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화. 마화(魔化)
제단이 반짝이자 오색 소용돌이가 속도를 더욱 높였다. 쌍방의 마찰은 격렬했고, 심지어 번개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흡입력도 배가 되었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백색의 광진은 이제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굉음과 함께 찢겨나가면서 구름 막도 사분오열했다.
중년 사내와 흑교왕의 모습이 소용돌이 중심에 다시 나타났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소용돌이의 힘을 막을 수가 없었던 흑교왕은 휙 하며 오색 소용돌이로 끌려 들어갔고, 비명도 지르기 전에 허무하게 사라졌다.
중년 사내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더니,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양쪽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30여 개의 보물이 날아가 소용돌이로 떨어졌다.
“폭(爆)!”
그가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하며 외쳤다.
퍼펑!
보물들이 강하게 빛을 뿜어내더니 곧바로 눈부신 빛과 함께 폭발했다.
하나하나가 법보인 이 보물들이 폭발하자 오색 소용돌이에도 허점이 생겼고, 강력한 흡입력도 일순 멈췄다.
중년 사내는 먹구름을 붙든 채 은색 채찍을 꺼내 허공을 강하게 내리쳤다.
쫘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간의 균열이 생겨났고, 균열의 가장자리는 은빛으로 반짝였다. 이어 수많은 은빛 부문이 점차 은빛의 법진으로 변해갔다.
중년 사내는 번개처럼 빠르게 은빛 균열로 돌진했다.
“어딜 도망가느냐!”
관월진인은 크게 호통을 치며 오색 비석 위로 날아가 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절반의 법력이 비석으로 흘러 들어갔고, 심협 등도 신통의 깨우침을 멈추고 서둘러 법력을 주입했다.
제단의 빛이 열 배는 강해졌고, 오색 소용돌이마저 빛에 가려졌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면서 소용돌이는 산 한채 크기의 거대한 오색 인(印)으로 변했는데, 표면에는 수많은 산과 강물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으며,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색의 인은 나타나자마자 아래로 떨어졌고, 이에 허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중년 사내는 이미 한 발을 은색 균열 안에 들인 상태였는데, 위에서 경천동지의 굉음이 들려오며 반경 수십 리의 허공이 강하게 진동하면서 주변의 공기와 모든 것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에 중년 사내는 마치 거대한 산에 깔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었다. 은색 공간은 눈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저 먼 하늘 같이 느껴졌다.
‘보타산에 이토록 강력한 대진이 있을 줄이야! 이런 법진은 선계에서도 흔하지 않건만 인간 세계의 종문에 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자와의 거래에 응하지 않았을 터인데……. 더는 끼어들지 말아야겠다!’
중년 사내는 후회가 막심한 와중에도 대책을 생각했다. 그러나 먹구름조차 마치 압도당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편, 제단의 관월진인은 안색이 창백했다. 오색의 거대한 인을 운공하는 것이 무척 힘에 겨운 듯했다. 그럼에도 그는 버텨냈다.
그의 지팡이가 오색 빛으로 반짝이며 세차게 비석을 내리쳤다.
쿵!
오색의 거대한 인이 흔들리더니 오색 파문이 밑으로 퍼져 나갔다.
은색 공간 균열은 오색 파문에 닿자마자 강렬하게 흔들렸고, 굉음과 함께 공간의 균열이 마치 깨진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며 소멸했다.
중년 사내의 몸도 강렬하게 떨리더니 폭발하여 피의 안개로 변했다.
오색의 거대한 인은 그제야 붕괴하면서 사라져갔다.
제단의 빛과 오색 소용돌이에의해 엉망이 된 광경을 내려다보며 관월진인은 굳은 얼굴로 낮게 신음했다.
한데 그때였다. 녹색 빛이 피의 안개에서 솟구치면서 신혼(神魂)의 소인(小人)이 나타났다. 이 소인이 들고 있던 젓가락 크기의 은색 채찍에서 은빛 고리가 나오더니 신혼을 보호했다. 조금 전의 강력한 파문에도 부서지지 않은 것이었다.
소인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위의 피 안개가 순식간에 타오르면서 소인의 몸을 감쌌고, 핏빛 무지개가 되어 멀리 날아갔다.
관월진인은 무리하게 대오행혼원진을 운공하느라 원기의 소모가 너무나 심했기에 소인이 빠르게 도망치는데도 막지 못하고 지켜봐야만 했다. 중년 사내는 태을 경지의 강자이니 신혼만 해도 흑교왕 같은 진선 경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더욱 쉽게 나설 수 없었다.
