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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43화 (543/1,214)
  • 543화. 요괴 무리의 침입

    심협은 감히 무리하게 맞서지 못하고 황급히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그의 발에 달빛과 함께 별빛까지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3백여 장 뒤에 나타났다.

    그는 다소 멍한 모습이었다. 방금은 흑곰 요괴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이형환영 신통력이 발휘된 것이다.

    현실 세계의 심협은 자질이 지극히 평범했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그저 몇 번 시전해봤을 뿐인 이형환영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설마…… 영동구천이 잠시 동안 수련 경지를 끌어올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비술의 수련까지 도울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추측은 옳았다. 보타산의 영동구천은 관음대사가 영산 대뢰음사의 비법을 참고하고 자신의 깨달음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절세의 신통력이었다. 이 신통력은 수련 경지를 넘겨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술을 시전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합쳐지게 한다. 그래서 한쪽이 신통력을 쓰면 다른 쪽에서 곧바로 동시에 감지하여 자신이 법술을 쓰는 것처럼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그때, 핏빛 결정체에서 갑자기 쩌적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 위에 줄줄이 균열이 나타났다.

    심협은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

    핏빛 결정체 위의 균열들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금세 전신을 뒤덮었고, 이내 마디마디 부서지더니 벌거벗은 청년이 나타났다. 바로 위청이었다.

    그에게서는 마문과 비늘갑옷이 사라졌지만, 기운은 조금도 쇠약해지지 않은 데다 미간의 핏빛 뼛조각은 이전보다 더욱 찬란하고 영롱하게 빛났다.

    심협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눈앞의 위청은 염마신과 같은 엄청난 위세는 사라졌지만, 어째서인지 더욱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이에 그는 또다시 무의식적으로 조금 더 물러났다.

    ‘어찌 이럴 수가! 양의미진환진의 자폭을 온전히 견뎌냈단 말인가!’

    흑곰 요괴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책 공간에 숨어 있던 작은 곰, 백소천 등은 바깥 상황을 볼 수 없어 흑곰 요괴의 표정이 급변하자 내심 긴장했다. 그들은 바깥 사정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한편, 섭채주는 눈을 감은 채 옆에 가부좌를 틀고는 한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받쳐 든 채 제련하는 중이었다.

    원구는 떠나버린 듯 그 자리에 없었다.

    그 무렵, 위청이 새빨간 두 눈으로 심협을 한 번 훑어보더니 갑자기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누구도 보지 못했다.

    ‘아뿔싸! 위청이 어디로 간 게지? 심 소우 보았느냐?’

    흑곰 요괴가 깜짝 놀라 다급히 물었다.

    심협은 두 눈에 푸른 빛을 반짝이며 돌아서서 자죽림 바깥의 보타산 종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현음미동은 옥부의 환력을 적잖이 흡수하여 시력이 크게 증가한 상태였기에 위청이 보타산 종문 쪽으로 가는 것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종문 방향? 심 소우, 어서 쫓게!’

    흑곰 요괴는 이를 보고 급히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숨이 가빴다.

    ‘호법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심협은 신식을 천책 공간 속으로 뻗어보고는 안색이 변하여 전음으로 물었다.

    이때 흑곰 요괴의 안색은 온통 거무죽죽했고, 기운 역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영동구천 비술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게 분명했다.

    심협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만약 영동구천 비술이 없다면 그는 출규 중기 경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괜찮다. 아직 버틸 수 있으니 어서 위청을 쫓아가거라.’

    흑곰 요괴는 고개를 저으며 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오라버니, 위청을 쫓아가셔요. 호법 선배님은 제게 맡기시고요.’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있던 섭채주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심협은 군말 없이 기다란 붉은 무지개로 변하여 위청을 뒤쫓았다.

    천책 공간 속에서는 섭채주가 바닥을 철썩 내리쳐 스르륵 미끄러지듯 흑곰 요괴 앞으로 날아왔다. 그녀는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며 뭔가를 중얼중얼 읊조렸다.

    녹색 빛줄기들이 끊임없이 버드나무 가지에서 날아가 흑곰 요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흑곰 요괴의 요동치던 기운은 단숨에 절반쯤 잠잠해졌고, 거무죽죽하던 낯빛도 조금은 회복되었다.

