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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52화 (552/1,214)
  • 552화. 유령주

    먼 곳으로 피신했던 보타산 제자들은 이 광경에 우레와 같은 환호를 질렀다.

    심협은 서둘러 흑색 갑옷 옆으로 날아갔다.

    이 갑옷에는 많은 균열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온전했다. 표면에 흐르는 검은 빛도 영성을 조금도 잃지 않은 상태였다.

    이 갑옷은 어떤 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의 조음동 전투에서 아무리 공격해도 흠집조차 남지 않았고, 심지어 지양의 뇌신 공격에도 부서지지 않았다.

    갑옷 옆에는 부러진 암금색 검, 참마검이 있었다. 지양의 신뢰 폭격 때문인지 혈광은 사라졌고, 핏빛으로 물들었던 부분도 거의 사라져 약간의 흔적만 남은 상태였다.

    관월진인과 청련선자 등도 심협 옆으로 다가왔다. 이내 뒤따라온 섭채주의 손에는 버드나무 가지와 옥정병이 들려 있었다.

    이 병은 명우가 오지산으로 봉인했는데, 방금 지양의 신뢰의 광범위한 공격 때문인지 이 봉인도 부서진 상황이었다. 마수수가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섭채주는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여 옥정병을 손에 넣은 것이다.

    “심 소우, 방금 그 서책은 어디서 얻은 건가?”

    관월진인이 심협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건 책이 아니라 부적이 변한 모습입니다. 수년 전 뜻밖의 만남에서 얻게 됐지요. 방금 그 부적을 법진에 흡수시킨 것은 상황이 매우 급하여 제멋대로 벌인 일이니 부디 관월 선배님께서는 너무 나무라지 말아주십시오.”

    심협은 천책에 대해 밝히기가 꺼려졌기에 조심스레 말을 아꼈다.

    “그럴 리가 있겠나! 우리 보타산이 오늘 무사한 것은 모두 심 소우의 도움 덕분이니 이 관월이 감사의 뜻을 표하네.”

    관월진인은 고개를 젓더니 정중하게 심협에게 예를 올렸다.

    청월 선자 등도 뒤따라 허리를 숙였다.

    “선배님들, 이러지 마십시오. 모두가 힘을 합쳐서 마족을 물리친 것 아닙니까. 한데 대오행혼원진은 오행의 법진인데 어떻게 천계의 지양 신뢰를 소환할 수 있었던 겁니까?”

    심협은 서둘러 모두를 일으키고는 진즉부터 궁금했던 점을 물어봤다.

    “그 소환법은 대오행혼원진 고유의 물건이네. 관음 조사께서 보타산을 떠나시기 전에 특별히 남겨주신 것으로, 이 법진을 이용하여 천계의 천뢰대(天雷臺)와 연결하여 신뢰를 소환할 수 있었던 게지.”

    “그렇군요.”

    그제야 의문이 풀린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월 사숙, 방금 신광은 너무 눈이 부셔서 신식으로도 접근할 수 없어서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습니다. 사숙의 광목(光目)이라면 그 안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은 죽었습니까? 아니면 도망쳤습니까?”

    청련선자의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핏빛 기둥이 부서지기 전에 위청은 우선 그 세 명을 다른 곳으로 보냈네. 이어서 자신도 도망치려 했으나 때를 놓쳐 지양 신뢰에 죽었지.”

    관월진인이 천천히 말했다.

    “위청이 정말 죽은 겁니까? 그의 신혼(神魂)은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심협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확인 차 물었다. 위청의 신혼은 치우 마혼의 환생이니 그 결과를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심 소우, 안심하게. 위청의 신혼도 지양 신뢰에 완전히 소멸했네. 도망치지 못했어. 내 직접 봤으니 틀림없네.”

    관월진인의 말에 심협은 그제야 안도했다. 위청의 처지에는 동정이 갔지만, 치우 잔혼의 환생인 만큼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관월진인은 위청의 잔해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결인했다. 그러자 금빛이 위청의 잔해에 떨어져 타오르더니 몇 호흡 만에 잿더미와 흑색 갑옷만이 남았다.

    “이리 견고한 갑옷이 있다니. 어떤 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균열이 갔어도 여전히 최상품 방어 갑옷이겠지. 저 부러진 검은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과거 상고 황제 수중에 있던 성검참마(聖劍斬魔)로, 모든 마기를 막아줄 터. 전설에 따르면 치우도 저 검에 목이 떨어졌다 알려져 있지. 위청은 심 소우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으니 두 보물 모두 소우가 갖게.”

