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58화 (558/1,214)

558화. 요기(妖氣)

심협은 둔지부를 바스러뜨려 몸에서 황색 빛을 번득이며 땅속으로 들어가 빠르게 돌아녔다.

하지만 한바탕 고생을 한 뒤에도 지하에서 무엇도 찾지 못했다.

심협이 얼굴에 흙을 잔뜩 묻힌 채 다시 땅 위로 돌아왔을 때, 멀리서 갑자기 몇 번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는 바로 눈을 가늘게 뜨고 신식을 방출하여 주변을 둘러보았고, 잠시 후에는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거지? 며칠 전에는 분명히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주변의 원기가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거야? 신식도 방해를 받아서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군.’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폭발음이 울렸다.

심협은 신식을 움직여 기척을 숨긴 채 폭발음이 나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수백 장을 가보니 눈앞의 산이 점차 줄어들었고, 커다란 굽은 길이 나타났다.

아래를 바라본 심협은 더욱 의아해졌다.

‘반경 천 리를 몇 번이나 살폈건만, 숲속에서 이런 길을 본 것은 처음이야.’

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산속의 굽은 길 끝에 작지 않은 마을이 나타난 것이다.

심협은 이 오래돼 보이는 마을 근처까지 날아갔지만, 땅으로 내려가지는 않은 채 상공에서 유심히 살폈다.

날이 어두워져서 마을 곳곳에서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집마다 문 사이로 빛이 흘러나와 따뜻해 보였다.

마을 가운데에는 돌사자가 문 앞을 지키는 커다란 저택이 하나 있었고, 문 앞에는 두 개의 선홍색 등불이 걸려 있었는데, 문에는 커다란 희(喜)자가 붙어 있었다. 처마 밑에는 붉은색 휘장이 걸려 있는 것이 좋은 일이 있는 듯했다.

커다란 저택 안은 등불이 가득했고, 정원에는 일고여덟 개의 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빈 상태였다.

좀 전의 폭발음은 이 저택에서 폭죽을 터뜨린 소리였다. 이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붉은 비단옷을 입은 청년이 커다란 말을 타고 무리와 함께 대문 앞에 도착했다.

무리 뒤에는 여덟 명이 메는 가마에서 얼굴을 가린 신부가 매파의 부축을 받아 신랑 앞으로 다가왔고, 두 사람은 함께 대문 앞 화로를 향해 걸어갔다.

심협은 세속의 혼인 장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지만, 이런 말세에는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유심히 살펴봐도 요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말세에 정말 이런 무릉도원 같은 곳이 남아 있던 걸까?’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날아서 마을 밖으로 내려갔다.

마을 밖에는 돌로 된 패루(牌樓)가 있었는데, 소전체(小篆體)로 크게 양계진(兩界鎭)이라고 쓰여 있었다.

심협은 이 이름이 어딘가 낯익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걸음을 옮겨 패루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패루를 지나는 순간, 기이한 파동이 느껴졌다. 마치 물의 장막이 몸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기분.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려 하니 그 느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심협은 다시 몸을 돌렸다.

한데 방금 지나왔던 패루는 이미 10장 밖에 있었다.

그는 한 걸음 내딛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패루와의 거리가 10장이나 더 멀어진 것이다.

‘음, 간단치 않군.’

심협은 한숨을 쉬고는 달빛을 받으며 사월보를 시전했다. 단숨에 뛰어넘은 거리는 10장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패루는 여전히 10장 밖에 있었다.

심협은 이마를 가볍게 문지르고는 포기했고, 몸을 돌려서 양계진 안으로 걸어갔다.

도로 양쪽에 패루와 가장 가까운 곳은 대장간과 국수 노점이었다.

대장간 입구 앞의 난롯불은 아직 켜져 있었고, 대장장이는 이미 들어가 쉬는 중이었다. 심협은 아무도 없는 가게 앞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불을 시험해봤다. 불에서는 온도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환영이 아니라는 의미.

그때, 갑자기 누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젊은이! 오늘은 일을 받지 않으니 물건이 필요하면 내일 다시 오게.”

심협은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봤다. 국수 노점의 문에서 머리에 두건을 쓴 까무잡잡한 노인이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외부인인가? 밥은 먹었나? 국수 하나 먹고 가지 않겠나? 3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네.”

노인이 웃으며 묻는 동안, 심협은 신식으로 노인을 살폈다. 아무런 법력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닙니다, 노인장. 지금 축하 예물을 전하러 가야 해서요.”

심협이 손을 젓고는 웃으며 말했다.

“오, 노원외(盧員外)의 손님인가? 어쩐지……. 어서 가보게. 지금쯤 연회가 시작됐을 거야.”

노인이 서둘러 말하자 심협도 인사를 남기고는 마을 안으로 걸어갔다.

학당을 지날 때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안을 바라봤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학당 안은 어두웠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더 안으로 들어서자 민가가 점점 많아지면서 사람들과 개 짖는 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어느 집을 지날 때, 안에서 아이의 공부를 가르치는 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광경과 소리들은 이곳이 평범한 마을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들어가 오래된 홰나무를 지날 때, 나무 아래 우물에서 누군가 물을 긷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목이 마르다는 핑계로 물 한 사발을 청했다.

보아하니 우물의 물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음기가 침투한 흔적도 없었고 어떤 이상한 점도 없었다.

‘여기는 정말 말세에 운 좋게 남은 무릉도원인가?’

심협은 턱을 쓰다듬으며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문득 옛날에 장수촌에 잘못 들어갔을 때가 생각 난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물을 길어준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양계진 근처에 오지산이 있습니까?”

