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55화 (555/1,214)
  • 555화. 육이미후(六耳獼猴)

    ‘어째서 둔술로 다 같이 도망가지 않는 겁니까?’

    심협이 전음으로 물었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네. 이번에는 요마들이 철저하게 준비했어. 구명이 직접 이끌고 왔을 뿐만 아니라 공격해오기 전에 봉천대진을 설치하여서 적뢰산 전체를 봉인했네.’

    우마왕의 설명에 심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후에야 하늘이 이전과는 다름을 눈치챘다. 구름이 마치 못 박힌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네. 심 아우, 잠시 후에 내가 천막의 봉인을 부술 테니 자네는 옥면을 데리고 도망치게. 내 그녀에게 빚진 것이 있으니 여기서 그녀를 다시 죽게 할 수 없네.’

    우마왕의 전음에 심협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고맙네.’

    우마왕은 그 말을 남기고는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치솟더니 몸이 강하게 떨려왔다. 이어서 그의 몸은 빠르게 커져 순식간에 백 장 크기의 웅장한 거인으로 변했다.

    그는 그대로 거대한 혼철곤을 크게 휘둘렀다.

    그때, 구명도 어느덧 백 장 크기로 변하여 파혼부를 우마왕의 혼철곤 위로 강하게 내리찍었다.

    챙!

    커다란 도끼가 혼철곤 위에 떨어지자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불꽃이 튀었다.

    웅장하기 그지없는 두 힘이 충돌하자 강력한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심협은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어 휘청거렸고, 서둘러 황정경공법을 운공하여 용상지력으로 버티며 뒤에 있는 소옥 등을 보호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두 거물, 우마왕와 구명의 싸움에 심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은 태을경 중에서도 정점에 선 존재들이었다.

    “크아아아!”

    우마왕이 갑자기 포효하자 몸에서 검은빛이 돌기 시작했고 이어서 두 눈도 붉게 물들면서 수증기가 차오르고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우드득거리는 뼈 소리에 이어 구명에게 제압당했던 혼철곤에서 갑자기 강력한 힘이 하늘 높이 솟구쳐 그대로 구명의 도끼를 쳐내고 하늘의 막을 곧장 찔러 갔다.

    혼철곤이 천지영기를 휘저으면서 적홍색 빛을 발하자 붉게 물든 노을이 천막을 덮은 것처럼 가짜 구름도 붉게 물들었다.

    대력우마왕의 위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심협은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지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포기하고 옥면 공주만 데리고 달아날 수는 없었다.

    심협이 손을 흔들자 황금승이 소매에서 튀어나와 뒤에 선 수십 명을 하나로 묶었다. 뒤이어 양팔에서 뜨거운 느낌이 든 순간, 그는 진시천리둔술(振翅千里遁術)을 시전하였다.

    그때, 하늘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우마왕이 봉천대진에 봉인되어 있던 하늘과 구름을 뚫는 순간, 누군가 갑자기 그의 뒤에 나타난 것이다.

    그자는 새우등에 체형은 앙상해 체구는 우마왕과 비교하면 바위와 돌멩이 같았지만, 무서운 요력이 느껴져 심협은 일순 두려움에 휩싸였다. 더욱이 그 모습은 낯이 익었다. 갑옷과 투구를 쓴 몸과 기다란 머리카락, 넓고 기다란 팔다리. 분명 인간이 아닌 원숭이였다.

    “제천대성?”

    심협은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순간, 요후(妖猴)는 환하게 웃더니 들고 있던 칠흑 같은 장창으로 우마왕의 등을 찔렀다.

    이 일격은 뒤에서 앞으로 관통한 것이 아니라 우마왕의 척추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베어 들어갔다.

    “크아악!”

    우마왕의 비명에 이어 등의 상처에서는 수많은 검은 안개가 무수히 피어올랐다. 하늘을 뚫으려던 기세는 우뚝 멈췄고, 우마왕은 이내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는지 몸이 빠르게 줄어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그의 척추를 찌른 장창이 조금씩 밀려 나왔다.

    요후는 장창을 우마왕의 목에 대고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 우마왕. 오랜만이야.”

    우마왕은 온몸이 덜덜 떨렸고, 혼철곤을 든 팔도 옆으로 늘어졌다. 요후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안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왜 웃는 거지?”