    관월진인이 소매를 흔들자 두 개의 물건이 심협 앞으로 날아왔다.

    “후배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이 자금령은 보타산의 물건이니 관월 선배께서 다시 받아주십시오!”

    심협은 기뻐하며 두 보물을 받고는 자금령을 관월진인에게 돌려줬다.

    “고맙네. 심 소우.”

    관월진인은 따스한 미소를 짓고는 옆에 있는 청련선자에게 받으라고 했다.

    섭채주도 이 광경을 보고는 버드나무 가지와 옥정병을 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청련선자는 옥정병만 받았다.

    “저와 채주는 우연히 조음동에 들어갔다가 상황이 긴박하여 어쩔 수 없이 제가 이 방울로 적을 상대했습니다. 채주 말에 따르면 자금령에는 금제가 있어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하던데, 이 금제를 푸는 방법을 알고 계시는지요?”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 방법이 있다네.”

    관월진인의 답에 심협은 안심했다.

    그때, 그의 몸에서 갑자기 커다란 금빛이 용솟음치더니 수많은 하얀 빛이 반짝였고, 성난 파도처럼 멀리 있는 제단을 향해 날아갔다.

    * * *

    심협의 경지는 떨어져 몇 호흡 뒤에는 본래의 출규 중기로 돌아갔다.

    그 순간, 온몸의 경맥이 갑자기 강하게 떨리더니 기혈이 심장으로 파고들 때마다 칼로 베는 듯한 고통에 참기 힘들었다. 가슴에서도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의 강인한 심지로도 신음을 참지 못했고, 하마터면 의식을 잃을 뻔했다.

    섭채주가 서둘러 다가와 부축하고는 버드나무 가지를 운공했다. 녹색 빛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심협은 고통이 줄어들었다.

    심협의 몸을 떠난 굵은 금빛은 쏜살같이 날아서 제단 위의 흑곰 요괴에게로 돌아갔다. 이에 흑곰 요괴의 경지는 빠르게 폭증하여 진선 중기로 회복되었지만, 매우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아버지!”

    작은 곰 요괴가 황급히 다가갔다.

    “괜찮다.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이다.”

    흑곰 요괴는 차분히 고개를 저어 아들을 안심시켰다.

    관월진인이 제단으로 돌아가서 결인하자 혈광이 담긴 녹색 빛이 손에서 날아가서 흑곰 요괴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에 흑곰 요괴의 몸에 녹색 빛이 번득이더니 얼굴에 혈기가 돌아왔고, 수척한 모습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관월 사숙, 더는 법력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어서 금연지로 가시죠.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청련선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심협도 고개를 들어서 그를 바라봤다. 관월진인의 기운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전신 곳곳이 빛나면서 점점 투명해져 갔다. 완전히 홍화(虹化)되기까지 멀지 않은 듯했다.

    이 모습을 본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홍련화원단멸대법(紅蓮化元斷滅大法)을 시전하면 정혈과 신혼이 완전히 타올라서 절대 멈출 수가 없다. 허나 난 보타산의 뿌리를 지켜낼 수 있었으니 이미 만족한다. 하하하!”

    관월진인은 크게 웃었다.

    청련선자를 비롯해 이리로 급히 다가오는 보타산 제자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왜 우는 것이냐. 너희는 먼저 나가거라. 대오행혼원법진이 손상되었으니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회복시킬 수 있을지 해봐야겠구나.”

    관월진인은 말을 마치며 소매를 펄럭였다.

    오색 제단의 빛이 강해지더니 눈부신 오색 빛이 눈부시도록 번득였고, 다시 보타산이 나타났다.

    마운(魔雲)이 사라진 하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푸르고 아름다웠다.

    심협은 고개를 돌려 뒤쪽 허공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불경을 외웠다.

    “이번 보타산의 환란에는 여러 도우의 도움이 컸으니 이렇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종문에는 아직 처리할 일이 많으니 모든 도우들께서는 먼저 숙소로 돌아가 잠시 머물도록 하십시오. 일이 처리되면 모두에게 보상을 하겠습니다.”

