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57화 (557/1,214)
  • 557화. 천기성(天機城)

    “어서 올라오십시오!”

    함선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우마왕은 바로 자폭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함선 위에서는 심협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마왕은 구명의 한쪽 팔과 천책을 잡고는 하늘의 함선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딜 도망치느냐!”

    구명이 버럭 외치더니 바로 날아올라서 파혼부를 들고 우마왕을 뒤쫓았고, 동시에 모든 요마가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의 함선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들이 백 장 정도 날아올랐을 때, 함선 주변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 곧장 요마들을 향해 돌진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묵색(墨色)의 짧은 옷에 머리에는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있었고, 법력의 파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양측이 충돌하자마자 절반의 요마들이 다시 땅으로 떨어졌다.

    검은 복장의 무리들이 공격하러 내려가자 함선에는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뒤를 따랐다.

    이 무렵, 우마왕은 이미 함선 바로 앞까지 와 있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명이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구명은 날이 핏빛으로 번득이는 도끼를 치켜들었다. 백 장 길이의 핏빛 도끼의 환영이 그 위로 나타나더니 곧장 허공을 찢으며 우마왕을 향해 내리쳤다.

    그때, 함선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선체의 암홍색 무늬가 일제히 빛나더니 선체 아래의 3중 법진이 돌기 시작했고, 검은 빛기둥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이 강렬하게 흔들렸고, 검은 빛기둥이 혈홍색 도끼 환영을 향해 폭발했다.

    강력한 파동이 일어나면서 두 줄기 강력한 풍압이 하늘과 땅을 휩쓸며 날아갔다.

    구명은 이 강력한 힘에 묶여 더는 나아가지 못했고, 함선은 이 충격파를 이용하여 만 장 높이까지 솟구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심협의 황금승이 우마왕의 허리를 묶어 함선 위로 끌어올렸다.

    우마왕이 함선 갑판 위에 올라오자 옥면 공주가 달려와 그의 품에 뛰어들었고, 홍해아와 만세호왕 등도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인가?”

    우마왕은 모두가 무사한 것을 보고는 크기 기쁘면서도 얼떨떨해 물었다.

    “천기성(天機城) 도우께서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천기성? 그들은 마족에 멸망하지 않았던가?”

    만세호왕의 설명에 우마왕은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그때,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울리면서 사람들은 양쪽으로 나뉘어졌고, 중간에 길이 생겼다.

    한 청년이 청동과 박달나무를 이어서 만든 윤거(輪車: 바퀴 달린 수레)를 타고 천천히 다가왔다. 서른 남짓으로 보이는 이 청년은 외모가 매우 준수했고, 흑발을 옥관으로 높이 묶은 데다 검은색 일색의 복장에서 냉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만 그는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윤거는 아무도 밀고 있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영력의 파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바퀴가 굴러갈 때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천기성은 무너졌지만, 멸망한 것은 아닙니다. 진원자 선배님의 부탁으로 달려왔는데,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청년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도우의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 구명지은(救命之恩)을 어찌 갚아야 할지……?”

    우마왕이 포권하며 말했다.

    “안택(晏擇)이라 불러주십시오. 모두가 방금 큰 전투를 치렀으니 우선 편히 쉬십시오. 저는 서둘러 벗어날 수 있도록 함선을 몰러 가보겠습니다.”

    청년은 담담하게 말을 남기고는 다시 윤거를 돌리려 했다.

    “아까 그들은 어찌 합니까?”

    우마왕이 의아한 듯 물었으나, 안택은 짧은 한 마디만을 남기고는 그대로 떠나갔다.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도 전에 거대한 함선은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가기 시작해 구름을 뚫고 곧장 구름을 가르며 쏜살같이 날았다.

    한편, 지면의 전장에서는 요마들이 검은 복장에 삿갓을 쓴 사람들을 산산조각 냈는데, 그제야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통나무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꼭두각시 같은 기묘한 물건들로, 부적과 검정 돌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 * *

    구름 위. 거대한 함선은 빠른 속도로 날아 금방 적뢰산맥을 벗어났다.