    하지만 섭채주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 짙은 눈썹을 찡그리더니 입을 벌리고 정혈을 내뿜었다. 정혈이 번쩍하고 버드나무 가지로 녹아들자 그 위에서 눈부신 녹색 빛이 피어오르고 끄트머리가 격렬하게 떨렸다. 이어서 버들잎 두 장이 날아가 흑곰 요괴의 미간에 내려앉아 녹아들었다.

    흑곰 요괴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녹색 연화대 문양이 미간에 나타났다. 또한 그 위로 녹색 잔물결이 일렁였고, 흐트러졌던 기운이 눈 깜짝할 사이에 회복되었으며, 심지어는 조금 상승하기까지 했다. 안색도 빠르게 회복되어 약간의 홍조가 감돌았다.

    위청을 뒤쫓던 심협도 흑곰 요괴의 변화를 감지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은 방금 전 버드나무 가지 속에서 깨달은 비술인 연화묘법(蓮華妙法)입니다. 관음대사께서 비밀리에 남기신, 상처를 치료하는 신통력이죠. 아무리 중한 부상을 입었다 해도 숨이 붙어있기만 하다면 잠시 생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법술에 익숙하지 않아 버드나무 가지의 도움으로도 1각밖에 유지할 수 없어요.’

    섭채주가 설명했다.

    ‘1각이면 충분하다. 누이 네가 호법 선배님을 잘 살펴드리거라.’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섭채주를 다독인 뒤, 전력으로 내달렸다.

    지금 위청의 실력으로는 보타산에서 관월진인 외에는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더욱이 그가 몰래 기습을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관월진인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청련선자 등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리 되면 보타산이 위청의 손에 파괴될지도 모른다.

    심협은 보타산과 큰 관계가 없었지만, 그의 수명 문제를 해결해준 선행이 보타산의 물건인 데다 섭채주의 종문이기도 하니 그저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만약 그가 잘못 감지한 게 아니라면, 위청은 아마 첨과, 마수수와 마찬가지로 치우의 마혼이 환생한 몸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결코 살려둘 수 없었다.

    양의미진환진이 폭발했고 자죽림 안의 금제도 따라서 사라져, 그는 순식간에 자죽림을 벗어나 금세 보타산 종문 변두리의 어느 대전 앞에 이르렀다.

    이곳은 몹시 소란스러웠는데, 벽곡기 보타산 제자 예닐곱 명과 요물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법기와 요기가 하늘을 뒤덮으며 춤추듯 날아다녔고, 충돌음이 광장에 메아리쳤다.

    보타산 제자들은 수적으로 우세였지만, 요물들의 실력이 훨씬 막강했다. 심지어 응혼기 사슴 요괴까지 있어 보타산 제자들은 확실히 밀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미 두 사람이 피 웅덩이에 쓰러져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심협을 보고도 요물들은 멈추기는커녕 더욱 날뛰었고, 그중 늑대머리 요물은 도리어 피에 굶주린 듯 큰소리로 포효하더니 입에서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응혼기 사슴 요괴를 포함한 다른 요물들도 마찬가지로 마치 살육에 도취된 듯 두 눈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심협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이 요물들, 특히 응혼기 사슴 요괴의 영지는 진작 크게 트였음이 분명했다. 한데 어째서 이토록 빠른 심협의 둔광을 보고도 두려워하며 달아나기는커녕 죽여달라고 목을 들이민단 말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그는 늑대 요물을 향해 한 손을 튕겼다. 그러자 순간 눈부신 붉은 빛이 쏘아져 나갔고, 늑대 요물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을 보호해주던 요기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해 검기에 곧장 두 동강이 났다.

    가닥가닥 실오라기 같은 핏빛 안개가 늑대 요괴의 시체에서 흘러 나와 허공으로 빠르게 날아 흩어졌다.

    ‘사타령의 마식술(魔息術)! 어쩐지 이 요물들이 죽음도 두려워 않더라니.’

    흑곰 요괴가 가벼운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마식술이요?’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마식술은 사타령 광수결에서 파생된 사악한 법술인데, 광범위하게 시전할 수 있다. 사람과 요괴의 체내 기혈의 힘을 끓어오르게 하고, 전투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지. 대신 사고력이 약해진다.’

    흑곰 요괴가 재빨리 설명했다.

    심협은 문득 사타령이라는 곳에 대해 궁금증이 커졌다.

    귀도가 일전에 사타령의 광수결을 시전한 바 있고, 이 요물들 또한 누군가가 시전한 사타령의 마식술에 당했다. 그렇다면 이 요마들 모두 사타령에서 온 것일까?

