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45화 (545/1,214)
  • 545화. 다섯 명의 수선

    결단을 내린 심협은 이를 악물고는 자금령을 꺼냈다.

    한데 그때, 커다란 손이 위쪽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와 심협의 어깨를 잡았다.

    심협은 깜짝 놀랐다. 지금 그의 실력에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가까이 다가오도록 눈치채지 못하다니! 그는 고개를 돌렸고, 몸의 푸른 빛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그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큰 힘이 손에서 전해졌고, 그는 어느새 뒤로 끌려 날아가고 있었고, 눈앞이 흐려지더니 담금색(淡金色) 공간 안에 도착했다.

    심협은 그제야 몸을 돌릴 수 있었다. 그곳에는 허리가 굽은 고령의 노인이 금빛으로 빛나는 굵은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었다.

    “귀하는 누구십니까?”

    몸이 사라졌다가 수백 장 뒤에 나타난 심협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노인은 봄바람에도 날아갈 것처럼 허약해 보였지만, 그 앞에 서자 신혼이 덜덜 떨렸다. 위청을 상대할 때도 이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네가 심협인가? 괜찮은 소년이로군. 채주(彩珠)에 어울리겠어. 노부는 관월이다.”

    고령의 노인은 심협을 이리저리 살폈는데, 특히 그의 손에 있는 자금령을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과…… 관월 선배님이십니까? 보타산 유일한 태을 대능의 존재!”

    넋이 나가 중얼거리던 심협의 두 눈이 갑자기 커졌다.

    “오냐, 그렇다. 영동구천으로 흑곰 요괴의 경지를 쓰고 있구나. 잘됐다. 지금 상황이 위급하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어서 날 따라오너라.”

    관월진인은 짧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서 금색 공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심협은 멍하니 있다가 급히 자금령을 거두고 따라갔다.

    “관월 선배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위청이 지금 마족의 악랄한 대법으로 보타산 제자들 시체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곧 태을 경지에 도달할 겁니다. 이대로 두면 보타산 전체가 위험해질 것이니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선배님께서 나서주십시오.”

    그는 뒤를 따라 날아가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하다. 내가 나선다 해도 위청을 막을 수가 없어.”

    관월진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위청이 벌이는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

    “내 늙고 우둔해졌지만 두 눈은 멀쩡하니 저자의 요란스러운 소동을 어찌 모르겠나? 그러나 자네가 모르는 것이 있네. 위청의 곁에는 태을 경지의 고수가 지키고 있어서 내가 나선다면 그자도 나설 테니 아무 소용이 없다네.”

    태을 경지의 관월 진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협은 안색이 변했다. 문득 저들 쪽에서 태을의 대능이 관월진인을 막고 있다던 흑교왕과 청련선자의 말이 떠올랐다.

    태을의 대능이 지키고 있으니 누가 위청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겠는가? 이대로 가다가는 위청도 곧 태을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고, 그럼 상황은 저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보타산은 정말 이 재앙을 피할 수 없는 건가?’

    “울상 짓지 말게. 아직 절망하기에는 일러. 마족의 비술이 신비하여 저 애송이를 강제로 태을까지 올릴 수 있다 해도 우리 보타산도 무위도식하지는 않았네. 우리에게는 관음 대사님의 도통(道統)이 있으니 위청과 다른 망할 태을 놈을 상대할 수 있네. 단, 이 도법은 한 명의 태을 수사와 다섯 명의 진선기 수사의 힘을 합쳐야만 할 수 있지. 흑곰 요괴가 갑자기 사라져 인원이 부족했는데 마침 자네가 왔으니 보살님이 보우하심이야!”

    관월진인의 목소리에서 흥분이 느껴졌다.

    “그게 사실입니까?”

    심협은 정신이 번쩍 들어 물었다.

    “난 거짓을 말할 줄 모른다네. 날 따라오기나 하게.”

    이어서 관월진인이 팔을 크게 휘두르자 두 사람 아래로 커다란 청련(靑蓮)이 나타나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보타산의 좌련(坐蓮) 신통이리라.