    함선의 갑판 위에서는 사람들이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운공하며 부상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심협은 홀로 함선 한쪽에 서서 넓은 구름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겐가?”

    만세호왕이 다가왔다.

    “마족에는 구명과 같은 강력한 존재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퍼뜩 정신을 차린 심협이 물었다.

    “옛날에 염제, 황제가 치우와 싸울 때 그에게는 81명의 형제가 있었지. 구명도 그중 하나라네. 허나 그는 줄곧 치우를 주인으로 모셨기에 후대에 아는 자들은 얼마 없지.”

    “81명이라고요?”

    심협이 기겁해 되물었다.

    “그때 많이 죽었으니 지금 살아남은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걸세.”

    “구명 같은 흉마도 이렇게 강한데 치우의 강력함은 어느 정도인지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군요.”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그건 나 같은 늙은이도 마찬가질세. 허나 그때 인간족의 두 시조가 그를 쓰러트렸으니 그도 무적은 아니지. 그러니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 게야.”

    만세호왕은 심협의 표정 변화를 살피며 말했다.

    심협은 한참을 침묵했지만, 곧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아닌 동경심이 일어났다.

    “어떻게 해야 저도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그는 두 손으로 난간을 잡으며 물었다.

    만세호왕은 내심 놀랐지만, 곧 안도하듯 빙긋 웃었다.

    “자네는 방촌산 출신이면서 어찌하여 칠십이변 신통을 안 배운 건가?”

    “그게…… 설명하기가 좀 복잡합니다.”

    심협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칠십이변 신통이 단순한 변화 신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가?”

    “변화 신통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전설에 따르면 칠십이변 신통은 다른 이름이 있는데, 바로 팔구현공(八九玄功)이라네. 팔구지술(八九之術)을 토대로 하여 무궁한 변화의 극이라더군. 진정으로 융화하면 만상을 아우르는 조화 신통이라 들었네.”

    만세호왕의 설명에 심협은 눈을 반짝였지만, 이내 기운이 빠졌다. 그때 방촌산에서 이 신통을 배우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선배님, 세상 어디에서 칠십이변 신통을 찾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칠십이변 신통은 본래 방촌산의 비술이네. 오직 보제 선조의 친전 제자만이 그걸 배울 기회가 있지. 그러니 아마 방촌산에서만 배울 수 있을 게야.”

    심협은 가만히 생각했다.

    ‘방촌산에 다시 가봐야 하나?’

    “허나 방촌산은 이미 오래전에 멸망했고, 중간에 수차례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른 곳에 남기지 않았으면 아마 산중에도 없을 걸세.”

    만세호왕은 안타까운 듯 탄식했다.

    심협은 방촌산에 들어갔던 때를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그곳이 생각났지만, 칠십이변 신통이 남아 있을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실망했다.

    “선배님, 보제 선조님께서 그때 어떤 제자에게 공법을 전수하셨는지 아십니까? 그들의 후손이 남기지는 않았을까요?”

    심협이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방촌산의 전승은 매우 은밀하여 보제 선조의 친전 제자가 절대 외부인 앞에서는 언급하지 말라 했지. 내가 알기로는 그 전승을 받은 자는 딱 하나, 이전에 내 딸을 죽인 망할 원숭이, 손오공일 걸세.”

    그 말에 심협은 등불이 켜진 것처럼 머릿속이 밝아졌다.

    자신은 이전에 화과산 밀실에서 손오공이 남긴 기연을 얻지 않았던가. 그의 흔적을 쫓아간다면 어쩌면 또 다른 발견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배님, 저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진원 대선을 만나지 않고?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심협의 갑작스런 말에 만세호왕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는데 검증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검증에 성공한다면 다음에 구명을 상대할 때는 이번처럼 참패하지는 않을 겁니다.”

