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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51화 (551/1,214)
  • 551화. 강림

    “거짓……이라니.”

    위청은 멍하니 금린을 바라봤다.

    “금린, 그 말도 거짓이지 않나. 그때 그대와 청월과 오, 그리고 황동도인까지, 셋이서 손잡고 저 부자(父子)의 몸속에 분혼화영인을 새기고 함께 키워서 먼저 삼재를 겪게 되는 자가 쓰기로 하지 않았던가. 한데 목 노인네가 분혼화영인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죽어 버리니 그대는 계획을 세운 게지.

    죽은 체하고 있다가 청월이 죽고 황동도인까지 사라지면 이놈을 손아귀에 쥐기로 말이야. 이제 천겁이 가까워졌고 이놈도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제 뜻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한데 뭐 하러 아직도 거짓을 말하는 건가?”

    “모든 걸 간파했다니, 역시 요풍답군. 호호호!”

    요풍의 말에 금린은 숨기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한편, 심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위청에게서 옛날 일을 들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금린에 대해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연민 어린 눈빛으로 위청을 바라봤다. 위청은 금린을 위해 두 번이나 종문을 배신했고, 평생 금린의 복수를 위해 살아왔다. 한데 금린은 처음부터 그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다.

    ‘허나 뭔가 이상하다. 금린은 왜 지금 와서 그때의 일을 말하는 거지? 위청을 단지 천겁을 막는 용도로 사용할 거라면 계속 속이는 게 유리하지 않은가!’

    심협은 또다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줄곧 날 속인 거였다니…… 난 평생을 겨우 버티며 살아왔는데…… 처음부터 도구에 불과했어…… 하하…… 하하하!”

    위청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비참하게 웃었으나, 그 목소리는 서글펐고,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고개를 살짝 숙인 마수수의 눈에도 안타까움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 옆에 선 요풍과 금린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요풍과 금린은 모두 용의주도한 자들이니 절대 실수할 리가 없소. 원구, 저들의 의중이 무엇인 것 같소?’

    심협은 천책 안의 원구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군요. 한데 어쩐지 위청을 미치게 하려는 거 같습니다.’

    원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치게 한다? 그렇다면 설마 저들의 목적은……?’

    심협은 다시 현음미동을 운공했다.

    비참하게 웃던 위청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고, 그 눈빛은 텅 비어 생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심과 슬픔에 신지가 무너진 게 분명했다.

    그때, 그의 미간에서 핏빛 뼈가 반짝이더니 빠르게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그의 머리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매우 기이했다.

    그 순간, 머릿속의 그 핏빛 존재가 다시 나타나 위청의 신혼에 침투하려 했다.

    위청은 신지가 완전히 무너졌는지 조금도 반항하지 않았고, 신혼은 빠른 속도로 붉게 물들어갔다.

    “저들의 목적이 바로 저거였어! 도우들, 어서 공격하십시오! 요풍과 금린은 위청의 심신을 무너트려 마족이 그의 심신을 완전히 차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심협은 급변한 얼굴로 외치며 자금령을 꺼냈다.

    비석 위의 네 사람은 심협의 말을 듣자마자 상황을 알아채고는 곧장 각자의 빛을 뿜어냈다. 지금 공격하면 법진을 운영하는 데 문제가 생기겠지만,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제단 비석에서 금색 법진이 갑자기 빛을 뿜어냈고, 그들의 머릿속에 관월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이들은 기뻐하며 빛을 흩어버리고는 대오행혼원진을 운행하는 데 집중했다.

    심협도 자금령을 거두고는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한편, 요풍은 기쁜 얼굴로 칠흑 같은 작은 병을 꺼내 던졌다. 병은 순식간에 위청의 머리로 날아가며 입구가 거꾸로 돌아갔다.

    촥!

    시커먼 액체가 쏟아져 나오면서 바람에 흩어져 검은 비로 변했다.

    검은 비가 내리는 영역은 넓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위청 주변만 뒤덮으며 그의 몸으로 몰려왔다.

    엄청난 마기가 담긴 이 검은 비는 닿자마자 위청의 몸에 스며들었다.

