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46화 (546/1,214)
  • 546화. 또 한 명의 태을

    “장문인, 서두르십시오!”

    세 명의 장로는 전력으로 검진을 유지하며 기도했다.

    그때, 광장 주변의 허공에서 갑자기 오색 빛이 나타났다. 이 빛은 처음에는 어두웠지만 몇 호흡 만에 밝아져서 보타산 전체를 오색 빛으로 물들였다.

    모두 잠시 눈조차 뜨지 못했고, 다시 시야가 회복됐을 때에는 주변의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보타산의 허공을 뒤덮었던 마운(魔雲)은 완전히 소멸했고, 모두가 금색 공간, 대오행혼원진의 진법 공간에 나타난 것이었다.

    모두의 위치는 제각각이었고, 동쪽과 서쪽으로 무리가 나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보타산과 같았다.

    머리 위의 마운에서 흘러나오는 광란한 힘도 사라져 보타산 제자들은 신지를 회복했고, 요괴들의 살기도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지? 환술인가?”

    흑교왕은 이 변화에 긴장한 듯 표정이 굳었다.

    반면 흑교왕을 상대하던 세 장로는 그제야 안도했고, 검진을 제어하며 물러나면서 외쳤다.

    “모든 보타산 제자와 도우들은 물러나시오!”

    보타산의 제자와 이숙, 정균 등 다른 종문의 수사들도 방금 일어난 변화에 매우 놀란 상태였지만, 일제히 물러나 요괴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흑교왕은 보타산 측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들이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는 곧장 휘하의 모든 요괴에게 보타산 제자들을 쫓으라 명했다.

    그때, 허공에 갑자기 오색 빛이 번득이더니 오색 제단이 나타났다. 대오행혼원진의 제단으로, 그곳에는 심협 등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심협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백소천과 작은 곰 요괴를 비롯해 이숙과 정균 등 지인들이 모두 무사함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하며 더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저 아래 수천 장 깊은 곳에는 짙은 마기가 응집하여 만들어진 백여 장 크기의 먹구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광경, 바로 위청이 마족의 사법(邪法)을 시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방대하기 그지없는 마기의 파동으로 미루어 위청은 이미 태을 경지에 도달하여 관월진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오색 제단의 빛이 반짝이자 거대한 대오행혼원진이 제단 부근에 나타나 모든 사람을 뒤덮었다. 오직 먹구름과 아주 가까운 곳만이 이 법진에서 벗어났다.

    흑교왕은 안색이 급변해 만귀번을 거두었다. 이 번에서는 검은 불꽃이 흐르더니 순식간에 타오르는 검은 빛으로 변하여 번개처럼 날아갔고, 그 속도는 매우 빨라 순식간에 대오행혼원진의 영역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흑교왕이 벗어나자 오색의 제단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주변의 대오행혼원진이 갑자기 번득이기 시작했다. 오행의 영력이 대량으로 법진에 흘러 들어갔고, 대오행혼원법진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법진에서 노란 빛이 번득이더니 맷돌만 한 수많은 바위가 요괴들 머리 위에 나타나 그대로 내리 떨어졌다.

    요괴들은 마식술 때문에 신지가 뚜렷하지 못했기에 위험을 뒤늦게 감지하게 됐고, 서둘러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탓에 대부분은 피하지 못했다.

    바위의 위력은 놀라울 정도여서 요괴들은 경지가 높든 낮든 그대로 몸이 터져버렸다.

    살아남은 요괴들은 화들짝 놀라 신지를 회복했고, 곧장 뿔뿔이 흩어져 법진 밖으로 도망쳤다.

    제단의 상공. 관월진인은 냉소하더니 영패를 휘둘렀다.

    뿔뿔이 도망치던 요괴들 머리 위에 금빛이 반짝이면서 수많은 금빛의 도가 나타나더니 금빛의 폭풍이 되어 빠르게 몰아쳤다. 이에 수많은 요괴는 금빛의 도에 그대로 잘려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금빛의 도가 사라지기도 전에 법진에서 녹색 빛이 반짝였고, 길이 10장에 매우 두꺼운 청색 나무가 나타나 요괴들을 덮쳤다.

