몸에 닿았다. 그러자 새빨간 불꽃이 담긴 잿더미가 바람에 휘날려갔다.

콰직!

기이한 소리와 함께 심협의 몸에서 검게 그을린 피부가 툭 떨어졌다.

검은 옷의 남자는 고개를 돌려서 ‘그을린 시체’를 바라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벗겨진 검은 피부가 떨어지자 옥석 같은 골격이 드러났다. 그 위로 가늘고 촘촘한 혈관이 보였지만, 살점은 남아 있지 않았다.

뒤이어 콰직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오더니, 시커멓게 탄 피부가 모두 벗겨졌다. 그 안에서 온전히 드러난 골격에 소름이 끼쳤다.

“방금 전에는 분명히 생기가 전혀 없었는데, 어떻게……?”

흑의(黑衣)의 남자는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그을린 시체의 턱뼈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이어서 목구멍에서 푸른 빛이 반짝였고, 몸에서는 갑자기 천지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과일…….”

백령은 몸을 움츠리고 코를 움찔였다가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그을린 시체, 심협의 입에는 영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태을 뇌겁의 강함은 예상보다 강력했고, 그는 순서대로 조금씩 뇌전을 끌어들여 육체를 조금씩 적응해갔다. 하지만 용상반약진이 부서지는 순간, 그의 육신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기미를 보였다.

위급한 상황, 그는 대개박술을 극한으로 운공했다. 그러나 육체를 온전하게 유지할 수 없었고, 치료할 때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찢겨 나갔다.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정말로 뇌지에 식해가 무너지고 단전과 오장육부가 부서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옥침의 힘으로 부활할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안 그래도 적은 수명이 또 바닥날 것이다.

뇌지의 담금질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1,361번이나 육체가 부서졌다가 다시 만들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뇌지도 결국 모든 힘을 소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일격을 가했을 때, 심협은 법력을 모두 소진해 대개박술을 시전할 여력도 없었다.

의식이 무너지기 직전, 심협은 본능적으로 반 알의 영귤을 입에 넣었다.

휭!

그 순간, 갑자기 천지에 상쾌한 바람이 감돌았고, 심협의 몸을 제외한 모든 것이 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생기가 완전히 사라진 몸이 다시 살아난 순간, 주위를 맴돌던 바람도 점점 거세지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영기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다시 살아나다니!”

흑의의 남자는 경악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나 곧 눈에 살기가 들어차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옷소매가 펄럭이더니 검은 검광(劍光)이 순식간에 영기의 소용돌이를 향해 날아갔다.

쾅!

굉음과 함께 영기의 소용돌이가 폭발했고,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백령은 구멍 사이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나체의 남자, 심협이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검광을 모두 피해내는 것을 보았다. 어느새 재생된 심협의 반투명한 피부 아래로 뼈와 혈관, 오장육부가 모두 보였다.

오장육부는 오색의 유리 같았고, 온몸의 뼈는 옥석처럼 투명한 빛을 뿜어냈다. 모든 혈관이 황금빛이라 마치 용의 근육 같았다.

“이렇게 빠를 수가…….”

흑의의 남자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눈빛이 신중해져 곧장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에 3척 길이의 청록색 장검이 나타났다. 검에서 마치 호수의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듯 빛이 흘러나오는 것이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사내는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심협 앞에 나타나 청록색 빛을 폭발시키며 그대로 단전을 찔러 들어갔다.

그 순간, 심협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는 별빛처럼 반짝였다.

심협은 가볍게 손을 내밀었고, 다음 순간 청록빛 검은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사내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아는가?”

심협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그의 몸에서는 빛이 반짝였고, 새로운 옷이 몸을 덮었다.

“흥! 이제 막 태을경에 올라서서 기운이 불안정한 지금 날 만나다니, 네놈은 정말 운도 없구나!”

흑의의 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내뱉더니 온몸에서 광포한 기운을 폭발시켰다.

펑!

폭발음과 함께 청록색 검에서 톱니 같은 검망이 폭발하면서 심협의 두 손가락에 꽂혔다. 그러자 놀랍게도 금속끼리 충돌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의 두 손가락은 결국 벌어졌지만, 그저 두 줄의 하얀 자국이 생겼을 뿐 손끝에는 아무런 상처조차 없었다.

이에 흑의의 사내는 물론 심협 자신도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수련한 황정경공법은 본래 신체 단련을 중시한다. 더욱이 그는 다른 수사들에 비해 태을 경지의 문턱이 높아진 탓에 태을 뇌겁의 위력 또한 남달랐다. 그래서 더욱 위험했고, 하마터면 실패할 뻔했다. 허나 난관이 힘든 대신 잘만 넘긴다면 다른 태을 경지의 수사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심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다음 순간, 그는 오른손을 움켜쥐었다. 단전의 법력이 그의 뜻을 따라 움직여 순조롭게 경맥을 타고 흐르더니 순식간에 손바닥에 도착했다.

