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44화 (544/1,214)
  • 544화. 천마헌제(天魔獻祭)

    침입한 요괴들은 오합지졸처럼 난잡했지만, 수가 매우 많고 하나같이 마식술(魔息術)에 걸린 상태라 목숨도 아끼지 않아 보타산 제자들이 열세를 보였다. 요괴들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을 기세였다.

    보타산 제자들만이 아니라 선행 대회 참가한 수사들도 싸움에 참여했다. 참월, 정균, 임천천, 이숙 등도 함께 임시로 무리를 이루어서 요괴들의 쏟아지는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이들은 각 문하 제자 중에서도 걸출한 인재들이었지만, 아직 완숙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기에 대부분이 출규기 경지인 요괴들을 막아내기 힘들었다.

    특히, 참월과 정균, 임천천 등은 선행 대회에서 입은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라 싸움이 길어질수록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임천천이 백색의 옥여의를 발동하자 호랑이 머리의 환영이 나타나 표범 요괴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했다.

    펑!

    굉음과 함께 옥여의의 호랑이 머리 환영이 부서지면서 멀리 나뒹굴었고, 임천천은 피를 토하며 비틀비틀 물러났다.

    반면 표범 요괴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듯 멀쩡히 일어나 새까만 발톱을 휘둘렀다.

    표범 요괴의 발톱이 번득이더니 몇 개의 검은 빛이 임천천을 향해 날아갔다.

    임천천은 불안정한 상태라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당할 듯했다.

    그때, 커다란 검이 번개처럼 날아오더니 백여 개의 환영을 만들어내 검은 발톱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다행히 옆에서 정균이 제때 도와 임천천은 목숨을 구했지만, 정작 정균은 이로 인해 허점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시커먼 불꽃이 날아와 그의 오금철 방패에 생겨난 균열을 뚫고 들어왔다.

    팍!

    정균의 허리춤에서 녹색 옥패가 깨졌고, 녹색 빛이 그를 보호해 검은 불꽃을 막아냈다. 그러나 불꽃의 잔재는 남아 있어 가슴에 꽂혔고, 정균은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피를 뿜었다.

    정균과 임천천이 동시에 부상을 당하자 전선에 큰 허점이 생겼고, 요괴들은 곧장 그곳에 맹공을 퍼부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내 무너질 듯 위태로워졌다.

    그때였다.

    화르륵!

    거대한 불꽃 기둥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좌에서 우로 휩쓸었다. 요괴들은 불꽃 기둥에 그대로 휩쓸렸고, 믿을 수 없이 뜨거운 열기에 참혹한 비명을 지르며 사분오열되고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심지어 가까이 있던 다른 요괴들까지 불꽃 기둥에 휩쓸리면서 죽어 나갔다.

    정균과 임천천 등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요괴들이 죽어나가면서 생긴 틈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나타난 심협이 있었다.

    “시…… 심도우!”

    정균 등은 반가움과 함께 반쯤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비록 화련 비경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수련 경지가 자신들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었다. 한데 지금 그의 이 위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균은 신식으로 심협을 훑고는 상대의 기운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데 놀랐다.

    “크아아!”

    살아남은 요괴들이 맹렬한 기세로 울부짖었고, 개중 몇몇 강력한 요괴들은 곧장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심협은 싸늘한 눈으로 결인해 자금령을 가리켰다.

    쿵!

    굉음과 함께 하늘을 찌르는 불꽃이 자금령에서 쏟아져 나와서 요괴들을 휩쓸고 지나간 후, 그곳에는 거무튀튀한 재만 한가득 남았다.

    맹렬한 불꽃은 멈추지 않고 날아갔고, 광장의 수많은 요괴가 휩쓸렸다. 요괴들은 불꽃 속에서 몇 번 몸부림치다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한편, 보타산 쪽에서는 이 광경을 보고는 놀라운 와중에도 정신이 번쩍 들었고, 곧장 전력으로 반격해 요괴들의 공세를 물리치기 시작했다.

    심협은 임천천 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청련선자에게 다가갔다.

    “심협, 자네였나? 한데 경지가 어떻게 갑자기…… 아, 누군가가 영동구천비술을 시전했군.”

    청련선자는 검진으로 흑교왕을 막아내고는 심협을 돌아보더니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선배님 말씀대로 자죽림의 호법 선배께서 영동구천을 시전하셨습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실은…….”