    요후는 의아한 듯 물었다.

    “하! 이게 얼마 만인가? 육이미후(六耳獼猴), 여전히 그리 못났군.”

    우마왕은 미소를 감추지 않고 답했다.

    요후는 그 말에 대번에 안색이 변했고, 표정은 한층 흉악해졌다.

    “그 원숭이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너는 정말 눈에 안 찬단 말이지. 마도에 들어선 걸 보니 또 그에게 배운 건가? 그럼 왜 부처와 싸우는 방법은 배우지 않은 거지?”

    우마왕은 계속 조롱했다.

    “그놈에게 배우다니! 그 망할 원숭이가 어디서 썩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뭘 배운단 말이냐?”

    육이미후는 분노한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외쳤고, 이내 분노한 기색이 점점 사라지더니 평온함을 되찾았다.

    우마왕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놀랐나? 난 오래전에 그 원숭이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한데 네 도발에 넘어갈 것 같으냐?”

    육이미후는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마족이 부활시켜주니까 냉큼 그쪽에 붙어서 무슨 십이존자인가 십이견자(十二犬者)인가가 됐다더니, 그걸 믿고 이제 그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건가?”

    우마왕은 피를 뱉어내더니 차갑게 웃었다.

    “날 도발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지키고 싶은 사람이 좀 있는 모양이지?”

    육이미후는 점차 싸늘해진 눈으로 우마왕을 노려보더니, 이내 저 멀리서 싸우고 있는 홍해아와 심협의 보호를 받고 있는 옥면 공주를 번갈아봤다.

    “죽이려면 나만 죽이고 다른 자들은 살려줘라. 안 그러면 더욱 네놈을 무시하게 될 거다.”

    “흥! 나도 어린아이와 아녀자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순순히 천책을 내놔라. 그러면 적어도 저 두 사람은 살아서 도망치게 해주겠다.”

    그때, 뒤에서 구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의 생사를 네가 정할 수 있는 일이었나?”

    육이미후는 눈을 치켜뜨며 그를 바라봤다. 그 눈에 살의가 나타났다.

    “잊지 마라. 이번 적뢰산 공격을 이끄는 건 나다. 너는 그저 보조일 뿐.”

    구명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고 차갑게 비웃었다.

    육이미후는 더욱 분노한 듯했으나,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팔을 내렸다. 우마왕의 목에 닿아 있던 창을 거둔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구명은 싸늘한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봤다. 이제 우마왕은 이미 중상을 입었으니 육이미후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기껏 손을 내밀었지만, 네놈은 거만하여 우리 마족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다른 할 말이 있나?”

    그는 천천히 우마왕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비열한 수로 나를 이긴 자와 할 말이 있겠나?”

    우마왕은 차갑게 반문했다.

    “모든 일은 성패에 따라 옳고 그름이 판단된다. 과거 탁녹의 전투에서 우리 마족의 도리를 알려줬을 텐데, 설마 아직도 모르는 건가?”

    구명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죽이려면 죽여라. 천책은 절대 내줄 수 없다.”

    “급할 것 없다. 너를 따르던 호족을 하나하나 눈앞에서 죽인 다음, 가장 마지막으로 보내주마.”

    구명이 웃으며 말을 마치고는 허공에 손을 내밀자, 옥면 공주의 옆에 있던 옥호 일족 여자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순식간에 끌려갔다. 구명은 여자의 목을 잡고 비틀어 그 목을 꺾고는 시위하듯이 우마왕 앞에 시체를 내던졌다.

    우마왕의 눈가가 실룩거렸다. 일부러 옥면 옆에 있던 여인을 고른 것임을 알고 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구명은 서두르지 않고 다시 손을 내밀어 또 한 명을 끌어와 죽이고는 우마왕 옆에 시체를 버렸다.

    “괜히 힘 빼지 마라.”

    우마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천천히 즐기자고.”

    구명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답했다.

    이번에는 그의 손이 옥면 공주의 뒤를 향했다. 그 뒤에 숨어 있던 소옥은 갑자기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끌려갔다.

    그때, 금빛 곤봉이 허공에서 떨어져 강력한 법력의 파동으로 그 힘을 끊어 버렸고, 어느새 심협이 다가와 소옥의 앞을 막아섰다.