한데 그때, 옆에서 갑자기 검은색 팔이 죽 늘어나 핏빛 무지개를 뚫고 튀어나왔다. 그 손에는 녹색의 소인이 잡혀 있었다.
검은 팔은 옆에 있던 먹구름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먹구름은 오색 파문의 공격까지 받았기에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위청,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널 도와주러 왔건만, 감히 날 공격할 참이냐!”
꿈쩍도 못 하게 된 녹색 소인은 대노하여 소리쳤다.
“도와줄 거라면 확실하게 도와주시오! 크하하!”
먹구름이 위로 솟구치더니 녹색의 소인과 핏빛 무지개를 감쌌다. 핏빛 무지개는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때, 흑홍색(黑紅色) 돌풍이 먹구름에서 불어왔다. 이 소용돌이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어서 먹구름에서 녹색 소인의 처절한 비명이 울리더니 금세 약해졌다.
핏빛 무지개도 더는 발버둥 치지 않았고, 소용돌이에 감싸인 채 빠르게 먹구름속으로 들어갔다.
이 모든 일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나 심협 등은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다.
관월진인은 한숨 돌리긴 했으나 표정은 매우 무거웠고, 이내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제단의 빛이 안정되자 오색 소용돌이가 다시 원래대로 커지더니 먹구름을 향해 오색 빛을 쐈다.
그 순간, 먹구름의 기운이 폭증하면서 크기도 몇 배나 커지더니 칠흑같이 새까만 불꽃이 위에서 솟아오르면서 활활 타올랐다.
오색 소용돌이가 휘몰아쳤지만, 검은 마화(魔火)와 충돌하자 바로 연기가 되어 사라졌고, 마화의 어떤 원기도 흡수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관월진인의 표정이 차게 굳더니 다시 결인했다.
쿠르릉!
굉음과 함께 거대한 소용돌이 중심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많은 오색 부문의 힘이 용솟음쳐 검은 마화를 향해 휘몰아쳤다. 이에 검은 마화는 강렬하게 흔들렸고, 결국 흡입력을 버티지 못하고 오색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이 광경을 보던 관월진인은 그제야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법력을 더 가하려 했다.
그때, 심협이 큰 소리로 외쳤다.
“환술이다! 관월 선배님, 조심하십시오. 위청은 마족의 둔술로 이미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심협이 푸른 눈동자로 마화를 노려보더니 급하게 소리쳤다.
관월진인은 그 말에 다급하게 오색 소용돌이를 다시 살폈다.
빨려 들어온 마화가 굉음과 함께 폭발했지만, 그것은 소용돌이에 흡수된 게 아니라 환술이 강제로 사라진 것이었다.
관월진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더니 모종의 동술을 사용하여 마치 두 개의 별처럼 반짝이는 금빛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심협도 현음미동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 멀리 보타산 제자들이 있는 곳에서 멈췄다.
관월진인도 동시에 그쪽을 봤고, 곧장 혀끝을 깨물어 순수한 법력이 담겨 있는 피 한 방울을 비석 위에 떨어트리고는 두 손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보타산 제자들이 있는 곳에 갑자기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위청이었다.
그는 사람의 모습이었지만, 피부 전체는 검게 변했고, 눈과 미간의 핏빛 뼈만 혈광으로 빛나고 있어서 매우 기이해 보였다.
보타산 제자들은 두려움에 뒷걸음질 쳤다.
위청이 손을 휘두르자 검은 빛이 갑자기 검은 마화로 변했고, 마치 사나운 구렁이처럼 수십 장까지 뿜어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수십 명의 보타산 제자들을 휘감았다.
마화의 위력은 매우 강력하여 마화에 붙잡힌 제자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대로 흡수되었고, 영성을 잃은 이들의 법보와 법기만 툭툭 밑으로 떨어졌다.
제자들을 흡수한 마화는 한층 강력해졌고, 더욱 빠르고 사납게 다른 제자들을 향해 돌진했다.
“모든 제자는 어서 도망쳐라!”
검진을 운공하여 흑교왕을 막던 세 명의 보타산 장로들이 빠르게 날아오며 외쳤다. 이들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자 수천 개에 이르는 검의 환영이 나타났고, 사방에 빼곡한 검들은 검의 바다가 되어 마화를 막아섰다.