    삽시간에 위청의 전신에서 검은 빛이 폭발했고, 오색 신뢰의 공격으로 입은 마기와 모든 부상이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몸도 점점 커지는 것이 다시 마신의 형태로 변하려는 듯했다.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강하고 피비린내 가득한 마기 파동이 폭발했다.

    한데 그때, 제단 위에서 갑자기 금빛이 폭발하더니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금빛의 기둥 안에서 금빛의 천문이 다시 나타났다. 허공에는 다시 구름이 몰려왔고, 천둥번개가 울려 퍼졌다.

    “안 돼! 대인께서 위청의 몸을 차지하시는 데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오 도우, 어서 옥정병으로 위청을 데리고 가게!”

    요풍의 외침에 마수수는 곧장 옥정병을 꺼냈다. 병 입구에서 나온 하얀 빛은 점점 커지고 있는 위청을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옥정병 주변의 허공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버드나무 가지가 나타나 병을 허공에 붙들었고, 다른 가지는 늘어나서 병 입구로 들어갔다.

    어느새 제단 끝에서 나타난 섭채주가 버드나무 가지를 든 채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흑곰 요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혈색이 잿빛으로 변했고 숨도 차오르는 것이 한계에 도달한 듯했다.

    버드나무 가지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자 두 보물이 서로 공명한 것인지 옥정병도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냈다. 버드나무 가지는 옥정병 안으로 끊임없이 들어갔고, 이에 마수수는 한동안 옥정병을 쓸 수 없었다.

    이를 본 요풍은 안색이 변해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악랄한 칼날처럼 음험하기 그지없는 다섯 줄기 검은 기운이 버드나무 가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금린도 손을 휘둘러 백골장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 빛이 반짝이면서 순식간에 길이 수십 장의 거대한 검으로 변했다.

    이어서 그녀가 검결을 맺자 거대한 검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놀랍게도 얼음처럼 차가운 불꽃을 두른 검 또한 버드나무 가지를 향해 날아갔다.

    그때, 두 개의 푸른 빛이 번개처럼 날아와 다섯 개의 검은 기운과 백골장검을 막아섰다.

    두 번의 요란한 굉음과 함께 극한의 기운이 폭발했고, 검은 기운과 백골장검은 순식간에 얼어붙은 듯 허공에서 꿈쩍도 하지 못 했다.

    허공에 나타난 남색 얼음이 주변 공기마저 얼려버렸다.

    제단 끝에 선 심협이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내려놓자 그의 손에서는 푸른 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동결허공(凍結虛空)! 진창해 3중…….”

    청련선자는 놀란 눈빛으로 중얼거렸고, 심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오행혼원진을 깨달으면서 현음미동이 큰 진전을 보였고, 법력의 운공을 제어하는 데에도 능해졌다. 이 두 가지의 진전이 진창해의 신통을 단번에 3중의 경지에 도달하게 한 것이다.

    요풍 등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금린은 백골장검이 얼어붙으면서 그 안의 법력도 얼어버려서 아무리 운공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편, 이 모습을 본 환갑의 노인 명우와 구릿빛 거한 적중은 심협에게 경쟁심이라도 들었는지 곧장 옥정병을 향해 공격을 가했다.

    “지열화(地裂火)!”

    적중이 크게 손을 휘두르자 옥정병 상공의 허공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고, 그 사이로 수많은 용암과 같은 불덩이가 뿜어져 나왔다. 지순지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큰 손색이 없는 순수한 불덩이들이 옥정병을 공격했다.

    퍼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균열 부근의 허공이 적홍색으로 변하더니 옥정병이 날아가 버렸고, 더욱 뜨거운 기운이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무렵, 마수수의 고운 얼굴도 붉게 물들었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억지로 옥정병을 운공했다.

    그때, 옥정병 상공의 허공에 황색 빛이 나타났다.

    “거암파화오지산(巨巖破化五指山)!”

    명우가 구결을 읊으며 손으로 허공을 연달아 찍었다.

    황색 빛은 순식간에 거대한 손 같은 산 형태로 변하더니 옥정병을 그 안에 가두었다. 이에 마수수가 아무리 운공을 해도 반응조차 없었다.