    청련선자는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는 모두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다른 문파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 숙소로 돌아갔다. 처음 들어올 때보다 3할이나 줄어든 수였다. 각 문파의 정예 제자들이 죽어 나갔으니, 아무리 막대한 손실을 입은 상황이라 해도 보타산은 각 문파의 분노를 수습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심협 또한 발길을 돌렸다. 한데 거대한 누군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심협, 이번 환란을 해결하는 데 그대의 도움이 컸으니 이렇게 감사의 뜻을 표하네. 허나 용녀 아기의 죽음은 내 계속 조사할 것이네. 만약 그대의 짓인 게 밝혀지면 아무리 이런 은혜가 있었다 해도 반드시 공평하게 일을 처리할 걸세!”

    작은 곰 요괴는 차갑게 말했다.

    심협은 위급한 상황에 잠시 그에 대해 잊고 있던 터라 내심 당황했으나,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시오.”

    작은 곰 요괴는 차갑게 비웃고는 몸을 돌려서 갔다.

    “오라버니, 저분의 성격이 솔직한 데다 용녀 아기에게 정이 깊어서 저리 무례를 범한 것이니 부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옆에 선 섭채주가 말했다.

    “섭섭할 리가 있겠느냐. 오히려 저런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 싫지 않구나. 그나저나 용녀 아기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다.”

    심협은 미소를 띠고는 자금령을 얻은 과정을 섭채주에게 설명했다.

    “용녀 아기와 대당 관부 사이에 악연이라도 있느냐? 어째서 내가 대당 관부를 대표해 왔다는 말에 그리 화를 내고 죽기 살기로 싸우려 든 걸까?”

    “저도 스승님께 우연히 들었던 이야기인데, 과거 용녀 아기가 득도한 뒤로 탐심이 생겨 홀로 대당으로 가서 신통을 보이고 백성들을 두렵게 하여 강제로 공물을 요구했대요. 그러다가 대당 관부의 수사에게 패하여 다시 보타산으로 돌아왔죠. 노한 보타산 장로들은 그녀를 조음동에 가두어 그곳을 지키게 했고요. 한데 용녀 아기는 고집이 세서 지금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대당 관부라면 죽도록 미워했죠.”

    “그랬군. 정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자였구나.”

    심협이 차갑게 웃었다.

    “심형, 무사하오?”

    백소천이 멀리서 다가오며 물었다. 그의 옷은 피로 물들어 엉망이었고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가득했으나, 표정만큼은 의기양양했다.

    “나는 괜찮소. 백형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언가 얻은 모양이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눈치도 빠르군. 내 화신사의 금강복마대법에 깨달음을 얻었소. 물론 그 성취야 심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세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심협의 숙소로 돌아갔다.

    섭채주는 심협의 상태에 안심이 안 됐는지 다시 버드나무 가지를 운공하여 몇 번이고 회복법술을 시전했다.

    “나는 괜찮다. 누이, 백 형 모두 연속된 싸움에 원기를 많이 소모했을 텐데 어서 쉬시오.”

    심협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섭채주와 백소천은 확실히 피곤했지만, 심협의 숙소에 각자 자리를 찾아 가부좌를 하고 두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했다.

    심협은 내실에 앉아 쉬지 않고 두 개의 보물, 흑색 마갑(魔甲)과 부러진 참마검을 꺼냈고, 우선은 흑마갑(黑魔甲)을 들어서 자세히 살펴봤다.

    이 물건은 매우 견고한데 만져보면 마치 보이지 않은 기운이 흐르는 듯 이상할 정도로 부드러워 조금도 강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협이 가볍게 내리치자 푹 하는 가벼운 소리가 났지만, 갑옷은 무사했다. 오히려 부근의 지면에 쿵 하고 균열이 생겼다. 갑옷의 보이지 않은 기운이 그의 장력을 주변으로 흘려보낸 것이었다.

    “좋은 갑옷이로군!”

    심협은 기뻐했다. 지양 신뢰의 공격에 곳곳에 균열이 생긴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진정한 고수를 만났다가는 버텨내지 못할 터였다.

    “아! 이게 있었지!”

    심협은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휘둘렀고, 그러자 자색 빛이 반짝이더니 자색 구슬이 나타났다. 뒤이어 기이한 사람 모양의 도안이 나타나더니 입을 벌렸다.

    도안의 입에서는 자색 빛이 흘러나와 갑옷을 감싸더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자색 원주는 유령주(幽靈株)였다. 선천연보결로 제련한 뒤 그 용도를 알게 되었는데, 그 신통은 간단했다. 마기를 흡입하여 가지고 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싸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구슬에는 매우 순수한 마기가 담겨 있으니 흑색 갑옷을 마기 안에 넣어서 온양한다면 어쩌면 자연히 고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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