“오지산? 들어본 적이 없는데…… 산이라면 양계산이 있소. 우리 마을 이름도 그 산에서 유래한 것이지.”

중년 남자는 물통을 어깨에 메면서 답했다.

“양계산이요? 어디에 있습니까?”

심협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볼 필요 없네. 어찌 된 일인지, 오래전에 산이 갑자기 무너져서 지금은 마을 안에서는 보이지가 않으니까.”

중년 남자는 답하면서도 능숙한 솜씨로 물통을 챙겨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또 떠올랐다.

‘오지산은 원래 이름은 오행산(五行山)이고 과거 왕망(王莽)이 한(漢)을 찬탈할 때 인간 세계에 떨어졌는데, 훗날 대당 왕조가 서쪽 정벌을 정하면서 양계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렇다면 자신이 찾는 오지산이 바로 양계산 아닌가!

아마도 제천대성이 삼장 법사의 도움을 받아 곤경에서 벗어날 때 오지산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심협은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중년 남자는 심협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자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물을 들고 떠나갔다.

심협은 우물가를 나와서 마을 중앙 노원외의 집으로 향했다. 입구에 걸려 있는 화려한 등과 잔치 분위기를 보며 다시 잠시 생각하던 그는, 저물법기에서 특별히 오래된 인삼을 꺼냈다.

그는 비단함에 인삼을 넣고는 곧장 문으로 향했다. 손님을 안내하던 관사(管事)는 낯선 사람이 오자 미소를 거두고는 맞이했다.

그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심협은 선물을 꺼내고는 웃으며 말했다.

“후배 심협, 노부(盧府)의 기쁜 날을 축하하며 변변치 못한 선물을 준비하여 송구합니다.”

비단함을 받고는 뚜껑을 열자 짙은 향긋한 향이 코를 찔렀고, 관사는 매우 기뻐했다. 인삼의 머리와 수염을 통해 보아하니 적어도 5백 년이 넘은 인삼이 분명했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 할 만했다.

그는 신분을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서둘러 말했다.

“심협 공자께서 백 년 이상 된 인삼 한 뿌리를 선물로 가져오셨습니다.”

예단을 작성하던 집사(執事)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더니 서둘러 목록을 작성했다.

“자자, 심 공자를 어서 귀빈석으로 안내하거라.”

관사는 서둘러 시종에게 명을 내려 심협을 안내하게 했다.

심협은 시종을 따라 저택 안쪽의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는 이미 손님이 가득했고, 탁자마다 닭이며 오리, 물고기 등 각종 음식이 한가득이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즐기고 있었다.

시종은 심협을 주인이 있는 탁자 가까운 곳으로 안내했고, 그에게 그릇과 젓가락 등을 준비해주고는 인사한 후 조용히 물러갔다.

심협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잔치 분위기에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신랑과 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한 뒤, 신랑이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술을 올렸다.

한 바퀴를 돌자 신랑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벗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며 신혼 방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즐겁게 마시며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심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요기(妖氣)다.”

천지영기가 혼란의 영향을 받아 심협은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되었고, 감지되는 요기가 희박하여 이제야 감지할 수 있었다.

“으아악!”

후원에서 갑자기 비명이 들려오더니 기와 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정원의 시끌벅적함은 이 소리를 덮었고, 오직 심협만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 귀신처럼 사람들 곁에서 사라졌다.

그가 후원 입구에 도착하자 잡부 하나가 겁에 질린 얼굴로 양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으아아! 요, 요…… 요괴다!”

“무슨 일이오?”

심협이 잡부의 옷깃을 잡고는 물었다.

잡부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다가 심협에게 붙들리자 덜덜 떨었다. 이어서 지린내가 풍겨왔다.

심협은 법력을 그의 몸에 흘려보내 안정시키고는 물었다.

“말해보시오. 무엇을 보았소?”

“담비, 커다란 담비가…… 커다란 담비가 부인을 물고 달아났소!”

잡부는 마침내 이성을 되찾고는 심협에게 말했다.

심협이 손을 놓자 잡부는 바로 땅에 주저앉더니 두 눈이 뒤집히면서 혼절했다.

방문 밖에는 두 명의 시녀가 쓰러져 있었고, 심협이 몸을 구부리고 살펴보니 그저 정신을 잃은 것뿐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나무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는 뒤집혀 있었고, 땅콩이며 대추 등이 바닥에 뿌려져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신랑과 신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붕에는 물 항아리만 한 구멍이 뚫려 있어 구름과 달이 비쳤다.

그 무렵, 정원의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는 허둥지둥 달려왔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지붕에 있는 구멍으로 날아올라 백 장 높이에서 주변을 살펴봤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달빛이 비치는 어두운 숲뿐이었다.

“신, 신선님이다!”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 떠 있는 심협을 보자 일제히 땅에 엎드려 절했다.

심협은 양계진 뒤편 숲 깊은 곳을 바라봤다. 울퉁불퉁한 산이 희미하게 보였다. 마을 사람이 말했던 무너진 양계산인 듯했다.

요괴가 있다면 아마 저곳일 거라는 직감에 그는 몸을 돌려서 날아갔다.

휘잉!

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날아간 후에야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산과의 거리가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멀어졌던 것이다.

그는 이내 멈춰 서서는 좌우를 살폈다. 산을 향해 날고 있음은 분명했다.

‘공간 법진인가? 아니면 환술?’

심협은 적잖이 놀라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자세히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곳의 천지영기는 너무도 혼란스러웠고, 신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동술의 효능도 극히 제한되었다.

심협은 머뭇거리다가 두 팔을 펼쳤다. 양팔에서 갑자기 금은 빛이 발했고 몸이 희미해진 그는 진시천리지술을 시전하여 그곳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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