    심협은 조음동 안에서 일어났던 일과 위청에 대해 청련선자에게 전음으로 전했다. 단, 위청이 치우 잔혼의 환생일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뭐라!”

    청련선자는 보타산의 장문답게 견식이 넓었고, 심협의 말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검진에는 순간 허점이 드러났다.

    흑교왕은 날카로운 눈으로 상황을 간파하고는 발톱을 세워 거세게 휘둘렀다. 커다랗고 시커먼 귀물의 손이 먹구름에서 날아왔다. 손에는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어서 음산한 기운이 넘쳤다.

    귀물의 손은 번개처럼 빨라 단숨에 검진의 허점을 공격했다.

    검은 빛이 크게 번득이면서 음산한 귀기가 맹렬하게 폭발했고, 검진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귀물의 손도 한층 작아지긴 했지만,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은 채 청련선자를 향해 날아갔다.

    청련선자는 크게 놀라서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법보를 들어 막으려 했다. 그때, 심협이 운공한 풍령의 황색 폭풍이 옆에서 날아갔다. 수많은 황색 자갈이 어지러이 휘날렸고, 한 발 먼저 귀물의 손을 막아냈다.

    그 광경을 본 흑교왕은 경멸하듯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검은 귀물 손톱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본명법보인 만귀번(萬鬼幡)으로 사용한 절기인 흑천신조(黑天神爪)였다. 음산하기 그지없어서 방금 심협이 쏘아 보낸 불꽃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으니 폭풍의 공격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흑교왕이 신념을 발동하자 검은 귀물 손톱은 단숨에 몇 배로 커지더니 황색 폭풍을 찢어발기려 했다.

    꽈광!

    두 공격이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검은 귀물의 손에는 수많은 구멍이 생겨났고, 대량의 검은 기운이 빠르게 흩어졌다.

    귀물의 손을 관통한 것은 바로 산혼의 자갈이었다. 이 자갈은 사람의 혼백을 흩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음혼(陰魂)의 힘 또한 억제할 수 있었다. 검은 귀물의 핵심은 순수하기 그지없는 음혼의 힘이었기에 산혼의 자갈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고 흩어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폭풍에서 바람 소리가 울리면서 거대한 바람의 칼날이 귀물의 손을 베었다.

    이에 검은 귀물의 손은 부서졌고,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바람에 휘날려갔다.

    이 일련의 변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옆에서 보기에는 황색 폭풍이 검은 귀물의 손을 감싼 순간 바로 부서진 것처럼 보였으리라.

    “아니!”

    흑교왕은 뜻밖의 상황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황색 폭풍은 그러고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 먹구름을 후려쳤다.

    흑교왕은 서둘러 만귀번을 운공하여 폭풍의 공격에 맞섰다.

    ‘……그렇게 된 겁니다. 저는 요괴들을 처치한 후 다시 위청을 찾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심협은 일격을 가한 뒤, 추격하지 않고 화령을 결인했다.

    거대한 불꽃 파도가 광장을 휩쓸면서 수많은 요괴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심협이 공격을 마치고 떠나려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먹구름들이 나타나더니 점점 많아져 순식간에 보타산 상공을 가득 뒤덮었다. 이 구름에서는 검은 번개가 흘렀다.

    음산하고 기이한 기운이 검은 구름에서 강렬하게 느껴졌다.

    “마기!”

    심협은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른 사람들과 요괴들도 하늘의 변화에 놀란 기색이었다.

    “드디어 성공한 건가……?”

    흑교왕은 그 광경을 보고는 홀가분한 듯 중얼거렸다.

    그때, 하늘의 먹구름이 끓는 것처럼 솟아오르더니 수많은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구름에서 나타났다. 소용돌이는 서로 충돌하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는데, 사람의 비명 같기도 하고 우는 소리 같기도 했다.

    보타산 수사들은 이 소리에 두 눈이 붉게 번득이더니 갑자기 억제하기 힘든 광포한 충동이 일어났다.

    요괴들은 이 소리를 듣자 가뜩이나 충만했던 살육의 욕망에 불을 지핀 듯 두 눈이 붉게 빛나면서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이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이들은 오로지 살육만을 목적으로 보타산 수사들에게로 몰려들었다.

