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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49화 (549/1,214)

549화. 진상(眞相)

관월진인은 계속해서 오색 제단을 제어했지만, 제단 위의 금빛 법진은 많이 어두워진 상태였고, 그 위의 금빛 천문도 사라진 후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시전을 멈추지 않고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체내에서 웅장하고 강력한 법력이 용솟음쳤다. 다만 정혈의 힘이 거의 소진된 상태라 겉보기에는 웅장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 있어서 오래 버틸 수 없음을 심협은 알 수 있었다.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심협은 속으로 탄식하고는 시선을 옮겼다. 안면이 있는 황동도인이나 청련선자와는 달리 환갑의 노인과 구릿빛 피부의 거한은 잘 알지 못하기에 두 사람을 자세히 살폈다.

흑곰 요괴에게 물은 덕에 둘 모두 보타산의 장로로, 이름은 각각 명우(明羽)와 적중(狄重)임을 알았다. 다만 두 사람은 긴 시간 동안 폐관하느라 문파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기에 종문 제자들 중에도 그들을 알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

환갑의 노인, 명우는 법력이 산처럼 무거운 것이 흙 속성의 공법을 수련한 것이 분명했다. 외모는 노인이었지만 육신은 매우 건강했는데, 특히 골격이 기이한 토황색이었다. 무토영문(戊土靈紋)이 떠다니는 것으로 보아 모종의 단체 공법을 수련한 게 분명해 보였다.

구릿빛 피부의 거한, 적중은 법력이 불처럼 용솟음쳤고, 매우 활발해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체구가 크고 우람했지만, 오히려 육신의 힘은 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체형인 이유는 육체의 피와 살에 대량의 순수한 법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근육이 자라는 것이다.

어떤 신통을 썼는지 모르겠으나, 적중은 법력을 육체에 저장할 수 있어서 체내의 법력이 같은 경지의 수사보다 곱절은 많았고, 법맥 또한 이질적으로 현묘하게 개척한 상태였다.

심협이 두 사람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을 때, 명우와 적중도 시선을 알아채고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심협은 현음미동을 전력으로 운공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바로 빙글빙글 돌면서 눈앞이 흐려졌다. 뒤이어 푸른 빛이 흐르는 세계가 나타났는데, 마치 끝없는 별빛의 하늘 같았다.

“환술!”

명우와 적중은 경악했다.

허나 두 사람은 견식이 풍부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바로 신혼의 힘을 운공하여 환술을 깨는 보타산만의 신통을 시전했다.

허나 두 사람은 어떤 수단을 써도 이 환상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근접조차 할 수 없었고, 이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저 심씨 애송이가 이렇게 심오한 환동지술(幻瞳之術)을 쓸 수 있을 줄이야. 한데 어째서 지금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설마 저 마신과 한패였나?”

명우는 당황했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었기에 초조한 듯 물었다.

한데 그때, 그의 눈앞에 푸른 빛이 나타나더니 모든 환상이 사라지면서 다시 제단 위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적중도 다시 정신을 차렸다.

“선배님들, 용서해주십시오.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동술을 방금 익힌 터라 익숙하지 않아 저도 모르게 두 분을 환술에 빠트렸습니다.”

심협은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명우에게 전음으로 사과했다.

명우는 자신이 오해한 것임을 알고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심협은 적중에게도 사과했다. 적중은 내심 화가 났지만, 지금은 상황이 위급하기에 따질 여유가 없었다.

심협은 몰래 현음미동을 운공했고, 두 눈의 푸른빛도 빠르게 사라져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미안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다.

현음미동의 위력은 역시 대단했다. 이제 막 익힌 것인데도 보타산의 두 장로를 빠져나올 수 없는 환각에 빠뜨렸으니, 앞으로 더욱 정진한다면 그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리라.

그는 심호흡으로 흥분을 억누르고는 다시 아래를 살폈다.