    한편, 다른 요물들은 그제야 심협의 가공할 실력을 알아차리고는 사슴 요괴를 필두로 돌아서서 달아났다.

    심협의 눈에 서늘한 빛이 스쳤다. 보타산의 광경에서 그는 춘추관의 끔찍했던 참상을 떠올리고는 즉시 다섯 손가락을 연달아 튕겼다. 그러자 다섯 줄기의 검기가 날아갔고, 이내 요물들의 몸뚱이가 붉은 빛에 휩싸여 비명조차도 지를 새 없이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보타산 제자 몇몇이 크게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와 감사를 표했다.

    심협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몸에 붉은빛을 번쩍이며 날아갔고, 동시에 신식을 뻗어 주위를 살피며 위청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위청은 마치 사라진 것처럼 털끝만큼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심협으로서는 하릴없이 내달리며 찾아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보타산 종문 깊이 들어갈수록 심협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가 지나는 곳곳마다 보타산 제자들과 요물들이 치열하게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온 보타산이 요족들에게 침입을 당한 듯했다.

    지나는 길에 몇몇 요물이 그를 공격했다가 그대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요족들이 뭘 하려는 게지? 설마 정말 보타산을 멸망시킬 생각인가?”

    심협은 한바탕 뒤져보고도 위청의 종적을 찾지 못하자 어느 대전 꼭대기에 멈춰 서서 전쟁의 불길로 가득한 보타산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뒤이어 그가 손을 휘두르자 옆에서 금빛이 번쩍 스치더니 작은 곰 요괴와 백소천의 모습이 나타났다.

    둘은 눈앞의 광경에 얼굴빛이 변했다. 백소천의 얼굴에는 연민과 비통함이 맺혔고, 작은 곰 요괴의 두 눈에서는 전의가 불타올랐다.

    “저는 위청을 추적해야 하니 이곳은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심협은 두 사람에게 자세히 설명할 겨를도 없이 간단하게 당부하고는 다시 날아갔다.

    그는 곧 보타산 종문의 가장 깊은 곳, 거대한 광장 근처에 이르렀다.

    그곳의 전투는 더욱 치열해서 여기저기 온통 인간족과 요족 수사들이 맞붙은 상태였고, 양쪽의 고수들 대부분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늘을 절반쯤 가린 거대한 먹구름이었는데, 바로 흑교왕이 검은 대번의 힘을 불러일으켜 만들어낸 적이 있었던 요운이었다.

    먹구름이 용솟음치자 수많은 요혼과 귀물들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빽빽하게 귀물의 홍수를 이루며 맞은편을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 먹구름 맞은편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청련선자였다.

    그녀의 부상은 이미 많이 회복된 것 같았는데, 몸 주변에는 거의 백 개에 달하는 금빛 비검이 빠르게 날아다니며 연꽃 모양의 거대한 검진으로 변했고, 눈부신 검광이 반쪽 하늘을 밝게 비췄다.

    검진이 먹구름과 거세게 충돌하자 귀물들이 한 마리 한 마리 금빛 검기에 짓눌려 죽었다. 그러나 그 요혼들과 귀물들이 매우 강한 오염 효과라도 지닌 듯 검진의 검기는 검게 물들더니 이내 흩어졌다.

    양쪽은 서로를 압도하지 못했고, 전투는 소모전에 빠졌다.

    한데 황동진인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광장 허공의 칠보영롱 등은 깨졌는지 이미 사라졌으나, 광장 근처 산봉우리 위의 은빛 번개 금제는 아직 남아 빗발치듯 날아왔다.

    아래 광장에서도 양쪽 사람들이 각자 광장을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 폭발음과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하늘로 치솟아 보타산 전체가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보타산 제자들은 모두 법보와 법기를 사용하였다. 여러 보타산 장로들의 인솔 아래 이들의 갖가지 법기와 법보의 빛이 한데 뒤엉키며 광장 근처의 은빛 번개 금제와 어우러져 웅장한 빛의 장벽을 이루었다.

    반면 요물들 쪽에서는 요기(*妖器: 요족들의 무기)를 쓰는 이도 있었고, 요광(妖光)과 요기를 내뿜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요물이 직접 요체(*妖體: 요괴의 몸)를 써서 보타산 제자에 맞서기도 하여 진형이 다소 난잡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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