    두 사람은 더욱 빠르게 날아가 곧 금색 공간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거대하기 그지없는 법진에 다양한 빛들이 교차했고, 촘촘한 진기와 진반들이 떠다니며 천지를 뒤덮는 거대한 법진을 이루었다.

    법진은 적, 황, 남, 녹, 금색의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치 매화의 다섯 꽃잎이 합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법진 중앙에는 작은 산만 한 둥근 제단이 있었는데, 높이는 5여 백여 장에 이르렀고, 지름은 천 장은 돼 보였다. 주변의 다른 법진들도 적, 황, 남, 녹, 금색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다섯 가지 각기 다른 재료로 만든 것만 같았다.

    제단에는 수리한 흔적이 선명했는데, 여러 모퉁이와 그 아래 작은 반쪽 구역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달랐다.

    제단은 이런 오색 부문이 가득했고, 크고 작은 수많은 진기가 꽂힌 채 반짝였다. 진기에서 흘러나온 빛은 굵은 무늬처럼 번져 나와 주변의 거대한 법진과 연결되어 있었다.

    법진은 양의미진환진보다 더 크고 복잡했다. 제단의 가장 윗부분에는 적, 황, 남, 녹, 금색의 매화 모양으로 이루어진 작은 광진(光陣)이 있었다.

    세 사람이 그곳에 가부좌를 튼 모습이 보였다. 그중에는 금색 영역에 앉은 황동도인도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은 심협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한 명은 환갑의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구릿빛 피부의 거한으로, 각각 황색과 적색 영역에 앉아 있었다. 이들의 기운으로 보아 진선기의 고수인 듯했다.

    제단의 세 사람은 심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동도인은 놀란 표정이었고, 다른 두 사람은 의아한 눈빛이었다.

    “이건 무슨 법진이고 여기는 또 어디입니까?”

    심협은 눈앞의 거대한 법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관월진인은 잠시 망설이며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곤란하시다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협이 그의 표정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럴 것 없네. 이 법진은 대오행혼원진(大五行混元陣)일세. 상고 시대부터 전해지는 선진(仙陣)이지. 어떤 고인이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오행의 이치가 담겨 있어 정묘하기 그지없다네. 관음조사께서 과거 보타산을 개척하셨을 때 수많은 공법을 남기셨지.

    치료 비술은 대부분이 서천의 영산에서 비롯되었으나, 창진해, 지열화 등 오행의 신통은 이것, 대오행혼원진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만드셨다네. 그리고 이곳이 바로 대오행혼원진의 법진 공간이지.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니 나머지는 차차 말해주겠네. 소우는 물 속성 공법에 능하니 수(水) 법진에 어울리겠군. 이번 일은 자네에게 해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관월진인은 간략하게 설명한 후, 미리 자리를 잡은 자들에게 심협을 소개했다.

    “관월 사숙, 심 소우의 경지는 충분하나 보타산의 문하도 아닌데 어찌……?”

    환갑노인이 주저하며 말했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네. 이 일에 대해서는 더는 말하지 말게.”

    말을 마친 관월진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제단 상공에 나타나더니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 제단 상공에 금빛이 반짝이면서 청련선자가 나타났다.

    “관월 사숙,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까?”

    청련선자는 나타나자마자 심협을 보고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기뻐하며 관월진인에게 물었다.

    “심 소우의 출현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네. 서두르게!”

    청련선자는 제단의 녹색 영역으로 내려왔다.

    이를 본 심협도 더는 망설이지 않고 남색 영역으로 날아갔다.

    남색 구역은 다른 영역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기 그지없는 무늬로 가득했고, 스스로 체계를 세운 것처럼 보였다. 또한, 주변의 다른 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매우 심오했다.

    남색의 진문 중앙에 2척 크기의 남색 원이 있었는데, 다른 쪽을 보니 황동도인과 청련선자도 그곳에 앉아 있었다.

    심협은 남색의 원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었다.

    “선배님의 말씀을 따르겠으나, 대오행혼원진은 처음이니 가르침을 주십시오.”

    심협은 겸손한 자세로 관월진인에게 공수했다.