    쌍방은 더욱 거센 기세로 맞붙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겼고, 부러진 팔다리가 비처럼 쏟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 수십 명의 보타산 제자들이 죽었다. 물론 더 많이 죽은 것은 요괴 쪽이었지만,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보타산 제자들은 살육에 눈이 먼 듯 광기에 휩싸였고, 가지런하던 전진(戰陣)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장로들의 일갈에도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청련선자도 가슴속에서부터 난폭한 살기가 솟아올랐지만, 경지가 깊은 고수답게 곧장 이를 제압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며 표정이 급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는 손을 흔들어 은색 옥반(玉盤)을 꺼내 두드렸다.

    옥반이 빠르게 돌더니 둘 줄기 은빛이 광장 부근의 두 산에 떨어졌다. 이 산들에서 뿜어져 나오던 은빛의 번개가 갑자기 멈추더니 빠르게 합쳐지면서 거대한 은빛 번개 장막으로 변했고, 그 위로 수많은 뇌전부가 나타났다.

    은빛 뇌막(雷幕)은 곧바로 빠르게 내려앉더니 10여 장 높이에서 멈췄다.

    그 순간, 광장에 있는 모든 존재는 마치 커다란 산에 짓눌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꿈쩍도 할 수 없었고, 제자리에서 우뚝 굳어버렸다.

    심협은 푸른 빛이 도는 눈으로 사람들과 요괴들의 시체를 살폈다.

    땅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검은 빛이 떠 있었고, 이 빛에 뒤덮인 사람과 요괴의 시체들은 빠르게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이건……?”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재빨리 지면을 살폈다.

    다음 순간, 심협은 황색 부적을 몸에 붙이더니 노란 빛에 휩싸여 기척도 없이 땅속으로 들어갔다.

    청련선자는 이를 보고는 즉시 땅에 있는 시체들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녀는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백색 부적을 꺼내서 바스러트렸다.

    * * *

    땅속 깊은 곳에는 지름이 백여 장에 이르는 둥근 모양의 공간이 있었는데, 검게 반짝이는 그림자가 그곳에 떠 있었다. 바로 위청이었다.

    위청은 쉬지 않고 결인했고, 위에서부터 스며든 검은 기운들은 원형의 공간을 떠다녔다.

    이 기운들은 본디 특별한 점이 없었는데, 이곳에 모여든 순간 울부짖는 사람과 짐승들의 얼굴로 변해갔고, 이는 땅에서 죽어간 보타산 제자들과 요괴들이었다. 울부짖는 얼굴들에는 깊고 큰 원한이 느껴졌다.

    위청은 마족에서도 가장 악랄하다는 천마헌제대법(天魔獻祭大法)을 시전 중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로 제를 올리고, 시체와 연결돼 아직 흩어지지 않은 신혼을 순수한 원한의 힘으로 만들어 자신을 보양하는 대법이었다.

    격렬한 싸움으로 수많은 인간 수사와 요괴가 죽어갔기에 지금의 보타산은 천마헌제대법을 시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이토록 많은 원망의 힘이 쌓이자 마치 실체처럼 변하였으니 진선 경지의 수사라 해도 심신을 지키지 못하고 살심에 사로잡힐 만했다.

    위청의 미간에 박힌 핏빛 뼈는 계속 반짝였고, 그 위로 수많은 미세한 소용돌이가 마치 아기의 입처럼 빠르게 주변의 검은 기운을 흡수했다. 소용돌이에서 들려오는 갈망과 욕망으로 가득한 그 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위청의 몸은 검은 기운으로 용솟음쳤고, 기운도 빠르게 상승해 머지않아 태을경에 도달할 듯했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노란 빛으로 변하여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쌓인 원한은 너무 짙었고, 그 방어 능력은 진정한 진선 경지를 훨씬 뛰어넘었다. 영동구천비술로 경지는 진선 중기까지 높아졌으나 신혼의 힘은 강해지지 않은 심협으로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위청…… 역시 더 강해졌군!”

    심협의 푸른 눈은 눈살을 찌푸리며 위청을 노려보았지만, 섣불리 공격하지는 않았다. 본래의 실력만 해도 위청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인데, 하물며 더 강해졌으니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십중팔구 목숨만 잃을 터였다.

    그렇다고 위청은 점점 더 강해질 테니까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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