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64화 (564/1,214)
  • 564화. 뇌겁 (2)

    심협이 손을 휘두르자 육진편에서 검은 빛이 번득이더니 커다란 채찍의 환영이 나타나 뇌운 기둥 중 하나를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며 뇌운 기둥을 두들겼지만, 마치 솜을 때린 듯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고, 그대로 허공을 가로질러 텅 빈 곳에 떨어졌다.

    뇌운 기둥은 하얀 구름을 조금 흘렸지만, 곧 빠르게 다시 기둥으로 돌아갔다.

    “역시…….”

    심협은 속으로 탄식했다.

    그 순간 네 개의 뇌운 기둥이 땅에 떨어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환영 같았던 네 개의 기둥은 실제처럼 변했다. 사방에서 천둥번개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주변의 구름 기둥을 둘러보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진해빈철곤이 나타났다.

    그때, 쇠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챙!

    뒤이어 두 개의 뇌운 기둥의 조각상이 들고 있던 설백의 사슬이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심협은 다급하게 진해빈천곤을 휘둘렀고, 곤봉은 강력한 기류를 뿜어내 설백 사슬의 궤적을 어긋나게 했다.

    두 개의 사슬은 조금 빗겨나갔지만, 민첩한 뱀처럼 빠르게 늘어나 심협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심협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빛 용과 코끼리 환영이 동시에 뒤에 나타나서 다시 설백의 사슬을 향해 돌진했다.

    막 충돌하려는 순간, 설백의 사슬에서 천둥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수많은 번개가 사방으로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두 개의 설백 사슬이 갑자기 실체에서 허영으로 바뀌었고, 금빛 용과 코끼리를 지나 곧장 심협의 가슴을 찔렀다.

    “큭!”

    심협은 가벼운 신음을 흘리며 가슴을 움켜잡은 채 휘청거렸고, 손에서 힘이 풀리며 진해빈철곤을 땅에 떨어트렸다.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두 개의 설백 사슬이 가슴을 뚫고 어깨 뒤쪽으로 나와 있었고, 어깨뼈가 완전히 뚫린 상태였다.

    그는 다시 자기 몸을 살펴보았다. 법력은 그대로였지만, 대부분이 막혀버려서 운공할 수 있는 것은 1할도 되지 않았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대로는 뇌겁에 대항할 수 없을 터였다.

    네 개의 뇌운 기둥에 새겨져 있던 무늬가 일제히 번득이면서 마치 금빛을 두른 것만 같았다.

    뇌운 기둥 위에 서 있던 흉신들의 눈도 일제히 금빛으로 빛났고, 등의 날개까지 활짝 펼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슬을 들고 있던 흉신들이 한 손으로 결인하자 몸에서 파지직 하고 번개가 번득였다.

    다른 흉신이 강철 끌을 높이 들어 올려 심협을 내려치려 했고, 남은 하나는 주먹을 들어 청동 북을 두드릴 준비를 했다. 북에는 외다리의 기우(夔牛)가 새겨져 있었는데, 마치 조금씩 깨어나는 것처럼 두 눈을 천천히 떴다. 온몸의 번개무늬도 빛나기 시작했다.

    둥!

    북소리와 함께 기우의 두 눈이 갑자기 번쩍였고, 몸의 번개무늬도 동시에 빛을 발했다. 푸른 번개가 북에서 뿜어져 나와 예리한 창처럼 심협의 단전을 찔렀다.

    “크윽!”

    극심한 통증에 심협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뱉었다. 단전이 날카로운 힘에 찢기는 느낌에 이어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아랫배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축적되어 있던 법력도 혼란에 빠져 법력으로 번개를 막을 수도 없었다.

    마치 뇌겁이 아니라 번개의 형벌을 받는 것 같았고,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파도가 일파만파 번졌다.

    강철 끌을 들고 있던 흉신도 움직였다. 돌망치를 높이 들어 끌을 내리치자 적홍색 불꽃이 튀었다.

    끌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번개는 곧장 심협의 미간으로 떨어졌다.

    꽈릉!

    폭발음과 함께 심협은 상체가 뒤로 홱 젖혀졌지만, 두 개의 설백 사슬에 꽂혀 있는 상태라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는 식해가 요동치면서 끝없는 혼란에 빠져 신식이 흐려졌다.