    “심 오라버니…….”

    소옥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심협은 신경을 분산시킬 수 없었기에 눈앞의 구명만을 노려봤다.

    “오, 인간족인가?”

    구명은 심협을 보고는 의아한 듯 말했다.

    심협은 경계심을 잔뜩 끌어올리며 속으로 천책을 사용할까 말까 고민했다.

    ‘천책의 힘을 쓰면 이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족의 목표가 되겠지. 이번에 무사히 살아서 도망친다 해도 점점 위험해질 게 분명하다.’

    구명은 심협이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노려보자 어이가 없었다. 심협의 표정이 마치 사냥감을 노려보는 사냥꾼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전력을 다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같아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군.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구명은 껄껄 비웃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심협에게로 향했다.

    무언가 강력한 힘에 붙잡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심협은 몸이 기울더니 구명을 향해 끌려갔다.

    소옥은 뒤에서 심협을 잡으려 했지만 놓쳤고, 그대로 넘어졌다.

    구명의 코앞까지 날아온 심협의 소매에서 금빛이 튀어나갔다. 강력한 흡입력을 따라 날아간 황금승은 순식간에 구명의 팔을 감으려 했다.

    “황금승인가……?”

    구명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힐끗거렸다. 다음 순간, 갑자기 그의 팔이 강하게 떨렸고, 보이지 않는 힘이 순식간에 팔에서 솟아올랐다.

    황금승은 허공에서 헛돌았고, 강력한 힘에 곧장 튕겨나갔다.

    동시에 심협은 흡입력이 약해진 틈을 타 둔지부를 바스러뜨렸고,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땅속으로 숨어서 사라졌다.

    구명은 그제야 심협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지만, 웃으며 말했다.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쳤어야지. 그렇게 엉성하게 숨다니 죽여 달라고 재촉하는 건가?”

    말을 끝낸 그는 강하게 발을 굴렀다.

    쿠르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이 맹렬히 흔들리더니 쩍 갈라지면서 심협이 커다란 균열 사이에서 튕겨 나왔다.

    그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구명은 손바닥을 뻗었다.

    그때였다. 쓰러져 있던 우마왕이 갑자기 온몸에서 혈광을 뿜어내며 이마의 뿔을 세운 채 돌진했다.

    동시에 허공에서는 갑자기 커다란 검은 소의 환영이 구명을 덮쳤다.

    쾅!

    굉음과 함께 구명은 강력한 힘과 충돌해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땅에서 튕겨 나온 심협은 그 힘을 빌려 어느새 진해빈철곤을 거두고는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하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삼성멸마(三星滅魔)! 소환!”

    심협은 두 눈을 번득이며 두 손으로 허공을 잡아당겼다.

    그의 외침이 떨어지자 하늘 너머 은하수에서 한 줄기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별빛이 반짝이며 돌기 시작했다.

    뒤이어 봉천대진으로 봉인되어 있던 하늘 깊은 곳에서 갑자기 눈부신 빛이 비쳤고, 세 개의 거대한 금색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적뢰산 전체가 환해졌다.

    떨어지는 별들 뒤로 세 개의 기다란 금빛 불꽃이 하늘을 그었다.

    지난 번 삼성멸마를 발휘했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세 개의 별이 순서대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이쪽으로 몰려왔다.

    세 개의 별이 봉천대진에 근접하자 강렬한 마찰로 인해 빛은 더욱 밝아졌고, 황금빛은 하얀 불꽃으로 타올랐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고막을 찔렀다.

    한창 싸우던 자들도 공격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편, 구명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하늘과 심협을 번갈아봤다.

    “인간족 애송이가 삼성멸마 신통을 쓸 줄이야. 네놈은 절대로 살려둬서는 안 되겠구나.”

    말을 마친 그는 심협을 향해 돌진했다.

    심협은 감히 맞서지 못하고 서둘러 사월보로 피하는 동시에 진해빈철곤을 꺼내서 몸 앞을 막았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대비하기도 전에 구명이 눈앞에 나타나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심협은 피할 틈이 없어 팔을 교차하여 몸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콰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심협은 두 팔이 부러진 채 멀리 튕겨나갔다.

    땅에 처박힌 그는 곧장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느새 나타난 구명이 그의 가슴을 짓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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