    거대한 나무가 떨어지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벼락같은 강력한 녹색 빛에 가격당한 요괴들은 녹색 빛을 뿜어내며 그대로 몸이 터져버렸다.

    거대한 나무 다음에는 남색 물결이 일었다. 보기에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웠지만, 실제로는 한기를 뿜어내고 있어서 물결에 닿은 요괴들은 그대로 얼음 조각상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적색 빛이 반짝이더니 시뻘건 불꽃이 마치 유성처럼 떨어졌다.

    오행의 신통이 번갈아가며 휩쓸자 수만 요괴는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법진에서 멀리 물러나 있던 보타산 제자들은 이 광경에 잠시 넋이 나갔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하늘을 뒤흔드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편, 심협은 대오행혼원진의 강력함에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정신을 가다듬고 비석의 남색 면을 계속 관찰했다.

    비석의 부문이 변화무쌍하여 아주 조금 깨달았을 뿐인데도 물의 신통에 대한 깨달음은 크게 진전됐다.

    특히 진창해 신통은 대오행혼원진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게 됐다. 이에 둘을 대조해봄으로써 진창해의 깨달음이 비약적으로 강해졌고, 은연중에 3중의 경지에 다달았다.

    관월진인은 그런 그를 막지 않았고, 그저 먹구름 아래를 노려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색 제단이 바로 아래로 내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먹구름 상공에 나타났다. 그 순간, 거대한 법진이 먹구름을 뒤덮었다.

    법진 안에서 적색 빛이 반짝였고 수백 개의 거대한 적색의 뇌화가 다시 한번 뿜어져 나와 먹구름과 부근에 있는 흑교왕을 공격했다.

    방금 대오행혼원진의 위력을 직접 목격한 이상 흑교왕이 어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는가! 그는 서둘러 검은 빛이 되어 먹구름 아래로 달아났다. 그 속도는 실로 빨랐으나, 적색 뇌화는 훨씬 빨라 금세 따라잡히고야 말았다.

    “모(毛) 선배님, 살려주십시오!”

    흑교왕은 안색이 변하여 체면도 생각지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때, 갑자기 밝은 은색 채찍이 먹구름에서 날아와 흑교왕의 몸을 휘감더니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줄어드는 속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고, 사방에 뇌화가 가득한 와중에도 흑교왕을 먹구름 안으로 끌고 갔다.

    수백 개의 뇌화가 떨어지자 다시 한번 폭발이 일어났고, 하늘을 뒤덮은 불바다가 먹구름과 흑교왕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불꽃의 열기는 심협 등에게까지 생생하게 느껴졌기에 이들은 각자 운공하여 방어해야 했다.

    공간은 불바다의 위력에 끊임없이 일그러졌지만, 부서진 공간에서 오색 빛이 반짝이면서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보충했다. 그러나 이 열기는 계속 기승을 부렸고, 새로 생긴 공간도 다시 타버려 대오행혼원진이 계속 공간을 만들어 보충해야 했다.

    이렇듯 주변의 공간이 끊임없이 생겨났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했고, 금빛 공간 전체가 떨려왔다.

    비석의 현묘함을 깨달아가던 심협은 이 상황에 적잖이 놀랐다.

    ‘저 불바다는 평범해 보여도 위력은 자금령의 불꽃보다 몇 배는 위구나! 위청과 흑교왕은 과연 살아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이렇게 강한 불바다라면 두 사람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위청은 이미 마족이 되었으니 상식이 통할 리가 없었고, 흑교왕은 은색 채찍의 도움을 받아 도망쳤다. 경지와 신분이 높은 흑교왕이 선배라고 부른 걸 보면 채찍의 주인은 아마도 관월진인이 말한 태을 경지의 적일 터. 불바다의 위력이 아무리 강해도 상대가 태을경이면 어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심협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불바다에서 갑자기 눈부신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의 불바다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은빛 너머로 거대한 은색 눈동자가 보였는데, 엄청난 위압감에 감히 마주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기이한 웃음소리가 은빛에서부터 들려오더니 눈에서 갑자기 거대한 은빛이 쏜살같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 순식간에 불바다를 뒤덮어 버렸다.