    “하나같이 급소를 노리는군.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

    심협은 이를 악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차단되어 있던 법력이 스스로 운공하기 시작하더니 대개박술도 스스로 움직여서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만약 칠십이변 신통을 수련하기 전의 황정경으로 수련한 신체와 정신이었다면 이번 뇌격을 견디지 못하고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단전이 완전히 치료되는 순간, 청동 북이 다시 한번 울렸다.

    이번에는 청동 북에서 초승달 모양의 검은 무늬가 떠올랐고, 푸른 번개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짙푸른 색으로 바뀌면서 날카로운 창처럼 또다시 단전을 찔러왔다.

    “으윽!”

    심협은 신음을 뱉었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단전과 함께 법력도 폭발하면서 빠르게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방금 안정시킨 신식으로 대개박술을 운공하여 우선 단전을 치료하는 데 힘을 썼다.

    그때, 그의 어깨뼈를 뚫은 두 개의 사슬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슬에서 설백색 빛이 번득이더니 사슬의 끝을 잡고 있던 두 흉신의 몸에서 두 개의 번개가 흘렀다.

    파지직!

    귀를 찌르는 소리와 함께 번개가 심협을 향해 흘러왔다.

    심협은 번개에 감전되어 법력의 운공을 유지할 수 없었고, 모든 수단이 막혀버렸다.

    그러나 그때, 마치 심협에게 숨을 돌릴 기회를 주려는 것처럼 뇌겁이 멈췄다.

    심협은 재빨리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즉시 안색이 달라졌다.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의 통로에서 파도 소리가 울리더니 금빛 물결이 강하게 넘실거리며 밑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동시에 땅에 먼저 떨어졌던 불덩이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고, 네 개의 뇌운 기둥을 경계로 심협의 주변에 화홍색 융단이 깔렸다.

    융단이 깔리자 네 개의 뇌운 기둥에 있던 무늬가 반짝였고, 흐릿한 하얀 빛이 네 개의 뇌운 기둥에서 퍼져 나와 담벼락처럼 심협의 주변에 세워졌다. 태을의 겁(劫)은 차곡차곡 그의 주변에 구천뇌지(九天雷池)를 세운 것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고, 그저 육신에 의지하여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부좌 튼 채 황정경공법을 극한으로 운공했다. 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여섯 마리의 용의 형상이 먼저 떠올라 그의 주변을 맴돌며 고개를 들고 포효했다. 바로 이어서 여섯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 형상이 나타나 그를 호위했다.

    여섯 마리의 용과 코끼리는 서로 합을 이루었고, 보기에는 간단하게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천지육방(天地六方)을 차지하여 용상반약진(龍象般若陣)으로 변했다. 심협을 대신하여 자신만의 견고한 작은 세상을 만들어 단절시키려는 것 같았다.

    이 법진이 형태를 갖추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여섯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가 긴 코를 움직이며 주변의 천지영기를 끊임없이 흡수했다. 코끼리의 몸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머리 위를 맴돌던 여섯 마리의 금룡(金龍)도 입에서 금빛을 뿜어냈고, 빛들이 하나로 뭉치면서 거대한 금빛 여의주가 됐다. 금빛 코끼리는 영기를 모았고, 신룡은 여의주를 토해내 각각 이전에 보여주지 않은 기적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이번에 보충한 황정경 대강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심협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구천에서 괴수의 포효와 같은 천둥이 울려 퍼졌고, 천뢰로 만들어진 금빛 물결이 머리 위까지 다가와 천위를 세상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땅에서는 적홍색 불꽃이 천뢰와 연결되며 갑자기 맹렬하게 용솟음쳐서 심협을 불태우기 위해 몰려왔다.

    심협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신식을 굳게 하여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했다.

    주변에 있던 여섯 마리 코끼리의 몸에서 찬란한 빛이 이끼처럼 퍼지기 시작해 몰아치는 불꽃을 압박했다. 하지만 보호를 받던 심협은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뚫고 오장육부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여섯 마리 금룡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였고, 용의 머리 사이에 있던 금빛 여의주에서 강력한 기운이 흘러나와 떨어지는 뇌지금수(雷池金水)를 향해 돌진했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여의주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뇌전은 사방으로 튀어나가 주변의 허공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사방으로 흘러넘친 더 많은 뇌지금수가 땅에 세워진 뇌지로 흘러갔다.