대오행혼원법진에 가득하던 오색의 빛이 사라지면서 흉악한 마신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자 심협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신의 모습은 매우 처참했고, 백 장에 달했던 몸도 지금은 십여 장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온몸의 비늘 갑옷도 절반이나 부서졌고, 하반신도 검게 변하여 뼈가 드러난 곳도 있었다.

마신의 등에 있던 네 개의 팔도 전부 사라져서 두 팔만 남았는데, 그나마도 왼팔은 상처가 심각해 이미 쓸 수 없게 됐다. 오로지 참마검을 들고 있는 오른팔만은 무사했다. 보검의 보호 덕분인 듯했다. 이마의 핏빛 뼈도 혈광이 어두워져 있었고, 두 눈의 혈광도 많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신의 몸에 남아 있던 세 개의 고리도 부서져 사라진 상황이었다.

마수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매우 교활하니 분명히 옥정병을 사용하여 도망쳤을 것이다.

심협은 큰 성취를 이룬 현음미동으로 마신을 살폈다. 그러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신 체내에서 들끓는 마기가 이전에 비해 6할이나 약해져 있었지만, 남은 마기는 여전히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마화된 다른 요괴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어서 마신의 머릿속을 살핀 심협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마신의 머릿속에서는 위청 신혼의 소인이 혈광으로 빛나고 있었는데, 눈빛이 흐리멍텅한 게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귀신으로 보이는 핏빛 인영이 위청의 신혼에 붙어서 끊임없이 침투하고 있었다. 허나 이 핏빛 그림자는 방금 오색의 신뇌(神雷)에 상처를 입었는지 기운이 없어 보였고, 혈광도 어두웠다.

반면 위청 신혼의 소인은 푸른 빛이 점점 밝아져 곧 깨어날 듯했다.

“역시 누군가 위청을 조종하고 있었구나! 관월진인은 이미 한계이니 다시 그 번개를 소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위청을 깨울 수 있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어.”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일단 법진에서 빠져나와 마신 앞으로 다가가서는 버드나무 가지를 꺼냈다.

“위 도우, 그대가 원하던 버드나무 가지가 여기 있소. 그대가 물러나기만 한다면 이것을 넘기겠소.”

심협은 크게 외치는 한편 동술을 운공해 파랗게 반짝이는 눈으로 위청의 신혼을 자극했다.

버드나무 가지를 본 데다가 심협의 동술에 자극을 받기까지 한 위청의 두 눈에서는 핏빛이 빠르게 사라졌고, 이전보다 더욱 눈빛이 또렷해졌다.

심협은 내심 크게 기뻤다.

위청의 머릿속에서 핏빛 그림자가 심협을 돌아보더니 기이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다가 위청과 몸을 내버려둔 채 그대로 사라졌다.

한편, 제단 위의 관월진인과 청련선자 등은 심협과 같은 안력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견식이 넓어서 심협이 위청을 깨우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는 기뻐했다.

‘관월 사숙님, 오색 신뇌를 다시 소환하실 수 있습니까? 한 번이면 마신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것 같군요!’

청련선자가 전음으로 관월진인에게 물었다.

‘이미 준비는 해놨네. 천책 인뇌부(引雷符)면 천정의 지양신뢰를 충분히 불러올 수 있지. 허나 천문이 이미 닫혀버려서 다시 소환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심 소우, 시간을 좀 끌어주게.’

관월진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금색 법진을 운공하며 심협에게 전음을 보냈다.

심협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버드나무 가지! 내놔! 어서 내놔!”

위청의 눈에는 광기가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몸이 사라지더니 귀신처럼 심협 앞에 나타나 갈고리 같은 손으로 버드나무 가지를 붙들려 했다. 마신은 중상을 입었음에도 여전히 번개처럼 빨라 전선기 이상의 수사가 아니면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심협은 안력이 크게 증진한 상태였기에 위청의 마기가 응집하자마자 알아채고는 곧장 사월보와 이형환영 신통을 시전했다.

심협의 몸이 흐려졌다가 사라지면서 마장(魔掌)은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위 도우, 어찌 그리 서두르는 겁니까? 보타산을 떠나고 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바로 버드나무 가지를 넘기겠습니다.”

