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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50화 (550/1,214)
  • 550화. 부활

    “헛소리! 나는 종문의 여러 천강변화지술(天綱變化之術)을 하사받아 삼재를 넘긴 상태였는데 무엇 하러 그런 짓을 하겠느냐?”

    황동도인이 소리쳤다.

    심협은 그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천강지살변화지술(天綱地煞變化之術)이 있으면 삼재를 넘기는 건 어렵지 않을 터. 보타산 정도 되는 종문에 그런 변화지법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 말로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속일 수 없다. 천강지살변화지법은 확실히 천기를 가리고 삼재를 피할 수 있겠지. 허나 천도는 넓고 광대한데 그렇게 쉽게 속일 수 있을 거 같으냐? 진선기의 수사가 변화신통으로 삼재를 피하면 후에 태을경에 들어설 때 받게 될 겁은 몇 배로 강해진다. 한데 그런 임시방편 같은 행동을 너희 같은 대문파의 장로들이 허용하겠느냐?”

    위청은 조롱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동도인의 말에 의심을 풀었던 심협은 다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한편, 황동도인은 눈이 가늘어지더니 차가운 빛이 흘러나왔다. 이는 순식간에 사라져서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심협은 거리가 가까웠던 데다 현음미동은 그런 미세한 변화를 간파하는 데 효과적이었기에 놓치지 않았다.

    ‘설마 진짜로……?’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나와 아버지는 분혼화영인의 고통을 겪었지만, 어디 호소할 곳도 없었기에 그저 매일 밤 금연지(金蓮池)에서 보살님께 기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금린을 만났지. 그녀는 심성이 선하여 내게 보타산의 공법을 전수해주고 양기에 입적할 수 있게 해주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수 있었지.”

    금린을 떠올린 것인지 위청의 표정이 일순 부드러워졌다.

    “한데 그 말은 좀 이치에 안 맞는 듯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금린 선배의 경지가 상당히 높았다는데, 그녀가 그대 몸속의 분혼화영인이 새겨진 걸 몰랐을 리가 있습니까? 이 일을 말했다면 청월장문과 황동 선배가 종문의 중벌을 받게 되었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협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청월 할망구와 황도 저놈이 나와 아버지께 새긴 분혼화영인은 달랐다. 평범한 혼인이 아니라 다른 비술로 숨긴 탓에 금린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지.”

    위청이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말은 그럴듯하면서도 여전히 뭔가 이상했고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후 내가 몰래 도술을 배운 것이 발각되면서 금린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데리고 도망쳐야 했다.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내 몸속에 청월의 본혼화영인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지. 뿐만 아니라 금린을 만나고 보타산의 공법을 전수받고 종문의 시험에서 경지를 들킨 것도 모두 그들의 계획이었다. 금린을 종문에서 내쫓고 보타산 장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단 말이다!”

    위청의 말이 이어질수록 듣는 사람들은 얼어붙은 듯했다.

    “닥쳐라! 청월 사저는 인격이 높고 절개가 굳은 사람이라 모든 일에 종문을 우선시했다. 네놈이 어찌 그녀를 모욕하는 것이냐!”

    청련선자는 위청이 계속해서 청월을 모욕하자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외쳤는데, 눈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인격이 높고 절개가 굳어? 하하하! 천하가 다 비웃겠구나! 청련장문, 당신과 청월은 오랜 시간 동문으로 지내고도 정작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군! 그 망할 할망구는 자질은 평범한 주제에 호승심만 강했다. 같은 배에서 당신이나 금린처럼 자질이 뛰어난 자들에게 추월당할까 봐 항상 불안하고 두려워했지. 그래서 분혼화영인을 사용한 것이다!”

    냉소하는 위청의 눈동자에는 경멸의 빛이 어렸다.

    청련선자는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위청의 말이 꽤 들어맞았다. 다만 자신은 수련에만 전념하느라 괘념치 않았을 뿐.