    뇌지금수와 땅의 번개가 서로 만나자 충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우 순조롭게 하나로 합쳐져서 적금뇌액(赤金雷液)으로 변했고, 이 뇌액은 본래의 금색 뇌액보다 훨씬 강력했다. 서로 하나로 합쳐지자 강렬하게 일렁이며 사방에서 심협을 향해 몰아쳤다.

    금빛 코끼리와 금룡의 보호로 대부분의 뇌화를 막아낼 수 있었지만, 작고 미세한 번개 몇 줄기가 보호를 뚫고 심협의 몸에 떨어졌다.

    파지직!

    번개가 몸을 태우면서 심협은 머리가 저릿했고, 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지금 그는 마치 천지의 난로에 빠진 것처럼 천뇌(天雷)와 지화(地火)에 구워지고 달궈졌지만 피할 방법이 없었다.

    용상반약진은 매우 강력했지만, 천지의 위엄이 담긴 뇌지(雷池)와 비할 바가 되지 못했고,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심협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용상반약진의 보호에만 의지하지 않고 황정경과 대개박술도 동시에 운공했다.

    그는 두 눈을 감았지만, 여전히 신식으로 주변을 살폈다. 손으로 법결을 빠르게 결인하고 손을 내밀었을 때, 본래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한 줄기 적금색 뇌전이 곧장 용상반약진을 뚫고 들어와 손의 노궁혈(勞宮穴)을 찔렀다.

    “큭!”

    극렬한 고통에 심협은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팔이 날카로운 힘에 뚫린 것 같은 느낌이었고, 손은 불에 덴 것만 같았다. 노궁혈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이 갑작스런 상황에 그는 하마터면 심신을 잃을 뻔했고, 용상반약진도 불안정해졌다.

    잠시 후, 심협은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뇌전이 가슴의 혈자리를 찌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만약 그랬다면 법력의 운공이 차단되면서 대진도 사라졌을 것이고, 적금뇌액에 뼈와 시체가 녹아 잿더미가 됐을 것이다.

    심협은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다시 노궁혈을 살피고는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생각했던 대로 뇌전을 겪고 대개박술로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 혈은 은연중에 번개가 흘러 이전보다 더 넓어졌다. 이는 혈자리의 강인함이나 법력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가 두 배 이상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막히는 것보다야 뚫리는 게 낫지.’

    용상반약진은 오래 버티지 못하니 그로서는 이 법진이 뇌지금액의 공격에 부서지기 전에 뇌전공격을 자기 혈자리로 이끌어 육체를 조금씩 번개에 익숙해지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육체가 조금씩 뇌전의 위력에 적응이 되어 더 강해졌을 때, 용상반약진이 공격에 부서질 때 수많은 뇌화의 대겁을 막아낼 기회가 온다.

    잠시 쉰 후에 심협은 다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또 한 줄기 뇌전이 법진을 뚫고 들어와 그의 혈 자리를 찔렀다.

    이런 과정은 며칠이나 이어졌다.

    오지산 정상에는 더 이상 번개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땅에는 번개로 가득한 뇌지(雷池)가 생겨나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고, 수많은 뇌광이 주변에서 솟구쳐 하늘을 찌르는 성난 파도와 함께 중앙으로 돌진했다.

    심협을 둘러싼 용과 코끼리 형상은 이미 힘을 다해 희미해졌고, 붕괴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심협은 온몸이 너덜너덜했다. 온전한 곳 없이 온몸이 검게 그을렸고, 곳곳에 피가 굳은 흔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하늘을 뒤흔드는 일격에도 그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않고 견뎌냈다.

    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이 작렬했다. 여섯 마리 금룡 형상이 터졌고, 그 아래 여섯 마리 코끼리도 뇌화에 부서지면서 적홍의 뇌액이 순식간에 심협에게 떨어졌다.

    파지직!

    번개가 심협의 몸에서 솟구치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뜩이나 까맣게 그을렸던 피부가 찢어지면서 마치 오랫동안 말라버린 대지처럼 몸에 균열 같은 무늬가 생겨났다. 이 무늬 사이에서 옅은 금빛 혈액이 흘러나와 심협의 온몸으로 흘러갔다.

    그의 몸은 번개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배처럼 넘실넘실 떠다녔고, 온몸의 기운도 서서히 약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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