    심협은 탁한 숨을 내쉬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가보게. 허나 이제 자네도 마족이 주시하는 존재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야 하네.”

    만세호왕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린 듯한 심협의 표정에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심협 역시 웃으며 답했다.

    그는 상처가 모두 회복되면 오지산으로 가기로 했다. 만약 손오공이 남긴 무언가를 찾으려면 그가 500년을 갇혀 있었던 그곳이 가장 유력할 터였다.

    * * *

    순식간에 보름이 흘렀다.

    함선에서는 누군가 바람을 맞으며 다른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고, 곧 무지개가 되어 날아갔다. 바람결에 옷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그의 표정은 엄숙했다.

    심협은 그동안 수양을 통해 몸을 거의 회복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태을의 수사와 싸우면서 그의 진선 후기 경지도 다져지고 기운은 더욱 공고해졌다.

    더 중요한 것은 태을 경지 수사의 강력함을 직접적으로 느끼면서 마침내 자신과 태을 경지의 강자가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번 여정은 꽤나 시간이 걸릴 테니 안택 도우가 준 보물을 시험해보자.’

    심협은 뒤를 돌아봤다. 먼 곳의 거대한 함선은 이미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고, 구름의 바다에는 기다란 궤적만 남아 있었다.

    심협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앞에 바로 검은 빛이 반짝였다. 허공에는 두 날개를 펼친 것 같은 칠흑 같은 철판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복잡한 부문이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팔각의 청동 난로 같은 물건이 박혀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심협은 이런 모양의 비주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해 의아해했는데, 안택의 시범을 통해 이 물건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심협의 손에는 자연적인 불꽃과 비늘 같은 무늬가 있는 주먹만 한 암홍색 정석이 나타났다. 안택이 말하길 이것은 화린(火鱗) 부싯돌로, 이 비주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물건이었다.

    그는 화린 부싯돌을 비주 중앙의 팔각 청동 난로에 놓고는 바로 법력을 주입했다.

    법력이 주입되자, 어두운 홍색이던 화린 부싯돌이 바로 빛나기 시작하더니 등불 같은 밝은 홍색으로 변했다. 불꽃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겉면의 화염 무늬가 천천히 밝아지면서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검은 비주에 새겨져 있던 무늬도 일제히 밝은 홍색으로 빛나면서 비주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심협이 가부좌를 틀자 비주가 조금 가라앉았다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가 법력을 움직이자 비주의 무늬가 더욱 밝아졌고, 불꽃 같은 빛이 비주 꼬리에서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다음 순간, 비주는 쏜살같이 날아갔다.

    심협은 한동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 비주는 처음 움직일 때 법력을 주입한 뒤로는 비행하는 동안 법력을 운공할 필요 없이 온전히 화린 부싯돌의 힘에 의지하면 됐다.

    ‘안택 도우가 이 화우주(火羽舟)가 있으면 가는 길이 편할 거라더니, 정말이로군. 화린 부싯돌 하나가 8백 리를 날 수 있다고 했으니 안택 도우가 준 화린 부싯돌이면 오지산에 충분히 도착하겠어.’

    심협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심협은 한참 뒤에 신식으로 비주의 방향을 조종한 후로 더는 조종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는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수련하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노을이 내려앉은 저녁.

    숲이 울창한 청목산(靑木山) 상공에서 빛이 내려와 산속으로 들어가더니 착륙했다.

    빛에서 나타난 것은 푸른 옷을 입은 심협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이 답답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그 커다란 오지산이 어떻게 흔적도 보이지 않는 거야?’

    심협은 매우 의아했다. 만세호왕이 알려준 곳 부근을 벌써 며칠이나 돌아다녔으나, 반경 천 리 안에는 평원의 산림이나 분지의 호수뿐이었다. 높이 100장은커녕 30장의 작은 산도 찾을 수 없었다.

    ‘설마…… 산과 강에 변화가 생겨서 오지산이 땅속으로 가라앉은 걸까?’

    심협의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