심협은 수백 장 밖에 나타나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수는 없다!”

위청은 몸을 돌려 심협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위 도우, 그대의 일은 이미 호법 선배께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금린 선배는 보타산이 죽인 게 아니라…….”

심협은 흑곰 요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위청에게 전했다.

“……금린 선배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허나 그녀도 보타산과 청월장문을 지키기 위해 그 요괴의 손에 죽은 겁니다. 이 일에 보타산의 잘못이 있다 해도 죽을죄는 아니지요. 그대는 누군가의 계략에 넘어가 당시의 진상을 잘 알지 못하기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일 터.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마족의 바둑돌로 전락하지 마십시오.”

심협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가 보타산에서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그 일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가?”

위청이 놀란 기색 없이 차게 웃으며 반문하자 오히려 심협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협, 계략에 넘어간 건 너다. 흑곰 요괴가 네게 한 말을 전부 믿느냐?”

위청이 조롱하듯 물었으나,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을 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 그날의 진상을 알고 싶다면 내 전부 말해주마. 그래서 너와 여기 있는 모두에게 보타산이 말하는 정도(正道)의 수사가 얼마나 가식적인지 낱낱이 밝혀주겠다!”

그때, 제단 위의 황동도인이 갑자기 버럭 성을 냈다.

“이놈! 위청, 네놈은 종문을 배신하고 마족에게 투항하였다! 네놈의 죄는 이미 도를 넘었거늘 감히 거짓으로 눈과 귀를 가리고 보타산의 명예를 깎아내릴 생각이더냐?”

“왜? 불안한가? 하하하! 모두에게 네놈의 더러운 민낯을 보여주마. 그때의 모든 일은 저자와 청월, 그년의 짓이다!”

위청이 우뚝 웃음을 그치며 내뱉은 말에 심협뿐만 아니라 저 멀리 보타산의 남은 제자들도 표정이 변했다.

수많은 눈빛이 황동도인에게 향했지만,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심협, 흑곰 요괴는 아마도 나와 아버지가 구음절맥이고 평생 병을 달고 다녔다고 했겠지. 터무니없는 말이다! 나와 아버지는 확실히 지음(至陰)의 체질이었지만 구음절맥이 아닌 계음지체(癸陰誌體)였고, 그로 인해 병을 달고 살았기에 체내에 분혼화영인(分婚化影印)을 심었지.”

위청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흘렀다.

“분혼화영인? 그게 무엇이오?”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너도 진선의 경지에 들어서면 삼대 재해가 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소.”

“삼대 재해는 매우 강력하여 방심하면 바로 혼비백산의 말로를 겪게 된다. 하여, 상고 때 사도의 무리가 분혼화영인을 만들어냈지. 이 인을 수사의 몸에 새기면 조금씩 숙주의 신혼에 침범하여 마지막에는 하나의 분신을 만들어낸다. 삼재가 강림할 때 이 인을 사용하여 재해를 분신에게 넘기는 것이지.”

심협은 천책 속 원구에게 분혼화영인에 대해 물었고, 위청의 말이 사실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위청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계음지체였고, 천성적으로 영혼의 힘이 강력하여 분혼화영인을 견뎌낼 적임자였기에 누군가의 분혼화영인을 새기게 되었지. 내게는 그 망할 청월의 것을, 내 아버지께는 황동도인의 분혼화영인을 새겼다.”

위청은 제단 쪽을 원한 가득한 눈으로 노려봤다.

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다시 수군거렸다.

한편, 제단 위 청련선자의 눈에는 분노가 번졌다. 그녀와 청월장문은 과거 세속에서 만난 벗이었고, 함께 보타산에 입문하여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청련선자는 전 장문인인 청월을 항상 존경해왔으니 위청의 말을 믿기는커녕 분노가 치솟은 것이다.

허나 지금은 시간을 벌어야 할 때였기에 그녀는 분노를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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