가장 앞에 있는, 술독이 오른 듯 코가 빨간 노인이 검결을 결인하자 금빛 검의 바다가 거세게 떨리더니 수많은 금빛 검기가 뒤엉키며 반짝였다. 그러자 반경 천 장에 이르는 거대한 검진이 나타났다. 검진은 마화의 절반을 뒤덮었고, 날카로운 검광이 사방을 날카롭게 베며 날아갔다.
허나 검광은 마화에 닿자마자 부식되어 검게 물들었고, 별다른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 마화는 금빛 검진 안에서도 거침없이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세 명의 장로를 휘감았다.
세 명의 장로는 모두 대승기의 존재였지만, 안타깝게도 이 마화에는 맞설 능력이 없었고, 순식간에 웅혼한 정기와 신혼이 모두 흡수되었다.
굉음과 함께 검은 마화는 보약을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열 배로 커졌고, 검은 불바다로 변했다. 타오르는 마화는 마치 악룡(惡龍)처럼 다시 보타산 제자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때, 검은 불바다의 상공이 흔들리더니 오색 제단과 대오행혼원진이 나타났다. 오색 소용돌이는 오색 광진으로 변해 재빠르게 내려와 위청과 검은 불바다를 뒤덮었다.
그 순간, 위청은 눈앞이 흐려졌고, 어느새 주변이 바뀌어 오색 공간 안에서 나타났다.
오색 공간에는 강력한 구속의 힘이 있어서 허공이 강철 같았기에 위청의 경지로도 사지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심지어 검은 불바다도 구속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하! 어린애 장난 같은 짓거리로구나!”
위청은 차갑게 웃더니 양손을 결인했고, 온몸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팔이 여섯 개 달린 마신(魔神)의 법상(法相)이 뒤에 나타났다. 강력한 기세가 느껴지는 이 법상은 고개를 들고 포효하더니 순식간에 위청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위청의 몸에서 갑자기 눈부신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미간의 핏빛 뼈가 더욱 강력한 혈광을 발했고, 주변 천지가 핏빛으로 물든 듯했다.
주위의 천지 영기가 성난 듯이 몰려왔고, 위청의 몸이 커지면서 자흑색(紫黑色) 비늘과 핏빛 영문이 피부를 뚫고 나왔다. 이어 양쪽 뺨과 등에서 자흑색 빛이 번쩍였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키가 백여 장에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마신이 허공에 나타났다.
마신은 나타나자마자 여섯 개의 팔을 동시에 움직여 여섯 개의 거대한 손바닥으로 주변 허공을 꾹 눌렀다.
퍼펑!
여섯 개의 거대한 자흑색 손바닥이 오색 공간 곳곳을 강하게 내리치면서 허공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오색 공간은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사분오열 갈라졌다.
대오행혼원진으로 만들어진 오색 광진이 부서지면서 오색 소용돌이도 함께 사라졌다.
여섯 개의 거대한 힘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돌진하여 법진 곳곳을 두들겼고, 자흑색의 거대한 손은 오색 제단까지 공격했다.
대오행혼원진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고, 거의 반 토막이 되어 가까스로 그 모습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색 제단도 강하게 흔들리면서 그 아래 몇 척 깊이의 거대한 손바닥 모양이 새겨졌다.
관월진인은 피를 토해내며 비틀거리다가 맥없이 쓰러졌고, 심협 등도 마찬가지였다.
심협은 경악했다. 위청이 변한 거대한 마족은 하늘을 찌르는 마위(魔威)를 뿜어내고 있었다. 일격에 태을 경지의 중년 사내도 쉽게 쓰러트린 대오행혼원진의 절반을 부수다니, 실로 놀라웠다.
청련선자 등은 절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색 광진이 무너졌고, 흉악한 마신은 여섯 개의 차가운 눈빛으로 심협 등을 노려보았다. 이어서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여섯 개의 거대한 주먹을 유성처럼 휘둘러 법진을 다시 한번 두들겼다.
콰쾅! 콰르릉!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대오행혼원진의 무늬가 끊임없이 부서졌고, 오색 제단도 강렬하게 흔들리면서 곳곳에 균열이 생겼다.
이어서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굉음이 울리더니,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생겨났고, 곧이어 마치 이전의 조음동처럼 완전히 무너졌다.
다행히 큰 중상을 입지는 않은 상태였던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전력으로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대오행혼원진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허나 소용없었다.
그때, 오색 비석 옆에 쓰러졌던 관월진인이 벌떡 일어나더니 비석 앞에 가부좌를 틀고 오른손은 위, 왼손은 몸 앞에 세운 채 빠르게 신비한 주문을 외웠다.
그의 몸은 마치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처럼 강한 금빛으로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