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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54화 (554/1,214)

554화. 구면

자줏빛 꿩 요괴는 본래 둔술에 능했기에 반응이 더 빨라 먼저 앞으로 달아났다. 이에 지렁이 요괴는 순식간에 쫓아온 황금승에 머리를 붙잡혔다.

“큰일이다.”

지렁이 요괴는 경악하며 흑색 장도를 꺼내 기력을 다하여 황금승을 베었다.

그러나 그의 법력은 곧장 황금승에 흡수당해 위력을 잃고 말았다.

심협은 뭔가를 중얼거리고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지렁이 요괴의 몸을 묶은 밧줄이 곧장 늘어나 앞서 달아나던 자줏빛 꿩 요괴를 쫓았다.

꿩 요괴는 기겁하여 속도를 높이려 했으나, 그대로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심협이 허공에서 손을 크게 잡아 당기자 두 요괴가 한꺼번에 끌려왔다.

쾅!

두 요괴는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치며 격렬한 먼지를 일으켰다.

심협이 다가와 진해빈철곤으로 지렁이 요괴의 머리를 누르며 물었다.

“너희들의 진룡 존자는 어디에 있지?”

그들은 심협이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이 멍해졌다.

심협은 지렁이 요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곧장 곤을 들어 머리를 내리찍으려 했다. 이에 당황한 지렁이 요괴는 몸에서 기이한 황색 빛을 뿜어내 황금승을 찢으려 했다.

심협은 아랑곳 않고 곤을 내리쳤다.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렁이 요괴의 머리부터 상반신까지 터져버렸다.

한데 놀랍게도 남은 하반신은 몇 장을 미친 듯이 달려가더니 갑자기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한편, 자줏빛 꿩 요괴도 심협의 정신이 다른 곳에 향해 있는 틈에 온몸에서 자줏빛 불꽃을 뿜어내며 자줏빛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이 날아갔다.

심협은 침착하게 황금승을 잡아당기는 한편 다른 손으로는 곤을 창처럼 들었다. 진해빈철곤은 순식간에 열 배로 길어져 자줏빛 꿩 요괴의 심장을 꿰뚫었고, 이어서 꿩 요괴 전신의 불꽃이 사라지면서 추락했다.

“갑시다.”

심협은 손을 흔들어 황금승을 거두고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소옥 등은 그 광경에 크게 안심하고는 뒤를 따랐다.

그들이 골짜기에서 빠져나왔을 때였다. 저 앞 전장의 짙은 연기 속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심협은 단번에 상대를 알아봤다. 신분이 참으로 다양한 여인. 청령 현녀이자 마족 십이존자 중 하나. 그러나 심협의 머릿속에서 가장 익숙한 상대의 신분은 경하용왕의 딸 마수수였다.

마수수의 뒤에는 그녀보다 키가 더 작고 왜소한 남자가 있었는데, 검은 비늘 갑옷으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갑옷 사이로 드러난 창백한 뺨에 이목구비가 모여 있었고 뻐드렁니가 눈에 거슬렸다. 입술 위에는 팔자수염까지 있는 것이 악인(惡人)의 표상 같은 외모였다.

허나 그에게서는 마수수에게 밀리지 않는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용존 존자라고 불러야 하나, 청령 현녀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면 마 소저라고 불러야 하오?”

심협이 한 걸음 나서며 말을 건넸다.

“오, 구면인가 보군?”

난쟁이 남자는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서(子鼠), 함께 속전속결로 처리하자.”

마수수는 대답 대신 무표정으로 심협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서라 불린 난쟁이 남자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과거 그는 진룡과 함께 싸울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그녀가 먼저 힘을 합치자고 하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좋지.”

그는 바로 조롱하는 표정을 거두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심협을 향해 걸었다.

“백 장 정도 물러서 있으시오. 절대로 다가와서는 아니 되오.”

심협은 가늘게 뜬 눈으로 자서를 바라보며 호족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그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뒤로 물러났다.

심협은 날카로운 눈으로 자서라는 난쟁이 남자를 바라봤다. 상대의 몸에서 검은 빛이 떠오르더니 뒤편 허공에 산처럼 거대한 쥐의 환영이 나타났다. 눈동자는 붉게 빛났고, 흘러나오는 검은 살기는 하늘을 찔러 두려울 정도였다.