    그때, 제단 끝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려오더니 금빛 천문이 흔들렸다. 반투명한 오색의 신뢰(神雷)가 다시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위청을 휩쓸었다. 가까이 있던 요풍과 금린, 마수수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수많은 오색 신뢰에 삼켜졌다.

    눈부신 오색 빛이 다시 폭발하면서 반경 수백 장을 완전히 뒤덮었다. 허공은 끊임없이 무너졌고, 하늘에서는 천지를 무너트릴 듯한 천둥이 울려 퍼졌다. 그곳에서는 조금의 마기도 살아남을 수 없을 터였다.

    청련선자 등은 그제야 안도했다. 저 신뢰의 위력라면 위청 등을 소멸시키는 것은 문제없을 듯했다.

    심협 역시 두 눈을 감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오색 빛을 정면으로 봤다가는 또다시 동력(瞳力)이 손상될까 우려돼 감히 볼 자신이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눈부신 혈광(血光)이 수많은 지양의 신뢰를 뚫고 뿜어져 나왔다.

    혈광은 빠르게 커져갔고, 주위의 오색 신뢰를 비집고 나와 두께가 5장에 이르는 기둥을 이루었다. 혈광 안에는 위청과 요풍, 마수수, 금린이 있었다.

    위청은 다시 평범한 인간과 같은 크기로 줄어든 상태였고, 몸 곳곳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미간의 핏빛 뼈는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크고 작은 상처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 기둥에는 수많은 핏빛 부문이 흐르고 있어 매우 견고했고, 오색 뇌구(雷球)가 아무리 충격을 가해도 살짝 흔들리기만 할 뿐, 균열조차 생기지 않았다.

    “이럴 수가…….”

    관월진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얼굴로 이 핏빛 기둥을 바라봤다.

    “설마, 천계의 지양 신뢰를 두 번이나 소환할 줄이야! 본존이 확실히 방심했구나. 허나 이렇게 본존이 강림했으니 더는 추태를 보일 수 없지.”

    위청이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말투부터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팔을 휘두르자 혈광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고, 빛의 기둥 부근에 있던 오색 신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어서 두 개의 혈광이 번개처럼 날아가 제단에서 빛나던 금빛 기둥을 가격했다.

    쿠르릉!

    금빛 기둥은 순식간에 부식되어 두 개의 구멍이 생겼고, 제단 끝에서 빛나던 금색 광진은 어두워지면서 빛의 기둥 안에 있던 금빛 천문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심협이 금색 광진 옆에 나타났다.

    심협이 곧장 손을 번쩍 들자 실제와 같은 천책의 환영이 그의 손에 나타나더니 금색 광진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태양과 같은 금빛이 금색 광진에서 폭발했고, 운공 속도 또한 이전보다 열 배는 빨라졌다.

    허공의 금빛 천문이 강하게 흔들리더니 완벽하게 실체를 갖추었고, 크기도 이전보다 몇 배는 커졌다.

    굉음과 함께 수많은 투명한 신뢰가 금빛 천문에서 쏟아져 나와 핏빛 기둥을 공격했다.

    위청의 표정이 변했다.

    “지양 신뢰가 극치가 되었을 때 나타난다는 무색뇌(無色雷)!”

    관월진인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핏빛 기둥에 순식간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이어서 강렬하게 몇 번 떨리고는 굉음과 함께 완전히 폭발했다.

    콰쾅!

    투명한 뇌구가 벌 떼처럼 날아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심협의 임랑환 안에서 옥침이 흔들리면서 빛이 빠르게 반짝였다

    몇 호흡 뒤, 옥침의 빛은 갑자기 사라졌고 광진 안 천책도 사라졌다.

    미친 듯이 운동하던 금색 광진도 곧장 멈췄고, 허공에 있던 금빛 천문도 사라지면서 벌 떼처럼 몰아치던 투명한 뇌구도 댐의 수문이 닫힌 것처럼 갑자기 멈췄다.

    대오행혼원진의 투명한 뇌광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그 안의 광경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위청의 시체가 가만히 누워 있었다. 사지와 머리는 이미 사라졌고, 갑옷을 걸친 상체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허나 요풍과 마수수, 금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마치 신뢰에 그대로 허무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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