    “진법 제어는 내가 할 테니 자네들은 법진 안의 영력 흐름만 조절하면 되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월진인은 다섯 명 모두 준비가 된 것을 보고는 손바닥만 오래된 금색 영패를 꺼내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금빛이 날아가더니 다섯 영역의 교차점에 떨어지자 갑자기 우지끈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맷돌만 한 비석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오행의 색을 띤 다섯 면(面)으로 이루어진 비석은 각각의 면이 같은 색을 띤 원에 앉은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비석에는 복잡한 부호가 가득하여 문자 같기도 혹은 그림 같기도 한 것이 매우 신비로웠다. 또한 각 면의 도안이 모두 달랐다.

    심협은 비석의 남색 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무엇인가를 알 것 같았다. 부호는 복잡했지만, 어떠한 규칙을 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비석의 부호가 마치 거센 물결처럼 일고 파도가 치는 듯했다.

    비석 상단에는 매우 간단한 도안이 있었는데, 금색 두루마리 같았다.

    심협은 신식으로 비석 꼭대기를 훑어보고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루마리는 다름 아닌 천책이었던 것이다!

    ‘천책의 도안이 왜 여기에? 설마…… 대오행혼원진과 천책이 연관 있는 건가?’

    그의 표정이 급변하는 것을 본 청련선자가 막 무언가를 물어보려는 순간, 오색의 진법 무늬가 빛을 발했고, 적, 황, 남, 녹, 금색 빛이 다섯 명을 뒤덮었다.

    청련선자는 서둘러 심신을 가다듬고 녹색 빛을 뿜어내며 주변의 법진을 안정시켰다.

    심협도 남색 빛에 뒤덮이자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이어서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기이할 정도로 크고 혼란스러운 물 속성 영력이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심협은 서둘러 무명공법으로 영력을 안정시켰다.

    무명공법은 매우 정교하여 수련할수록 그 비범함을 알 수 있었다. 몇 주천 후에는 영력 안의 혼란이 사라지면서 매우 온순해졌다.

    다른 네 사람도 마찬가지로 법진 안의 영력을 안정시키고 있었으나, 심협만큼 빠르지는 못했다.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영력을 조절한 청련선자가 손을 들자 녹색 빛이 그녀의 손끝에서 비석의 녹색 면으로 흘러 들어갔다.

    비석의 녹색 면이 빛을 번득였고, 그 위의 신비한 부호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용솟음치더니 빠르게 노닐며 현묘한 도안을 만들어냈다. 도안들의 크기와 길이가 제각기 달랐고, 매우 현묘했다.

    청련선자는 법진의 영력을 조절하는 한편, 잠시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빛내며 비석의 신비한 변화를 바라봤다.

    다른 세 사람도 차례로 영력을 안정시켰다.

    심협의 손에서도 순수한 남색 빛이 뿜어져 나와 비석으로 들어갔다.

    비석의 남색 면도 반짝였고, 문양이 용솟음치더니 수많은 물결 도안으로 변해 각종 유수의 진의를 나타냈다.

    ‘저 물 속성의 변화는 분수결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데, 저 도안은 마치 한빙 진의(寒氷眞意)의 현묘함을 나타내는 것 같군.’

    십혐은 눈을 크게 뜨고 현음미동을 운공하여 비석의 도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그는 관월진인이 법진이 그에게 해가 없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제단의 진문에 빛이 번득이자 대오행혼원진이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하늘을 찌르는 오색 빛이 공간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 * *

    매우 두꺼운 먹구름이 솥뚜껑처럼 공간을 뒤덮고 있어서 보타산은 갑자기 밤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어두워졌다.

    구름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의 파동은 몇 배나 짙어져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보타산 제자들의 살의는 더욱 짙어졌고, 붉게 빛나는 눈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만 같았다. 경지가 높은 소수의 제자들만이 간신히 이성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들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다.

    청련선자가 사라지자 검진은 대승기의 장로가 맡은 상태였다. 이 검진은 보타산 제일의 검진인 위타금련검진(韋陀金蓮劍陣)으로, 매우 정교했다. 세 명의 장로가 힘을 합쳐 제어했지만, 위력은 청련선자가 제어할 때에 비해 크게 못 미쳐 흑교왕의 만귀번을 가까스로 막아내는 정도였다.

    게다가 이 장로들 역시 끓어오르는 살의를 억눌러야 했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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