    보타산 장로들과 몇몇 오래된 제자들은 여기까지 듣자 청월장문의 행동과 위청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듯해 점점 의구심이 들었다.

    “나와 금린이 보타산에서 도망치자 청월 할망구는 일이 폭로될까 두려워 황동도인과 같이 추격해왔지. 남해까지 우리를 찾아왔고, 금린은 내가 도망치는 걸 보호하기 위해 홀로 그들을 상대했다가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때, 난 내게 약속했다. 평생을 걸쳐서라도…… 안 되면 다음 생에라도 반드시 보타산을 멸문하고 그녀의 복수를 하겠다고 말이다!”

    위청은 마지막 말을 내뱉으며 청련선자와 황동도인 등을 노려봤다. 그의 눈빛에서는 끝없는 원한이 느껴졌다.

    우렁찬 목소리에 공간이 흔들리면서 그곳에 있는 모두는 아연실색했고, 오랫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황동 장로님, 그때 바깥까지 금린을 추격했던 제자들 중에 오직 당신과 청월 사저만 돌아왔습니다. 사저가 죽었으니 일의 진상을 알고 있는 건 장로님뿐입니다. 위청의 말이 사실입니까?”

    청련선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황동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황동도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청련선자와 눈이 마주치자 어째서인지 가슴이 철렁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그 표정으로 미루어 위청이 말이 사실이라 여기고 길게 한탄했다.

    심협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위청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허나 역시 뭔가 이상해. 게다가 위청이 이리 오랫동안 말을 했는데도 머릿속의 그자가 가만히 있는 건 분명 이해할 수 없어.’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다시 몰래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위청의 신혼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위청의 머릿속에 있던 핏빛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말을 마친 위청은 낮게 숨을 골랐다.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갑자기 위청의 뒤에서 들려왔다.

    “역랑(易郞), 그동안 고생했어요.”

    그 순간, 위청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대로 우뚝 굳어버렸다가 곧이어 꿈에서 깨어난 듯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긴 금색 치마를 입은, 구름처럼 머리가 휘날리는 여인이 언제 나타났는지 그곳에 서 있었다. 스물대여섯 정도로 보이는 이 여인은 절색이라 할 만한 외모는 아니었으나 두 눈이 물처럼 맑았고, 잔잔한 미소와 내면에서 솟아 나오는 물처럼 부드러운 자태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심협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위청 가까이에 있었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건만, 이 여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금, 금린…….”

    위청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내뱉었다.

    한편, 청련선자와 황동도인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여인은 정말로 금린이었던 것이다!

    “나예요.”

    여인은 위청에게 천천히 다가와 손으로 부드럽게 그의 몸을 쓰다듬었다. 현재 위청은 마신의 모습이었기에 그녀의 손은 그 다리에밖에 닿지 않았다.

    “정말로 금린 당신이오? 말도 안 돼! 그대의 육체는 대설만의 만년 얼음동굴에 갇혔는데…… 누구냐! 어째서 금린의 모습으로 변하여 날 기만하는 거지?”

    위청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뒤로 물러나 소리쳤다.

    그때, 금린 옆의 허공이 흔들리더니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위 도우, 그리 놀랄 것 없네. 우리 일족에는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비술과 보물이 있지. 마침 오 도우가 옥정병을 차지하였기에 우리가 감로수와 다른 보물을 함께 사용해봤는데, 다행히 금린 도우가 부활했다네.”

    한편, 심협은 그 검은 인영을 보고는 온몸이 떨려왔다. 검은 옷에 삿갓을 쓰고 온몸에 자흑색 빛이 흐르는 그자는 바로 여러 번 마주쳤던 요풍이었다.

    요풍의 옆 허공이 다시 한번 흔들렸고, 이내 마수수도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또 마족이 나타나자 표정이 굳어졌다.

    “그, 그게 정말이오?”