환영이 거대한 손톱을 휘두르자 심협은 순간 강력하기 그지없는 살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살기는 닿기도 전에 식해(識海)에 파고들었다.

심협은 차게 웃고는 한 손을 휘둘러 육진편을 소환하더니 맹렬히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채찍이 그대로 환영의 거대한 손톱을 향해 날아들었다.

육진편은 휙휙 소리와 함께 여러 겹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환영의 거대한 손톱과 충돌하자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그 순간, 자서가 갑자기 심협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해 반사적으로 힘껏 뛰어올랐다.

그의 그림자 속에서 자서가 가느다란 흑녹색(黑綠色) 첨추(尖錘)를 들고는 뛰쳐나와서 심협을 추격했다.

허공에 뜬 심협은 화산을 부술 기세로 자서의 머리를 향해 진해빈곤철을 내리쳤다.

순간 진해빈철곤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곤은 분명 둔기지만, 지금은 예리하고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는 것이 마치 금빛 도끼날처럼 날카롭고 맹렬했다.

허나 자서는 물러나기는커녕 더욱 강한 기세로 돌진하며 녹색 빛이 한층 강렬하게 폭발한 첨추를 휘둘렀다.

챙!

금속이 부딪히는 듯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흑녹의 첨추는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약간 구부러지기는 했어도 진해빈철곤을 막아냈다.

심협은 내심 놀랐으나, 마음을 다잡고 육진편을 바로 다시 불러들여 자서의 뒤를 향해 쏜살같이 뻗었다.

그 순간, 빛이 다시 밝아졌고, 분명히 그곳에 있던 몸이 순식간에 환영이 되어 육진편에 찔리고도 무사했다.

이에 심협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자세히 살필 틈도 없이 머리 위에서 강렬한 압박감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바로 고개를 들어 보니, 칠흑같이 검은 용의 발톱이 하늘에서 압도적인 기세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용의 발톱에서는 마수수가 손으로 법결을 결인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편, 강력한 용의 숨결이 사방에서 몰려와서 그를 속박해 한동안 그곳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크아아아!”

심협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체내의 황정경공법을 빠르게 운공했고, 발로는 허공을 강하게 밟으며 백 장 높이까지 뛰어올랐으며, 양손으로 진해빈철곤을 강하게 잡고는 어깨에 걸쳤다.

이어서 용의 발톱이 떨어지는 순간, 산을 짊어질 기세로 버티고 섰다.

“가라.!

짧은 한마디가 뿜어져 나왔고, 심협은 자신의 어깨를 기점으로 곤에 힘을 주어 그대로 용의 발톱과 그 안에 있는 마수수를 향해 내리쳤다.

한데 바로 그때, 자서가 다시 심협의 그림자에서 뛰쳐나와 매우 교활한 각도에서 달려들었고, 그의 첨추는 심협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심협은 장곤을 휘두르던 터라 방어할 수 없었기에 그대로 당할 듯했다.

한데 바로 그때, 그의 가슴에서 갑자기 금빛이 쏜살같이 날아와 순식간에 흑녹색의 첨추를 칭칭 감고는 자서에게 달려들었다.

“황금승인가! 허나 내게는 소용없다!”

자서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이해득실을 따져보니 황금승에 묶이는 한이 있어도 심협은 이 일격을 막지 못할 터였다. 이에 그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힘을 가하여 심협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한데 첨추가 막 심협의 가슴에 닿으려는 순간, 심협의 미간에서 갑자기 푸른빛이 번득였다. 뒤이어 주먹만 한 푸른 야광주가 나타나더니 바다처럼 드높은 물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방 백 장을 뒤덮었다.

“정풍파(定風波)!”

심협은 가볍게 탄성을 터뜨렸다.

푸른 야광주가 갑자기 밝아지더니 강력하기 그지없는 금제의 힘이 순식간에 발산됐다.

자서는 자신의 첨추가 심협의 가슴의 바로 앞에서 멈춘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몸 또한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멈추자 두 눈이 크게 떨렸다.

심협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여유 있게 손으로 자서의 첨추를 옆으로 돌렸고, 그제야 멈춰버린 공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서의 첨추는 되려 자신의 옆 옷자락을 찔렀고, 황금승이 그대로 그의 몸을 칭칭 감아버렸다.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장 황정경을 극한으로 운공했다. 몸에서 금빛이 번득이더니 용의 형상이 뿜어져 나와 빛이 되어 진해빈철곤으로 흘러들었다.