    갑자기 곳곳에서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은빛이 지나가는 곳마다 기승을 부리던 붉은 불꽃이 마치 증발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불바다가 사라지면서 불 속에 있던 먹구름과 흑교왕도 사라져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은빛에 제단마저 영향을 받았고, 이에 심협 등은 비석에서 얻던 깨달음도 끊겼다.

    “저건 무슨 신통이지?”

    심협은 현음미동으로 주변을 살폈다.

    관월진인도 낮은 침음하며 다시 대오행혼원진을 운공하여 천지를 뒤덮는 오색 빛을 폭발시켰다. 오색 빛은 주변에 교차하며 천천히 퍼져 나갔고, 이내 허공의 절반을 뒤덮는 거대한 오색의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이, 이건……?”

    심협은 두 눈을 홉떴다. 이 오색의 소용돌이는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옥정병의 물이 무명공법에 닿은 순간 그의 단전에서 일어났던 오색 소용돌이였다. 차이라면 그의 체내에 나타났던 오색 소용돌이는 매우 작았지만, 지금 저 소용돌이는 바다처럼 거대하다는 것뿐이었다.

    오색의 소용돌이가 나타나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흡입력이 폭발했고, 그 위력을 버티지 못한 허공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허공의 모든 원기, 영력, 파동 심지어 소리마저 전부 소용돌이에 흡수되었고, 순식간에 가장 원시적인 원기의 입자로 갈려버렸다.

    먼 곳의 보타산 사람들에게도 강력한 흡입력이 미쳤는데, 경지가 약한 제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끌려가려 했기에 장로들이 술법으로 그들을 도왔다.

    “모두 멀리 달아나라! 어서!”

    한 장로가 외치자 모두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오색 소용돌이 아래 어디쯤에서 불쑥 은빛이 나타났으나 곧장 물거품처럼 찢겨버렸고, 은빛 점이 되어 소용돌이에 흡수되었다.

    먹구름, 흑교왕 그리고 남색 옷에 머리에 관을 쓴 뚱뚱한 중년 사내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이들은 오색 소용돌이의 강력함에 광풍 속 낙엽처럼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흑교왕과 중년 사내의 몸을 감싼 빛은 오색 빛에 닿자마자 부서져 흡수되었다. 두 사람의 법력도 소용이 없었고, 어떤 신통력을 발휘해도 흡수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먹구름도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오색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저 소용돌이는 도대체 무슨 신통이지? 저토록 무서운 흡입력과 모든 원기를 집어삼킬 듯한 모습이라니, 마기도 벗어날 방법이 없구나. 실로 두려운 힘이다.’

    주변의 은빛이 사라지자 오색 비석도 다시 나타났지만, 비석의 남색 부분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고, 대신 오색의 소용돌이 도안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비석의 오색 부문(符文)은 소용돌이 도안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심협은 회오리 도안을 바라보다가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깨달았다. 오색 소용돌이 신통을 완벽히 장악하는 것까지는 바랄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깨우칠 수 있다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을 듯했다.

    태을 경지의 방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중년 남자는 이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바로 결인하여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투명한 빛의 일산(*日傘: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세우는 큰 양산)이 나타났다.

    유리처럼 투명한 빛의 꽃잎이 일산에서 뿜어져 나와서 춤을 추며 근처를 날아다녔다.

    이 꽃잎은 갑자기 반짝이더니 거대한 희뿌연 광진으로 변하여 두 사람과 먹구름을 보호했다. 그러자 광진 안의 수많은 부문이 반짝였고, 오색 소용돌이의 강력한 흡입력이 멎으면서 끌려가던 흑교왕과 중년 사내도 간신히 멈췄다.

    허나 주변의 오색 빛이 일파만파로 휘몰아치자 백색 광진의 영력이 빠르게 소진하면서 크기도 점점 줄어들었다.

    “흥! 겨우 그런 구름 막으로 오행술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관월진인은 차갑게 외치더니 정혈을 뱉어서 금색 영패에 떨어트렸다.

    금색 영패는 순식간에 금빛 구름으로 변하여 제단의 금색 비석으로 흘러 들어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