    위청의 커다란 몸이 검게 반짝이자 순식간에 보통 인간의 크기로 줄어들더니 긴장한 얼굴로 요풍에게 물었다.

    “그대와 금린 도우는 연인이고 그녀의 육체는 그대가 오랫동안 보관해왔으니 본인인지 아닌지는 그대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오.”

    요풍이 웃으며 답하자 위청은 뭔가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금린의 가슴 부근이 반짝이더니 푸른 빛이 천천히 흘러나와 하늘색 구슬로 변했다. 어떤 보물인 듯했다.

    “틀림없어. 금린의 육체가 상하는 걸 막기 위해 내가 직접 정제한 정안주(定顔珠)야. 금린, 정말 당신이구려!”

    위청은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렸고,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역랑, 그동안 나를 위해 한 일을 전부 들었어요. 이제 괜찮아요.”

    금린은 가까이 다가가 위청을 안았다.

    “금린, 드디어…… 돌아왔구려. 잘됐소, 정말 잘됐소…….”

    위청은 금린을 꼭 끌어안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소 망측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으나, 모두가 위청과 금린의 비극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말없이 속으로 축복해줬다.

    한데 그때였다.

    푹!

    작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뼈로 만든 칼이 위청의 등을 뚫고 나왔고, 피가 샘물처럼 솟았다.

    위청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여 백골의 장검을 쥔 손을 보았다. 그 검을 쥐고 있는 것은 금린의 손이었다.

    그는 피를 뿜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장검과 그 검을 쥔 여인을 차례로 보았다.

    금린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표정에서는 부드러움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같은 더없이 차가운 눈빛이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다른 사람들도 놀란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린의 손이 움직였고, 장검이 쑥 뽑혀 나오면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동안 얌전한 척하느라 구역질이 났는데 오늘 드디어 끝나는군!”

    금린은 피가 흐르는 검에서 피를 털어내며 통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목소리는 이전과 같았지만, 표정이나 말투 모두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그때 보타산에 남기로 한 것은 그대니 운이 없는 자신을 탓해야지.”

    요풍은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두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듯 대화했다.

    그 순간, 심협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버드나무 가지를 천책의 공간에 넣고는 곧장 뒤로 물러나 제단으로 돌아가서는 남색 법진에 가부좌를 틀었다. 저들이 무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은 좋지 않은 게 분명했다. 어쨌든 제단으로 돌아오자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놀란 상황이라 심협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단전을 칼에 찔린 위청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주저앉았다.

    “너…… 너는 금린이 아니야. 한데 어떻게 정안주가……? 넌 대체 누구냐!”

    위청은 상처를 신경 쓰지 않고 금린을 노려보며 따졌다.

    “왜? 내가 금린이라는 걸 못 믿겠어? 그럼 우리 둘만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은 금연지의 서북쪽이었지. 그날, 너는 꽃이 그려진 긴 남색 옷을 입고, 백림과(白林果)를 놓은 채 보살에게 기도하고 있었어. 우리가 두 번째 만났을 때는 네가 나한테 수정옥(水晶玉)을 줬고,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속세의 세 가지 반찬을 사다 줬었지. 더 할까?”

    금린은 히죽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금린을 노려보던 위청은 차차 멍해지더니 이내 눈빛이 흐려졌다.

    금린이 말할 것들은 모두 두 사람만 아는 사실이었다. 몰래 도술을 배우는 것은 보타산의 금기였기에 그들은 매번 은밀한 장소에서 만났다. 한두가지가 아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결코 우연일 리가 없다.

    “정말…… 금린이오? 한데 어찌…… 이건 말도 안 돼! 대체 왜 이러는 게요?”

    위청은 거의 정신이 나간 것처럼 소리쳤다.

    “흥! 아직도 그런 멍청한 소릴 하다니. 네가 생각하던 금린은 처음부터 없었다! 다 거짓이었단 말이다! 수십 년간 숨기느라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금린은 지겹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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