동시에 주변의 천지영기가 마치 끌려오듯 자연스럽게 그의 손에 모여들었고, 천지가 힘을 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선기 때는 이렇게 천지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없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생각은 어지러워도 주먹을 뻗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찢어지는 듯한 폭발음이 울렸고, 천지영기가 빛처럼 날아가는 궤적마저 선명하게 보였다.

이 주먹은 삼십육천강병(三十六天綱兵) 중 하나로, 태을 경지에 이른 지금은 그 위력도 자연히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흑의의 남자는 심협의 주먹이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허공의 천지영기가 압축되어 기류의 소용돌이가 생겨난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천지영기에 섞여 나온 빛의 흔적에 소용돌이는 더욱 화려하게 번득였다.

그는 놀란 기색으로 얼른 뒤로 물러나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물러나기가 무섭게 심협의 주먹은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가슴팍을 향해 돌진해왔다.

흑의의 남자는 서둘러 검을 들어 주먹을 막았다.

꽝!

주먹과 검이 서로 충돌하자 화려한 빛이 폭발했다. 빛에서 느껴지는 강렬하고 뜨거운 기운에 사내는 마치 뜨거운 태양이 가슴에 박힌 느낌을 받았다.

패도적인 힘과 충돌한 흑의의 남자는 순식간에 천 장 밖까지 튕겨나갔다.

그러나 심협은 바로 쫓아가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기운이 불안정함을 잘 알고 있었고, 현재의 실력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니 서두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옆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백령이 펄쩍 뛰며 손뼉을 쳤다.

“심 선배, 잘했어요!”

심협은 그녀를 보며 짧게 웃고는 자신의 상태를 살펴봤다.

육신부터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온몸의 뼈가 옥처럼 빛나며 순결했고, 혈맥이 황금빛을 띠었다. 태을 경지에서 말하는 유리무구(琉璃無垢)의 경지에 이르렀음이 분명했다.

다만, 단전과 법맥은 절반이나 비어 있었는데, 이는 저 흑의의 사내로 인해 강제로 수련이 중단되면서 천지영기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데다 육체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일 터였다.

“방금 태을의 경지에 들어섰는데도 이런 힘이라니, 절대로 기운이 안정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되겠구나!”

흑의의 남자는 살의가 어린 얼굴로 외쳤다. 심협이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알았으니 화근을 남겨두어서는 아니되었다.

“내 검은 이름도 없는 자를 베지 않는다. 이름이 무엇이냐?”

흑의의 남자는 청록색 장검을 움켜쥐며 물었다.

“죽이면 죽이는 거지 뭘 그렇게 따지는 게 많아?”

심협은 피식 웃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육진편을 쥔 손을 내밀었다.

“육진편! 이정의 육진편이 어떻게 네 손에 있는 것이냐?”

흑의의 남자가 경악한 듯 외쳤으나, 심협은 대꾸 없이 곧장 돌진했다.

놀란 사내는 다급하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몸 앞에 갑자기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허공에 커다란 검은 깃발이 나타났다.

깃발이 나타나자 갑자기 귀기(鬼氣)가 퍼져 나오면서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하늘을 가리더니 반경 백 리를 뒤덮었다.

안개에 뒤덮인 영역의 지면에서 시커먼 소용돌이가 솟아올랐고, 그 너머로 흐릿한 그림자가 하나둘 나타났다.

심협은 잠시 멈춰 서서 이를 지켜봤다. 그림자 중 한 명은 관복 차림에 손에는 홀판(笏板)을 들고 있었는데, 몸은 사람이요 머리는 커다란 닭이었다. 두 눈에는 눈동자 대신 커다란 구멍뿐으로,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에는 여우 머리의 사람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조복에 홀판을 들고 있었고, 눈에서는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뒤이어 연달아 열두 명의 사람이 나타났는데, 하나같이 머리의 모양만 다르고 관복을 입었다는 점은 같았다.

심협은 그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들은!”

그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는데, 바로 천궁 28성숙(星宿) 중 열두 명이었다.

닭머리는 서쪽 백호의 네 번째 별인 묘일계(昴日鷄), 여우머리는 동쪽 청룡의 다섯 번째 별인 심월호(心月狐), 뱀머리는 각숙(角宿)의 각목교(角木蛟)였다.

이외에서도 투목해(鬪木獬), 익화사(翼火蛇), 진수인(軫水引), 필월오(畢月烏) 등 아홉 명의 성관(星官)도 있었다.

심협은 그중 묘일계, 심월호, 각목교 그리고 투목해, 넷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의 이름이 천책에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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