“죽어라!”

심협은 짧게 외치며 강하게 빛을 뿜어내는 진해빈철곤을 내리쳤다.

자서는 경악했다. 이것이 진선기 수사가 발휘한 힘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룡, 구해줘!”

그는 자존심도 내팽개치고 다급하게 외쳤다.

그 순간, 마수수의 몸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심협의 뒤에 나타났다. 이어서 환영이 아닌 진짜 용의 발톱이 된 갈고리 같은 손으로 심협의 심장을 노렸다.

심협은 피하지 않았고, 진해빈철곤도 멈추지 않았다. 목숨을 바꿀 기세로 그대로 자서의 몸을 내리친 것이다.

이에 자서는 물론 마수수의 눈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 소옥 등 옥호 일족은 어떠했겠는가!

“심 오라버니!”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한 줄기 혈광이 심협의 가슴을 관통했다.

마수수의 용의 발톱이 심협의 등을 뚫고 그의 가슴까지 튀어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피로 가득한 작은 심장이 들려 있었다.

쾅!

동시에 폭발음이 들려왔다. 힘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진해빈철곤이 자서의 머리를 내리치면서 갑자기 강력한 힘이 폭발해 자서의 육체와 신혼이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 나간 것이다.

이 상황에 모든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누구도 심협이 실제로 자신과 자서의 목숨을 맞바꿀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마수수 또한 가면 속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심협이 다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를 죽이는 장면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그녀는 서둘러 손을 거뒀고 심협의 몸은 그녀의 팔을 타고 미끄러져서 땅에 떨어졌다.

그때, 허공에서 성난 포효가 천둥처럼 들려왔고 하늘이 흔들렸다.

“으아아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우마왕이 운석처럼 하늘을 가르며 돌진해왔다.

마수수는 그 강렬한 기세에 감히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우마왕은 내려오자마자 등에 있던 파초선을 강하게 부쳤다.

콰쾅!

천지의 색이 변했고, 허공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늘과 연결된 바람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마수수를 향해 몰아쳤다. 대지에는 거대한 모래바람이 생겨나 땅 위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적뢰산은 마치 땅이 뒤집힌 것처럼 바람이 지나간 모든 곳이 폐허가 되었다.

마수수는 광풍에 휩쓸려 몸을 가눌 수 없었고, 몸이 절로 높이 떠올라 몇 번을 회전한 후에야 천천히 안정되었다. 하지만 휩쓸려 날아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산속의 모든 요족과 마물들도 광풍에 휩쓸렸고, 수많은 해골들은 소용돌이에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되었으며, 남은 요물들도 당연히 버티지 못하고 하늘 높이 떠올랐다.

수많은 요물과 마물들이 바람에 휩쓸려 패퇴하자 허공에서 또 다른 존재가 날아 내려와 모든 요물과 마물 앞에 우뚝 서서 휘몰아치는 광풍을 막아냈다.

커다란 몸집에 뼈로 된 갑옷을 걸친 그자는 우마왕과 싸우던 구명이었다.

그가 한 손에 든 자금색 조롱박에서 화려한 빛이 번득이더니 금색 단환이 나타났다. 이 단환은 크기가 고작 손톱만 했지만, 강렬한 금빛이 물결처럼 겹겹이 흘러나왔다.

한 층의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자 파초선이 일으킨 소용돌이는 조금씩 사라졌고, 주위는 다시 평온을 되찾아갔다.

구명의 손에 들린 자금색 조롱박과 금색 단환을 노려보는 우마왕의 눈에는 강렬한 분노가 가득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불쑥 물었다.

“저게 전설 속의 정풍주(定風珠)입니까?”

“그렇다네.”

우마왕은 짧게 대꾸했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더니 뒤를 홱 돌아봤다.

“심 아우! 괜찮은가?”

“심장이 뚫릴 뻔했는데 다행히 조금 빗나갔군요.”

심협은 자신의 명치를 주무르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 말은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다. 방금 마수수의 일격은 분명히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단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평범한 수사라면 그것만으로도 목숨을 잃겠지만, 그는 대개박술을 익힌 터라 그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 도우는 운이 좋군! 오늘 무사히 도망칠 수 있다면 나중에 반드시 복이 올 것이네.”

우마왕은 반색하며 감탄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다시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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